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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9/02 01:44:49
Name 눈시BBver.2
Subject [일반]  낙동강 - 8.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


"그 무덥던 1950년의 여름날, 밤과 낮 구별 없이 벌어지는 전투의 현장에서 내 부하들은 죽고 또 죽었다. 그러나 내가 있던 사단, 그리고 그 예하의 각 연대에서는 사정없이 ‘고지 탈환’의 명령을 내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득달같이 진지로 날아오는 공격명령을 받아들고 그들은 싸움터로 향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그 명령을 따랐다."

북한군 13사단은 조선의용군 일부와 신의주에 세운 민청 1훈련소에 입대한 병력으로 만든 사단입니다. 대부분의 북한군 사단들이 남진 과정에서 큰 피해를 입는 동안 이들은 7월 말까지도 전투에 투입되지 않은 채 전력을 보존해 왔습니다. UN 공군의 폭격에 피해를 입긴 했지만 다른 부대와 비할 바가 아니었죠. 조선의용군 출신들이 워낙에 대단해서 질에서는 밀리겠지만, 정치적으로 본다면 1훈련소에서 볼 수 있듯 김일성이 직접 내세울 만한 병력이었습니다.

낙동강 전선 중 가장 중요했던 대구, 그리고 그 대구를 뚫기 위해 가장 중요했던 지역에 이 13사단이 투입됩니다. 다른 사단들은 큰 피해를 입어 한국 내에서 징집한 의용군으로 충원됐지만, 이들은 별 피해 없이 기존의 1만이 넘는 병력을 유지한 채 공격을 시작합니다. 일부러 아껴뒀다가 결정적인 공을 세우게 하려 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김일성에 의한, 김일성을 위한, 김일성의 부대로 보이니까요. 낙동강을 건너는 과정에서 이들은 12연대에 의해 큰 피해를 입었지만 다른 부대에 비할 바가 아니었죠.

http://www.army.mil.kr/history/낙동강방어선작전/주요전투/다부동/11.html



이 곳에는 좁긴 하지만 대구로 향하는 5번 도로가 위치해 있었습니다. 김일성은 105 전차사단의 마지막 남은 전차들을 모두 이곳에 쏟아부었고, 이는 국군이 감당할 수 없는 상대였죠.

다행인 점은 국군의 철수를 틈타 바로 유학산을 점령했던 15사단과는 달리 13사단은 국군의 철수를 미심쩍어 하면서 천천히 접근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불행인 점은 우측의 6사단이 적 1사단의 공격에 후퇴하면서 1사단과의 경계가 벌어졌다는 것이죠. 이 범위가 4km, 가산 산성이 위치한 곳으로 산길이기는 하지만 북한군에게 산길이 뭐 큰 의미가 있나요. 당시 1사단에게 이 틈새를 막을 병력은 없었습니다.

이 때 백선엽은 뒤늦게 12연대의 상황을 알고 유학산 동쪽의 673 고지를 11연대로 돌린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11연대는 더 큰 어려움에 처해 버렸죠.

14일부터 적의 진격이 시작됩니다. 전면에 배치돼 있던 부대는 3대대와 15연대 2대대 (이러니까 15연대 본대가 위험할 때 도움을 못 줬지 ㅡㅡ), 북한군이 도로를 따라 전진함에 따라 이들은 좀 싸운 후 후방으로 철수하게 됩니다. 그 동안 신주막의 입구를 막고 있던 1, 2대대는 밤새도록 교전을 벌였지만, 결국 뚫리고 말았죠. 도로를 따라 다부동, 대구로 갈 수 있었기에 적 전차의 주력이 이 곳에 집중됐고, 그 수는 전차 7대에 장갑차 5대였습니다. 거기다 적이 동쪽 산악지대를 따라 전진해 오면서 다부동은 물론 사단 사령부가 있는 동석동까지 위험하게 됐죠. 후퇴하던 2대대는 포위돼서 고립됐구요. 이런 상황에서 유학산 동쪽 673고지를 11연대 구역으로 바꿔 한 개 대대를 투입해야 했습니다.

