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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9/03 23:55:30
Name 자이체프
Subject [일반] 조선시대 인권 이야기 - 1

아래의 글은 제가 모 잡지의 청탁을 받고 게재한 글을 약간 손 본 것입니다. 무료 잡지이고 발행일이 한달 정도 지나서 해당 잡지의 양해를 구하고 이곳에 올립니다. 주제는 조선시대 인권에 관한 이야기이고 현재 두번째 청탁을 받은 글을 넘겨준 상태입니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은 실록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물 덕분에 풍성한 이야기거리를 남겨놨습니다. 저도 실록을 보기 전과 보고 나서의 조선을 전혀 다르게 봤을 정도니까요. 이 글의 목적은 우리조상님의 투철한 인권의식을 찬양하기 위해 쓴 글은 아닙니다. 그냥 그 당시 이런 일이 있었고, 이것을 오늘날 어떻게 봐야 하는가에 대한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역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는 수많은 역사 학자들은 물론 저 같은 백면서생들한테도 큰 도전입니다. 현재는 '그냥'바라보고 있습니다. 내가 좋다고 부풀릴 수도, 마음에 안든다고 축소시킬 수 있는게 아니니까요. 시간이 나면 실록을 읽고 있는 중인데 죽은 신하들의 간략한 삶을 담은 졸기라는게 있습니다. 사관이 죽은 사람에 대해서 이런 저런 평을 남겨놓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뜻과 지조를 잃기는 쉽고, 도를 지키기는 어렵다> 역사는 삶을 뒤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타임머신 같은 존재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현재에 너무나 충실한 나머지 과거를 까맣게 잊어버렸고, 미래는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인간의 삶은 장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야만 최소한 인간이라고 불리울 자격이 생길테니까요.

근대 이전에는 인종이나 출신성분에 따른 차별이 존재했다. 하지만,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은 조선은 현대와 비교해 봐도 뒤지지 않을 인권의식을 보여줬다. 잘 알려진 관노비의 출산휴가 제도 외에 조선의 인권의식과 수준을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월족 금지령이다. 월족(刖足)은 발뒤꿈치를 베는 형벌로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면 정상적인 보행이 불가능하다. 월족은 이마에 문신을 새기거나 코나 귀를 베는 것처럼 육형(肉刑), 즉 신체를 훼손시키는 형벌에 속했으며 칼로 발뒤꿈치를 베는 것과 인두로 지지는 방법이 있다. 주로 절도범이나 도망치다 잡힌 노비들에게 시행되었다.

하지만 태종 15년 (서기 1415년)에 주인이 사사롭게 노비의 코를 자르거나 다리 힘줄을 끊는 형벌을 금지한 것으로 봐서는 월족이 가혹한 형벌이라는 인식은 조선 초기부터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세종 17년 (서기 1435년) 형조판서를 지냈던 신개가 도적질을 세 번하다 붙잡히면 힘줄을 끊어버리자고 주장하면서 논쟁이 벌어졌다. 세종은 신체를 훼손시키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며 신하들에게 이 문제를 논의하라고 지시했다. 신하들이 중국의 사례를 들어가면서 시행을 주장했고, 세종이 동의하면서 논쟁은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2년 후 형조에서 한쪽 발의 힘줄이 끊어지고도 도적질을 하는 자들이 많으니 양쪽 발의 힘줄을 모두 끊어야 한다고 한 건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다 세종 26년(서기 1444년)에는 도적들을 막을 대책을 논의하던 영의정 황희 등에게 단근형을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실록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정조 때 편찬된 법령 모음집인 대전통편(大典通編)에 코를 베는 형벌인 의비와 더불어 월족형을 세종 갑자년에 금지했다(禁劓鼻刖足, 世宗甲子)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갑자년인 이해에 코를 베는 형벌과 함께 월족 금지령이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이후 문종 1년 (서기 1451년) 한양에 도둑들이 횡횡하니 월족형을 부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문종은 도둑은 쉽게 잡을 수 있지만 월족형은 쉽게 쓸 수 있는 형벌이 아니라며 거절했다. 세조 11년 (서기 1465년)에도 월족형의 부활이 논의되었지만 실제로 시행되지는 않았다. 물론 이 한 가지 사례만 가지고 조선의 인권 수준을 논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조선 후기로 가면서 인두로 몸을 지지는 낙형이 폐지되고 곤장의 규격을 정하고, 정해진 것 이외의 형틀을 죄수에게 씌우는 것을 금지하는 등 가혹한 형벌을 폐지하거나 줄여나갔다. 우리는 이런 사실들을 통해 조선시대에 지금과 같은 인권 의식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세종이 월족형을 금지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지만, 필자는 세종대왕이 우참찬 이숙치의 의견에 동조했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지금껏 도적들의 두목과 수하들을 가리지 않고 처벌해왔지만 그들의 수가 줄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저들이 모두 굶주림과 추위 때문에 도적질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찌 법령의 엄격함만으로 효과를 볼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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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12/09/04 00:03
수정 아이콘
잘 읽었어요 / 단근형은 무엇인가요? / 마지막 두 줄에서 노점상인들이 생각이 나네요 /
자이체프
12/09/04 00:17
수정 아이콘
김선태 님// 뜨겁게 달군 인두로 발뒤꿈치의 힘줄을 지져서 끊어버리는 겁니다. 이러면 뛰지 못하고 다리를 절름거려서 전자발찌를 채운 것 처럼 쉽게 구분이 가거든요.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효과가 없었는지 인두로 지지고 나서도 벌떡 일어나서 멀쩡하게 걸어나갔다든지 하는 얘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아예 발 뒤꿈치를 자르자는 쪽으로 논의가 이어집니다.
12/09/04 01:21
수정 아이콘
실제 구한말 러시아 외교관의 저서에는 '귀족들은 자기들의 세습노비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보유하고 있다. 가톨릭 선교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대다수의 귀족은 노비에게 매우 인간적으로 대하였으며, 이들을 고용노동자보다 더 나쁘게 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귀족들이 잔혹하게 대하는 경우에는 재판을 받아야만 한다.' 이런 구절이 있지요.

