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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8/07 03:08:54
Name 거간 충달
Subject [일반] [스포주의] 뒤늦은 다크나이트 후기 - 놀란의 단점이 드러난 작품
배트맨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였습니다. 1편의 조커도 좋았지만 역시나 어렸을 때 봐서 그런지 2편의 캣우먼이 너무 좋더군요 *-_-*
팀버튼이 창조한 고담시는 어딘가 나사가 빠지고 비현실적이지만 아름다웠습니다. (조엘슈마허의 배트맨은... 솔직히 쓰레기였습니다. 고담시는 더 이상 매력이 없었고 기억나는 캐릭터라곤 리들맨 뿐이군요. 역시 최악은 로빈이었구요.)

배트맨 비긴즈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들었던 생각은 "또 어떤 놈이 나의 아름다운 추억을 망쳐놓으려나~" 싶었습니다. 뚜껑을 열어본 비긴즈는 명작은 아니었으나 망작도 아니었죠. 여름용 블록버스터 무비에 배트맨의 고뇌를 적절하게 양념한 그런 작품이었죠. 놀란이 비긴즈를 맡는다고 했을 때 작가주의 감독이 제작사에 예속되는 또 다른 케이스 일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흔한일이 되었죠. 뛰어난 데뷔작으로 등단 한뒤 몇번의 흥행참패 후 블록버스터 영화제작에 뛰어들어 제작사가 원하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이런 경우 대개 시리즈 물이나 원작이 따로있는 경우가 많고, 또한 대부분 망작이 많습니다.(아아 샤말란 ㅠ,ㅠ)

사실 메멘토 이후 놀란의 작품은 특유의 느와르 적이고 서스펜스 넘치는 연출은 여전히 탁월했으나 내용에 있어 당위성이 부족하고, 호흡이 지루한 면이 보였습니다.(프레스티지는 황당했고 인썸니아는 지루했죠) 연거푸 흥행에서 고배를 마신 뒤 비긴즈라는 작품에 뛰어든 놀란은 제게 있어선 패배자처럼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놀란은 비긴즈를 잘 연출해 내었고 관객, 평단, 제작사, 투자자 등등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작품을 만듭니다. 즉 명작은 아니지만 망작은 아닌 작품을 만들어 낸것이죠. 최대한 개인적 욕심을 자제하고, 제작사가 원하는 것을 만들었지만 완벽에 대한 추구는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흥행에서도 성공하고 평단에서도 나쁘지 않은 평을 듣게 되죠. 비긴즈의 성공은 다음 작품에서 놀란에게 많은 힘을 실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설의 레전드 다크나이트가 나오게 되었고 전설을 마무리 짓는 다크나이트 라이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다크나이트 라이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제 점수부터 말씀드리면 별 3개 반입니다. 다크나이트가 별 5개 짜리 영화였고 인셉션 역시 별 4개반 짜리 영화였기에 더 점수가 짠지도 모르겠네요. 다크나이트가 없었다면 별 4개는 받았을것 같네요.