동쪽 가산 방면까지 침투한 적은 남쪽의 466고지까지 점령하려 합니다. 이 곳이 먹히면 근처의 도로는 모두 북한군에게 통제되는 것이었죠. 다행히 15연대 2대대가 이를 막아내고 다음 날인 17일에 고립된 2대대까지 구출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아직 위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북한군은 전차를 충원하며 다시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 그래도 이 때쯤 되면 적 전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됐나 봅니다. 3.5인치 로켓포로 적 전차를 잘 잡게 되자 포상이 많아서인지 너도나도 지원했다고 합니다.

한편 적 보병은 가산까지 침투하는데 성공한 후 포를 쏩니다. 백선엽은 여기에 투입할 병력이 없어 포로 묶어둔 후 증원군을 받은 후 제압할 계획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들의 포탄은 1사단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대구였죠.

18일 새벽, 대구역 부근에 포탄 7발이 떨어집니다. 직원 한 명이 순직하고 민간인 7명이 부상 당합니다. 어차피 피해를 주려고 쏜 게 아니었습니다. 민심의 동요를 노린 것이었죠.

"대구도 곧 적의 손에 끝장나고, 대한민국은 이제 갈 곳이 없다"

당시 대구에는 70여만이나 되는 피난민이 있었습니다. 적 포탄이 떨어지고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혼란이 퍼진 것이죠. 북한군의 의도대로였습니다.

"전선 상황이 심각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동요할 정도는 아니었다. 국군과 미군의 분전으로 전선은 잘 지켜지고 있었고, 미군의 막대한 지원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민심은 크게 동요했다. 전화선을 타고 흘러나오는 소식은 암담했다. 대구에서 심리적인 공황 상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날 임시수도를 부산으로 옮깁니다. 일단 우연이라고 합니다만, 이 사실을 적이 알고 쏜 건지 이것 때문에 옮기게 된 건지는 모르겠군요. 포탄은 떨어지고 정부는 부산으로 간다...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 경찰을 지휘하던 조병옥이 피난민 앞에 나타납니다.


"우리가 누굴 믿고 살겠냐. 국군과 미군을 믿자. 소문에 휘둘리지 말고 국군의 분투를 더 기다려 보자. 우리는 반드시 살아남는다. 좀 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그는 대구 곳곳을 누비며 이런 연설을 하고 피난민들을 안정시켰습니다. 덕분에 피난민들도 안정을 되찾게 되었죠. 그 동안 많은 정치인들은 일찌감치 부산으로 도망가 일본으로 도망갈 배를 구해놓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그의 모습이 더 빛나는 거겠죠. 욕 먹을 만한 짓 많이 한 양반이긴 하지만요 -_-;

하지만 전황이 어떻게 될 지 그라고 알 수 있었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적이 대구로 들어온다면 서울에서부터 해 왔던 "국군은 잘 싸우고 있다. 어라 근데 밀리네? 우린 도망간다"가 반복될 뿐이었습니다.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1사단은 더 밀리면 안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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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을 보면 적의 공세에 갇힌 군대가 가장 기뻐하는 순간은 구원병을 맞이할 때다. 수성이나 농성을 하면서 존망의 위기에 놓였던 군대가 자신을 도우러 오는 군대를 맞을 때의 마음 든든함이란 게 과연 어떨까."

이 때는 킨 TF가 해체될 때였고, 동해안 지구에서의 전투도 슬슬 일단락 나던 때였습니다. 백선엽은 증원군을 계속 요청했고, 마침내 미군과 국군 양쪽에서 증원군을 보냈죠. 시작은 미군이었습니다.


연대장 마이켈리스 대령. 후에 주한미군 사령관도 합니다.
"사단장, 좋은 소식이 하나 더 있다. 내게는 포탄 사용에 제한이 없다."

