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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1/28 15:18:12
Name 트위스터
Subject [일반] 고부갈등의 핵심은 도대체 무엇일까? -1- <국경선>


며칠 전 자게에서 벌어진 '시어머니 현관문 비밀번호 사태'(물론 제가 자의적으로 이름 붙인..)를 보며
'고부 갈등'의 핵심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에 대한 제 개인적인 소회를 잠시 풀어보려 합니다.

심리학 수업을 들으며 인상 깊었던 건 '아들-어머니'의 유착 관계와, '딸-아버지'의 유착 관계였습니다.
아버지에게 첫 딸은 '마지막 연인'이며, 첫 딸에게 아버지는 '첫 번째 연인'이죠. 모자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남, 장녀에게 더 강해지는 심리적 현상이기는 하지만 모든 부녀, 모자 관계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현상입니다.

그런데 왜 부녀-모자 관계에서의 심리가 같다면, 유독 고부 갈등이 더 부각될까요?
우리 할머니, 어머니 세대에서는 '남자의 지위와 재력'에 따라 여자들의 지위와 재력이 결정되는 사회였습니다.
여자들이 스스로 커리어를 쌓아 사회 내에서 어떤 위치를 담당하는 것 자체가 막혀 있거나, 매우 힘든 사회였죠.
때문에 남편, 남편의 부모, 자식들을 내조하면서 사는 것을 모든 여자들의 '근본'이라고 배우셨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십니다.

부모님의 노화, 남편 은퇴 등으로 인해 '남편의 부모'와 '남편' 내조는 일정 부분 자연스럽게 사라져갑니다.
그 때 어머님들에게 남은 건 '자식 내조'죠. 아들의 취직, 진급 등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내조의 대상과 관심이 옮겨가게 됩니다.

이 때 동반되는 심리 상태는 '젊음에 대한 갈망'도 있습니다.
아들의 넥타이를 고쳐 매 주시면서, 서른살 즈음 남편의 넥타이를 매 주었던 젊은 자신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이건 뭐 중년층에게 오늘 빈둥지 증후군, 폐경기 증후군... 등등등 수많은 심리 상태도 동반하게 되지만 너무 길어지니 생략하겠습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 총체적으로 어머니들에게 아들은, '아들'에서 '남편의 대체자'에 가까워지게 되죠.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은 어머니들이 아들에게 더 사랑을 쏟는 이유가 여기서 기인하게 됩니다.
남편과 사이가 좋더라도, '젊은 시절의 든든한 남편'을 떠올리게 하는 '리틀 남편'이 되는 겁니다.

- 이 부분까지가 <남자들이 보는 어머니>입니다. 항상 헌신적이고, 나를 사랑해주는 한국의 어머니 상이죠.
그리고 이 아래부터가 <며느리들이 겪게 되는 어머니>입니다.

그런데 이 때 며느리가 들어오게 되면 어머니들은 '관심/내조를 쏟을 대상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자신의 존재감 상실'과
'남편의 대체자 상실'로 인해 총체적 멘붕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의 위치가 그냥 자신의 위치인 아버지들은 이런 고민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아버지들은 본인의 은퇴, 경제 수입 감소에서 이런 것들을 느끼시죠. 본인이 아닌 타인 때문이 아니라.)
내 마지막 연인이었던 딸이 가는 것은 섭섭한 일이지만 그 일 자체가 내 지위/존재 자체를 흔들지는 않으니까요.

시어머니들은 이 때부터 며느리-아들과 본능적인 삼각관계 혈투-_-를 시작하게 됩니다.
막장 드라마의 시어머니들의 필수 단골 멘트인 '네가 감히 내 아들을 뺏어가?'가 틀린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그 뒤에 숨겨진 어머니들의 속마음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죠.

여기서 어머니들은 본능적으로 며느리를 '내 아들/남편의 대체자'를 뺏어간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그 심리는 어떤 어머니에게나 있어요. 며느리에게 잘해주시고 진심으로 사랑해주시는 마음도 있지만요.
인간은 복합적이기 때문에 복합적인 심리가 함께 엉켜있는 것이 당연하니까요.
그 분함과 서운함 기타 등등이 아주 은연중에 며느리를 찌르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자꾸 아들이 아닌 며느리에게 무언가를 더 요구하게 됩니다. 내 상실감을 보상받기 위해서요.
결혼 후 전화 연락 문제, 방문 문제, 아이 문제, 제사 문제, 집안 대소사 참석 등..
때때로 무리하거나 심각한 요구를 하시는 경우도 많이 생깁니다.

