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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0/21 19:24:19
Name Eternity
Subject [일반] [잡담] 동기의 결혼식 그리고 식사
누군가의 결혼식에 가서 일부러 식사를 하지 않은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어제는 처음으로 그랬다.

이유는 쓸쓸해서.

어제는 2년 전 함께 시험에 합격했던 공무원 동기의 결혼식이 있었다.
2년 전에 함께 면접 스터디를 하며 면접 시험을 준비할 때만 해도 참으로 어리고 철 없는 동생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합격 후 2년만에 결혼식장에서 신부와 하객으로 만난 그 동생은 충분히 성숙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어느새 친구나 동기, 선후배들의 결혼 소식이 점점 자주 들려오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동안은 누군가의 결혼식을 보면서 부럽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별로 없는데
어제 만큼은 결혼하는 신랑 신부의 모습이 무언가.. 약간 부러웠다.

그냥, 누군가의 반려자가 되어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 하는 신랑, 신부의 모습을 보며
평생을 함께 할 든든한 누군가가 옆에 있을 때의 표정이란 저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신랑의 친구들이 김장훈의 <커플>을 축가로 불러주는 모습도 참 보기 좋았다.
어설픈 화음과 불안불안한 음정으로 음이탈까지 일으키며 다소 민망하게,  
하지만 진심으로 열심히 불러주는 신랑 친구들의 모습과 그 광경이 참 멋있었달까.
분명 하객들을 폭소에 빠뜨리는 코믹하고 웃긴 축가였지만, 나에겐 적이 감동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친한 친구가 결혼하면 나머지 친구들을 모아서 정말 저렇게 진심을 다해 열심히 축가를 불러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다른 한 편으론 내가 결혼할 땐, 저렇게 진심으로 열과 성을 다해 축가를 불러줄만한 친구들이 몇이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기분이 조금 묘했다.

사실 1년 전만 해도 결혼에 대한 개념 자체가 별로 없어서
다른 사람의 결혼식에 가서도 별로 부럽다거나, 외롭다거나 하는 생각을 잘 안 했었는데.
요즘은 부쩍.. 부럽다는 느낌, 외롭다는 느낌을 자주 받게 된다.

아마도 헤어진 그 사람 때문이겠지.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남의 결혼식장을 가는 게 조금씩 꺼려지게 된다.
물론 정말 친한 친구의 결혼이야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뿌듯한(?) 마음으로 즐겁게 축복해줄 수 있지만
별로 친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무시하고 넘어가기에는 애매한 그런 지인의 결혼식을 혼자 찾아가면..
항상 이런 외로움이 꼬리표처럼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질질 따라다닌다.

어제가 그랬다.
그래서 결혼식과 사진 촬영까지 마친 후, 결혼식장에서 만난 몇몇 공무원 동기들이 같이 밥을 먹으러 가자며 나를 불렀지만
나는 약속이 있다고 둘러대며 바쁜듯이 그 자리를 빠져나와 전철역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냥,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두사람인 신랑 신부를 위한 공간인 웨딩홀 건물의 훈훈한 분위기 속에 오랫동안 머물기엔
내 자신이 괜시리 초라하고 안쓰럽게 느껴졌나 보다.

이제 내년이면 서른.
누군가의 시처럼 잔치는 이렇게 끝나버리는 걸까.

어쨌든 점점 주변 지인들의 결혼 소식이 부쩍 들려오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주변 소식에 휩싸여 조급하게 결혼에 목매기 보단..
그때까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 하나 열심히 파고들고 누리고 즐기며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싱글인 나에게도, 스스로가 만끽하고 누려야할 나만의 삶과 나만의 즐거움은 있는 법이니까.

그래도 앞으론 결혼식가서 아무리 기분이 쓸쓸해도 꼬박 꼬박 밥은 먹고 와야겠다.
오후 4시 결혼식에 가서 아무것도 안 먹고 집에 와서 세상 우울은 다 짊어진 것처럼 저녁도 안 먹고 있다가
뒤늦게 야밤이 되어서야 컵라면을 찾아먹는 이런 내 모습이 더 우스웠다.


그래, 앞으론 뭐가 어찌됐든, 그래도 밥은 먹고 오자.
또 괜히 우울하고 쓸쓸하다며 밥 생각 없다고 저녁까지 건너 뛰었다가 야밤에 라면 먹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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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xian
12/10/21 19:38
수정 아이콘
확실히 다른 사람의 결혼식장을 가는 게 꺼려지는 때가 오지요. 외로움 때문이든 나이 때문이든.

