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랫글 답글 달아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
2. 요새 유게 분위기 보면... 한 방에 훅 갈 것 같은 제 얘기가 두 개 있는데, 가슴 속에 꼭꼭 숨겨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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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만 달러, 참으로 어마어마한 돈이었습니다. 손원일 제독은 이것을 들고 미국으로 향합니다.
이를 도와준 것은 미국 대사로 있던 장면이었습니다.
이리저리 찾아본 결과 미국 해양대학교에서 실습용으로 쓰던 퇴역 초계정을 선택합니다. 구입 비용은 만 8천 달러를 불렀죠. 450톤, 연습용이었기에 함포도 달리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이 배를 선택한 후 손원일은 본국에 인수요원 15명을 불러옵니다. 이 때 불려갔던 공정식은 미국의 그 현란한 네온사인이 참 부러웠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 당시 남한은 북한에서 전기를 끊으면서 도시에서도 송전을 제한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자, 이제 이 배를 현역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하루의 모든 일과가 페인트 작업과 정비 작업이었다고 합니다. 손원일 자신부터가 직접 했다고 하니 참.... 이 때 손원일은 투스타, 해군참모총장이었습니다.
헌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아무리 그들이 바다사나이라 하더라도 미군의 도움을 받긴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손원일은 40세의 나이에 투스타, 다른 이들도 계급들이 참 높았더랬죠. 어색한 분위기가 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신생국 주제에 계급장만 많이 달았다고 수군대는 것 같기도 했다."
결국 대외용 계급을 두 개씩 강등하는 걸로 결론을 냅니다. 48세였던 함장 박옥규 중령만 빼구요.
마침내 때 뺴고 광 낸 한국 최초의 전함이 완성됩니다. 오죽 열심히 닦았으면 미군은 이를 신형함인 줄 알았다고 하죠. 손원일은 여기에 미 국방성을 열심히 졸라 3인치 함포와 100발의 포탄을 사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PC-701 백두산함, 명명식 행사에는 장면 대사와 유엔 한국대표단 요원, 재미교포 등 3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마스트에 태극기가 게양되고 경례를 올리고 애국가가 제창되는 순간, 모두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하죠.
전함이 별 겁니까. 적을 공격할 수 있으면 다 전함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백두산함은 한국 해군의 첫 역사를 끊습니다. 그것도 싫긴 해도 대통령부터 모든 국민들이 한 마음이 돼서 함께 구입한 것이었죠.
흥미로운 것은 이 배의 원래 이름은 엔슨 화이트 헤드, 2차 대전 때 전사한 해양대학교 출신 소위를 기리기 위해서 명명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아해군(我海軍)이 붙인 이름 백두산과 묘하게 맞아 떨어졌던 것이죠. 인연이라는 건가 봅니다. 산 이름으로 정한 거였으면 백두산이 첫 번째 아니겠습니까.
+) 해군에서는 스스로를 아 해군이라고 부른답니다
하와이로 가서 교민들의 눈물 겨운 환대를 받고, 교민들도 형편이 좋지 않았을텐데 말 그대로 배 터질 때까지 음식을 먹고 괌에 들러 3인치 포탄과 포탄 100발을 갖췄습니다. 정비하면서 레이더를 배우긴 했지만 만만치 않았던 태평양 바다는 박옥규 함장이 잘 지휘해서 무사히 한국에 닿았습니다. 참고로 이 배 70명이 정원인데 15명만으로 태평양 건넜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이 배를 본 어선에서도 환호성이 울려퍼졌다고 합니다. 저렇게 큰 배에 저렇게 큰 대포를 단 게 바로 우리나라 해군 배였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비밀무기 취급해서 최대한 경비를 뒀지만, 이게 어디 해군 혼자 힘으로 이루어진 거였습니까. 백두산함은 전국의 각 항구를 돌면서 국민들 덕분에 이런 전함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감사했습니다.
