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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9/11 18:23:27
Name sungsik
File #1 2010051914624[2].jpg (42.1 KB), Download : 57
Subject [일반] 제갈량이 유비 밑으로 들어갔을 때 유비의 상황




게임이나 여타 삼국지 관련 지도를 보면, 위촉오가 정확히 3등분이 되어 있는 느낌이지만,
사실 중요한 건 얼마나 쓸모있는 땅을 가지고 있느냐이죠.
위의 지도는 촉 위의 한중이 좀 미약하게 표시됐긴 하지만 실제 삼국지 영토는 이렇게 보는 게 적절합니다.

그만큼 당시 중국 대륙에선 중원과 하북지역이 전체 중국의 7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한다 할 정도로 막강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중원의 조조와 하북의 원소가 가장 중요한 두 지역을 차지해 패권 다툼을 벌였고,
원소의 사망 이후 원가 세력은 원담원상 형제의 내분으로 인해 스스로 자멸합니다.
그리고 그 틈을 이용해 조조는 중원과 하북을 모두 차지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후방의 위협이 될지 모르는 오환까지 정벌을 마치고 안정시킵니다.

이 시점 남은 세력은, 서량의 마등/한수, 한중의 장로, 형주의 유표, 익주의 유장,  양주의 손권 뿐입니다.

서량의 한수/마초 세력은 적벽전 후에도 하후연과 장합에 의해 정벌되었으며,
유표쪽 세력 유표 사후 조조가 남하를 준비했을 때부터 이미 항복을 준비중이었으며,
한중의 장로도 후에 조조에 손쉽게 제압 당하였고,
익주의 유장은 그 장로조차도 어찌하지 못해 빌빌 거릴 정도로 세력이 약했습니다.
양주의 손권쪽도 이미 조조에게 항복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논쟁중이었고요.

원가가 패배했을 시 대업의 90%는 완성했다봐도 무방할 정도로 조조에 대항할 세력은 누구도 남아있지 않았는데,
이 시점에서도 유비는 조조에게 항복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갈량을 세 번 찾아가고 제갈량은 유비의 신하가 됩니다.

자... 이제 조조가 중원과 하북을 정리하고 남하하기 시작합니다.

조조는 위의 지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이 때 조조가 위나라 지도에서 차지하지 못한 지역은
파란색 영역에서 장안의 왼쪽 서량지방과 형주의 북부 양양뿐.
이미 중국의 70%에 가까운 지역을 장악했고,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으나 기록상 추정컨데 15만에서 20만 정도의 병력을 가지고 남하합니다.


반면 유비는, 항복하려는 유종의 양양성을 점거하고 형주를 차지하자는 제갈량의 간언을 뿌리치곤
결국 본거지도 없이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이 때 그나마 있던 전투 가능한 병사의 숫자도 후에 제갈량이 손권과의 동맹 체결을 위한 대화로 유추하건데 대략 만명,
그것도 동맹을 위해 자신의 세력을 과대포장해야했으니 꽤나 부풀린 수치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게 물자가 많은 근거지였던 강릉으로 열심히 달려가지만,
조조의 빠른 기병대에 의해 강릉까지 도달도 하지 못한 채 수하의 군사와 백성은 모두 와해되어 버리고
유비는 처자식까지 버려가며 한진으로 달려가 겨우 관우와 조우해 면하를 건넙니다.
그리고 안 그래도 무시무시한 조조는 당시 도망치던 백성과, 형주의 핵심 지역인 양양을 차지하고,
강릉성의 풍부한 물자와, 유종의 강력한 수군까지 얻게 됩니다.

조조는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막강했고, 유비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유비를 처음 만났을 시 천하삼분지계로 알려진 융중계를 제시한 제갈량은 대체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자신이 계획했던 융중계를 진짜 실현할 순 있는지,
아니, 그건 고사하고 이 유비란 세력이 대체 보존이나 가능한 것인지.. 혼란스럽지 않았을까요?