일단 단점부터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베인의 캐릭터가 허무하다는 얘기들이 많은데 이는 당위성의 부족에서 초래한다고 봅니다. 왜 베인은 탈리아 알굴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왜 그녀를 지켜야 했는지 어떠한 얘기조차 나오지 않죠. 그에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었다면 '은행나무 침대'의 '황장군' 같은 비운의 카리스마 악당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죠.
같은 실수는 탈리아 알굴에게서도 나옵니다. 왜 아버지의 뒤를 잇는가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없습니다. 애시당초 라즈 알굴, 그림자 집단이 고담시를 붕괴시키려고 한 이유도 당위성이 부족한 판국에 탈리아 알굴은 아버지와 별로 친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왜 그 유지를 이으려 했는가에 대한 당위성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탈리아 알굴의 반전은 붕 떠버리고 말죠.(그나마 복선을 앞에 한 두개 깔아두긴 했지만 눈치 채라고 넣은것에 지나지 않죠. 저는 이런걸 어거지 복선이라고 합니다. 복선이 없으면 플롯이 쓰레기라고 선언하게 되니 넣긴 넣어야 되는데 막상 넣을건 없으니 그냥 넣는 그런 복선이죠)
위에 말한 악당들의 당위성은 배트맨이 꽤나 무거운 분위기를 추구하는 것을 고려했을 때 상징이나 암시 등으로 넘어가서는 안되고 이야기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했었어야 합니다. 그래야 몰입감이 커지니까요. 다크나이트는 이러한 악당의 당위성을... 정말 예술같은 명대사 한마디로 처리해 버렸습니다. "you complete me" 간결한 한마디로 조커 악행의 모든 당위성이 해결되어 버리죠! 하지만 복잡한 과거를 가진 베인과 탈리아 알굴을 이런식으로 처리할 순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걍 처리를 안했더군요;;
lol을 하면 탑에서 싼 똥이 미드와 봇으로 퍼져나가듯, 악당들의 당위성이 없어지자 그들과 같은 시련을 극복하는 브루스의 고난극복 또한 붕 떠버리고 맙니다. 감옥씬에서부터 영화의 호흡이 급속도로 느려지게 되버렸고 이는 후반의 클라이막스에서도 복구가 안됩니다. 마지막 폭탄 탈취는 긴장이 전혀 안됐습니다.
당위성 부족과 호흡조절 실패가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었고 이는 영화의 기본인 이야기의 엉성함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꽤나 고민을 많이했을 텐데 아쉽더군요.

그렇지만 남자관객에게는 참 좋은 볼거리를 많이 제공해 줬습니다.
갖가지 배트 모빌(특히 더 배트!!!) 그리고 셀리나 카일양, 그리고 제 취향입니다만 마리옹 꼬띠아르가 전 너무 좋더라구요 헤헤. 최고의 캐릭터는 역시 캣우먼이라고 봅니다. 앤 헤서웨이의 연기변신이기도 했고, 정말 고양이같은 매력이 물씬 풍기더군요. 살짝 여우같기도 했지만 고양이라니깐 고양이라고 해두죠. 뭐 뭘해도 좋기만 합니다 흐흐. 그리고 스펙타클 넘치는 영상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인셉션의 복도가 생각나는 첫 비행기 납치 장면부터 미식축구장 붕괴까지 정말 스케일도 크고 상상했던 것 이상의 액션을 보여주더군요.

그러나 이런 장점을 말하는 것도 아쉽습니다. 다크나이트의 장점이 트랜스포머랑 별반 다를게 없어진 기분이랄까요;;; 각종 모빌과 여주, 뻥뻥 터뜨리는게 장점이라니;;; 나의 다크나이트가 이러면 안되는거 아닙니까 ㅠ,ㅠ