17일, 미 25사단 27연대가 도착합니다. 마산 방면을 맡고 있다가 급히 여기 투입된 것이죠. 이 27연대의 별명은 울프하운드, 다른 별명은 "소방수"였습니다. 위급한 곳에 불 끄러 온 것이죠. 이들은 전차로 강화됐고 국군을 훨씬 능가하는 포병을 데리고 옵니다. 거기다 백선엽이 제일 기뻐했던 것은 포탄 사용의 제한이 없다는 것이었죠. 미군조차도 한 번에 쓰는 포탄의 수를 제한할 때였습니다. 그만큼 이 곳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의미기도 하죠.

이 때 그가 놀란 것은 연대 본부를 계곡물이 아래로 흐르도록 만든 하수구에 세웠다는 점입니다. 백선엽 자신은 물론 국군은 언제나 학교 등 건물에 지휘소를 만들 때였죠. 그 이유를 물으니 튼튼해서 그랬다고 합니다. 연대장부터가 야외에서 포대를 쌓고 그 안에서 지휘를 하는 미군,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죠. 또한 연대장 마이켈리스가 직접 통신병 1명만 데리고 최전방에서 정찰을 하는 모습을 본 병사들 역시 감격했구요.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나는 국가와 국민의 명령을 이행하고 따르는 군인의 자세를 생각하고 있었다. 미군의 전투 방식, 그를 뒷받침하는 준비성과 계획성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나는 다급한 상황에서 다부동 전투를 맞고 있지만, 더 배우고 더 생각할 게 많았다. 세계 최강의 미군과 본격적인 연합작전을 수행할 시간이다. 그들로부터 철저하게 배우고 익혀야 할 게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백선엽의 회고록에는 미군을 배워야 한다는 부분이 참 많이 나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지도죠. 개전 때부터 국군은 학교에 있는 대한민국 전도를 가지고 작전을 짜고 있었습니다. -_-; 겨우 일본이 만든 지도를 구했지만 미군이 가진 것보다 후지기 그지 없었죠. 백선엽은 후퇴할 당시부터 미군에게 부탁해 지도를 잔뜩 들고 옵니다. (흥미로운 게 그 때 지도를 준 장교 성이 화이트라죠. 동성이라며 친하게 지냈답니다) 이 지도에는 좌표까지 찍혀 있어서 포격 유도를 하기도, 명령을 내리기도 편했습니다. 이 때 국군은 겨우 이런 것도 돼 있지 않은 상태였죠.

하지만 이런 미군의 호의는 어디까지나 국군이 잘 싸울 때에야 주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미 27연대는 적의 전차가 오는 좁은 길목에 배치됩니다. 그리고 이 날 저녁 북한군이 이 사실을 모르고 바로 밀고 들어왔죠.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습니다. 미군은 자기 앞으로 온 전차 5대를 포병으로 쫓아내 버립니다.


여기에 미 2사단 23연대가 1사단의 후방에 배치됩니다. 드디어 1사단의 뒤를 받쳐 줄 병력이 도착한 것이죠. 이 때 연대장 폴 프리먼이 백선엽에게 중국어로 말을 걸었던 게 재밌는 부분입니다. 국군이 영어를 못 하니 배워 놓은 중국어라도 쓰면 될까 해서 한 것이었죠. 중요한 건 소통이니까요.

이런 미군의 증원에 힘입어 11연대도 반격을 개시합니다. 장소는 유학산 동쪽의 673고지, 시간은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막 아침이 시작될 무렵인 07시, 적이 지쳐서 잠들었을 거라 생각하고 기습한 것이었죠. 정말 적은 자고 있었고 (...) 간단히 적을 제압한 후 작전지도까지 노획하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 때 미 포병이 이 곳에 포탄을 쏴서 다시 후퇴했고 다시 뺏겼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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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에는 국군 8사단 10연대가 증원 옵니다. 백선엽은 이들을 바로 전선으로 보내기가 미안해서 돼지 세 마리를 잡고 하루 자고 보내려 했습니다. 이렇게 모두 곯아떨어졌던 밤, 적이 기습해 옵니다.

