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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2/04 16:31:14
Name par333k
Subject [일반] 옛날의 룸싸롱 여자 이야기.(2)
*본 이야기는 일본의 고전이야기 '시나가와 동반자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단어주석



유곽: 에도의 요시와라(가게이름)로 대표되는, 기생들이 모여 사는 커다란 유흥술집. 현대의 대형 룸싸롱 같은 개념이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영업 자체가 몇 군데 없었기에 요시와라로 대표된다. 이들은 기생을 팔기도 했는데, 부인이나 첩으로 데려갈 때에 금전을 지급 하며, 팔려가는 여성을 '영전'한다고 보았다.

몬비: 새해 봄이 오면 손님이 주는 선물성 금전으로 새 기모노를 준비하는 것. 일종의 큰 축제처럼 여겨지며 춤꾼, 악사, 요리, 술 등을 준비해 옷을 갈아입는 행사를 진행한다. 가장 돈을 많이 낸 손님에게 첫 기모노를 풀어헤칠 권리를 주고는 했다는 설이 있다.

오이란: 유곽 여자의 창녀를 뜻하는 단어. 일반 창녀와는 다르게 함부로 유곽 밖으로 불러낼 수 없다.

다유: 가장 인기가 좋은 에이스 여성으로, 시중을 따로 드는 사람들이 딸려있을 정도. 오이란을 만나기도 어렵지만 오이란을 첩이나 부인으로 데려가기 위해서는 가장 큰돈을 냄은 당연하며 사가는 집안 또한 사회적 명망이 필요하였다. 손님을 거절할 권리가 있는 창녀.

이따가시라:  다유아래에도 여러 계급이 있는데 그중 고급 오이란을 이르는 말.




#4- 오소메의 편지



슬그머니 긴조의 품을 벗어난 오소메는 얇은 천을 몸에 두르고 편지를 가지러 일어납니다. 긴조는 얇은 천으로 가려진 오소메의 몸매에 다시 한 번 꿀꺽 침을 삼키지요. 드디어 오소메가 내 것이 되는구나 싶은 마음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오소메는 수줍은 듯 앞섬을 살며시 여미며 긴조에게 편지를 건네어 줍니다.



"소녀의 마음이여요.."



그리고는 다시 새끼고양이처럼 겨드랑이 쪽으로 파고드는 오소메. 긴조는 그녀를 슬며시 끌어안으며 기분 좋게 편지를 폈습니다. 편지는 정갈하고 곱게 쓰인 글씨로 오소메의 마음이 적혀 있었습니다.



[ 이미 당신께서도 알고 있듯이 요시와라의 몬비에 금전이 없다면 잔치를 여는 것은 고사하고
  달리 의논할 이도 없음에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휘파람새 그 한 몸마저 뜻대로 되지 않아
  새장 속에 갇힌 새 마냥 울음소리 감춰가며 그리 견뎌내야 할 뿐 이미 사랑도 떠나갔음에
  유곽의 여자라도 마지막 자존심은 있는바, 몬비에서 수치스러움을 겪고 우스꽝스러워질 바에야
  오늘 밤 안으로 자결하여 영원한 사랑이라도 지키고 싶습니다.
  긴조씨는 제가 마지막으로 모신 마지막 사내로, 부디 소녀의 마음을 알아주시어
  소녀가 가는 길이 외롭고 쓸쓸하지 않게 마지막 사랑을 나누어 영원히 사랑할 수 있도록
  그 넓은 품에서 함께 오늘 밤 끝이 아닌 먼 길을 함께 떠나주시옵소서 ]




편지를 읽어나가며 긴조의 표정은 조금씩 굳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편지를 다 읽자, 그는 품 안에 있는 오소메를 바라보며 놀란 듯이 물어보지요.


"이..이게 무슨 편지인가? 자결이라니!"

"편지에 쓰인 말 그대로입니다."

"자결이라니 말도 안 되네! 이런 일이 있다면 왜 말을 안 했는가!"