그와중 유비가 유기와 만나고 하구로 도착하자마자 제갈량이 유비에게 건낸 말은,

'사태는 긴급합니다. 청컨대 명령을 받들어 손장군에게 구원을 요청하도록 해주십시오."
였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손권과의 동맹 체결을 위해 양주로 떠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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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9/11 18:27
수정 아이콘
삼국지 관련글을 읽을때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마속이랑 손제리 이눔시키들은 정말... 어휴...
12/09/11 18:27
수정 아이콘
그거야 엄백호군도 토익을 보는 나머지 승상께서 일자리가 없기에 억지로...

적벽전까지는 구상해놓고 생물병기식으로 병원균이나 감염체를 위군 진영에 풀어놨다거나 하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디버프 걸고 화끈하게 파이야! (...)

그렇게 한번 위를 물려서 오를 살려둔 후 촉을 먹을 예정이었다거나.
카서스
12/09/11 18:42
수정 아이콘
오원과 태원은 당시 위의 영토가 아니였나요?
아르카이져
12/09/12 01:20
수정 아이콘
당시 실제적으로 지배력으로 봣을땐 크게 의미가 있다고 보기는 힘든 지역이였죠위 지도를 보시면 영릉 계양 아래 교주지역도 오나라쪽에 지배를 받긴했지만 사섭 사망이후에 오나라에서 직접 통치를 하려고 했던 덕분에 사섭 사망 이후의 사섭일족이나 그외 이민족들에 관련된 반란은 생각외로 많았죠 사섭이 통치 할당시만 해도 이민족이 통치에 잘따라 진상품등을 공짜로 얻는 지역이엇는데 교주를 오나라에서 직접통치 했던것이 많은 반란등 전선을 길게 늘여서 오히려 손해를 봤다는 의견도 많이 있고 실질적으로 지배를 하기도 많이 힘들었죠 촉나라 역시 남중을 평정했다 하나 직접 지배라고 보긴 힘들었죠 제갈량이 평정후 나중엔 많은 반란이 일어났었구요
지금 위 지도가 당시 실질적 지배 세력에 맞다고 생각하는데 뭐 중국 학자들은 지금 모든 지역이 지금 중국이니 무조건 뻥튀기 해서 중국 실지배 지역이었다고 하기도 하죠
설탕가루인형
12/09/11 18:48
수정 아이콘
간손미 간손미 신나는 노래 나도 한 번 불러보자~

사실 싸움에 중요한 게 1급 전력 외에도 백업 전력의 수준인데
승상느님이 유비 밑으로 들어갔을 때 참모 백업이 간손미였죠 -_-

그런데도 결국 삼국시대를 만들었으니
승상느님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손제리 따위는 상대도 안 됩니다!!
후란시느
12/09/11 19:00
수정 아이콘
그림만 보면 위나라는 기지 5~6개, 오나라는 기지 2개, 촉나라는 기지 1개......쯤 되겠네요...
12/09/11 20:55
수정 아이콘
실국력 비교에 인재풀까지 합쳐서도 7:2:1의 세력비는 변한적이 없었죠. 딱 한번 형주함락-이릉대전이전의 세력비가
5.5:2.5:2정도로 보는 상황이었는데... 그리고 2.5와 2가 싸우더니 알아서 자멸을 하지요..
래몽래인
12/09/11 19:09
수정 아이콘
그저 승상느님은 찬양입니다.
기다리다
12/09/11 19:34
수정 아이콘
예전부터 궁금한거였는데 형주를 잃고 난 후 촉의 세력은 전성기 원소보다 약한세력인건가요?아니면 그거보다는 강한세력인건가요?하북의 넓이등을 생각하면 원소세력이 왠지더 강할같다는 생각이 들던데 말이죠
12/09/11 19:39
수정 아이콘
원소가 압도적으로 강합니다. 일시적으로나마 형주/한중을 모두 가지고 있었던 촉도 전성기의 원소하고는 비교가 안 될 듯...
12/09/11 19:42
수정 아이콘

원소가 한 10년만 더 살았어도 조조가 원소를 이겼을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막강했지요.