추신 : rise a knight! 닭나라가 말하고 싶었던건 기사도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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ギロロ[G66]
12/08/07 07:43
수정 아이콘
왜 저세계 악당들은 고담시에 집착하는지 크크크
마치 시갈 형님이 있는 미국에만 쳐들어가는 외계인 느낌?
당연한 거지만 혼자봐서? 그런지 크크 딴지걸고 싶더군요
12/08/07 08:45
수정 아이콘
제 생각과 똑같군요!
저도 스토리의 당위성면에서 좀.. 질려버려서 후반부에 집중이 안되더라구요.
물론 말씀하신 것처럼 스펙타클한 영상은 좋았지만..
뭐 제가 하고싶던 말을 그대로 다 해주셨네요.
...놀란님 왜 그러셨어요..ㅠㅠ
비전력이부족하당
12/08/07 08:55
수정 아이콘
프레스티지는 황당했고 인썸니아는 지루했죠.. 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아직 안보긴 했는데 당위성 부족인 시나리오라면 별점에서 마이너스를 받을만 하군요.
몽키.D.루피
12/08/07 09:17
수정 아이콘
제 생각에는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비긴즈와 인셉션의 연장선상에 있는 거 같습니다. 순전히 제 추측이긴한데 다크나이트라는 명작은 놀란 감독 개인으로서는 너무 뛰어난 자식과도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크나이트라는 작품이 히스레저의 죽음으로 의도와는 조금 다르게 뽑혀 나왔고 그 작품의 선/악 구도의 강렬함이 시리즈 전체의 주제처럼 비쳐버렸다는 겁니다.
사실 비긴즈도 그렇고 다크나이트도 그렇고 인셉션도 그렇고 놀란 감독 영화의 특징은 스토리텔링에 인색하다는 점입니다. 부실한 게 아니라 불친절합니다. 대신 시나리오 구조와 화면 상으로 표현되는 이미지로 압도하는 스타일입니다. 인셉션으로 다크나이트 라이즈 스토리를 1년전에 예측한 블로그 글을 보면서 느낀 거지만 확실히 놀란 감독은 시나리오 구조를 스토리텔링보다 우위에 두는 거 같습니다. 인셉션에서 여러 설정 오류를 깊이 생각하다보면 림보에 빠질 지경이죠. 인셉션에서 중요한 건 치밀한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각 단계가 보여주는 주인공 디카프리오의 무의식과 내면세계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설정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영화의 이미지 그대로 받아들여야 되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다크나이트 라이즈 또한 스토리텔링보다는 이미지와 캐릭터 구조로 모든 것을 이끌어 갑니다. 스토리 자체는 특별할 것도 없었죠. 근데 이건 요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의 추세이기도 합니다. 어벤저스에 스토리가 어딨나요. 그냥 캐릭터들의 잔치일 뿐입니다. 캐릭터들을 한 무대에 모아놓고 마음껏 날뛰게 하는게 영화의 전부죠. 그런데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거기에 더해서 캐릭터 각자에게 고유의 내면세계 구조를 만들어 준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전체적인 흐름은 주인공인 배트맨의 내면세계구요. 마치 인셉션이 주인공 디카프리오의 내면을 따라서 전개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저도 라이즈 보면서 스토리텔링이 참 어이없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쩌는 영화였습니다. 전 오히려 베인이 그렇게 비명횡사한 건 감독의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다크나이트라는 잘난 아들 때문에 시리즈 전체의 주제가 흔들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거기서 만약에 베인이 마치 조커처럼 거대한 악의 대명사로 묘사되고 죽는다면 확실히 임팩트는 강합니다. 하지만 그 임팩트가 시리즈 전체를 죽일 수가 있는 거죠. 예측컨데 히스레저가 아마 살아있고 라이즈에 나올 수 있었다면 우리가 다크나이트에서 보던 조커와는 다른 실망스런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happyend
12/08/07 09:34
수정 아이콘
다크나이트는 자본주의의 상징인 브루스웨인이 그 자본이 낳은 악에 맞서기 위해 가면을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 가장 완벽한 은유를 보여줬고,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인 금융자본의 상징인 조커또한 당시 금융위기 등과 맞물리면서 더욱더 빛이 났었습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생각보다 은유성이 약해서 재미가 덜하지 않았나 싶었어요. 브루스웨인과 배트맨은 자본주의의 두 얼굴을 연기할 때 빛나는데, 한쪽 캐릭터가 사라져버렸죠. 베인의 등장도 역시 고담이 낳은 괴물이 아니라는 점, 즉 외부에서 온 혹은 부르스웨인이라 일컬어지는 자본주의의 사도가 스스로 정의롭고자 했기 때문에 불러들여온 괴물이라는 점이 개연성이 떨어져 보였던 것 같고요.
분당우유
12/08/07 09:44
수정 아이콘
제 개인적 생각으로는 전작 다크나이트도 개연성 면에서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여러 헛점이 있었지만 조커의 연기가 너무 훌륭해서 묻힌 케이스라고 보고요.
베인의 초반 비행기 씬에서 보여준 포스가 좋았고, 후반에 눈물을 보이는 연기도 괜찮았습니다.
다만 그 부분에서 베인이 원하는게
없는자들의 혁명을 이끄는건지, 탈리아 알굴을 좋아해서 때려부시는건지 좀 목적의식이 희미해지긴 합니다.
근데 뭐 히어로물이 다 마찬가지니까요 전 괜찮았어요.