당시 사단 지휘부를 호위하던 병력은 헌병 20~30명 수준이었습니다. 각 연대는 본부 행정병들까지 보내는 상황에서 사단이라고 많은 병력을 남길 수 없었죠. 적은 이 틈을 찌른 것이었습니다. 300명에 달하는 병력이었죠.

백선엽은 이 사실을 알고 바로 운동장으로 뛰어갑니다. 잘 때도 군화를 벗지 않아서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다들 잠이 깨 쫓아낼 수 있었죠. 돼지가 살려준 것이었습니다. 이게 끝은 아니었습니다. 북한군은 두 차례나 더 사단 지휘소를 기습합니다. 이 때는 호위를 2개 소대 정도의 병력으로 강화한 상태라서 막아낼 수 있었죠. 이 때 백선엽에게 걸린 현상금이 북한 돈 10만원, 북한에서 소 한 마리가 100원일 때였습니다.

이런 위험이 지나간 후 백선엽은 총공격을 계획합니다. 잃었던 지역을 되찾고 기존에 설정한 Y선을 회복하려는 것이었죠. 8월 21일이었습니다. 국군 10연대가 증원된 12연대는 나름대로 진격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11연대는 아니었죠.

오전 10시, 미 8군 사령부에서 직접 전화가 걸려옵니다. 흥분한 상태로 고함치는 거나 다름 없었죠.

"사령관, 지금 뭐 하고 있느냐. 한국군이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이냐. 당신들이 이러면 우리는 철수한다. 계곡에 적이 들어오고 있는데 한국군이 이렇게 물러난다면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다"

백선엽이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하자 그제야 진정됐는지 이렇게 말 해 주었죠.

"천평동 계곡 좌측방 고지가 뚫렸다. 한국군이 무너졌다.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내려오는 한국군에 실망했다. 계곡 안의 미 27연대에서 ‘이 상황이라면 우리는 철수한다’고 전해왔다. 사령관이 나서서 수습해라.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계곡을 비우겠다."

이어 27연대에서도 전화가 옵니다. 마이켈리스 연대장이 직접 한 것이었습니다.

"상황이 정말 위급하다. 사단장, 우리는 철수할 수밖에 없다. 계곡이 포위되면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결과가 나온다."

우선은 철수를 막는 게 우선이었습니다.

"내가 어떻게든 수습할 테니까 잠시 기다려 달라"

마이켈리스는 그럼 기다려 보겠다면서 전화를 끊습니다. 잠시였습니다. 그 자신도 뭘 어떻게 할까 궁금해서 직접 나가서 상황을 지켜봅니다. 그리고 경악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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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급해졌다. 수많은 전우의 피와 땀으로 지켜온 다부동의 방어선 아닌가. 미 8군이 6·25전쟁 기간 동안 전무후무하게 마이켈리스의 27연대와 폴 프리먼 대령의 23연대를 남북으로 중첩 배치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길목 중의 길목이 아니었던가. 이곳이 무너지면 마이켈리스 대령의 말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난관에 봉착한다. 미 27연대는 옆으로 우회한 적군에게 포위되면서 강력한 화력 자체를 송두리째 빼앗길 가능성도 있다. 그 남쪽에 중첩해서 배치한 23연대의 방어선은 그럴 경우 대구와 부산을 지키는 마지막 저지선이다. 미군의 화력이 강력하기는 하지만 이미 방어하기 좋은 계곡을 적에게 빼앗기고 난 뒤여서 성공적인 방어를 장담할 수 없다. 미 23연대의 방어선은 ‘찢어지기 쉬운 종이 한 장’과 같은 방어선으로 남는다. 50년 8월의 무더웠던 여름 한 달 동안 줄곧 잘 지켜졌던 다부동 전선이 커다란 위기에 닥친 것이다. 너무나 급박한 상황이었다."