분명 현대수준의 인권은 없었겠지만, 노비에 대한 대우가 서구의 그것보다는 훨씬 더 인간적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이체프
12/09/04 02:30
수정 아이콘
sungsik 님//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인종이나 민족이 다르지 않았고, 가장 큰 재산이었고, 전쟁등을 통한 확보가 불가능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착한 것도 한 가지 이유겠죠.
12/09/04 12:41
수정 아이콘
이숙치의 말은 참.... 게시판에 사형제 논쟁이 붙을 때마다 나오는 저 말을, 세종 때 이미 했다니...
앉은뱅이 늑대
12/09/04 16:29
수정 아이콘
시의 적절한 글이네요.
형벌로 범죄를 없앨 수 있었다면 인류는 형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발전해 왔겠죠.
자이체프
12/09/04 21:06
수정 아이콘
실록을 찾아보면 최근 부각되고 있는 사형제나 강력범죄에 대한 강한 처벌이 효과를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부부터 대마도가 우리땅인지 아닌지 대마도 관리와 논쟁까지 굉장히 흥미로운 기록들이 많습니다.
자이체프
12/09/05 01:32
수정 아이콘
sungsik 님// 다 보는 수 밖에는^^ 일단 검색으로 보는건 한계가 있습니다. 팁을 말씀드리자면 기사 제목이 '경연을 하고 신하들과 얘기를 나눴다'는 알맹이가 없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냥 넘어가시는게 시간을 절약하실 겁니다. 검색어를 하나만 추천하자면 '신백정'입니다.
sad_tears
12/09/05 03:34
수정 아이콘
그래도 다죽이라고 하진 않았네요.

평등이라고 쓰고 편법, 약육강식이라고 읽는 이 시대의 소시민인 제가 강력범죄는 전면 사형이 옳다고 여기는 제가 이상한 걸까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고 쓰고 뚜렷한 신분제가 있었고 우매하지만 따뜻한 정이라고 읽었던 인간적인 저 시대가 이상할까요.


현 시대가 아무리 성장위주, 불평등 분배가 이루어지고 피해자도 많고 메말라가는 정서와 감정에 때로는 그것이 독이 든 성배로 돌아올 때도 있지만,

국민대다수가 생계조차 이루지 못하고 일찍 죽는, 북한보다 못한 저 시대의 그들과는 비교 할 바가 아니겠지요?

왕이 되어라면 모를까. 귀족이 되어라면 모를까 랜덤으로 떨어진다면 지금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자이체프
12/09/05 04:07
수정 아이콘
sad_tears 님// 엄한 법과 혹독한 처벌이 범죄를 줄이지 못한다는 점은 조선시대 관리나 임금들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기록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저는 고려시대에도, 그리고 삼국시대에도 이와 유사한 논의와 고민들이 있었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물론 무한경쟁이 힘들게 하는건 사실이지만 지금이 조선시대보다 살기 좋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사회적인 책임에 좀 더 무게감을 두고 있긴 하지만 인간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강력한 처벌과 장기간의 구금이 꼭 틀렸다고 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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