침울해하는 오소메에게 긴조가 거꾸로 버럭 하며 화를 내자 오소메는 슬그머니 겨드랑이 밖으로 빠져나와 등을 돌리고 퉁명스레 말합니다.



"긴조씨에게 상담을 하려 했더니 오시자마자 이불 속으로 들어가, 편지를 다 쓰고 이야기를 하려 하니 이미 소녀의 팔을 붙잡아 끌고 들어간 곳엔 아랫도리를 훌훌 벗어던진 채 계시지 않았습니까. 소녀가 이야기를 꺼내려 하니 꽉 껴안아 입을 막으셨는데 무슨 수로 상담을 드린단 말씀입니까. 소녀의 몸만을 밤새 탐하니 소녀가 말할 틈이나 있었습니까. 이러니 소녀가 어찌 긴조님을 의지한단 말입니까."



그러자 긴조는 그제야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히며


"내 돈으로 해결될 문제라면 어떻게 준비해 보겠네! 얼마나 필요하길래 그러는가?"


하고 당차게 말하자 오소메는 슬그머니 어깨너머로 긴조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뗍니다.


"50냥 정도는.. 준비해야 합니다."


긴조는 그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더니, 이내 말을 조금 더듬기 시작하지요.


"어.. 허허. 오.. 오십 냥은 조금 많구려. 이..이를 어쩐다.."


긴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소메는 반색을 하며 다시 그를 꽉 끌어안습니다.  긴조는 말랑거리는 오소메의 살결과 여인의 내음에 금세 마음이 살랑살랑해 지지요. 오소메는 아무렇지 않은듯이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긴조씨께서 뭐든 들어주신다 하였으니, 저는 이 새벽에 저와 함께 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자 긴조는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오소메를 눕히며 이야기합니다.


"좋네. 내 꼭 함께 죽어줌세. 헌데 말일세 죽으면 내 오소메를 안을 수 없으니 죽기 전에 한 번 더 사랑을 나눔이 어떠한가? 이대로 죽으면 많이 아쉽지 않겠는가?"


이 말에 오소메는 풀어진 옷깃을 두 손으로 꼭 여미며 눈을 흘기고 말합니다.


"함께 죽는 것이 무슨 못 먹고 남긴 국수입니까? 아쉽고 자시고 할 것이 어딨습니까. 역시 긴조씨는 소녀의 마음을 가지고 논 것이군요."

이내 눈물을 글썽이는 오소메를 보며 긴조는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든 수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되는 대로 떠벌리기 시작하죠. 시대를 불문하고 잠자리에서 다급히 회유를 위해 이러는 건 남성 공통인가 봅니다.


"아닐세 아닐세 그런 게 아닐세. 내 진심일세. 진심으로 같이 죽어준단 말일세. 다만 집에 못 먹은 술이 남아있어서 그걸 좀 마시고.."

그 말에 오소메는 아까보다도 더 차가운 눈빛을 하고는 두 손으로 긴조를 확 밀쳐냅니다.


"소녀를 가지고 노실 셈이라면 돌아가 주시지요! 다시는 긴조씨를 뵙지 않을 테여요!"

긴조는 그 말에 흠칫하고 놀라며 재빨리 오소메를 다독입니다.



"들어보게 이 사람아. 원래 사랑하는 이들이 함께 죽을 때에는 위아래로 흰옷을 갖춰 입고 함께 죽어야 훗날 이 둘이 아름다운 사랑을 영원히 이어가고자 정갈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했다고 이야기가 남지 않겠는가? 그러니 오늘은 조금 곤란하고 내 평소 잘 따르는 형님께 인사도 드리고, 백의도 갖춰 입고 내일 저녁에 다시 옴세. 어떤가?"



그제야 오소메는 밝게 웃으며 옷을 꼭 쥔 손을 슬며시 풀어 긴조를 끌어안습니다.



"거짓은 아니겠지요? 소녀는 아둔하여 말씀하면 하시는 대로 다 믿으니 진심이셔야 해요."