포탄이 100발밖에 없어서 연습도 제대로 하지 못 했습니다. 나무로 포탄 비스무리한 걸 만들어서 조준 연습이나 실컷 했죠. 6.25 당일까지 쏴 본 포탄은 단 3발, 하지만 백두산함은 그 길로 나가서 크나큰 전공을 올리고 옵니다. 작은 해전이었다 하지만 그 의미는 커서 이걸 한국전쟁의 분수령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평가가 그렇게 틀리지도 않았구요. 누가 충무공의 후예 아니랄까봐 한국전쟁 최초의 승전은 해군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는 동안 손원일 제독은 미국에서 열심히 다음 것, 보다 큰 걸 찾고 있었습니다. 아직 돈은 남아 있었거든요.
그러던 그의 눈에 샌프란시스코항의 퇴역 군함들이 보입니다. 미 퇴역 전투기 보관소를 기억하실 겁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였죠. 배무덤이었고 이걸 개도국 해군에 파는 것이었습니다.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게, 지금 한국은 진해항에도 이걸 둬서 퇴역 참수리정들을 개도국 해군에 팝니다.
그러던 그에게 2300톤급 PF(Patrol Frigate)이 보입니다. 450톤보다 몇 배가 큰 겁니까 0_0 이거 대항해시대에서 초반에 주는 라티나급 타다가 카락 타는 느낌이었습니다. 가격을 물어보니 5~6만 달러 정도. 그의 수중엔 4만 달러 정도가 남아 있었습니다. 만 달러쯤이야 깎을 수 있겠죠. 안 되면 본국에 더 달라고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미 국무성에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_-; 돈이 문제가 아니었어요. PF 이상의 군함은 정부에서 직접 관리하니까 어느 나라든지 팔 수 없다는 것이었죠. 거기다 한국은 애치슨 라인 바깥이었습니다.
"지금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무기를 들여다가 전투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공산주의자들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머지않아 전 세계를 적화시키기 위한 전쟁을 도발할 텐데 전투함 한 척 없는 한국 해군이 어떻게 그들을 막아낸단 말이오?"
손원일은 책상을 치며 이렇게 소리 질렀다고 합니다. 오죽했으면 장면이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고 하죠. 결국 대답은 노, 하릴 없이 물러나야 했죠.
이 때 국무성의 한국 과장은 미안했는지 다른 방법을 알려줍니다. 좀 작은 거라면 개인 사업자에게 팔 수 있다는 겁니다. 당시 미국은 군함의 무장을 해제하고 민간업자에게 넘기고 있었습니다. 그는 괜찮다면 소개장을 써주겠다고 했죠.
그가 향한 곳은 퀠리포니아에 잇는 뷐 회장님 친구에게 전하라고가 아닌 산 피에트로 항, 여기에는 국가에게 군함을 넘겨받은 이들이 남미나 아시아 국가에게 무장 해제된 배를 엄청난 마진으로 팔아먹고 있었습니다. 정비비도 비싸게 받아먹었죠. 무엇보다 이 양반,
유태인이었습니다. (...)
손원일은 한국군 낚시 전설의 오프닝을 멋지게 장식합니다.
"얼마임?" vs "2만"
"에에이 여기 소개장 있음. 1만" vs "장난함? 1만 5천. 이것도 소개장 갖고 와서 봐 주는 거"
"좋다. 1만 2천 하면 세 척 사겠음. 장사 잘 된다~" vs "... (아시아에서 날강도가 왔다)"
한동안 허공을 응시하던 선주는 미소를 머금고 좋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 세 척은 백두산함과 똑같은 배, 그런데 6000달러나 아낀 거였죠.
위가 스탁톤, 밑이 롱비치
자, 그럼 배도 샀고, 이제 그걸 롱비치까지 옮겨야 했습니다. 헌데 그게 스탁톤에 있다네요. 당연히 이 예인비도 장난이 아닐 겁니다. 선주는 한 척당 천달러를 요구합니다.
"원래 무료배송이 원칙 아님?"
..................... 3 시간 후 ...............
"반띵! 더는 양보 못 해!"
"아나 나님이 배값 다 내겠다 했으니 너님도 예인비 다 내셔야죠. 이래서야 물건 팔 수 있겠수?"
"(엄마 나 진상 만났어)"
...................................
이렇게 손원일은 만팔천 달라에 샀던 배를 만이천 달러로 세 척이나 예인비도 안 들이고 600km 이상을 끌어왔습니다. -_-;
본국에서 다시 인수요원이 왔는데 총 75명이었죠. 우선은 선발대로 3명이 왔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죠. 처음에는 모텔에 있었지만 나중에는 배에서 먹고 자면서 수리했습니다.