백선엽은 급히 지프에 타 현장으로 향합니다. 참모들을 모을 시간도 없었습니다. 운전병과 그, 단 둘 뿐이었죠. 겨우 근처에 도착했을 때 근처에 적의 포탄이 떨어졌고 운전병이 팔에 파편을 맞습니다. 그는 운전을 할 줄 몰랐습니다. 창군 초기 사고가 계속 나자 지휘관들은 운전을 배우지도 말라는 명이 떨어졌거든요. 직접 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말라리아는 나았나 모르겠습니다.

"정말 이렇게 무너지는 것일까"

그 때 그의 머리를 꽉 채우고 있었던 건 이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믿던 신(하나님)에게 처음으로 기도했다고 하구요.

곧 후퇴하는 아군이 나타납니다.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 한 채 지칠대로 지친 병력이었습니다. 그 중에 1대대장 김재명을 찾은 백선엽은 모두 앉게 합니다. 김재명 소령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면서 절박한 상황을 보고했죠. 그 뒤에도 계속 아군이 도망쳐 오고 있었습니다. 500~600명 쯤 됐다고 하죠. 일단 모두를 앉히고 진정시켜야 했습니다.

+) 1대대장 김재명 소령은 후에 부상당해 후송됩니다.

여기서 그는 그 유명한 훈시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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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만들어진 상황, 여기서 찾아볼 부분은 한미 연합의 약점, 혹은 지휘가 분산된 것의 약점입니다.

아무리 국군이 밀리고 있다 해도 미군이 이를 도와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27연대가 병력이 아주 부족한 것도 아니었구요. 마이켈리스 대령이 겁쟁이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선봉을 선호하는 맹장이었고, 위험하다고 거부하지도 않았습니다. 모두가 중공군의 공포에 사로잡혀 항복에 가까운 종전 협상을 하려 할 때 그의 27연대가 수원까지 올라가 정찰하고 돌아왔고(울프하운드 작전), 중공군이 지칠대로 지쳐 있다고 보고하면서 UN군 반격의 계기를 만들었던 게 그였습니다.

여기서 그는, 미 8군 사령부는 국군을 도울 이유를 찾지 못 했던 것이죠. 그들에게 있어 국군은 헛정보나 퍼뜨리고 도망만 친다는 인식이 너무나 많이 남았습니다. 이런 한국군에 대한 평가는 국군이 보내준 정보를 무시하면서 일을 더 크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죠. 특히 이번은 첫 번째 연합 작전이었습니다. 초장부터 국군이 미군을 버리고 후퇴한다면 국군을 위해 싸워 줄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한 개 대대의 후퇴에 한 개 연대가 아무 손을 쓰지 않고 후퇴하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27연대가 후퇴한다는데 후방의 23연대라고 그대로 있었을 지도 의문이죠. 미군끼리의 작전이나 국군끼리의 작전이었다면 최소한 도울 생각이라도 했겠죠. 겁에 질린 것도 아니고 그저 아군을 믿지 못 해서 빠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군도 상황이 좋을 때는 '오케이 오케이' 하지만 전황이 불리할 때는 냉혹하게 된다. 국군이 자기 책임을 완수하여 신뢰를 얻고 그들로부터 '도와 줄 가치가 있는 전우'라는 신임을 얻지 못 하면 연합작전은 성공하기 어렵다."

여기서 또 볼 수 있는 것은 지휘의 일원화가 얼마나 중요한지입니다. 합동 작전을 했지만 지휘권은 따로였죠. 차라리 누가 모두를 지휘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명장 둘보다 범장 하나가 지휘하는 부대가 낫다는 것 역시 역사가 말 해 주죠.

11연대는 그 동안 적의 주력과 전차를 주먹으로 막으며 버텨 왔습니다. 이 곳이 그렇게 중요했기에 미군이 직접 증원군을 보냈죠. 하지만 이게 오히려 독이 돼 다가왔습니다. 이대로 후퇴를 허용하면 미군은 포위당하기 전에 후퇴할 것이고 1사단은 두동강 날 것이었습니다. 적 15 사단이 빠지면서 이제 해볼만 해졌을 때 오히려 최악의 상황이 닥친 것이었습니다.