유일하게 아쉬웠던건 베인의 최후였습니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비명횡사였네요.

조커가 배트맨의 내면을 건드려서 추락하게 만들었다면
베인은 무지막지한 힘으로 베트맨을 추락하게 만들었네요.
조커가 좀더 연기로 어필할 면이 많은 빌런이 아닐까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쉬워하는 것도 그 차이가 아닐까 생각하고요.
베인까지 베트맨의 내면을 건들기엔 트릴로지 마지막에서 회수해야할 떡밥들이 너무 많았겠죠.

쭉 몰입해서 보다가 라자러스 핏(지하 감옥)씬에서 호흡이 달려보인건 사실입니다. 거기서 지루했네요.
김연우
12/08/07 10:24
수정 아이콘
비긴즈를 중심에 두고 다크나이트와 라이즈, 두 영화가 나왔다는 구도로 보는건 어떨까요.

비긴즈와 다크나이트의 구도로 보면, 공통점은 타락한 도시 고담입니다. 검찰/정치인 등등 중추까지 썩어버려 범죄조직을 제어하지 못하고 되려 지배당하는 곳이 고담이었고, 다크나이트에서 역시 마찬가지였죠.
비긴즈와 라이즈의 구도로 보면, 배트맨 자체의 성장, 그리고 그림자 동맹과의 싸움이 공통점이 되지요.
뭐가 되었건 다크나이트와 라이즈 사이에 있어 소재의 공통점은 없습니다. 둘을 비교하는건 이상한 구도가 되지요. 둘을 비긴즈가 묶어줄뿐.


그와 상관없이,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다크나이트가 없었더라도 수작은 되지 못한다고 봅니다. 그냥 그저그런 블랙버스터였을뿐.

베인의 동기가 뭐건 조커와 비교가 되건 뭐건 캣우먼의 타격 한방에 탈락 하는 베인은 진짜...
12/08/07 10:53
수정 아이콘
저하고 비슷하시네요. 다크나이트는 보는 내내 긴장했고 단 한순가도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인셉션은 후반부에 꿈안에서 다시 꿈속으로 들어갈때부터 완전 몰입해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봤습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는...중간중간에 여친 자나 확인하고 앞사람 뭐하나 보고, 라스트씬이 다가옴에 따라 다크나이트 조커와의 대결씬을 기대하면서 긴장했지만 뭔가...가 빠진 느낌이랄까요...보는 내내 계속 몰입을 방해하는 뭔가가 있었습니다. 역시 저에겐 다크나이트가 최고의 작품으로 남은거 같습니다.
12/08/07 11:07
수정 아이콘
짐 캐리의 캐릭터는 리들맨이 아니라 리들러입니다 ㅠㅠ
절름발이이리
12/08/07 11:56
수정 아이콘
확실히 기대에 비하면 많이 별로였습니다. 기대를 빼도 훌륭한 수준까지는 못될 듯...
김연아
12/08/07 12:47
수정 아이콘
절대 동의할 수 없는게, 비긴즈가 수작이 아니라뇨. 굉장한 수작이죠.
거간 충달
12/08/07 12:55
수정 아이콘
비긴즈가 메멘토급 작품은 아니니까요;;
제가 수작이 아니라고 한건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길... 대부나 머 이정도급 작품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대부는 좀 심했나;; 암튼 메멘토급 작품은 아니죠;;)