긴조는 아침이 되어 뻐적지근한 허리를 쥐고는 유곽을 나섭니다. 자신도 꽤 만족스러웠던 것이 돈 한 푼 쓰지 않고 하룻밤 내내 오소메와 즐겼으니 그럴 법도 했던 것이지요. 어쨌거나 집에 돌아가는 길에 노름판에 들려 자주 만나뵙는 형님께 인사를 드리러 갑니다. 실제로 죽을 셈은 별로 없었지만 가는 길이기도 하니 인사는 하고 가는 편이 낫겠지 했던 것이지요.



-쿵쿵

"거 누구요?"

"형님. 긴조입니다."

"오~ 긴조가 아닌가 들어오게 들어오게. 잘 지냈는가?"

긴조는 입구에 선 채 형님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아닙니다 형님 오랜만에 잘 계시나 안부를 여쭈려고 들렸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건강하시고 돈도 많이 따시고.."


그러자 형님은 의아하다는 듯이 웃으며 긴조에게 말합니다.


"노름을 그리 좋아하면서 놀지도 않고 가는 걸 보아하니, 요새 시나가와 쪽 요시와라에 넘나들며 계집질을 한다는 말이 맞나 보구먼. 허허 이 녀석. 혹시나 하는 말이지만 조심하게 긴조여. 요새 요시와라에서 몬비를 앞두고 남자들에게 같이 죽자며 꾀는 창부들이 많다고 하니 말이야. 설마하니 자네를 꾈 창부는 없겠지만 말이야 하하하"




긴조는 그 말에 새파랗게 질리며 "에헤헤헤헤 에헤헤헤" 하고 웃으며 집으로 향합니다. 한숨 흐드러지게 자고 난 뒤 흰옷을 챙겨입고 다시 유곽으로 향하지요. 원래는 그냥 가지 않으면 그만인 일이지만 설마 진짜로 죽겠어 싶기도 했고, 어쨌거나 지금이라면 공짜로 오소메를 실컷 안을 수 있으니 흉내라도 내자 하는 음흉한 마음에 결국 이끌렸던 것이지요. 머리보다는 하반신이 이끌었다고나 할까요.





#5- 시나가와의 강물




오소메의 방 안에 들어가니, 오소메 또한 흰색 기모노를 정갈히 입고 긴조를 맞이합니다. 초 아래에는 날카롭게 잘 벼려진 은장도와 비슷한 단검이 두 자루 있었지요. 긴조는 그 은빛 칼날에 마른 침을 꿀꺽 삼킵니다. 오소메는 약속을 지키러 온 긴조를 보며 기뻐하지요.



"소녀, 긴조씨께서 오실 줄 믿고 있었습니다."

긴조는 약간 긴장한 얼굴로 웃으며 오소메에게

"허허, 내 함께 죽어준다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 칼은 대체 무엇인가?"

하고 뻔뻔스레 물었지요. 오소메는 생긋 웃으며 긴조에게 두 자루중 한 자루를 건네며 말합니다.

"이 칼날은 제가 몰래 숨겨둔 것으로, 날을 한 번도 쓰지 않아 날카롭기 그지없사옵니다. 우리가 함께 사랑함에 서로의 흰옷 위로 잘 벼린 칼로 자결한다면 붉은 피가 배어 서로 사랑함을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입니다."

긴조는 그제야 칼을 든 오소메에게서 슬며시 칼을 받아 뒤에 놓으며 등줄기에 흐르는 식은땀을 느낍니다.


"허허, 이 사람. 칼로 자결한다면 흉터가 남아 볼품이 없어지지 않는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세."


그러자 오소메는 이부자리 밑에 숨겨둔 끈을 꺼내어, '그렇다면 함께 목을 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긴조는 이번에는 "허허, 이 사람. 목을 매면 죽을 때 똥오줌이 전부 흐른다고 하니 백의를 입어도 냄새가 나고 더러워지지 않겠는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세."하며 오소메를 말리지요. 오소메는 뜨뜻미지근하게 발을 빼는 긴조를 흘겨보며 쏘아붙이듯 말합니다.



"대체 죽을 사람께서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다 대시면 어떡하십니까!"