후퇴해도 어찌 어찌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후 이 곳을 맡은 미 1 기병사단은 3일만에 10km나 후퇴했지만 막아낼 순 있었죠. 하지만 그 때는 증원군이 충분히 도착해서 인천상륙작전으로 병력의 일부를 돌려도 될 때였습니다. 그리고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던 그 때 이걸 요구할 수도 없구요. 막아낼 수 있을지 모르니까 적당히 싸우라는 건 말이 안 되죠.

전장에서 가장 두려운 건 사기를 잃고 패주하는 것입니다. 모랄빵이라는 전문용어(...)가 있죠. 마치 중공군의 공세에 한국을 포기할 생각을 했던 것처럼, 현리 전투 때 국군이 무너진 것처럼 가장 위험한 것이 이것입니다. 병력을 거의 다 잃고도 끝까지 지켜내는 경우가 있고 현리 때처럼 딱히 적이 공격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무너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1사단은 잘 싸워 왔습니다. 수많은 피가 흘렀지만, 무너진 쪽은 아무 데도 없습니다. 단지 병력이 충원돼서 그런 게 아닙니다. 오히려 경험과 훈련이 없는 신병들이 무너지기가 더 쉽죠. 백선엽을 비롯한 1사단 장교들은 이걸 아주 잘 막아 왔습니다. 15연대의 경우 후퇴 병력 앞에 포를 쏴서, 12연대의 경우 여유가 있어서 병사들을 모아 진정시켜서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적에게 밀려 후퇴한 적은 있어도 아예 방어선이 뚫린 적은 없었죠.

그의 앞에 닥친 위기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운전병도 치료를 위해 보냈기에 그 혼자 해야 했습니다. 미군이 철수할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시간도 얼마 없었습니다.

충분히 생각하고도 그것밖에 없어서일까요. 그냥 즉홍적인 것이었을까요. 그가 내민 해답은 참 단순무식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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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정말 잘 싸웠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물러설 곳이 없다. 여기서 밀린다면 우리는 바다에 빠져야 한다. 저 아래에 미군들이 있다. 우리가 밀리면 저들도 철수한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끝이다."

흔히 윗대가리라 하면서 무시하고 욕 하긴 하지만, 어떤 분야에서든 모두를 이끌 사람의 존재는 중요합니다. 특히 군대에서는 더 중요하죠. 밑의 병사들이 아무리 훈련이 잘 되고 용감하다 한들 이들을 이끄는 자들이 능력과 의지가 부족하면 부하들을 개죽음 시킬 뿐입니다.

그런 장병들을 이끄는 장수가, 그것도 사단장이 직접 나선다면 어떨까요? 일단 미친 짓이긴 합니다. 사단장은 후방에서 지휘를 해야 되고, 절대 죽으면 안 되니까요. 하지만 "의지", 혹은 사기라는 면에서 이건 최고의 효과를 발휘합니다. 자기들에게 명령이나 내리는 뭐 같은 놈이 자기들과 함께 싸우는 거니까요. 굳이 맨 앞에 나서지 않아도 최전방 근처에서 지휘하기만 해도 그 효과가 잘 나타납니다. 훈련이 잘 안 될수록 효과가 크지만, 맥아더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잘 훈련된 현대적인 군대에서도 효과는 충분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니까요.

특히 지켜보고 있는 미군에게 효과는 더 큽니다. 사단장이 직접 싸울 정도로 한국군은 의지가 있는 군대인 걸 말해주니까요. 거기다 미군 자신을 위해서 그런다는 것도 있죠.

이 상황을 한 번에 바꿀 수 있는 것은 그 자신이 나서는 것 뿐이었습니다.

"내가 앞장서겠다. 내가 두려움에 밀려 후퇴하면 너희가 나를 쏴라. 나를 믿고 앞으로 나가서 싸우자."