비긴즈는 잘 만든 작품입니다. 돈주고 보기에 전혀 아깝지 않고 주변에 추천할 정도지만..
이게 레전드가 될 작품은 아니니까요. 그런의미로 쓴 말이지 비긴즈가 별로라는 의미는 아니였습니다.
데프톤스
12/08/07 13:06
수정 아이콘
감독판으로 30분 분량 정도 더 추가되서 탈리아알굴과 베인 스토리의 살을 붙힌다면 어떨까요.. 제 바램입니다 흐흐
히히멘붕이다
12/08/07 13:18
수정 아이콘
차라리 다크나이트가 없었다면 닥나라를 보고 행복했을텐데...ㅠㅠ
브릿덕후
12/08/07 13:20
수정 아이콘
놀란의 최고작은 역시 다크 나이트지요. 그 다음 메멘토, 인썸니아 순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크 나이트가 워낙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서 종종 개연성적인 측면을 지적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근데 그게 조커의 기본 성향인 아나키즘, 카오스 때문에 발생하는 설명 불가한 서사적 장치들에 대한 비판이면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따지고 보면 할리우드 클래식들도 웬만하면 구멍이 다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부분을 정색하고 단점이라고 달려들면 벨라 타르처럼 한 영화에 무슨 30여개 쇼트만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작품이 아니면 균열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최근에 정말 편집 리듬이 압도적인 할리우드의 영화들은 핀처의 작품들이네요.) 근데 그것을 교묘하게 가리고 포장하는 것이 특히 쇼트 길이가 더더욱 짧아지고 쇼트 수가 많아지고 있는 할리우드에서 성행하는 '불가시 편집' (두 쇼트, 씬들의 이음새가 아닌 연속되는 컷과 숏을 마치 하나의 쇼트, 씬이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빠른 연속성에 중점을 두는 편집 기법) 인데요. <다크나이트>는 <다크나이트 라이즈> 못지 않은 빠른 편집 리듬과 방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거의 이런 편집술에서 최상을 보여주는 반면 라이즈는 좀만 정색하게 보게 되면 산만하고 튀는 경향이 적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그건 아마도 상당히 도식적인 프랑스 혁명 모티브, 핵심 악당의 사상 깊이의 부재 등등 이리저리 충돌하기 때문에 내러티브의 방점이 제대로 찍힌 부분도 없는 (브루스와 배트맨의 여정을 종결 짓는 거 외엔 딱히 말입니다) 난감하고 산만한 이 영화의 기본적인 토대의 문제 때문인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이런 식으로 어떻게 밀어부쳐서 흥미롭게 만든 걸 보면 놀란이 대중들의 마음은 점점 잘 얻어가는 감독이 되는 것도 같네요.

근데 뭐 많이 이야기하고 싶은 영화는 아닌 것 같습니다. 공통적으로 말씀들 하시는 부분이 개별적인 작품으로서는 많이 아쉽지만, 3부작을 마무리하는 영화로서는 만족스러웠다인데, 저도 역시 그쪽이네요. 마무리는 만족스러워도 하나의 영화로만 보면 그냥 괜찮은, 호쾌한 여름철 블록버스터정도로 느껴집니다. 사실 개봉날 첫 조조로 관람하고나서 그 이루 말할 데 없었던 실망감을 두 번째 감상 때 그나마 좀 상쇄시켜줘서 다행이네요.

+

루피님의 말씀처럼 놀란의 영화는 스토리텔링이 중심이 아니고 구조와 편집이 중요하죠. 꽤나 흥미로운 모티브를 활용해서 영화를 전개시켜나가니 굉장히 빈틈 없는 내러티브를 축조하는 감독처럼 이야기될 수 있는데 이 사람의 영화들 많이 보셔서 아시겠지만 일반적인 사건의 시공간을 뒤섞는 플롯을 만드는 걸 즐겨하는 그는 서사를 풀어나가는 '방법론'에서 강점을 보이는 감독이지 놀란의 영화들 중에서 기본적인 스토리가 좋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영화는 인썸니아와 다크 나이트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뜯어보면 의외로 어? 구멍이 정말 많네? 하는게 놀란 영화죠. 구조와 편집으로 우리의 눈을 속이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죠. 메멘토를 시간 순서대로 배열해보세요. 흐흐. 미행은 좀 느와르 스릴러적인 냄새가 풍겨서 흥미롭기도 하지만 이것도 평행 시간대로 나열하면 완전히 평범한 작품이죠.

