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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8/01/27 23:36:05
Name slow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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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보고싶은 것만 보고 믿고싶은 것만 믿게 만드는 <생각의 오류>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은 아이들 중 절반이 지능이 평균 이하라는 것을 알고 경악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도. (책 21쪽)

서점에서 눈에 확 띈 책이 있어 샀습니다. 제목은 <생각의 오류>, 원제는 <Don't Believe Everything You Think>입니다.
대충 다 읽고 좋은 내용이라 생각해서 이런 독후감으로 여러분들과 나눠볼까 합니다.

일단, 다음과 같은 간단한 퀴즈 하나 풀어 보세요.

바이러스 감염 검사를 했는데, 양성으로 나왔다. 다음과 같은 정보가 주어졌을 때, 실제로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확률은 얼마쯤 될까?

- 실제로 감염되었을 경우, 이 검사에서는 100% 양성으로 나온다.
- 실제로 감염되지 않았는데 검사에서 양성으로 나올 확률은 5%이다.
- 500명 중 1명 꼴로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다.

의료 종사자 중 절반 정도의 사람들처럼 대략 95%라고 대답한다면, 이 책은 아마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정답은 약 4%이기 때문이죠. 그 이유는 좀 뒤에서 살펴보기로 하고요. (책 266-267쪽에서 요약)

이 책은 우리가 빠질 수 있는 생각의 오류와, 그런 오류들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초상현상, 초능력, 외계인 납치, 영매, 동종요법, 대체의학, 미래 예측 등의 여러 가지 사이비 과학 또는 비과학적인 믿음을 해부합니다. 때문에 이 책이 강조하는,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방법'만큼이나 사이비 과학의 구체적인 사례들도 흥미롭고 유익합니다.

그리고 이 책의 핵심 내용은 '여섯 가지 문제'라고 저자가 친절하게 정리해 놓았습니다.
1. 통계수치보다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 옆 친구의 경험이 더 그럴듯하다.
2. 확인하고 싶어한다 - 잘 들어맞는 것만 기억하고 빗나간 것들은 잊어버린다.
3. 삶에서 운과 우연의 일치가 하는 역할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 우연의 결과에 불과한데도 원인을 찾는다.
4.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 보고 싶은 것만 본다.
5.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 쉽게 떠오르는 정보만을 가지고 판단한다.
6. 잘못된 기억을 가지고 있다 - 기억이 변하고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이런 생각의 오류들이 사라지지 않는 까닭은 인류의 진화 과정의 결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사건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설명하려는 태도가 경쟁에 유리했기 때문에, 단순한 우연의 결과에 대해서도 불합리한 설명을 갖다붙이는 오류가 인간의 사고 과정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각의 오류를 피하는 방법은 지속적인 훈련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은 우리에게 확률과 통계라는 과학적인 도구가 존재한다는 것이고, 안타까운 일은 보통 사람들이 확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며, 어떤 사람들은 왜곡된 통계로 사기를 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앞에 제시한 바이러스 감염 확률의 문제는 조건부확률에서 도출된 베이즈 정리로 풀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생각해 보면, 500명 중 1명은 실제 감염자이므로 양성으로 나타나며, 나머지 499명 중 5%인 24.95명은 감염되지 않았음에도 양성으로 나타납니다. 검사 받은 사람이 양성으로 나타난 것은 이들 25.95(=1+24.95)명에 속한다는 얘기이고, 실제 감염되었을 확률은 1/25.95=0.0385... 즉, 3.85%입니다.

책에서는 이 예와 관련하여 거짓말 탐지기의 위험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저는 (개인적 경험 탓에) 산부인과에서 행하는 수많은 기형아 검사들이 떠올랐습니다. 결국 돈이 더 드는 양수검사를 권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런 검사들의 결과가 악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학'이란 단어는 정확함의 대명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한계'라는 단어와 같이 다닐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과학의 한계를 가장 많이 떠드는 사람들이 어떤 주장을 펴는지, 그리고 그 주장을 어떤 근거로 뒷받침하는지를 보면 우리가 가진 불완전한 도구인 과학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의심하고 끝까지 확인하는 과학적 방법 이외에 어떤 것이 우리의 삶을 조금이라도 개선시켰는지요.