원소 사후 원담 원상이 쪼개지고 원가는 서로 내분에 난리도 아닌 상황인데도,
원상에 상당히 고전했던 조조였으니..
12/09/11 19:43
수정 아이콘
사실 관도 대전은 스펙만 봐서는 원소가 조조를 가볍게 제압하고 중원의 패자로 올라가는 관문 중 하나에 불과했어야 했습니다. 근데 천운이 조조에게 따라준데다 원소 진영이 일으킨 오만가지 병크, 조조라는 먼치킨의 존재가 겹쳐서 일어난 기적에 가깝죠.
누렁쓰
12/09/11 19:50
수정 아이콘
후계 구도를 엉망으로 만든 점이나 책사들의 암투를 제어하지 못한 점, 유능한 부하들을 멀리하고 자신의 고집대로 일을 처리한 점 등 원소의 실책이 많지만 그 중 최고의 실책은 일찍 죽었다는 거죠. 관도에서 패한 후 나누어진 세력 간의 암투로 인해서 간신히 잔당을 제압한 걸 보자면, 원소가 살아있었다면 제2, 제3의 관도 대전이 있었을 것이고, 관도에서의 기가 막힌 승리 방정식이 다시 되풀이되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제갈 승상은 정말 인기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유비 세력을 조조 세력에 대항 가능한 대항마로 키워낸 것 하나만으로도 추앙 받아 마땅합니다.
12/09/11 19:50
수정 아이콘
관도 대전에서 조조가 이기고도 원가 세력 자체는 여전히 막강 했죠. 원소가 횡사하고 원담-원상의 집안 싸움이 안 났으면 여전히 조조가 골치 꽤나 아팠을 겁니다. 물론 당시 원소 세력내의 호족간 대립구조를 생각해본다면 원소 사후의 분열은 예견된 수순이긴 했습니다만...
올빼미
12/09/11 19:52
수정 아이콘
헌데 삼국지인물중 군주가 죽어서 망하지않은 세력이 있나 싶기는 합니다. 그나마 손가 3대정도도 중간에 완전망했었는데..
구밀복검
12/09/11 19:55
수정 아이콘
유비가 이릉에서 까먹은 병력보다 관도에서 원소가 까먹은 병력이 더 많은데, 그래도 원가>>조조였죠.
12/09/11 20:19
수정 아이콘
관도대전을 이긴다는 자체가 말이 안됐죠. 보통 제갈량 사마의의 병력차를 3배 정도로 보는데, 조조와 원소와의 병력차를 7배에 가까웠으니까요.
더군다나 공손찬을 멸망시키고 후방이 든든했던 원소에 비해 조조는 후방의 유비를 항상 감안해야 해서 하후연이 보급하러 다니질 않나-_-;
못된고양이
12/09/11 23:57
수정 아이콘
세계테마기행에서 옛 촉나라땅 지형들 훑어준걸 보면 제갈량 그남자 생각할수록 참 불쌍한 남자더라구요.
보급로가 겨우 폭 1미터 남짓한, 절벽에 나무 박아 만든 길이라
촉에 눌러 앉아 버티기에나 좋지 어디 공격나가거나 외지에 거점을 점령해도 보급 늦어 폭망할것 같았습니다.
제갈량은 이런 눈물나는 여건을 두고 얼마나 고민이 많았을까요..
허나 역으로 생각해보면 진작 망했을 촉인데 지형 덕에 오래 버텼단 생각도 드네요.
12/09/12 00:29
수정 아이콘
같은곳에서 유방의 군대는 어떻게 성공할수 있었던걸까요?
나이트해머
12/09/12 00:25
수정 아이콘
전한, 후한 지리지 인구 비교시 하북, 중원 : 나머지 인구가 6 : 4 정도, 정사 삼국지 인구 통계상으로도 위 : 오 : 촉 = 4 : 2 : 1 정도의 인구 비율이 나옵니다. 7 대 3 정도의 차이는 나지 않습니다. 덤으로, 춘추시대는 사실상 북상하는 초를 막기 위해 진을 중심으로 헤처모여 할 정도로 남방 세력이 위협적이였고, 전국 칠웅이 날뛰던 시대에는 관중 + 관서(옹량주) + 파촉에 걸터앉은 진나라가 천하 인구의 1/3을 해먹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성했던데다 그 진과 그래도 붙어볼만한 국가로는 남방의 초나라가 유일했죠. 전한이 국가 중심지를 장안에 둔 것은 잘 알려져 있고, 후한의 경우에도 하북 중원 관중까지 해먹은 광무제가 양주, 파촉 평정에는 상당히 신중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만만한 세력이 아닌 거죠.