더구나 며느리들은 '헌신적인 어머님'이 아니라, '빼앗겼다는 상실감을 느끼시는 어머님'을 먼저 대면했기 때문에
후자의 이미지가 훨씬 더 강하게 박혀 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헌신적인 어머님'만 봤고, 내 결혼으로 상실감을 느끼시겠지.. 하고 끝납니다.
실제로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생존을 위한 전쟁을 하고 있는데 남자들은 본질적인 문제의 핵심까지는 못 들어가죠.
왜냐면 그런 갈등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으며, 실제로 겪지도 않았으니까요.

고부 관계는 군대와 다릅니다. 서열에 따라서 상명하복 하는 관계이기는 하지만
서로 눈치를 보면서 각자 국경을 넓히는 싸움을 하고 있는 관계라고 보는 쪽이 더 진실에 가깝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내 아내는 그렇지 않을꺼야.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겠지만 이건 정도의 차이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국경선을 그어 놓고 평화 협정을 맺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다만 언제든 그 협정이 깨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은 있지만요.
이건 내 어머니의 문제, 아내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특유의 '여자를 남자에게 종속시키는' 가부장 문화가 만들어낸 고부 관계이니까요.
이제 시대가 바뀌고 있으니 이 삼각관계도 바뀌리라 믿고, 바뀌었으면 합니다.


쓰다 보니 생각보다 글이 많이 길어졌네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이 파이어되지 않아서 제가 다음 편을 만약 쓰게 된다면 아마 <시어머니가 생각하는 호강-경제적 관점>에 대해서일 듯 합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목적은 간단합니다. 고부갈등의 핵심을 조금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다면, 고부갈등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마음요. 모든 가정이 평안하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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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문재인
13/01/28 15:49
수정 아이콘
서양은 왜 고부갈등이 없을까요? 가족관이 달라서 그런가..

다음편 빨리 써주세요~~
사악군
13/01/28 15:57
수정 아이콘
서양도 있어요.. 우리보다 좀 덜할 뿐이죠..^^ how i met Ur mother 에서 릴리와 마샬 모친 사이의 갈등-_- 같은 걸 보시면..
다크라이저
13/01/28 16:05
수정 아이콘
그쪽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사위-장모 갈등이 있습니다.
알고보면괜찮은
13/01/28 16:08
수정 아이콘
그쪽 애니를 동생이 봐서 보는데 아주 없지는 않은 거 같더군요.
뽀딸리나
13/01/28 16:19
수정 아이콘
친구가 미국인하고 결혼했는데요, 일단 거기는 부부 위주이고 결혼한 이후에는 서로 간섭을 안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없지는 않지만 우리보다 상당히 약하다고 그러네요

그리고 위에 어떤 분도 쓰셨지만 미국은 사위-장모, 장인 갈등이 꽤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인 남편이 한국 나올 때마다 심리적인 압박감을 크게 받곤 했다네요
13/01/28 15:49
수정 아이콘
머지않아 결혼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입장에서 감사한 글입니다
부디 파이어되지 않고 무사히 다음 글까지 갈 수 있길 바랍니다
13/01/28 15:58
수정 아이콘
많이 공감가는 내용입니다 추가로 남자가 결혼할 때 부모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많이 받을수록 며느리에게 도리를 많이 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화나 집안 대소사 챙기는 것등등..
13/01/28 16:02
수정 아이콘
결혼 5년차 초보자가 대충 경험을 이야기 해보자면

남자가 분쟁에 끼어 들거나 중재를 하려고 하면 화살들이 날아 옵니다.
그럼 그걸 맞고 "전사" 합니다. ?

불효자 아들과 나쁜 남편이 됩니다.
가정에 평화가 찾아 옵니다.