긴조는 그 말에 슬그머니 오소메를 껴안으며 흰옷을 이렇게 차려입고 왔는데 내 마음을 의심하냐고 속삭입니다. 오소메는 긴조를 밀어내려 했지만 이미 백의를 갖춰 입은 상.하의 중 하의는 벗어버린 상태, 결국 죽으려 한 날까지도 긴조는 오소메를 안았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축 늘어진 긴조를 오소메는 이제 마지막 아쉬움도 없으니 함께 가자며 억지로 끌다시피 해 시나가와 강가의 나루터로 데려가지요.



"자! 긴조님, 함께 뛰어드시는 겁니다!"

긴조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오소메를 붙들고는

"오소메, 이왕 죽을 거 여기서 마지막으로 한번.."

같은 실없는 소리를 합니다. 오소메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의 말을 무시한 채 긴조를 끌어당깁니다.


"그러면 옷이 더러워져 흰 옷을 입은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자, 빨리.."

"어차피 흰색이라 티가 안날 것인데 그러지 말고.."

"대체 긴조님은 죽으실 생각이 있으신 게 맞나요?!"

"그러지 말고 잘 생각해 보게 오소메여, 나루터의 부둣가는 짧고 인생은 길다 하지 않은.."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 하시고 자, 함께 소녀와 가시어요!"




오소메는 있는 힘껏 긴조를 나루터 부두 끝으로 데려갑니다. 막상 진짜 강물에 뛰어들 상황이 되자 긴조는 벌벌 떨며, '이..일단 강물의 온도가 맞는지 손으로 잘 저어보자꾸나'하고 주저앉습니다. 오소메는 질린다는 듯이 '목욕을 하러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십니까' 하고 긴조를 끌어당기지요. 그때, 나루터 저 멀리서 오소메를 찾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바로, 백의를 하고 유곽을 나온 오소메를 보고 혹시나 했던 유곽의 남자 문지기 한 명이었지요. 몬비만 되면 백의를 입고 자살을 하는 여자가 많은 것 또한 유곽의 큰 골칫거리였으니까요. 오소메는 놀라며 긴조를 더욱 밀어내기 시작합니다.



"긴조님. 유곽에서 일하는 저 남자가 절 잡으러 왔습니다. 지금 뛰어드셔야 합니다!"

긴조는 그러나 여전히 죽을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기에 한사코 자신을 미는 오소메를 버티며


"그, 시..시나가와의 강물은 더러워서 흰 의복이 더러워지지 않겠는가?" 하고 엉덩이를 쭉 빼는 것입니다.


이에 오소메는 자신을 찾는 목소리에 마음이 다급해져, 재빨리 긴조의 입에 입 맞추며 슬그머니 긴조의 손을 자신의 가슴팍에 옮깁니다. 긴조는 순간 느껴지는 살결에 자신도 모르게 쭉 빼고 버티던 엉덩이에 힘을 뺐고 오소메는 그때다 싶어 있는 힘을 다해 긴조를 밀어내어 강물에 풍덩 하고 빠뜨립니다.



"소녀도 금방 따라 들어가겠어요!"




달빛이 희미하게 비치는 밤 강물에서 허우적대는 긴조를 향해 오소메가 뛰어들려는 찰나, 나루터까지 뛰어온 유곽의 남자는 오소메를 붙잡고 이야기합니다. "이보게! 죽을 필요 없네 오소메!" 오소메는 유곽의 남자에게 놓으라며 온몸을 휘두르지만, 그는 오소메를 나루터 바깥으로 낑낑대며 끌고 나간 뒤 말합니다.




"죽을 필요 없네 오소메. 자네가 고생한다는 소식을 듣고 마을의 지주께서 선뜻 오십 냥을 몬비에 보태라 하며 건네셨네. 왜 옛날에 자네가 시중을 들었던 윗마을의 지주분말일세."



오소메는 그 말에 아까와는 달리 환히 웃으며



"그..그게 참말입니까?"



