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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3/02 00:43:01
Name 해피아이
Subject [일반] 헤어진 다음 날
편의상 반말로 적겠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헤어진 다음 날 아파할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일했다
오늘도 열심히 일하는 한국인!!!
oecd 최고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아니더냐 -_-;;;;

꿀맛같은 점심시간 오후 12시 친구를 만났다
"해피아이야 여친이랑 헤어졌다며? 괜찮어?"
"네가 날 걱정하다니 헤어질만한데 가끔 헤어져야겠다 크크"
"진짜 괜찮어?"
걱정스레 바라보는 친구의 눈빛 난 1주일간 충분히 찌질되었고 더이상 친구들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너스레를 떨기로 했다
"사실 소개팅이 들어왔거든 얼굴 이쁘더라 흐흐"
"역시 해이파이.. 역시 바람둥이.."
연기가 지나쳤던 탓일까?
그들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잘못된 그들의 오해에 당황하여 할 수 없이 진실을 말했다
"그게 아니고 사실 형이 성숙했잖어? 오랜 인격의 도야로 이런 사소한 아픔은 아무 것도 아니지"
"닥쳐!"
난 그들의 오해를 풀고자 노력했으나 당연히 실패했다
인간사이의 불신의 벽이 이렇게 두터울 줄이야
에반게리온의 AT필드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_-;;;;




오후 3시 어제 소개팅을 시켜주겠다며 사진을 찍고 간 A형한테 카톡이 왔다
업무시간인지라 당연히 미리보기로 확인하니 왠 이쁜 처자 사진이었다 -_-;;;;
"형님 이 처자는 누구에요?"
"어제 소개팅 시켜주겠다고 했잖어 걔 사진이고 연락처는 010-XXXX-XXXX 이름은 B야 연락해봐"
"알겠습니다 퇴근하고 연락할께요"
여자친구와 이미 헤어진 마당에 딱히 거절할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잽싸게 카톡프로필사진을 보니 왠 짱구머리 꼬마얘가 보였다
'이 처자 어렸을 때 모습인가 잘 컸구만 역시 위대한 의느님 대한민국 만세-_-;;;;;;'




오후 4시반 심심하던 차에 카톡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A형한테 소개받은 해피아이라고 합니다"
"C차장입니다 전화주세요"
오잉? 이름이 B아니였나?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나는 화장실을 가는 척 잽싸게 전화를 걸었다 -_-;;;;;
"안녕하세요? 해피아이입니다"
"안녕하세요 샤시공사란 말이죠 어쩌구저쩌구"
아파트 샤시공사의 예술성에 대해서 10분간 얘기를 듣다가 -_-;;;;
간신히 전화번호를 잘못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덤으로 카톡 그 꼬마얘는 C차장 딸이란 사실도 알았다 -_-;;;
'역시 이런게 내 인생이지-_-;;;;'
A형한테 잽싸게 이 사실을 말했고 다시 전화번호를 받았다
더이상 퇴근시간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A형한테 소개받은 해피아이입니다 B씨 맞나요?"
"예 맞아요 말씀 들었습니다 어쩌구 저쩌구"
10여분의 카톡끝에 토요일 점심에 여친과 사귀기전 소개팅장소로 애용하던 D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고작 6개월만에 다시 맛도 없는 파스타를 먹으며 맛있는 척 수다떠는 신세가 되다니 ㅠㅠ
D레스토랑의 파스타를 다 먹으면 여친이 생길 수 있을까?
단군신화에서 인간이 되기 위해 마늘을 먹던 호랑이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_-;;;;




퇴근하고 저녁 9시
소개팅도 정해진 마당에 여친과의 관계를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아무 것도 정해진 것 없이 소개팅을 나가는 것은 너무 개운치 않았다
사형장에 끌려가는 사형수의 심정으로 여친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오랜만이네"
여친은 의외로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서로의 안부를 누가봐도 대충 주고 받은 후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선 오빠 생각부터 말할게 오빠는 ~~~ 한 점이 서운했고 ~~~~점에 화가 났었어 그리고~~~~ 점을 오빠가 잘못한 것같아"
어느 정도 머리가 식혀진 지라 차분하게 내 생각을 말하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생각을 물어보았다
"솔직히 그동안 너무 바빴구요 다만 오빠가 절 그렇게 생각했다는 사실에 많이 기분이 나빴어요 어쩌구저쩌구
제 생각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잠정적인 생각으로는 서로의 신뢰가 너무 깨진 것 같아요 예전처럼 웃으며 볼 자신도 없구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이젠 놓아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그냥 내가 총대를 매는게 나을 것 같아 우리 헤어지자"
"오빠 마음은 정리가 된 것 같네요"
"솔직히 하는데까지 하고 싶은게 내 심정이지만 네 생각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오빠한테 못할 짓이라는 것을 아는데 오빠가 괜찮으면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을 주면 안돼요?"
역시 신중한 여친!!!!
평소 주선자에게 6개월을 만나본 후에 사람을 사귀고 싶다고 말했다는 여친은 과연 신중했다
사귈 때도 고백한지 한달만에 대답을 주더만 헤어질 때도 한달은 생각할 참인가?
우리가 이혼하냐 -_-;;; 네가 사랑과 전쟁의 신구선생님이냐? -_-;;;;
잠시 고민한 끝에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이틀 뒤 저녁 5시 카톡을 보냈다
"오늘 시간 되면 잠깐 볼 수 있니? 차나 한잔 하자"
"저녁때 친구들이랑 약속있는데 흠.. 끝나고 연락할께요"
여친은 의외로 순순히 알았다고 하였다

