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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2/07 16:33:23
Name 글곰
File #1 RE_F4.jpg (244.0 KB), Download : 55
Subject [일반] 너는 먹고 너는 싸고 너는 잠들지 않고


지난달 이맘때쯤 딸아이가 태어나고 저는 애아빠가 되었습니다. 아이는 생각보다 많이 먹고, 생각보다 많이 똥을 싸고, 당최 잠을 자지 않으며, 상상할 수 없으리만큼 자주 울고 있습니다. 집은 혼돈의 도가니탕이고 방구석에는 아이 옷와 수건이 널려 있으며 배란다의 종량제 봉투는 똥기저귀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왕초보 애아빠와 애엄마는 유원지 오리보트를 타고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는 것처럼 지쳐 있습니다.

그래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회사에서 일하는 아빠보다는 휴직하고 온종일 애를 보는 엄마의 발전이 훨씬 빠릅니다. 둘다 쪼렙에서 시작했지만 애엄마는 경험치를 워낙 많이 먹다 보니 레벨이 다르거든요. 어제저녁 아이가 울기 시작하는데 아무리 제가 어르고 달래도 소용이 없더니, 애엄마가 안고 흔들어 주니 금세 잠이 들더라고요. 아무래도 벌써 애보기 레벨 2를 찍은 모양입니다. 그러나 고작 레벨 2정도로는 택도 없습니다. 아이는 이를테면 최종 보스거든요. 왼손에는 젖병을, 오른손에는 속싸개를 들고 용감히 돌격하지만 역량 부족. 매일같이 보스의 일격에 패퇴하고 맙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가 밥투정을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모유든 분유든 가리지 않으며 상표도 가리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따뜻한 것과 찬 것을 가리지도 않습니다. 배고플 때 젖병을 물려주면 무조건 먹습니다. 꿀꺽꿀꺽 소리를 내며 말이지요. 태어날 때 2.8kg, 너무 작아 힘이 없어서 결국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인데 이렇게까지 잘 먹을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이만육천원짜리 분유 한 통이 일주일을 못 버티더라고요. 분유 값이 무섭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절실히 와 닿습니다.

아이는 참 희한한 존재입니다. 부모를 괴롭히면서 하루의 90%를 보내고, 귀여운 짓을 아주 가끔마다 한 번씩 해 줍니다. 옹알이를 한다던가, 씩 웃는다던가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엄청 행복해져요. 피곤해 죽겠는데도 불구하고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헤실헤실 웃게 됩니다. 팬더와 강아지, 고양이가 한데 모여 힘을 합치더라도 아이의 이 귀여움에는 당해내지 못할 겁니다.

제게는 목표가 셋 있습니다. 우선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나이가 되면 아동용 야구잠바와 모자를 사 입히고 야구장에 데려갈 겁니다.  중학생이 되면 스타크래프트(4? 5?)를 같이 할 겁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면 김훈과 폴 오스터, 로저 젤라즈니와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힐 겁니다. 그렇게 할 겁니다.  

PGR의 어느 분이 내일 결혼하신다기에 갑자기 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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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개
12/12/07 16:34
수정 아이콘
야호 1등!

아기 너무 예뻐요^^
서연아빠
12/12/07 16:35
수정 아이콘
이런게 마일리지처럼 쌓여서 나중에 말썽을 많이 부려도 이쁜가봅니다.
이쥴레이
12/12/07 16:35
수정 아이콘
제목이 마음에 드네요
LG twins
12/12/07 16:39
수정 아이콘
LG 팬 시키세요.
12/12/07 16:40
수정 아이콘
아이 귀여워 저도 아이가 자라면 꼭 같이 음악을 나누고 싶네요. 그리고 폴오스터도... ^^
다시한번말해봐
12/12/07 16:44
수정 아이콘
한화 팬 시키세요^^ 아웅 근데 너무 예뻐요~
감전주의
12/12/07 16:50
수정 아이콘
지금은 "배 속에 있을 때가 좋았지" 라고 생각 날 때가 가끔 있으시겠지만
조금 크면 "차라리 가만히 누워 있을 때가 좋았다~" 라고 느끼실 날이 올 겁니다..하하하

그래도 말귀를 알아듣고 대화가 되면 재밌습니다.. 속 터져서 그렇지..크크
PoeticWolf
12/12/07 17:15
수정 아이콘
아학 ㅜㅜ 너무 이뻐요 아가가!!! 저도 이제 곧!
샤워후목욕
12/12/07 17:16
수정 아이콘
이제 막 백일 넘긴 아들래미를 두고 있는 입장에서 무한히 공감가내요
saintkay
12/12/07 17:18
수정 아이콘
낯익은 사진이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
잠수병
12/12/07 17:47
수정 아이콘
앗 똘망똘망 이쁘네요 ..
그리움 그 뒤
12/12/07 18:29
수정 아이콘
아기 이쁘네요. 앞으로 세 달 째가 되면 더 이뻐질거에요
아기의 웃음은 정말이지 최고의 피로회복제입니다.
하지만 아기때문에 더 피곤해지는건 함정...
병 주고 약 주는...
아우디 사라비아
12/12/07 18:33
수정 아이콘
잘 키우세요..... 귀하게 될 상입니다
유리별
12/12/07 18:54
수정 아이콘
성공하셨네요. 아 예뻐라~~
저글링아빠
12/12/07 19:42
수정 아이콘
저 때가 불과 몇 년 전인데 아득한 옛날처럼 마치 회고(?)를 하고 싶어지네요..^^
금방 지나갑니다. 애는 부모를 들었다 놨다 할거구요. 축하드립니다. 행복하세요~
12/12/07 20:28
수정 아이콘
제목 보는 순간 아이 이야기인줄 예상했습니다 요즘 딱 제가 처한 상황이거든요
하루종일 착하다가 밤 9시부터 칭얼대기 시작하네요 2시간여를 앵앵거리다가 간신히 잠들어요 퇴근해서 애좀 보면 11시 12시...그래도 간간히 웃는모습보면 시름이 다 사라지네요
12/12/07 20:37
수정 아이콘
으아아아 예뻐요 예뻐요!! 칭얼대고 똥을 싸도 간간히 웃는 모습에 그저 행복해지는게 어떤 기분인지 얼른 느껴보고 싶어요^^
KillerCrossOver
12/12/08 00:00
수정 아이콘
무럭무럭 잘 크렴!!
Idioteque
12/12/08 02:36
수정 아이콘
아기라는 존재는 참 신기하죠. 그렇고 울어대고 똥을 싸고 먹기만 하는데도 웃거나, 꼼지락거리는 모습만 보여줘도 사랑스러우니 말이죠.
그래도 역시 조용히 자고 있는 모습이 가장 예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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