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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0/27 09:44:25
Name 눈시BBbr
Subject [일반] [어제] 10.26
"이 암흑적인 정치, 살인정치를 감행하는 이 정권은 필연코 머지않아서 반드시 쓰러질 것이다. 쓰러지는 방법도 비참하게 쓰러질 것이다" - 김영삼

5.16으로 시작된 박정희 정권의 끝, 교훈, 혹은 감성적인 면으로 따진다면 정말 간단합니다. 총으로 흥한 자, 총으로 망한다. 절대권력은 무조건 부패한다죠. 하지만 그 내용은 참 머리 아프죠.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김재규가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인 것은 부마항쟁에서 본 반유신 항쟁이었습니다. 하지만 딱히 그런 평가가 많진 않죠. 그는 중앙정보부장이었으니까요.

이걸 민주화운동에 대한 연장선상으로 보느냐, 권력 암투로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극히 엇갈립니다.

의외로 유신 시작 때부터 많은 생각 및 계획을 해 왔다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장준하와의 연계부터 쿠데타 계획까지도 언급되죠. 이게 맞다면, 분명 대의는 있었지만 정작 실행은 너무 우발적이었죠. 반면 그냥 그 때 빡쳐서라는 주장도 있죠. 이렇게 보면 너무 계획적이었습니다만 -_-a


박흥주
"남자는 자신을 위해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

어찌됐든 현재까지는, 10월 26일 당일의 일은 우발적인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전에 뭘 준비했듯 연계됐다는 증거는 없고 직전에 가서야 부하들에게 말했으니까요. 여기서 그의 부하들이 반발 없이 따랐다는 것은 참 대단합니다만.

이런 점에서 부마항쟁의 의의를 무시할 순 없죠. 정말 그가 유신이 시작될 때부터 준비했든, 당일 부마항쟁 얘기로 코너에 몰리자 열 받아서 했든간에요. 박정희에, 유신에 대항하는 범국민적인 항쟁이 시작됐고 중정부장은 그걸 가장 먼저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이 두개만 짚고, 다음으로 넘어가죠. 미국 얘기는 딱히 하지 않겠습니다.

"민주주의는 쿠데타나 암살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힘으로 이뤄야 진정한 민주주의입니다" - 김대중

그 굳건해 보였던 유신을 무너뜨린 것은 김재규의 총알 두 방이었습니다. 일인 독재체제인만큼 그 일인을 무너뜨리면 체제는 붕괴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에 대한 대의는 (사후 합리화라 하더라도) 있었고, 그에 대한 의지 역시 분명 있었죠. 그럴 수 있는 위치에서 그럴 생각을 가지고 있고 의지도 있다면,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긴 합니다. 마치 히틀러를 암살하려던 계획처럼요. 독재자를 직접 쓰러뜨릴 수 있다면 만사가 다 풀리진 않더라도 그 다음으로 더 쉽게, 빨리 나아갈 수 있겠죠.

그 외에도 그 때 박정희와 차지철이 말했던 계획, 국민을 얼마나 죽이든간에 탱크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것도 생각해 봐야겠죠. 부마항쟁에 이어 전국에서 일어났을 때 정말 강경하게 밀어버렸다면 그 피해가 얼마나 됐을지는 예상할 수 없습니다. 수백만 수준까지 가지는 않겠지만요. 그 많은 죽음을 단 두 명의 죽음으로 막을 수 있다면? 박정희의 영향력은 너무나도 컸고, 그걸 따라잡을 수 없었던 전두환은 7년 단임이라는 시한부 독재를 해야 했습니다. 친구를 믿긴 했지만... 권력이라는 게 그리 쉬운 건가요.


하지만 하야도 법적인 처벌도 아닌 총으로 쓰러뜨린 것에 대한 한계는 너무나도 큽니다. 박정희를 전설로 만들어버렸죠. 죽은 이에 대한 동정심은 과를 가리고, 그것이 심복의 배신에 의한 것이라는 건 극적인 부분만 강조할 뿐입니다. 국민의 요구에 의한 하야로 완결됐던 이승만에 비해 박정희의 이야기는 암살로 인해 중간에 끊긴 것이 됐습니다.

그 때 박정희의 권력이 얼마나 탄탄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가 엇갈릴 겁니다. 그래도 탄탄했다면, 수백만을 죽이고도 유신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고 본다면 그래도 총알 두 방은 싼 거라고 평가할 거고, 충분히 흔들렸다고 평가한다면, 4.19처럼 많은 희생 없이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거나 아예 많은 피해가 있을 것도 각오해야 했다고 한다면... 김재규를 좋아할 수 없겠죠.

어쨌거나 박정희는 그렇게 죽었습니다.

