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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2/24 01:57:17
Name 머린이야기
Subject [일반] 아쉬움을 뒤로 남긴채 떠납니다.
제 개인적인 넋두리입니다. 읽어주신 분들께 미리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작년 5월 패기좋게 비행기 표만 끊어서 이곳 밴쿠버에서의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참 많은 일이 있었네요.. 현지인들의 발음을 잘 못알아들어 벌어졌던 에피소드들, 처음 구한 일자리에서의 알 수 없는 해고,
돈이 없고 대중교통이 끊겨서 밴쿠버 외지에서 아이폰 구글맵을 의지해 새벽에 4시간을 걸어서 집에 돌와왔던 기억 등등.
과거의 기억들은 미화된다고 하던가요? 그때 당시에는 '아 내가 외국까지와서 구질구질하게 사는구나' 싶었는데 돌이켜보니 추억이네요.

처음에는 돈이 문제였습니다. 영어는 나름 준비도 해왔고 자신감있게 부딪히다 보니 조금씩 늘어갔는데 돈이 생각처럼 쉽게 모이질 않았습니다.
초기에 집 렌트비, 휴대폰 개설하고 비싼 교통비에 생활비가 감당이 안되더군요. 거기에 처음 구한 일자리에서는 해고를 당하게 되고..
좌절의 연속이었죠, 하지만 죽으란 법은 없다고 곧 다른 직장을 구하게되고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로컬 캐네디언이 운영하는 카페에
취직을 했고, 페이는 비록 최저임금이었지만 가게를 저 혼자 관리하다 보니 영어도 늘고 나름 재미도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생전
여자에게 대쉬도 받아보고, 후로 짧은 연애도 해보고, 참 할건 다 했네요 짧은 시간에 크크..

사실 전 오기전에 목표가 있었습니다.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내가 직접 여기와서 돈벌어서 생활하며, 영어공부도 하고 나름 성실히 1년동안
돈 모아서 유럽여행가야지!!" 목표가 있었기에 저는 주변 여행이나 쇼핑등에 여유가 없었습니다. 주변 친구들은 로키산맥이니 휘슬러니 시애틀
쇼핑이니 많이들 갔는데 가끔 부럽기도 했죠. 하지만 괜찮았습니다. 2013년 5월이 되면, 돈도 어느정도 모아졌을 것이고, 그 돈으로 미국 몇몇도시와 유럽 여행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전 축구 팬이라, 모든 구장을 가보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스날!!

아무튼 그 후로 이런저런 이유로 카페도 그만두게 되고, 유럽여행을 위해서 투잡을 뛰었습니다. 하루에 10시간씩 일 하면서도 힘든줄을 몰랐죠
다행히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참 좋았고, 통장에 돈도 쌓여가니 사는게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고대하고 고대하던 5월도 다가오구요..
매일매일 항공권과 여행정보들을 찾아봤고 사고싶은 것들도 하나둘 눈여겨 봤죠.

그런데.. 현지시간으로 어제 저녁!! 한국의 부모님으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 어머니가 아프시다네요..
갑상선에 암이 발견되어 수술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수술도 잘됐고, 무엇보다 갑상선 암 자체가 다른 질병에 비해 예후도 좋고
심각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안심이지만, 아들된 도리로써 마음이 편치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집에서는
그동안 못했던 여행도 좀 하고 놀다오라고 하지만, 엄마가 아파서 수술까지 한 마당에 여행을 할 기분이 나질 않네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가장 빠른 비행기편을 찾아서 표를 구입하고 일하던 곳에 사정을 말해 페이도 받고 이제 몇 시간후면 돌아갑니다.
어제 밤에 답답해서 한번 바람좀 쐴겸 이리저리 돌아다녔는데 참 아쉽더군요.. 3월이면 시즌 개막을 해서 보려가려고 했던 이영표 선수가 속해있는 밴쿠버 화이트캡스 FC 구장도, 저 멀리 보이는 산 봉우리의 스키장, 여기저기 관광객들을 태운 셔틀버스 등..

나름 9개월 정도 캐나다에 살았는데 가본 곳도 별로 없고 해본 것도 별로 없네요.. 흑.ㅠㅠ
이제 좀 여유가 생겨 놀러도 다니고 본격적으로 유럽여행을 할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되어 너무너무 아쉽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가족보다 더 중요한게 있을까요. 만약에 제가 더 머물다가 여행을 간다면 괜히 찝찝할 것 같고, 나중에 후회가 될 것
같아요. 그래서 괜찮습니다.!! 젊으니까요! 나중에 기회가 또 오겠죠!!

그냥 제 먹먹한 마음을 제가 좋아하는 pgr에 풀어놔봤습니다.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p.s 얼마전부터 이유없이 갑자기 엄마가 보고싶어졌는데 이런일이 생겨서 기분이 묘하네요 ;;
     왠지 저번주부터 뭔가가 쌔~한 기분이 들었는데 뭔가가 있어서 그랬나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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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치투
13/02/24 01:59
수정 아이콘
어머니 수술이 잘 됐다니 그래도 다행입니다. 힘내세요.
JunStyle
13/02/24 02:20
수정 아이콘
본문과는 별개로 워킹을 갈때의 어떤 마인드 같은 것들이 좀 일본과는 다르다라는걸 전에 어떤 프로에서 봤습니다.