부하들이 그를 믿지 않으면 그는 죽었을 겁니다. 장개석의 국민당군처럼 엉망진창인 군대는 포로가 돼서 풀어줘도 자기 집에 돌아갈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사단장이라 해도 병사들이 그를 믿지 않았으면, "너는 뛰어라 나는 도망갈란다"였으면 그는 괜히 만용을 부려 나라를 망하게 한 어이 없는 졸장으로 남았을 겁니다.

부하들이 그를 따라주더라도 북한군이 여기에 아무 충격 없이 맞섰으면 역시 죽었을 겁니다. 북한군이 공세종말점에 도달했음에도 미군이 방어하기도 힘겨워 했던 것은 북한군의 의지 때문이었습니다. 어차피 병력 차이로 싸워서 이길 순 없었습니다. 의지로, 북한군과 싸워 이겨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군에 밀리면, 밀리지 않더라도 미군이 이걸 크게 봐 주지 않으면 역시 끝이었습니다.

죽음을 각오했지만, 죽으면 안 됐습니다. 그는 사단장이었으니까요. 아니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부하들도 최대한 죽으면 안 됐습니다. 그가 바란 것은 마지막 하나까지 싸우다 죽는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살아서 적을 몰아내는 것이었으니까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계획적으로 한 것인지, 그냥 안 되겠다 싶어 무식하게 나간 건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건 하나죠.

가능성이 백에 하나가 될 지도 모르는 도박을 성공시켜야 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선 부하들을 죽음의 길로 몰았던 그 곳에 자신 역시 목숨 걸고 가야 된다는 것이요. 그 정도로 그 곳을 지키는 건 중요했습니다.

최소한 자기 목숨보다는요.

멀리서 적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옆구리에서 내 권총을 빼 들었다. 나는 적들이 넘어오는 산봉우리를 보면서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부대원들이 앉아 있는 대열 한가운데를 가르면서 뛰어나갔다."

근대에 들어서 전 세계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을 지 궁금한 사단장 돌격이 시작됩니다. 앉아 있던 병사들은 악을 쓰며 따라 뛰었죠. 뭐라고 소리쳤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합니다. "사단장님 대신에 우리가 가겠습니다"였을 수도 있고, "저 개새끼 뒤질 거면 혼자 뒤지지 우리까지 끌고 가냐"였을 수도 있죠. 어쩄든 참 의미를 알 수 없는 악을 질렀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그들은 한 덩어리가 되어 적을 향해 돌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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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으로 다부동 전투를 끝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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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9/02 01:55
수정 아이콘
돼지 덕에 살았다는 이야기 보고 빵 터졌다가 그 다음 사단장 돌격 보고 숙연해졌습니다.
사티레브
12/09/02 02:21
수정 아이콘
이건 뭐 고대나 중세 전투도 아니고...
12/09/02 02:25
수정 아이콘
"우리들이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주의주장이 다르다고 해도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전력을 다해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가 되어 싸웠더라면 독립이 빨라졌다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

광복 후 대한민국의 아이러니를 그대로 담고 있는 인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친일을 했지만 그때 습득한 능력으로 나라를 구하죠.
눈시BBver.2
12/09/02 02:34
수정 아이콘
사실 이 부분은 좀 치졸하긴 합니다. 한국에서 낸 게 아니라 일본에서 낸 책에서 한 말이니까요 -_-a 저도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구요.
어쨌든 비판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인정했으니, 비판은 해야죠. 다만 분명히 뺑뻉이로 돌려진 건데 일부러 간도특설대 자원했다고 하는 것 같은 왜곡만 없으면 된다고 봐요.