그리고 이런 구조의 영화를 만드는 놀란이 또 잘 못 살리는 게 배우들의 연기와 감성인데요. 워낙 자신의 인장을 영화의 구조에 선명하게 박으니 구조를 잘 구축하는 본인의 장기가 배우들의 매력을 오히려 잡아먹는 경향이 있습니다. 놀란 영화를 보고 나면 (다크나이트 제외) 거의 감독을 먼저 찾게 되지, 배우를 찾진 않죠. 여성 캐릭터들, 여자 배우들은 특히 많이 묻히구요. (프레스티지에서 그 무매력의 스칼렛 요한슨은 하..) 그런 점에서 히스 레저는 상상 그 이상의 경이로운 연기를 보여준거고, 라이즈에서 앤 해서웨이도 놀란 영화의 여배우들 중에선 돋보일 정도로 괜찮았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그리드세이버
12/08/0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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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베인은 너무 급격하게 포스가 떨어졌습니다. 배트맨이 굴을 탈출하고 고담시에 도착해 불꽃의 배트문양을 건물에 새길 때(전 여기서 웃음이 터지더라고요...감동해야할 신인 거 같은데 왜이렇게 웃긴지), 베인이 말도안된다 라고 할 때 이미 전형적인 헐리웃 영화의 조무라기 악당으로 격하된 느낌이었습니다.

라자러스 핏 인가요? 거기를 이미 나왔을 때에 배트맨은 베인과 동급이 되었고(.. 사실 주인공이 악당과 동급의 수련을 거친 시점에서 이미 주인공이 센거죠.. 같은 훈련을 받고 악당보다 약했던 주인공이 있기나 했습니까?) 심지어 라자러스 핏을 나온게 베인이 아니었다니... 너무나도 악당으로서의 포스가 떨어지죠.. 차라리 동전을 던지기 전까지 주인공을 죽음의 위기로 몰고간 슈마허 감독의 투페이스가 더 강한 빌런이었습니다.. 심지어 남을 기만하고 공포에 떨게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는 어둠의 사도라는 양반들이 정직하게 움직이는 트럭 세대 중 하나에 폭탄을 넣고 있었다니.. 가까운 디비디 샵에 가서 <왓치맨>을 보고 오라고 조언해주고 싶습니다.

다크나이트에서의 조커는 주인공에게 제압당한 순간까지도 주인공을 조롱하면서 압도하죠(물론 폭탄이 안터지는 장면에서 당황하기도 합니다마는).
영화 자체의 스토리 상의 연계성이야 다크나이트의 새새한 부분까지 기억이 안나므로 비교하기 그렇다고 쳐도,
악당의 포스랄까 그런게 조커는 서서히 배트맨을 압박하여 마지막까지 괴롭게 하는 상승형이라면.. 베인은 처음에 나타나자마자 고든을 아웃, 배트맨 만나자마자 배트맨을 아웃시키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 뱃신의 재등장에 아니 말도안되!를 외치는 평범한 서민악당이 되어버리는 하강형이었죠. 그걸도 몰락의 형태가 뭔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전형적인 악당이 되었다가 사실은 이미 배트맨보다 약한 녀석이었고(라자러스 핏도 넘지 못한) 조연에게 끔살.. 아아아아....