그래도 밥은 먹고 오셔야 합니다. 아깝습니다.


참고로 제가 그 동안의 직장에서 전담한 임무 중에, '가자니 아주 가깝지는 않고 안 가면 곤란한' 외부 경조사에 가는 임무가 있었습니다.
외부 자리라 해도 안 갈 자리는 다 안 가면 되고 갈 자리는 다 가거나 사정에 따라 누가 가면 되지만, 꼭 애매한 경우가 있어서 그럴 때면 곤란한데,
그 일을 제가 맡은 이유는 '그 장소가 어디건 혼자 가서도 주인이 무안하지 않을 정도로 맛나게 밥먹는 일'이 가능한 사람이라서 그렇다더군요. -_-......

뭐 그러합니다.
Eternity
12/10/21 19:54
수정 아이콘
The xian님// 네, 밥은 먹고 와야겠습니다. 이번에 느꼈네요.^^;

그리고 포프의대모험님 말씀처럼 정말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계셨군요.;;
애매하고 곤란한 경조사에 대신 가주는 임무라니..

나한테 닥친 애매한 경조사도 어찌할 바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남의 경조사까지 그렇게 대신 해준다는 게 상상이 안되네요.
정말 엄청난 능력 맞습니다 덜덜
네오크로우
12/10/21 21:25
수정 아이콘
제목만 보고 '아, 맞아. 요즘은 좀 부담되지'하고 들어오니 다른 사연이 있었군요..

좀 딴 소리지만 사실 그러면 안 되지만 점점 시간이 갈수록 어떤 경조사에 속칭 밥 값에 민감하게 되더군요.
저야 시골에 살다보니 축하해 주고 축의금 넣고 거하게 먹고 오지만 종종 다른 지역 특히 도시 쪽에서 늦은 결혼 하는 친구들
결혼식에 가기 전에 알아보면 밥 값이 15만원 이상이니까 이건 우리가 가서 다 밥을 먹으면 축하가 아니고 짐이 되더군요.

보통 결혼식 가는
친구들은 이미 우리 자체적인 상조회에 다 참여하고 있고 다달이 회비를 납부해서 경조사에는 회에서 축의금을 대신 내고 개인적으로
또 내는 그런 구조임에도 식사비 자체가 너무 비싸다 보니까 언제 부터인가 항상 다른 지역에서 결혼할 때는 그 근처 맛집 검색해서
식에 참여하고 사진만 찍어주고 우르르 나와서 맛집 가서 거하게 먹는 게 우리도 좋고 당사자한테도 덜 미안하고......

지난 주에 서울에서 결혼식한 친구는 뭐..손 없는 날에 (전 이게 이사에만 해당하는 줄 알았습니다.) 성수기라고 잡기도 힘들고
1인당 식사비 17만원짜리 외에는 없었다고 하더군요. 하하하..;;;;



Eternity님이야 쓸쓸하고 허탈한 기분이시겠지만 그 동기분은 '아...사려깊은 동기구나' 할지도 모릅니다....
뽀딸리나
12/10/21 21:41
수정 아이콘
내년에 서른이시면 아직 한창이신데요, 뭘
뭐라도 열심히 해두시면 나중에 나이먹고도 그래 난 그래도 이게 있었지 하게 되니까, 취미건 뭐건 건전한 쪽으로 열심히 살면서 인연을 기다려보세요...그리고 등잔밑이 어둡다고 의외로 뒤늦게 주변에서 인연을 찾는 커플들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왕 가신거 부조도 하실 텐데 왜 밥을 안챙겨먹어요, 꼭 챙겨드셔얒...^^
Love&Hate
12/10/21 21:53
수정 아이콘
혼자일때 당당해야 쉬이 둘이 되더라구요.
12/10/21 23:09
수정 아이콘
전 이미 올해 서른입니다 (;;;)
어제도 결혼식 다녀와서 그런지 글에 공감하게 되네요
20대와 달리 결혼식 가게 되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져서 가급적이면 안 가려고 마음먹곤 합니다만... 피할 수 없어서 억지로 갈 때마다 씁쓸한 생각만 들더군요
너에게힐링을
12/10/22 10:14
수정 아이콘
제 고등학교 베프친구가 이번주 토요일에 결혼하는데
왠지 씁쓸하고 부러운건 어쩔수 없네요..^^
Eternity
12/10/28 16:10
수정 아이콘
베프가 결혼해도 씁쓸하고 부럽긴 마찬가지겠네요.
저는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 줄 알았는데 서른줄이 가까워지니 그게 또 그게 아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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