그 짧은 혼란, 그 짧았던 봄, 민주화 인사들은 87년에 보여줄 분열의 씨앗을 보여줬습니다. 이걸 얼마나 크게 봐야될지도 의문입니다. 둘이 힘을 합쳐 국민들의 마음까지 합칠 수 있었다면, 또 다른 쿠데타를 막을 수 있었을까요? 그렇다면 이 분열은 너무도 크고, 그게 아니라면 그냥 이야기거리의 하나일 뿐이죠.


그 혼란의 틈을 파고든 것은 박정희가 키웠던 하나회였죠. 짧았던 봄을 피로 물들이면서요.

10월 26일 이후, 박정희가 없는 한국, 박정희가 없는 시대가 시작됩니다. 그게 지금까지 이르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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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5.16, 5.18 얘기를 할 때만 해도 10월에 참 많은 얘기를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한국사 최고의 떡밥인 박정희 얘기가 잔뜩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딱 이 때가 닥치니까 참 어렵네요. -_-; [오늘]이라는 것 자체가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범위가 좁아질 수밖에 없고, 그렇게 얘기하자니 박정희는 너무나도 크구요. 거기다 딱 이 때가 올해 중 제가 가장 바쁜 시즌이네요 (...) 아쉽습니다. 이렇게 약속된 박정희의 달이 끝나가네요 ㅠ_-

박정희에 대해 많은 얘기가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한국이 망하든 안 망하든간에 말이죠. 그는 한국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고, 장기독재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질 수밖에 없게 한 인물입니다. 시간이 흘러가면, 최소 50년쯤 흘러가면 어느 정도 이미지가 굳어지긴 하겠습니다만, 그래도 연구는 계속되겠죠. 그 때쯤 가면 우리가 조선시대 얘기하는 것처럼 되겠네요.

저도 계속 할 겁니다. 공주님이 말씀하신 "역사의 판단"이라는 것을 말이죠. 딱히 사회에 영향을 주든말든 상관없어요. 역사 공부하는 제게 이 인물은 평생 공부해야 될 인물이니까요. 제가 죽을 때 가면 이 인물에 대해 한국사회는 어떤 평가를 내릴지, 저 자신은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될 지 궁금해지네요.

빠르면 다음주, 늦어도 11월 내에 그 동안 박정희를 공부하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해서 올릴 생각입니다. 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해야 될 것 같네요. 그 얘기까지 하고 한국전쟁을 끝내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렵니다. 근현대 얘기하니 머리가 너무 아프네요. 다시 꺼낼 때가 언제일지는 모르겠네요. 아니 pgr에서 다시 이 얘기를 꺼낼지도요.

3월부터 시작했던 [오늘] 시리즈,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고 제법 이런저런 얘기를 한 것 같은데... 많이 아쉽네요. 이제 남은 건 단 하나입니다. 12월 12일에 다시 뵙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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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역시 궁금한 건 공주님이 김재규에 대하 어떻게 생각하는지네요. 사족인 것 같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대통합을 원하고 아버지의 피해자를 자신이 떠안고 가겠다고 했던 공주님이니까요. 북한을 제외한다면 유일한 가해자인 김재규, "지도자를 시해한 역적"이고 자기에게는 가족을 죽인 원수지만 나라를 생각해 독재자를 죽인 것이 김재규죠. 피해자를 떠안고 가겠다면 가해자에게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일단 그에 대한 말은 안 한 것 같네요.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그녀의 "대통합"이 얼마나 진심인지 혹은 얼마나 정당한지에 대한 척도가 될 수 있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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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12/10/27 09:58
수정 아이콘
눈시님 글 답지않게... 뭐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요. 제가 글을 쓰진 않지만, 어렵다는 건 충분히 이해합니다 ^^;
그와는 별개로 박근혜야 말을 할리 없겠죠. 자신에게 불리한 건 언급조차 안 하던게 바로 얼마전 이었는데요 -_- 어제 회견도 결국 못살던 나라를 일으키기 위해 생겼던 불가피한 희생이었다는 거 말곤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뭐 말이나마 하는게 큰 발전이라면 발전이지만 -_-;; 구체적인 대책은 아무 것도 없고, 나오지도 않겠죠..
눈시BBbr
12/10/27 10:24
수정 아이콘
크크 쉽지 않네요. 아예 안 올리는 게 나을 것도 같지만... 제가 벌인 판은 제가 접어야죠. ^^; 에궁, 다음 글 기대해 주세요~
하긴 여기까지 온 것도 참 장족의 발전이긴 해요 -_-;
사티레브
12/10/27 12:19
수정 아이콘
날카롭네요 음 날카로워진건가요 흠
뭔가 월별로만 봐도 한 년안에 역사의 흐름이 느껴지는게 신기하네요
FastVulture
12/10/27 14:31
수정 아이콘
운명의 그날... 김재규가 정승화와 함께 육본이 아니라 중정으로 갔다면...
그랬다면... 역사는 바뀌었을까요? 뭐 역사에 가정이란 의미가 없는 것이긴 하지만..
12/10/27 19:27
수정 아이콘
http://youtu.be/fKMt7Dh2ub0

70년대에 바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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