저녁 9시 반 여친한테 전화가 왔다
"지금 친구들이랑 헤어졌어 그런데 너무 늦어서 오빠랑 진지하게 얘기 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
"괜찮아 어차피 진지하게 얘기할 생각이 아니었거든 요새 너무 진지하게 얘기만 했잖어"
고민하는 여친을 설득하여 잠깐 보기로 하였다
사실 나 역시 예전처럼 볼 수 있을지 정말 궁금했고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안어울리게 진지한 얘기를 전화나 카톡으로 너무 많이 해서 더이상 진지하게 할 얘기도 없었다 -_-;;;;;;

저녁 10시 드디어 여친을 만났다
"생각보다 잘 지낸 것 같네"
"처음 3일은 죽을 것 같았는데 3일 지나니 살만하더라 밥만 잘 먹더라는 노래도 있잖어? 크크"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보기좋아"
그리고 30분동안 커피를 마시며 완벽하게 쓰잘데기 없는 얘기를 나누었다 -_-;;;;
그동안 서로 어떻게 지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야말로 담소를 나누었다
여친은 나의 너스레에 때때로 어이없다는 미소를 지었지만 무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헤어질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말을 꺼냈다
"사실 우리가 헤어지는 일이 그렇게 심각한 일이 아니잖어?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니고 인생이 꼬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매우 슬픈 일일 뿐이지 오빤 그렇게 심각하게 인상쓰며 얘기하고 싶지 않다 성격에도 안맞고
다만 우리 150일만났잖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추억을 쌓았는데 같이 간 데 지나갈 때는 슬프긴 하더라
이제 회사앞 영화관도 못가겠어ㅠㅠ"
"오빠 회사에도 같이 갔었잖아?"
"야 오빠도 먹고 살아야지 회사갈 때마다 슬퍼하면 어떻하냐? 거긴 예외야 크크
암튼 막판 10여일 안좋았지만 150일은 정말 재밌었잖어? 이런저런 경험도 많이 했고
솔직히 우리가 다시 잘되면 정말 감사한 일이지
하지만 말이야 만약 잘 안되더라도 150일동안 정말 재밌었잖어? 오빤 그걸로 된 것같아"
여친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가는 버스를 타는 여친에게 말했다
"잘가고 오빠가 상태 괜찮을 때 연락할게"
"죽을것 같아도 연락해요"
여친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버스를 탔다




그 이후 2일동안 우리는 꾸준히 연락하고 있다
연락은 항상 내가 먼저하지만 답장은 여친이 더 많이 할 때도 있다
심각한 얘기없이 서로의 일상을 들으며 그냥 시시껄렁한 얘길 나눈다
그날 집에 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지난 5개월동안 재밌게 놀았고 많은 경험을 쌓았다
화낼 만큼 화냈고 붙잡을 만큼 붙잡았다
마지막일지 모르지만 여친의 웃는 얼굴도 보았다
여전히 잘 될 가능성은 많지 않지만 난 할 만큼 했고 헤어져도 상관없다




그리고 내일 소개팅을 하며 파스타를 먹는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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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3/02 00:49
수정 아이콘
담담하면서도 슬픈 정서가 깔려있네요.
소개팅 처자를 만났을 때, 그 사람에게 쉽게 마음이 가실 지가 매우 궁금해지네요.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착한밥팅z
13/03/02 01:09
수정 아이콘
약간은 비슷한 상황이라 더 와닿는군요. 이별도 학습이라는데, 도무지 이 감정에는 익숙해질 수가 없네요.
후회없이 사랑하고 후회없이 타올랐다는 것 만으로 만족합니다.

좋은 인연 만나시길 바래요 :D
수타군
13/03/02 03:17
수정 아이콘
잘 헤어지는 것 정말 중요 합니다..
프레이
13/03/02 06:56
수정 아이콘
저도 3일전에 헤어졌는데.. 공감이 많이 갑니다.
헤어지고 술 먹고 핸드폰 잃어버리고.. 머피의 법칙이 따로 없네요.
일하느라 바쁠때는 생각이 안나다가도 혼자 있거나 추억이 있는 장소를 지나갈때면 어김없이 마음이 아프네요.

같이 힘내시죠^^
13/03/02 07:27
수정 아이콘
헤어지고 나서 괴로운 심정을 있는그대로 묘사하셨는데도 글의 분위기는 밝네요. 본인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이신지, 아님 이렇게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위로하시는건지... 잘 읽었습니다.
복남이 땅코옹~
13/03/02 10:07
수정 아이콘
파스타가 너무 맛있어도 슬플겁니다...
13/03/02 11:39
수정 아이콘
머리아플 상황인데 담담하게 보고 계신 글쓴분께 힘내시라고 하고 싶네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좋은 인연과 함께 하시길..
해피아이
13/03/02 20:30
수정 아이콘
리플 달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힘들고 우울하고 찌질하긴 합니다만
그와중에도 개그를 추구하는게 제 성격인지라 ^^;;;;
여차저차 재밌게 살고 있습니다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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