하고는 깜깜한 강물을 몇 번이고 돌아봅니다. 그러더니 이내, "긴조씨! 당신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에요."하고는 유곽으로 돌아가 버리지요. 결국, 긴조는 혼자 차가운 강물에 뛰어든 꼴이 돼버린 것입니다. 비록 오소메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막상 몬비를 잘 넘어갈 수 있게 된 다음에야 굳이 긴조같은 남자와 영원한 사랑으로 길이 남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지요.





#6- 생선장수의 낚싯바늘




그러나 하늘이 멍청한 긴조를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았습니다. 새벽에 강가로 생선을 낚으러 온 생선장수는 그물에 갑자기 뭔가 묵직한 게 걸려 이게 대체 뭔가 하고 보니 아뿔싸!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당장에 끌어올려 가슴을 쾅쾅 쳐대니 그제야 궤에엑 궤에엑 하며 모래고 물을 게워냅니다. 긴조는 강물의 흐름에 몸이 이리저리 흐르다가 물을 실컷 먹고 죽는구나 했더니 다시 땅을 밟아보게 된 거지요. 생선장수가 부지런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긴조는 꼼짝 죽었을 겁니다. 어쨌거나 겨우 생선장수의 도움으로 정신이 든 그는, 온몸 곳곳에 상처를 입은 채 비척거리며 형님이 있는 노름판으로 향합니다. 왜냐구요? 이가 뿌드득뿌드득 갈렸으니까요. 남의 목숨을 가지고 속이려던 데다가, 형님이 말씀해준 '동반자살 사기'에 걸린 거나 마찬가지니 형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의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지요.




그는 겨우 노름판까지 지친 몸을 이끌고 도착합니다. 쾅쾅거리며 문을 두드리는데 아무도 나와보질 않아, 문을 여러 차례 두드립니다.
반면 노름판 안에서는 이 시간에 문을 쾅쾅 두드리니 포졸이 노름판을 급습한 게 아닌가 싶어 급히 초를 끄고는 다들 여기저기 숨느라 쿵탕탕탕 우당탕탕 난리도 아니었죠. 긴조가 더는 걸음을 옮길 힘도 없어 주저 앉으려는 찰나 문이 빼꼼히 열립니다. 형님이었죠.




"에이 뭐야 긴조냐? 아니 이 시간에 웬일이야 대체, 너 유곽에 간 게 아녔느냐? 얘들아, 긴조다 긴조! 숨어있지 않아도 되네."



형님은 긴조인걸 알아채고는 문을 벌컥 열고 초를 켭니다. 천장 난간에 매달린 놈, 야채절임을 보관하는 바구니에 들어가 있는 놈, 이불을 넣는 농에 들어가 있는 놈들이 하나하나 튀어나오지요. 헌데 노름판 가운데에는 여전히 어디로도 피하지 않고 올곧은 자세로 정면을 바라보는 사내가 있었으니, 바로 노쇠한 옛 무사 집안의 남자였습니다. 형님은 역시 대단하다며 그를 칭찬하지요.



"야 이 한심한 놈들아. 저분을 보아라. 저게 바로 사나이의 모습 아닌가, 포졸이 온 것 가지고 쌔빠지게 도망가고 숨는 놈들이라니 어휴.. 미동도 하지 않고 곧게 앉아있으신 저분을 좀 본받게나!"



그러자 앉아있던 무사 집안의 남자는 허허 웃으며



"그런 소리 하지 마시오. 내 늙어서 이미 포졸이 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허리가 빠져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오.."



라고 말합니다. 형님은 그 말에 웃으며 "긴조 이놈아, 너 때문에 허리가 빠지셨잖.. 어이쿠 긴조야 네 꼴이 왜 그러냐!"하고 말합니다. 그도 그럴게, 긴조는 아침에 입고 나갔던 흰옷이 흙탕물 범벅이 되어있고, 온몸에선 물이 뚝뚝 흐르는데다가 여기저기 긁힌 상처에서 피까지 배어 나오니 그 꼴이 말이 아니었던 거지요. 그제야 긴조는 형님들을 앞에 두고 으르렁거리며 이야기합니다. "유곽에 입을 다물고 있으면 볼만하게 생긴 오소메라는 창녀가 있는데, 이년이 저한테 동반자살 사기를 친 게 아닙니까..."