이후 부속품도 유태인이 운영하는 중고품 가게에서 구입했는데 여기서도 직접 가서 값을 깎았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주인이 그의 계급을 물어볼 정도였다고 하죠.
뭐긴 뭐예요. 투스타죠. 10년 후에 어떤 양반이 왕 될 생각 하는 동안 해군 최초 투스타는 이렇게 직접 배를 사고 수리하며 배 값을 깎았습니다. -_-
뭐 유태인도 나라 잃은 설움을 수천년 동안 겪어왔으니, 이제 막 독립한 신생국을 좀 봐 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쩃든 그 양반들 참 운수 더러운 날인 것 같습니다. 이런 건 후에도 이어져서 군사원조협상 때 손원일은 뜯어낼 수 있을만큼 뜯어냈다고 합니다.
그의 큰 아들 손명원은 아버지의 이런 기질을 삥 뜯기, 아니 쟁취본능이라 표현했습니다.
이 때도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는데, 조선소의 미국인 한 명이 와서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은 후에 시계 안 쓰냐고 물어봤답니다. 시계를 보여주니 이렇게 말 했답니다.
"아니 별 뜻은 없고, 당신들은 언제 보아도 일만 하지 않소. 한 번도 쉬는 것을 보지 못했기에 이상해서 물어본 거요"
그 대답은 이거였죠.
"그거야 당연한 일 아니오? 우리나라는 독립을 되찾은 지 얼마 안 되는 신생국입니다.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하루 48시간 일해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그 이후 미국인들이 보는 눈길이 달라졌다고 하죠.
이렇게 수리와 정비가 끝낸 세 척에는 대잠수함 무기 해치호크를 달았고, 미군 부두로 가서 주포도 장착합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PC-702 금강산함
PC-703 삼각산함
PC-704 지리산함
입니다. 이들은 돌아가는 길에 또 하와이에 들려 환대를 받았고, 손원일은 거기서 정일권과 만나 간만에 회포를 푸는 중에 한국전쟁이 일어났죠.
참 힘들게 한국 해군은 네 척의 전함을 갖게 되었죠. 이 중에 704 지리산함은 맥아더 취향 따라주다가 원산에서 북한군 기뢰에 맞아 침몰당하고 말았습니다만.
그리고....................................
전쟁 일어나니까 그렇게 원하던 배들을 미국에서 공짜로 넘겨줬다고 합니다.
해피엔딩 해피엔딩? ~('' )~ 뭐 위에서 말한대로 손원일 제독은 삥 뜯을 수 있을떄까지 뜯었구요. -_-
대한해협 해전 후 미 해군이 몰려들면서 한국 해군은 주력에서야 벗어났지만, 그래도 곳곳의 섬에 상륙하고 곳곳에 정찰을 하는 등 많은 활약을 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전에도 요원들을 침투시켰고, 급히 창설된 해병대도 참가했죠. 여기서 손원일은 직접 권총을 들고 돌격합니다. (...) 한국전쟁 유이의 장군 돌격이었습니다.
이렇게 미군에게 배를 받아오는 것에도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엔하에는 왠지 베트남전 때로 하고 있는데 공정식 회고록을 보면 이 때가 맞는 것 같아요.
이번에 인수요원으로 간 인원은 무려 200명... 아니 진작에 이렇게 줄 것이지 -_- 이 때 무슨 배를 줬는지는 모르겠네요.
미 수송선을 타고 200명이 가는데, 문제는 계란이었습니다. 다들 영어를 모르니 뭘 주문할 수가 없었죠. 그 때 메뉴는 계란 후라이, 스크램블, 삶은 계란 세 개였습니다. 첫 날에는 어리버리하다가 둘째 날에 영어 잘 하는 사람을 앞 세워 주문했는데, 그는 계란후이라를 선택했죠. 그리고...
"Same x 199"
이렇게 계란후라이가 동 납니다. (...) 미군은 한국인들이 후라이를 좋아하는구나 싶어서 200개를 미리 만들어 놨죠. 그리고...
"Scrambled Egg"
"Same x 199"
... 취사병만 불쌍해요.