더 이상 좋은 방법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ㅜㅜ
뽀딸리나
13/01/28 16:26
수정 아이콘
남편이 자상할 경우 고부간의 갈등이 크게 줄어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남편에게 받은 것이 있기에 자기 아들이 며느리에게 하는 것을 덜 시기하게 된다고 하네요

그리고 부부 사이가 소원하면 반대로 아들에게 더 집착하기 때문에 고부갈등이 커지고요

요즘은 시어머니들도 예전과 달라서 알아서 조심하시는 분들도 많기는 한데 여전히 큰 문제이지요, 좀 다른 말이지만 극과 극의 시어머니 둘을 본 적이 있는데 달라도 어쩌면 저리 다를까 했습니다

아, 근데 제가 아는 골드미스는 여자 쪽에서 집도 장만하고 그랬거든요, 그런 영향인지 발언권이 세더라고요, 이런 점도 있을 듯해요
완성형폭풍저그가되자
13/01/28 16:30
수정 아이콘
친지들의 경우를 둘러 보니, 시어머니가 지나치게 개입하고 싶어하거나, 며느리가 지나치게 독립적이고 싶어하면 문제가 생기더군요.
적당히 적당히 거리를 두고 챙길껀 챙기고 하면 거의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들 가정의 일에 있어선 아들과 며느리에게 맡기고, 시부모를 대할 경우에 자신의 어머니에게 하듯만 하면 거의 문제가 없습니다만, 아들네 부부는 아직 어려, 나의 보호와 도움이 필요해, 혹은 시어머니는 아무리 잘해주셔도 남이야. 라는 생각이 있는 곳은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열리는듯.
몽실이
13/01/28 17:26
수정 아이콘
다음편 기대하겠습니다!
Waldstein
13/01/28 18:00
수정 아이콘
며느리를 서열에 따라서 상명하복 하는 관계따위로 여기니 문제가 생긴다고 보네요. 낫살 좀 먹었다고 타인을 마구 부릴수 있는 존재로 여기는

한국 부모세대들의 어처구니 없는 마인드를 보면 기가찹니다. 또한 부모가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해도 아들이

단호하게 대응하면 되는데 부모를 아내보다 중요한 존재로 보는 요상한 마인드가 판을 치는 문화에서는 어려운일 같네요.
흰코뿔소
13/01/28 19:11
수정 아이콘
반대로 연장자를 존중하지 않는 젊은 세대도 문제가 있지요.
부모를 아내보다 중요한 존재로 생각하는 것은...요상한 마인드긴 합니다. 결혼을 하는 이상 와이프가 더 중요하지요.
사악군
13/01/28 19:17
수정 아이콘
존재의 중요성은 스스로 얻게 되는거죠. 결혼까지 했음에도 부모보다 배우자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결국 배우자에게 부모보다 중요할만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13/01/28 19:50
수정 아이콘
어르신들은 대가족 시대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는데 시대는 핵가족 시대가 된 게 크죠
다른 나라도 핵가족화 된 건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그 과정이 겨우 50년 될까말까 하는 사이에 일어났으니...

그리고 부모님 세대만 탓하기도 뭣한 게, 젊은세대들 역시 결혼하고도 부모에게 의존하는 면이 많죠
금전적인 면에서나 육아 면에서나...
거침없는삽질
13/01/28 22:43
수정 아이콘
내가 며느리 일때 내 남편과 시어머니에 대한 감정을 겪고 나서
자신이 시어머니가 되어서 자신이 겪은 감정을 그대로 갚아 줘야만 속이 풀리는 사람들의(?) 문제 아닐까요?
자신이 겪은 그 고통을 대물림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보다는,
나는 그보다 더 했는데, 너에 대한 나의 행동은 그것보다 못해.
그러니 너는 이정도는 그냥 해도 괜찮아...하는 그런 생각들과 행동...

여담이지만 남아선호사상도 마찬가지인데 자신이 딸이여서 아들을 선호하는 부모님에게 차별을 받았는데, 정작 자신이 낳은 그 아들을 자신이 직접 대할때, 자신이 차별받은건 생각 못하고 딸보다는 내 아들만 챙기는 어머니가 정작 그 남아선호사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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