그리고... 나라를 구했다는 사실만은 부정당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12/09/02 02:59
수정 아이콘
매국노는 매국노일뿐이죠.
사범학교 나와서 군관학교 들어간게 누구랑 똑같죠.
아직까지도 자신의 친일행위에 대해 사과한적도 없는 사람이고. 선인재단의 수많은 부정과 비리에 대해서도 함구하는 사람.
눈시BBver.2
12/09/02 03:04
수정 아이콘
친일파라서 아무 공도 인정할 수 없다면,
나라 지킨 영웅은 절대 깔 수 없다는 것도 통하겠군요?
블랙비글
12/09/02 04:55
수정 아이콘
지도에서 유학산을 찾아보니까 여길 쉽게 잃은게 얼마나 큰 실책인지 알겠네요..
거의 앞마당 언덕 수준이네요..
게다가 "천평동 계곡 좌측 고지"라고 하는 곳도 결국 유학산이군요.
유학산하고 가산 사이의 천평동 계곡에 있는 미27연대 입장에서 보면 화날만도 할꺼 같아요
앞마당 가는 길목에 병력 박아놨는데 앞마당 언덕이 점령되는 거라서..
눈시BBver.2
12/09/02 05:01
수정 아이콘
12연대의 부담을 죽이기 위해 유학산 동쪽을 11연대에 맡긴 것이었죠. 그래서 11연대가 뚫리면 미군은 물론 12연대도 고립되는 거였구요.
애초에 안 먹혔으면 피해를 얼마나 줄일 수 있었을 지 -_- 가만 있으면 위에서 쏘는 적 포탄에 죽고, 뚫으러 가면 굴러내려오는 수류탄에 죽고... 에휴

화날 만 하긴 해요. 자기들이 도와주러 왔는데 국군은 도망만 치고 있으니... 최소한 자기 측면이라도 지켜야지 그것도 못 하고 = =;;
Je ne sais quoi
12/09/02 06:48
수정 아이콘
정말 공과를 평가하기 어려운 인물이군요. 하지만 이 부분은 굉장하네요.
12/09/02 07:29
수정 아이콘
백선엽씨가 기독교 신자인데 또 이걸로 신앙 간증을 하는 동영상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 한국전쟁 최대의 영웅이 기독교 신자
- 처음 기도한 전투에서 기적적으로 승리(...)

해당 종교 입장에서는 자랑할 만 하겠지만, 좀 웃기긴 하네요. 크크
눈시BBver.2
12/09/02 15:08
수정 아이콘
으흐흐 저도 많이 봤습니다 (...) 뭐라 해야 될 지 참;;
근데 정작 전쟁고아들(그것도 빨치산의 자식들)을 모은 백선 유아원은 천주교 쪽으로 넘겼더군요. 개신교 쪽에서 받아줄 정도의 여유가 없었을진 몰라도요
12/09/02 08:04
수정 아이콘
진짜 이 사단장 돌격은 성공해서 대박인 이야기였죠.....
그리고 인천에서 손원일 제독도 사병들 하고 같이 진격하지 않나요? 지휘권은 없었던 걸로 알지만 말입니다...
12/09/02 09:13
수정 아이콘
피마새 생각나네요. "XX놈들아! 소대장님 가신다!"
드라고나
12/09/02 09:58
수정 아이콘
눈시님의 이 연재글을 계속 보시는 분들은 미군 2사단 23연대와 풀 프리먼 연대장의 행동을 꼭 기억해 두셨으면 합니다.
서린언니
12/09/02 10:03
수정 아이콘
다부동도 지옥이었지만 이어지는 영천 공방전도 ...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네요
3시26분
12/09/02 10:44
수정 아이콘
와..정말 영화의 한장면이 따로 없군요. 사단장 돌격이라니 후덜덜
12/09/02 11:43
수정 아이콘
지휘관 돌격은 화력 위주의 현대전에서는 자살 행위지만...
유사 이래 전쟁에서는 자주 쓰여왔던 방법이기는 하죠 크크. 성공률도 꽤 높고.
저글링아빠
12/09/02 13:00
수정 아이콘
권총 들고 지휘관 돌격이라니 후덜덜덜...
blue wave
12/09/04 11:28
수정 아이콘
그 돌격이 6.25 전쟁사에서 결정적인 순간이 아니었나 싶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런게 아니었나 싶어요. 그분의 자서전을 보면 다른 부분에서는 그런 무모한 면을 볼 수 없거든요.
그 돌격까지 해야할 만큼 대한민국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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