그 외에도 매운 걸 좋아하는 한국인, 미국 음식이 입에 맞을 리가 없죠. 그러다가 핫 소스가 보였습니다. 밥에 넣어 비비고 스테이크에 뿌리고 국에도 막 풀다 보니 금방 동이 납니다. 2주 후에 미국에 도착했는데, 보급장교가 인수단 부장 남철 소령을 만나 이렇게 말 했답니다.
"님들 2주 동안 먹은 핫소스가 얼마나 되는지 앎?"
"아 지성. 근데 얼마임?"
"님들 220명이 (20명은 어디서 나왔지 -_-;;;) 2주 동안 우리 1600명이 6개월 먹을 분량 다 먹어치웠음"
"... =_= 살려줏메"
헌데 따지는 줄 알았던 그가 이렇게 웃으며 말 했다고 합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미국 군인들은 핫 소스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재고가 자꾸 쌓여 골치가 아픈데 당신들이 깨끗하게 소비해 줘 정말 감사합니다. 귀국할 때도 꼭 이 배를 타 주시기 바랍니다."
걍 말 한 게 아니라 정말 좋았던 모양입니다.
한국 해군은 그 작은 규모에 비해 한국 전쟁 기간 동안 참 많은 활약을 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재침에 대비하는 데 있어 해군은 언제나 뒷순위로 밀렸죠. 어차피 북한의 해군은 더 형편 없어서 내려오는 간첩선 잡으면 되는 수준이었으니까요.
그 이후 72년부터 81년까지 기어링급 구축함(만재 3460톤) 7척을 받아서 주력함으로 썼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한국형 초계함과 호위함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초보적인 잠수함도 연구하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한국형 구축함 사업도 시작됐구요. 이런 가운데서 해군은 행사로 군함을 개방, 자신들의 열악한 상황을 국민들에게 직접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오히려 퇴역된 함을 개도국에게 파는 수준에 이르렀고, 구축함도 다른 나라와 계약을 맺어서 파는 수준에 이르렀죠. 지난 60년... 해군 정말 많이 컸습니다.
광개토대왕함
충무공 이순신함
세종대왕함
독도함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시작하신 손원일 제독님께서는....
잠수함으로 환생하셨습니다.
아직 주변국에 비하면 한참 멀긴 했습니다. 자위대는 이제 좀 고슴도치가 될 정도의 규모가 되었고, 중국 해군은 미친듯이 찍어내고 있죠. 천안함 사건이라는 뼈 아픈 일격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풀 문제는 많고, 그렇다고 육군 중심인 한국에 해군의 비중을 크게 키울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정말 장하지 않습니까.
이 모든 것의 시작에는 손원일 제독과 함께 고생했던 해방 병단,
그리고 그들이 가장 처음 얻었던 전투함 백두산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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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공군으로 가 보아요. 뭐 공군은 개전 전에는 딱히 할 말이 없지만요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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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해군의 아버지..
214급 1번함으로 다시 환생하셨습니다.
육군, 공군에 비해 열악한 것이 사실이죠. 북한을 상대해야 하다보니 육군, 육군을 지원할 공군을 키워와야 했는데..
중국과 일본의 해군이 엄청나게 후덜덜하다보니..\
2000년 대 초반까지만 해도 광개토급 3척에 기어링급이 활약하고 있었는데 불과 10년 만에 KD-2, KD-3, 214급 잠수함, 차기 호위함과 고속정을 갖춘 모습을 보니 감개무량하네요.
요 글을 약간 유머+ 짧게 쓴 글은 http://cheonji.egloos.com/4992547 로 가면 읽으실수 있습니다.
/눈시BBver.2 하지만 군내의 문제에 대해서 보자면 10년 전과 전혀 달라진게 없어서 걱정입니다. 구타 악습은 사라졌다 하더라도 군내 인권문제는 창군, 아니 그 훨씬 전의 '인권이 뭔가요? 먹는 건가요? 우걱우걱'과 다름이 없지요....군내 의문사 문제, 인권유린...존경심 없이 무조건적인 복종만 요구하는 전근대적 군대문화.... 적어도 고대군대인 로마군은 상관이 무능하면 병사들이 항의라도 할수 있었지... 이건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