이야기의 전말을 들은 형님은 노름판 식구들과 긴조를 실컷 비웃습니다.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하여튼 요즘 얼빠진 놈들은 이런 사기에나 걸리고 말이지.."

"그럼 그렇지 긴조가 달고 다니는 쭈그렁 가지가 무슨 힘이 있어 그랬겠느냐고 내 전에 말했잖은가? "

"푸하하하하"



이에 긴조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소리를 꽥꽥 지릅니다.


"형님들! 형님들! 나는 방금 죽다 살아왔구먼 그리 놀릴 테요?"


그제야 노름판의 형님은 꺽꺽대며 웃음을 겨우 참고는, 긴조에게 "그럼 앞으로 어찌할 텐가, 이제 유곽은 발을 끊을 텐가?"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긴조는 "복수해야지요. 내 이년을 성질 같아선 당장에 때려죽이고 싶지만, 유곽이 원래 뭇 무사와 주먹 꾼들에게 보호받고 있으니 그랬다가는 되려 제가 두들겨 맞을 테니 쳐들어갈 수도 없고.. 어찌 좋은 방법 없을까요 형님?" 하고 형님을 바라봅니다. 형님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긴조에게 일단 집에 가서 씻고 옷도 좀 갈아입고 내일 다시 만나자고 합니다. 노름판 사람끼리 꾀를 짜내어 볼 테니 내일 이야기를 찬찬히 해 보자고 말입니다.





다음 날, 긴조는 부리나케 노름판으로 달려갑니다. 그러자 형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웃으며 "좋은 계획을 하나 준비했다"고 합니다. 바로, 오소메에게 긴조가 진짜로 죽은 것처럼 꾸민 뒤, 긴조가 속았듯이 오소메를 속이겠다는 골자의 이야기였지요. 이야기를 다 듣자 긴조는 만족스러운 듯이 흐뭇해하며, 지금 당장에라도 준비를 하자고 합니다. 지금으로 말할 것 같으면 꽃뱀에게 당한 만큼 복수해 주겠다는 결심이었던 것이지요. 가벼운 보복으로는 성이 안 풀릴 것 같아, 둘은 노름판 식구들과 점점 복수의 내용을 키워갑니다. 결국, 저녁이 돼서야 계획을 다 짜고 준비에 들어가게 되지요. 그런 것도 모르는 채, 오소메는 그저 50냥으로 어떻게 몬비를 치룰지 행복한 고민만 하고 있었습니다. 벌써 긴조에 대한 일은 싹 까먹어 버렸지요.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채 말입니다.





-3부에 계속.
-----------------

쓰는데 세 시간이 그냥 ...손가락에 알배겠네요...
리플이나 읽으며 좀 쉬다가 저녁쯤에 마지막 마무리하겠습니다.