뒤의 탈리아알굴이야 공기와 같은 존재니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겠지요, 왜 있었던걸까요? 탈리아는..으음..예쁨니다
영원한초보
12/08/07 15:29
수정 아이콘
도둑들하고 흥행면에서 왜 차이가 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것 같습니다.
라이즈는 내용이 아무 생각없이 그냥 악당하고 싸우는 영웅의 의지를 즐기는 영화인것 같은데
힙합스타일 옷 입고나와서 슬픈 발라드 부르는 느낌이랄까요?
똑같이 개연성 좀 떨어져도 도둑들은 괜찮고 라이즈는 좀 아닌것 같습니다.
라이즈는 뭔가 좀 있어 보이려고 폼잡는데 실제로는 그다지 심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유쾌하지도 않고요.
도둑들도 호흡느리다고 그러는데 라이즈는 감옷씬부터 호흡은 느린데 심리적 압박은 하나도 없이 진행하니
훨씬 더 지루하더군요.
배트맨 팬들 입장에서야 당연히 좋아할만한 마무리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한테는 비긴즈보다 아쉬운 것 같습니다.
비긴즈는 중반까지 지루해도 배트맨이 범죄자들 몰린 도시에서 활약하고 마지막 도시로가는 열차씬에서 액션은
긴장감 상당했으니까요. 라즈알굴 포스도 최후도 멋있었고요.
hm5117340
12/08/07 15:37
수정 아이콘
사실 놀란감독이 가장 잘하는건 다른게 아니라 편집술이긴 한데 서사를 멋드러지게 짜는 편집능력이 좋은게 아니고 편집자체를 일종의 특수효과 처럼 사용하는데 귀재인 사람이죠. 메멘토가 크게 인정받은 이유가 그때문이고 최근작에는 인셉션에서의 후반 무중력 3~4개꿈 교차 시퀀스가 대표적이죠.
다크나이트 같은경우가 좀 특이하게 잘된경우라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현재 헐리우드쪽에서 (여러방면에서) 편집질을 가장 잘하는 인물은 핀처 인거 같구요. 물론 이사람은 편집도 편집이지만 화면 때깔디테일에 목숨을 거는 사람입니다만..
브릿덕후
12/08/07 15:59
수정 아이콘
그렇죠. 놀란의 영화는 편집 그 자체가 작품의 서사를 탄력있고 스펙터클하게 만듭니다.

저도 핀처의 근래 연출 편집은 최고봉이라고 생각합니다. <조디악> <소셜 네트워크>는 정말 두 말할 필요가 없고 (봉준호 감독이 편집의 리듬이 분석이 안될 정도다고 거품을 물었었죠.) 특히 인상적인게 <소셜 네트워크>와 <밀레니엄>의 평행선을 달리는 두 가지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면서 나중에 만나게 하는 서사 구축 편집은 장기가 되는게 아닌가 싶더군요. 저는 좋아하는 편이지만 최근의 핀처 영화 중에서 가장 떨어지는 <벤자민 버튼>도 안좋은 각본을 살려놓은게 핀처였죠. 교차 편집 할 때 거의 균열이 보이지가 않덕둔요. 그리고 레드에픽으로 최근에 찍은 핀처 영화들 화질도 정말 좋습니다. 반면 놀란 영화들은 화질은 가장 안 좋은 축에 속하구요 (35mm , 아이맥스 왔다갔다 하고 색보정 작업도 특이하게 해서 그런 듯 싶은데.)
라됴헤드
12/08/07 16:14
수정 아이콘
전 조커의 광기보다는 브루스 웨인의 고뇌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더군요. 개인평은 비긴즈>라이즈>다크나이트순입니다.
마늘향기
12/08/07 19:07
수정 아이콘
저도 다크나이트 하비덴트가 추락하는게 영 아니더군요.
추락해서 모 일당 몇명과 매수경찰 죽인건 그렇다 치는데,
고든가족한테 껄쩍거리는게 너무 찌질해 보여서요;
천산검로
12/08/07 16:54
수정 아이콘
완결편 치곤 아쉽긴하죠. 그래도 참 좋은 영화이긴 했지만..
스토리에 좀 수정이 가해졌어도 만약 비긴즈->라이즈->다크나이트 순으로 영화가 나왔다면
라이즈가 이렇게 아쉬워 보이진 않았을거 같습니다. 역시 후속편 최대의 적은 전작.
GoodSpeed
12/08/07 16:59
수정 아이콘
새로 편집된 감독판이 시급합니다.
마늘향기
12/08/07 19:03
수정 아이콘
감독판이 4시간이었던가요?
New)Type
12/08/08 09:03
수정 아이콘
놀란은 감독판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서 이미 일축한적이 있습니다.
'나는 미리 각본을 다 고쳐놓고 찍는 타입이라, 감독판이고 뭐고 없다. 극장판 = 감독판임'
이라는 인터뷰를 한적이 있구요.
딱 필요한 것만 찍는 타입의 감독이라
저는 아무리 감독판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지금 상황이랑은 크게 다를게 없어 보입니다.
자잘한 편집 실수처럼 느껴지는건 조금 있지만, 라이즈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각본 자체에서 오는 부분이라고 보이거든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뛰어난 작품이기에 더더욱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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