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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1/16 12:54:46
Name 글곰
Subject [일반] 두 사람 이야기 - 앞에 서거나 뒤에 서거나
최근에 PGR에서 접한 두 가지 사건에서, 각 사건의 주역이랄 수 있는 두 사람의 행보가 묘하게 대비되는 것 같아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한 사람은 슬레이어스 구단의  김가연 전 구단주이고, 또 한 사람은 안철수 대통령 후보입니다.


김가연 전 구단주가 슬레이어스 구단 및 e스포츠 연맹 간의 여러 가지 사건에 대해 폭로하며 PGR이 후끈 달아올랐을 때,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정말 대단하구나, 하고 말입니다. 김가연 전 구단주는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임요환 코치와 연인관계입니다. 그리고 임요환 코치는 e스포츠 업계에서 가장 발언권이 높고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인물이지요. 그런데 이번 사태에서 임요환 코치는 단 한번도 전면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인 자신의 연인과, 자신이 직접 창단한 팀에 관계된 중요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임요환 코치가 언론과 인터뷰하며 김가연 구단주에 대한 지원사격을 약간이라도 해 주었다면 김가연 구단주의 싸움은 훨씬 수월하게 진행되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임요환 코치는 침묵을 지켰고 김가연 구단주는 혼자 싸웠습니다.

임요환 코치가 나서지 않았다고 그를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거꾸로 생각합니다. 김가연 구단주가 임요환 코치의 개입을 막았다고요. 그것은 새로운 직장에 막 취업한 임요환 코치의 입장을 고려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고, 연인을 진흙탕싸움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김가연 구단주는 임요환 코치가 전면에 등장하는 것을 막았고, 결과적으로 자신은 심한 고생을 한 대신 임요환 코치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가지 않도록 그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아. 물론 근거는 전혀 없는 제 추측일 뿐입니다. 하지만 임요환 코치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해서 스스로 진흙탕 싸움에 발을 담그지 않았다고 보기보다는, 김가연 구단주가 그를 지키기 위해 개입을 막았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김가연 구단주는 구단주라기보다 오히려 자식의 일이라면 물불 안가리고 나서는 어머니에 가깝다고 평한 것을 보았습니다. 저도 동감합니다. 삶이 전쟁이라면, 김가연 구단주는 부하들의 뒤에 숨는 대신 부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앞장서서 포화를 맞아 가며 싸우는 용장 타입입니다. 옳고 그름이 명확하고 자기 의사 표현이 확실한(어찌 보면 지나치게 확실한) 편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사람을 좋아합니다. 고향 사투리로 “기면 긴 기고 아이면 아인 기다!”입니다.



한편 안철수 후보는 제가 다소 호감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책도 샀지요. 하지만 대통령 출마 과정에 있어서 그의 행보를 지켜보며 저는 다소 불안했습니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확실하지 않고 두루뭉수리하게만 말하는 걸까? 하고요. 저는 리더라면 자신의 의사 표현이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말만 하는 사람은 문학가이지, 리더는 아닙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안철수 후보의 기자회견 전문을 보고 저는 좌절했습니다. 오늘의 기자회견문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허허... 어심御心을 읽으셔야지”입니다. 독심술을 쓰라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예. 대강은 알고 있습니다. 저도 알고 민주당도 알고 안철수 지지자들도 알고 민주당 지지자들도 압니다. 그가 무얼 원하는지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한 나라의 리더인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고, 기존 구태정치를 뿌리 뽑겠다고 나선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명확하고 명백하게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기껏 하는 말이 ‘너희들이 알아서 내가 원하는 데로 좀 해봐’라니요.

어떤 조직에서 수장이 떳떳하지 못한 일을 부하에게 시킬 때가 있습니다. 그 때 그 수장은 절대로 [OOO를 해라]라고 직접 명령하지 않습니다. 대신 변죽을 올리며 슬쩍 압력을 주지요. 그리고 아랫사람은 알아서 깁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면? ‘나는 그런 일을 시킨 적이 없다’고 빠져나갑니다. 정말 비열한 행태지만 또 자주 일어나는 일이고, 언론에서 그런 사례를 많이 접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안철수 후보의 행동이 저는 그런 식으로 보입니다. 이거야말로 소위 구태 정치인들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 아닐까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리더는 전면에 서서 자신의 뜻을 명백하게 밝힐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안철수 후보는 전면에 서는 대신 슬쩍 물러나서 자신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고 있습니다. 추후에라도 책임질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다 보니 표현이 항상 두루뭉수리입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랫사람들이 하고 있지요. 저는 이제 이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겠습니다.



ps) 물조로 쓰다 보니 글이 조금 꼬였는데 수정이 안 되어서... 댓글이 없는 차에 삭제하고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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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공기
12/11/16 13:01
수정 아이콘
동감합니다.
안철수씨에 대해 답답해하던 측면을 이렇게 명쾌하게 글로 밝혀주시니 시원하네요.
Liberalist
12/11/16 13:05
수정 아이콘
안철수 후보에게 답답함을 느끼는 지점이라면 바로 본문에서 지적하고 있는 부분이겠죠. 제 개인적으로는 안 후보 지지자분들도 '맞는 말 아니냐?'만 하실게 아니라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게 아닌가, 전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12/11/16 13:06
수정 아이콘
정치인이 상식이니 진심이니 국민의 뜻이니 실용이니 따위의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것을 자신의 이념으로 삼으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명확한 가치관을 내세워야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명확한 방향을 가지고 일할 수 있지요. 정치인 본인이나 그 뜻을 지근거리에서 봐온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뜻에 따라 일해야 한다면 결국 그 정치인 눈치만 보게 되겠죠. 지금처럼.

국민의 뜻 할 때부터 심난하더니... 한숨만 느네요. [m]
홍승식
12/11/16 13:16
수정 아이콘
요즘 안철수 피로도가 높아지는 이유에 대한 가장 명확한 이유가 아닐까 하네요.
저도 민주당이 앞에서 단일화 하자고 하고 뒤에선 양보하라고 한다 라고 생각하는 쪽이라 문재인 후보가 차단해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안철수 후보에 대해 점점 피로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반한나라 비민주"라는 처음 서울시장 나왔을 때의 캐치프레이즈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샀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딱 "반한나라 비민주"였거든요.
정치인으로서 어려운 일이겠지만 사안사안에 대해서 좀 더 명확한 표현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은 이미 수첩공주님께서 많이 하셨습니다.
Star Seeker
12/11/16 14:37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안철수씨는 민심을 읽으라고 쓰고 내가 뭘 원하는지 알아줘!라고 읽고 있지요.
4월이야기
12/11/16 16:00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저는 반한나라 비민주 혐통진당의 포지션을 취하는 유권자 입니다. 현 대선 상황에선 아직 부동층 유권자 중 한 명 입니다.
제가 느낀 근래 며칠 사이 야권 대선 후보들의 행보는 바둑으로 비유하면 야권 두 후보는 정권교체라는 포석만 두고 판세는 읽지 않고
패싸움만 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러다 두 후보 모두 다른 기사에게 대마를 내줘야히는 수가 생길 수 있습니다.
지난 19대 총선의 결과가 저들에겐 교훈으로 전달되지 않았나 봅니다.

약 1달의 시간이 남았습니다.
서로의 역할을 빠른 시기에 조율하여 남은 일정은 대권 주자들의 정책 대결 및 토론의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야 이번 선거에 누구에게 투표할 지 저 같은 유권자도 결정을 내릴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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