솔직히 요즘은 북방을 장악한 위가 우세한 국력이긴 하나 절대적인 우세를 점했는가는 상당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도 그렇고, 남북조 시대도 그렇고, 파촉 + 관중 + 관서를 집어먹은 세력이 중원, 하북을 평정해 버리는 모습이 오히려 더 많이 보이거든요.(전자가 진의 천하통일, 초한쟁패기 유방의 승리, 북주의 북제 제압과 천하통일, 후자가 광무제의 후한 건국, 서진의 통일. 횟수로는 3:2...)
12/09/12 00:32
수정 아이콘
예시의 대부분의 관중+관서가 알짜배기라서 그런게 아닐까요? 근데 위는 하북+관동+관중+관서였으니..;
물론 촉이 장안까지 먹고 파촉+관서+관중이 되었다면 대등해질수 있었겠지만 끝내 제대로 먹었던건 파촉지방뿐이었죠.
나이트해머
12/09/12 00:46
수정 아이콘
관서는 언제나 변방지역입니다. 사실 양주의 인구는 그냥 교주 수준이죠. 특히 후한서 지리지의 양주 인구는 익주의 거의 1/7,8 수준밖엔 안됩니다. 이민족과의 접경지역이고 동시에 교역의 주요 통로이며 관중을 서북에서 엄호하는 중요한 위치이기에 병사들이 거칠고 강인하다는 이유로 중시되는 것이지. 양주 동쪽 떼고 관중에 갖다 붙여서 만든 옹주의 인구야 넉넉하지만 거기서 관중 빼고 나면 과연... 싶죠.

관중은 인구가 넉넉했습니다만, 이미 진나라 시절부터 자체 인구부양이 안되는 지경에 이릅니다. 후방 배후지로써 파촉은 절대적으로 필요하죠. 거기다 갈수록 토양이 염성화되는지라 생산력은 계속 낮아집니다. 실제로 전한만 해도 죽어라고 하남에서 관중으로 통하는 운하를 파고 동시에 파촉과 관중 사이의 길을 여러개 내려 했지요.

결국 파촉의 중요성은 여기서 나옵니다. 파촉이 없으면 관중지역은 제 힘을 내지 못하죠. 인구 부양이 안되서. 하남에서 날라오는 것이야 심심하면 물줄기가 요동을 치는 황하의 상태를 생각하면 설령 가능한 상황이라 해도 변수가 너무 많고, 강남에서 날라오는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니.
Love&Hate
12/09/12 00:50
수정 아이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관중을 지배하는자가 천하를 지배하던 시절이었죠.
관중중심으로 보면 죄다 관중의 압승입니다.
서기와 호경의 주나라까지 들어가거든요.