맞춤법 검사기 한번 돌렸다가 30분동안 띄어쓰기 고쳤네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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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손을 잡으
13/02/04 16:33
수정 아이콘
선리플 후감상..
이것 때문에 지금 자게에 상주중입니다. 남의 연애 이야기는 왜 이리 재미질까요?
좋아요
13/02/04 16:35
수정 아이콘
그거슨 나의 연애는 상상속에서나 일어나 일이라 재미있고없고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공중정원
13/02/04 21:51
수정 아이콘
좋아요
히히멘붕이
13/02/04 16:38
수정 아이콘
단어 주석에 쓰신 다유라는 단어를 저는 타유우 로 알고 있어서 처음에 내가 아는거랑 다른 건가 했습니다. 다유, 텐진 이렇게 나가는거죠? 그런데 게이샤와 오이란은 확실히 달랐나보군요. 게이샤는 전문 예능인을 말하고, 오이란은 유곽의 여자를 부르는 말인듯..? 맞는지요?^^;
13/02/04 16:47
수정 아이콘
네 맞습니다 정확히는 그 계급도1850전후에 거의 없어지고 오이란으로통합되었다고 하더군요. 6개이상 세분화되있다가 줄어들었다고하더라구요. 게이샤와의 가장큰차이는 주업이창부인가 아닌가, 유곽소속여부인거같더라구요.
설탕가루인형형
13/02/04 16:44
수정 아이콘
아아아아~ 빨리 연재해주세요~ 크크크크
13/02/04 16:50
수정 아이콘
제 손가락에도 자비를 좀..
야쿠자
13/02/04 16:59
수정 아이콘
너무 재미있어요~
人在江湖
13/02/04 17:00
수정 아이콘
앗.. 2부에서 끝나는 줄 알았는데!! (3부 기다리겠습니다)
13/02/04 17:08
수정 아이콘
감질나게 하시는 것이 슈퍼스타K 급이네요. 크크; 좋은 필력덕에 정말 재미지게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어 주석에 따르면 일반 몸을 파는 여성 위에 오이란이 있고, 오이란 중에 인기있는 여성이 다유이며, 그 다유중에서도 가장 높은 계급이 이따가시라 라는 말씀이신건가요?
13/02/04 17:30
수정 아이콘
앗 아니요. 다유가 최고 계급이구요, 이따가시라는 다유 아래에 있는 여러 계급중 하나입니다.
오이란은 6가지 계급으로 나뉘었는데, 사실상 다유 정도를 제외하고는 가게나 지방마다 다 다른식으로 나누었고
시나가와에서는 다유 아래에 이따가시라라고 하여 유곽의 신인 오이란 중에서 잘나가는 사람을 뜻했다고 합니다.
저글링아빠
13/02/04 17:13
수정 아이콘
절단신공이 아주 덜덜덜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13/02/04 17:18
수정 아이콘
일본 영화 사쿠란이나 드라마 닥터진에서 보면 일반 창부가 있고
그 유곽에서 제일 잘나가는 여자가 오이란이라고 했던 내용이 기억나네요.

유곽에서 오이란은 한명이고 오이란이 은퇴하면 다른 사람이 오이란이 되고 그랬었는데
그게 메이지 유신쯤해서 바뀐것인가 보네요.

"너도 오이란이 되면 싫은 손님은 받지 않아도 된다.
일본에서 유일하게 여자가 귀족이건 누구건 남자를 거역할수 있는 곳이 이곳이다. "

어린 주인공에게 유곽 주인이 달래면서 했던 대사가 기억나네요
설탕가루인형형
13/02/04 17:19
수정 아이콘
저도 그 생각 했습니다~
일본 닥터진은 정말 재밌었는데, 한국 닥터진은....-_-
13/02/04 17:22
수정 아이콘
저도 호기심에 잠깐 봤었는데 영 .............
13/02/04 17:31
수정 아이콘
아마 저런 계급이 점점희미해진것이, 막부말기 에도 시절이 가장 심했던 것 같아 보입니다. 메이지유신까지는 멀지만 천황아래 막부통치가 많이 흔들리고 당시 조선처럼 이름뿐인 문무관보다는 실력과 재력이 힘이 되던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그런 것들이 희미해졌던 것 같아요.
13/02/04 17:19
수정 아이콘
2부가 끝이 아니라니요!

슈스케의 김성주 못지않네요ㅜㅜㅜㅜ
심심합니다
13/02/0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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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후.. 저녁까지 어떻게 기다리나요.. 크크
13/02/04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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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 부터가 저녁인가요 ㅠㅠㅠㅠㅠ
미라이
13/02/04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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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가 끝이 아니라니... 흑흑
13/02/0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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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쳐버릴것 같아요... 너무 재밌어요
몽키.D.루피
13/02/04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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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둬 놓고 글만 쓰게 하고 싶네요. 빨리 3편을 내놓으라구요~
BestOfBest
13/02/04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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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게로!! 재미있어요 ㅠㅠ
오스카
13/02/04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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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은 언제 나오죠? 현기증 나요 ㅠ
Je ne sais quoi
13/02/04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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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2부가 끝이 아니었군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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