물론 그곳은 호주였습니다만.


일본인들은 호주 워킹 갈때 3개월~4개월 정도 체류비를 준비해서 간다더군요. 2007년에 호주 다녀와서 요즘 물가는 모르는데 (호주 달러가 미 달러보다 비싸졌다고 하던데) 대략 왕복 비행기표 + 400~500만원쯤 가지고 가나보더라구요.

그래서 도착하면 일단 숙소구하고 랭귀지 스쿨을 다닌다고 합니다. 워킹 비자여도 호주는 3개월인가? 4개월까지 학원 다닐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영어를 배우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만나면서 생활의 노하우등을 파악해서 3~4개월 후에 준비 된 상태에서 직장을 구한다 뭐 그런 컨셉이었구요.


한국인들은 왕복 비행기표에 거의 1백만원 미만의 돈으로 일단 가고 보자. 어떻게 되겠지, 뭐 그런 마인드로 간다더군요. 학원 등록할 돈도 없고 일단 가자마자 직장을 구해야 되는 상황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보니 양질의 일자리 (근데 워킹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가능하긴 한지요?) 는 불가능하고 거의 한인업체에서 서빙을 하거나 청소 용역 회사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거기서 말하는건 우리나라로 비교하면 동남아인이 서울 명동에 와서 새 직장을 구하는것과 같은 상황으로 비교하더군요.


그런가보다 했는데 2007년에 친구가 호주로 유학을 갔다가 돌아오는 상황이었고, 오기 전에 한번 왔다가라고 해서 일주일 정도 시드니를 들렀는데 제가 만난 사람만 그런건지 아니면 대부분 그런건지 진짜 TV 에서 말한대로 대부분 워킹하는 친구들이 그렇게 살고 있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참 안타까웠습니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도 무언가 배울게 있고, 느낄게 있다면 된거겠지만요.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 모르겠지만, 캐나다의 경험을 살려 호주로 한번 더 가보시는것도 추천해 드립니다. 저도 한번 해보고 싶은데 이제는 나이 때문에 어디 워킹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네요.


어머님 수술이 잘 됐다니 축하드립니다. 제 사촌 누나도 갑상선 암 수술을 받았는데 병이 물론 암이긴 합니다만, 생존률이 굉장히 높다고 하더라구요. 어머님 사후관리도 잘 해드리시기 바랍니다.
13/02/24 02:29
수정 아이콘
요즘 갑상선암은 암도 아니라더군요. 그만큼 치료율이 높다고 알고 있습니다.
13/02/24 03:54
수정 아이콘
다음 기회에 더 좋은 경험과 더 좋은 여행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저도 이번에 기회가 되어서 오랜만에 고향집으로 내려가는데 어른들께서 예전에 편찮으셨던거 생각하니 더 자주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힘내세요!
Surrender
13/02/24 08:16
수정 아이콘
저는 사스캐츄완주에서 일하고 있어요. 두 달전에 아버지께서 장에 조그마한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으셨는데 급히 사장님께 사정을 설명하고 짧게 나마 한국 다녀왔던 일이 생각나네요. 영국에서 몇 년 살아본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런던만 여행하셔도 아스널, 첼시, Qpr(?), 웨스트햄, 풀럼 구장들 둘러보실 수 있고, 당일치기나 1박 2일로 맨체스터나 리버풀도 다녀오실 수 있으니 이번 시즌 끝나기 전이나 다음 시즌 시작 직후에 한 번 다녀와보시는 것도 좋을거라 생각합니다. 어머님의 빠른 쾌유를 기원하겠습니다.
13/02/24 08:24
수정 아이콘
좋은 기회는 다시 찾아올겁니다.
갑상샘암이 치료가 수월타지만 그래도 암이에요. 항암도 해야하고 잘 보살피세요.
머린이야기
13/02/24 10:04
수정 아이콘
모두들 감사합니다..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다음닉변경전까지취직
13/02/24 11:22
수정 아이콘
저도 해외여행을 위해 8개월 정도 돈을 벌고 출국 1주일전에 아버지의 병환으로 취소한적이 있어서
공감이 많이 되네요. 벌써 2년전 이야기고 지금은 수술 잘 되셔서 통원하시면서 치료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수술 이후에 여행도 다녀왔어요. 기존에 계획했던 것 만큼 거창하게는 아니었지만.
쾌유하시길 빌겠습니다.
Benfolds
13/02/24 13:38
수정 아이콘
갑상선 쪽 암은 예후가 좋은 편이라, 잘 관리하시면 충분히 완치하실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여러 다른 심각한 암들도 자기가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완치가 많이 되니, 너무 걱정마시고 어머님 잘 보살펴드리시면 좋은 일 있을겁니다.
여러모로 고생 많이 하셨고, 경험도 많이 쌓으셨네요. 생판 남이지만, 수고하셨다는 말씀 드리고자 이렇게 글 남겨봅니다. 정말 수고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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