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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2/14 00:53
선조실록 보다보면 서인 입장뿐 아니라 당파를 초월해 저런 기록을 보며 울분을 토했음이 당연해 보입니다.
실록은 기록이 마음에 들고 안 들고에 상관없이 일단 편찬이 완성되면 마음대로 수정하거나 기록을 추가하거나 삭제할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엄청난 존엄성을 가진 기록이기에 아무리 마음이 안 들게 적혀있어도 그대로 놔둘 수 밖에 없는 거지요. 하지만 저렇게만 놔두면 후대 사람들이 당시 기록을 막연히 신뢰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건 아니라 일종의 변명, 혹은 실상은 그런 게 아니다라는 진상을 밝히기 위해 편찬을 한 것입니다. 물론, 어느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한 순 없기에 전 두 실록을 거의 동급의 위치로 보며 같은 사건과 인물에 대한 시각적 차이로 받아들입니다만... 역사학자나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겄네요. 그래도 저 위의 평가들은 진짜 너무 심각하게 편향적이라는 생각은 분명 듭니다.
13/02/14 00:54
선조실록은 사실 사서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말까지 듣는 실록이라
논할가치도 없죠 물론 수정실록이 또 그렇다고 공명정대사실그대로를 적은 글이냐 하면 역시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데 일단 워낙 선조실록이 웃기는 거라 그리고 사마천이 시작해 써놓기 시작한 저 사관의 평은 정말 주관적이고 그냥 내맘대로 되는대로 써제끼는 아주 해악적인 요소가 다분한 것이라 뭐 인용하기도 ...
13/02/14 01:50
그래도 옛 기록이고 그게 실록의 가장 큰 목적인데 그걸 아예 못 볼 순 없죠. 어떤 일에 문제가 생길 경우 상고(옛 것을 돌아봄)하는 목적으로 그 부분만 찾게 했습니다. 다만 아버지, 할아버지의 기록인만큼 그걸 가지고 정치적인 용도로 쓸 권리를 최대한 차단한 거구요. 그걸 유일하게 어긴 게 연산군인데... 이 부분은 스포 금지로 놔 두죠 (...)
13/02/14 01:53
본문의 편향적인 문제도 심각했지만 그래도 선수실록이 나온 이유는 임란 때문에 실록의 상당부분이 날아간 게 크죠. 그래서 임란 중이나 임란 이후는 볼만한 게 많구요. 임란 전은 진짜 -_-; 이게 실록인지 야사인지 하는 부분은 감안해야죠 '-'; 실록이 좋은 게 그 어떤 실록이든 당대의 집권세력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음에도 녹취록 수준으로 많은 대화가 남았다는 거니까요. 그게 안 된 게 선조실록이니... 그래서 고종순종실록도 일본의 입김이 닿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거구요
광해군일기는 그런 면에서 좋은 게 중초본이랑 정초본이 같이 남아있어서 ( - -)
13/02/14 10:14
괜히 원균명장설의 주요 레퍼토리가 '공정한 선조실록에서는 우리 원균님하의 공적이 제대로 기술되어 있는데 수정실록에서는...' 인게 아닙니다.
13/02/14 13:58
일단 실록이 저리 편찬되었던 것은 뭐 정치논리가 강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죠.
이미 그런 식의 문제는 이전의 실록 관련해서 연산군이 일으켰던 사례에서도 보다시피 사관의 사평은 정말 자기네 생각을 중심으로 꾸릴 수 밖에 없습니다. 엄연히 수정실록도 당파적 입장이 가미된 것이라 볼 수 있구요. 이이첨은 대북의 실세였습니다. 대북은 당시 조선 양반사회에서 가장 소수파였구요. 그러나 광해군 즉위에 결정적 영향을 줘서 집권파가 되었습니다. 당연히 집권논리를 펴기 위해서라면 상대 당파를 끌어 내려야 하는게 우선입니다. 서인은 이미 임진왜란 직전부터 끌어내리기 시작한 세력입니다. 동인이 정권 잡을 때부터 이이에 대해서는 말 들이 많았죠. 그 이후에는 임진왜란 때 전쟁을 주도적으로 진행했던 남인을 끌어 내려야죠. 그래서 유성룡이나 이순신이 끌어내려진 것이구요. 다 그런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대북은 소수라는 콤플렉스에 시달렸으니까요.
13/02/14 14:13
참 이상하죠. 선조나 서인. 인조등등은 어떠한 사안에 대해 정치적 해석없이 그냥 나쁜 놈들이고 혹 있다고 해도 부정적으로 밖에 표현되지 않는데 이상하리만치 광해군과 대북세력의 정치적 행동은 아무리 부정적인 사안도 그래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는 식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이유가 있어서 좋고 나쁨을 평가하는 게 아닌 좋고 나쁨을 먼저 정해놓고 그 뒤에 그런 이유를 가져다 붙이는 행동이라는 느낌리 정말 강합니다. 또 아무리 정파에관한 이해관계가 엇갈려도 우리당파 빼곤 다 한심한 놈들이라는 논조는 선조실록이 거의 유일합니다. 수정실록은 서인세력이 편찬했지만 대북파를 제외하고 정철정도를 제외하면 저정도로 모역적인 평가는 없어요. 또 소수이고 지지기반이 약하다고(진짜 약한지부터가 의심이지만) 실록에 저렇게 쓰면 없던 기반이 생기나요?
13/02/14 14:35
더 어처구니 없는 건 그 인물평가를 해야할 때와 아닐 때를 전혀 구분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저런 평을 기록 중간 중간에 넣었다는 겁니다. 대신들이 화폐관련 토론하는데 싫어하는 인물이 발언을하면 갑자기 쌩뚱맞게 이름뒤에 음탕하고 비열했다 이런 식으로요. 정말 무분별함의 극치죠.
13/02/14 17:28
대북이 가장 소수파요? 별로 아닌데요.
임란 이후 광해군 즉위 직전까지 정국을 주도한 다수파는 북인이었고, 선조가 영창대군을 내세워 북인을 갈라 대북 소북으로 갈라진 후에도 대북은 정계에서는 다수파, 양반사회 전체를 놓고 처도 소수라고 보기 힘든 거대 당파였습니다. 당시 가장 소수파라면 서인이죠. 명망있는 인물도 없고, 학맥도 여전히 일천한데다 임란으로 재차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호남 의병장들 대다수가 서인입니다. 비율로 따지면 북인에 못지 않은 정도입니다. 절대숫자가 부족했던 거지. 그리고 호남절의록 보면 이들 대다수가 전사 전사 광해군대에 분사 사망 기타등등... 하고 말았죠.) 서인이 다수파가 된 건 인조반정 이후. 그전의 대북은 엄연한 다수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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