강남도 무시당할게 아닌게...
춘추시대의 최고 국가는 사실 마지막만 빼면 초나라입니다.(초나라만이 칭왕을 일찌감치 한것중에 그런연유도 있습니다..)
오패중 제환공시절의 관중도 칭왕을 책하지 못했고
진문공도 삼보 물리면서 성복대전에서 제압하지만 그전의 기세는 초가 우세했습니다.(당연히 우세했으니 말려들어간거구요)
초장왕이야 초나라 출신이구요.
오패중 이견이 없는 세사람시기에 모두 초나라가 막강했습니다.
그런 초나라를 무너뜨린것 역시...
중원의 나라가 아닌 강남의 오나라구요..(물론 초나라 내적인 문제는 있었습니다)
나이트해머
12/09/12 01:01
수정 아이콘
관중 단독으로는 천하 못잡습니다. 식량생산량이 인구를 못받처줘요. 이르게 보면 이미 전국시대때부터 이런 징후가 나타납니다.
진이 외부로 20만 이상 출병이 가능해진 것이 파촉을 장악한 이후라는 것을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당 건국시를 보면 관중 장악 후 맨 먼저 파촉과 관서를 평정하고 나서야 동진합니다. 최대 위협도 양주에서의 공세에 밀렸을 때였죠. 뭐, 남조의 북벌 당시 장안, 낙양까지 먹어 놓고도 양주에서 공격해오자 그대로 다 내놓고 다시 강남으로 쪼그라든 적도 있고.
12/09/12 01:07
수정 아이콘
춘추전국시대의 초나라는 강남뿐만이 아니라 아니라 삼국시대 행정구분으로 하면 형주+강동에다가 중원의 서주+회남까지 합친 땅을 갖고있어서 강했던거 아닌가요? 근데 위나라는 하북과 중원은 물론이고 형주북부까지 차지하고 있었으니..
Love&Hate
12/09/12 01:11
수정 아이콘
사실 그래서 형초가 맞는데요.. 삼국시대 동오 역시 형주도 차지했구요..
형초지방의 힘이 크단 말씀을 드리고 싶었던 겁니다..
크지 않았다면 올라가지도 못했씁니다..
왜냐면 일찌감치 초는 칭왕을 했거든요..

사실 대초 동맹군이 결성된 이유자체가...
초가 칭왕했기 때문입니다.

초가 칭왕을 하고 더 커졌다는 자체가..
능력있다고 봐야하지 않냐는 말이죠.

그 기저에 형초지방의 서포트가 있다고 봐야한다는거죠.
12/09/12 01:41
수정 아이콘
전 그냥 제갈량이랑 유비 이야기 하고 싶었을 뿐인데...
제가 젤 싫어하는 인구 + 병력 논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다 싸움까지 나네요.

짜증나서 글 삭제해버릴까 하다가, 리플도 많이 달려 삭제도 안 될 테고.
그만하셨으면 합니다.
Love&Hate
12/09/12 04:00
수정 아이콘
아,.....................................................................
12/09/12 10:57
수정 아이콘
1) 제갈량은 유비밑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위나라, 오나라로 가면 쩌리취급 or 왕따취급 밖에 받을수가 없습니다.

2) 유비가 살아있을때는 유비가 거의 모든것을 다 했습니다.
제갈량 - 천하삼분지계 - 화로 3다리비유는 다 소설입니다.
유비가 촉나라에서 최고의 먼치킨인 이유입니다.

3) 유비사후에는 최고의 활약을 보여줍니다.
유비가 조금만 더 기반이 일찍 잡히고, 제갈량을 일찍 만났다면 역사가 바뀌었겠지만
만약은 없지요 ㅠㅜ
알킬칼켈콜
12/09/12 19:14
수정 아이콘
댓글 재밌게 잘 읽고 있다가 보기 안좋긴 하네요. 두 분 사이의 문제야 두 분이서 해결할 일이니 그렇다치더라도, sungsik 님이 불쾌하다고 직접적인 표현까지 하셨는데도 나이트해머님은 사과 한마디 없으신 걸 보니, '사과해야할때는 그냥 넘어가죠?' 라는 Love&Hate 님 말씀이 제 가슴에까지 들어옵니다. pgr의 그 누구보다도 손제리에 대해 박학하실 것 같은 분이 손제리처럼 코 앞의 싸움에 눈이 멀어 대국(?)을 해치시면 안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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