책에 나온 경구들 중에서 둘이 기억에 남습니다.

"오늘날 이 세계에서 문제가 일어나는 근본 원인은, 어리석은 자들은 확신에 차 있는 반면 지적인 사람들은 의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 버트런드 러셀

"긴 인생에서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실제와 견주어볼 때 우리의 과학은 모두 원시적이고 유치하다는 점이다. 그래도 과학은 우리가 갖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하다." -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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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dreamer
08/01/27 23:47
수정 아이콘
간만에 사봐야겠다고 생각이 드는 책이군요. 저런 얘기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 추천 감사합니다. (_ _)
진리탐구자
08/01/27 23:47
수정 아이콘
새내기 시절, 과 동기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시점에 합리적일 수는 없어."
"그래. 어떤 사람도 모든 경우에 합리적일 수 없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설혹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모든 사람의 경우로 적용될 수는 없을거야."
"그런데 그렇다고 합리성이라는 가치를 포기할 수는 없잖아."
"응. 동의해."
"그러면 기준으로서의 합리성과 현실에 존재하는 비합리성 사이의 간극은 어떻게하지?"
"그 말은 본질적인 분류가 아니라 어떤 경우에 한해서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비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분류될 경우, 양자가 어떻게 소통할 수 있냐는 거야?"
"응."
"글쎄. 잘 모르겠다."

어려운 문제입니다.
게다가 문제를 더 어렵게 하는 것은, 우리가 '합리성'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비합리성'과 어떤 점에서 구분이 되는지를 논의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합리성과 과학이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고 한다면,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과학철학이 수많은 논쟁으로 점철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과학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종교 경전에 나오는 성인들의 수양보다도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우거
08/01/27 23:48
수정 아이콘
제가 가장 좋아라 하는 말이 이겁니다.

" 누구나 모든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현실밖에 보지 않는다. "

- 율리우스 카이사르 -
명왕성
08/01/27 23:52
수정 아이콘
책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좋은 책같군요. 특히 러셀의 저 말은 정말 동감합니다.
slowtime
08/01/28 00:11
수정 아이콘
진리탐구자님// 과학적으로 살아가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사기당하지 않고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요.
게다가 과학이란 이름으로 이루어진 결과물 역시 수많은 거짓말과 사기를 포함하고 있었으니 말이죠. 그런 까닭에 과학 자체에 대한 논쟁은 더욱 격렬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 책은 그런 경계까지 나아가기보다는 안전한 곳에서 '검증된 (그러나 대중적인) 오류'들을 공격하는 전략을 택한 것 같습니다. 실생활과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비판적 사고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낭만토스
08/01/28 00:14
수정 아이콘
와우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08/01/28 00:21
수정 아이콘
매일의 게임으로 썩어가는 제 뇌에 이런 좋은 영양분을 공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에 오는길에 서점에 들려야 겠군요
오름 엠바르
08/01/28 00:33
수정 아이콘
아우~ 몇달 전에 어디선가 서평을 읽고 사러 가야겠다 했지요.
그래놓고 책 제목이 기억이 안나서 서점 갈때마다 고민하게 만들었던 책인데...
이렇게 피지알에서 정답을 알아버리니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

아유~ 제가 바로 생각의 오류였구만요.
유대현
08/01/28 01:13
수정 아이콘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정문초소유령
08/01/28 06:06
수정 아이콘
한번 사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꽃을든저그
08/01/28 12:56
수정 아이콘
이 책 사야겠다! 라고 바로 느낌이 확 온적이 오랜만이네요.
좋은책 추천 감사합니다.
오소리감투
08/01/28 13:16
수정 아이콘
좋은 책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버트란드 러셀의 저 경구는 21세기 현재도 유효한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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