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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5/31 07:33:40
Name OrBef
Subject [일반] (책후기) CS Lewis, GK Chesterton, R Dawkins
<글에 들어가기에 앞서>

- 카테고리가 책 후기인데 왜 책 제목이 없고 작가들 이름이 있느냐 하면..., 제목의 작가들이 어떤 작품들을 썼는지 아시는 분들은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제목이 훼이크인 것입니다! 피지알의 강력 떡밥인 기독교 얘기를 하려는 것인데, 제 글이 제 의도와 달리 불타는 전장이 되어 삭게로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제목을 일부러 저렇게 적었습니다. 사과 말씀드립니다.

- 긴 글이 될 듯합니다. 안되는 머리를 짜내서 열심히 작성한 글이니만큼, 가급적이면 전문을 읽으실 수 있는 시간이 되실 때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두 세 개로 나눠서 올릴까 하는 생각도 조금 해봤지만, 그냥 이 글 하나로 모든 생각을 정리하고 끝내기로 했습니다.

- 특별히 구별하지 않는다면 본문에서의 기독교는 구교와 신교, 그 외에도 동방 정교회 등의 모든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종교를 칭합니다.

- 이 글은 19 ~ 20 세기의 무신론과 기독교적 유신론의 입장들에 대해 논하는 글이고, 따라서 얼핏 보면 토게로 가도 이상하지 않은 글입니다. 그럼에도 자게에 글을 올리는 이유가 있는데, 우리가 아무리 '머리가 쫌 좋은'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당대의 거인들에게 견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네가 맞네 내가 맞네 사생결단으로 토론하자고 글을 올린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입장들에 대해서 살펴보고 각 주장이 이끌어내는 주 결론 & 그 주장이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수적으로 따라나오는 implication 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 글을 쓰기 때문입니다. 운영진 판단에 그래도 토게가 더 맞다고 보신다면 글을 이동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간곡히 부탁드리는데, 지하철의 "예수천당 불신지옥" 기독교인들은 논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1초 더 이야기 나누는 만큼 1초 더 인생이 낭비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제가 기독교에 대해서 생각하는 견해가 영향받고 싶지 않습니다.

- 위에서 벌써 하나 나왔지만, 종종 영어단어들이 나올 것입니다. 현학적으로 보이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고, 제가 기독교에 대해서 공부할 때 읽은 책들이 대부분 영미권 책자들인데, 해당 단어들이 한국에서 어떤 말로 번역되어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입니다.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배경 설명>

- 신에 대한 입장은 개인마다 다릅니다. 리처드 도킨스 (진화 생물학자이자, 강력한 무신론자입니다. 미국에서 무신론의 4대 기수로 꼽습니다; 이후에도 각 저자가 처음 나올 때는 그에 대해서 간략한 설명을 덧붙이겠습니다) 는 개인들의 입장을 대충 7가지로 분류했습니다: 1. 나는 신이 있다는 것을 "안다", 2. 강하게 믿는다, 3. 잘 모르겠지만 믿는 쪽으로 기울어있다, 4. 모른다 5. 잘 모르겠지만 없는 것 같다 6. 없다고 강하게 믿는다, 7. 신이 없다는 것을 "안다." 신에 존재 여부에 대한 증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양 진영에서 대부분 동의하는 부분이니 7번에 해당하는 사람은 사실 거의 없습니다. 다만 신앙이라는 것의 특성상, 자기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1번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꽤 많습니다. 저는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6번, "신이 없다고 강하게 믿는다," 입니다. 6 ~ 7번에 속하는 사람들을 무신론자라고 하겠습니다.

- 내심 신앙이 없으면서도 이런저런 사회적 편의를 위해 교회에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나 저처럼 타국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인들이 그리울 때 교회에서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저는 종교에 대해서는 타협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꽤 외로움을 타면서도 지난 9년간 교회에 간 적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중고등학교를 기독교 계열 학교에 다니면서 (물론 평준화 시절이었으니 추첨으로요) 강제로 예배보고 강제로 성경 공부하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은 것 같습니다.

-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면, 기독교인 (구/신교 합) 이 30 ~ 35%, 이슬람인이 20 ~ 25%로서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가 이미 50%를 넘어갑니다. 힌두교와 불교 인구를 합하면 전 세계 인구의 70% 정도가 종교 활동을 하고 있고, 공식 종교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 중에서도 상당수는 영적인 세계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즉, 저 같은 사람은 전 세계 인구의 약 2% 정도입니다. 미국을 기준으로 하면 1.6% 정도고요. 한국은 종교적인 색채가 굉장히 약한 나라이지만, 급할 때 무당 찾는 무신론자라든지 뉴에이지 운동에 동참하는 무신론자라든지 하는 사람들을 다 빼고 나면 아마 한국도 무신론자의 비율이 20%보다는 한참 아래일 것입니다.

- 즉,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영적인 세계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소수파지요. '나는 위대하니까 소수파야' 라고 생각해버리면 마음이 참 편하겠지만, 저 논리는 실제로는 '나는 소수파니까 위대해' 라는 중2병 궤변을 말의 순서만 바꾼 것입니다.

- 해서 인생 살면서 한 번쯤은 최대한 열린 마음으로 기독교에 대해서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두 달 동안 (물론 매일매일 공부했다는 것은 아니고요) 알아본 것들을 공유하려고 글을 올립니다.

- 글의 순서는, 양 진영에서 수천 년 동안 논쟁해온 주요 이슈들을 하나씩 살펴보는 형식이 될 것입니다. 해당 이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이 있다면 이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는가, 신앙은 비이성적이지 않은가, 기적이 정말로 일어나는가, 2천 년 된 성경은 그냥 설화 아닌가, 왜 기독교여야 하는가. 착한 이교도는 어떻게 되는가>

그럼 글 시작합니다. (아놔 서론이 더 길어)

신이 있다면 이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는가

전지전능하고 선한 신과 악은 논리적으로 공존할 수 없다는 명제는 기원전 300년경에 에피쿠로스에 의해서 처음 소개되었고, 이 논증은 신의 존재를 믿고 싶은 사람들을 2300년 동안 괴롭혀온 문제입니다. 명제의 가장 최신 버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Problem of Evil
1. 전지, 전능, 선한 신이 있다고 가정한다
2. 선한 신은 모든 악을 없애고 싶어한다
3. 전지한 신은 악이 존재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알 수 있다
4. 전능한 존재는 악을 무찌를 수 있다
5. 따라서 전지, 전능, 선한 신이 존재한다면 악은 존재할 수 없다
6. 현실 세계에는 악이 존재한다. (논리적 오류!)
7. 따라서 전지, 전능, 선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논리 자체에는 아무 문제가 없고, 수많은 기독교인이 개인적 불행 (가족의 불행한 사망 같은) 을 계기로 신앙을 버리는 일이 많은데, 바로 이 논리를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 (혹은 머리로는 극복했지만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든지) 입니다.

다만 이런 부류의 논리는 약간 말장난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애초에 인간적인 개념의 '전지' 와 인간적인 개념의 '전능' 은 양립 불가능한 개념들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런 간단한 논리만 가지고도 전지전능한 신의 존재가 불가능함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1. 전지한 존재는 미래에 자신이 무엇을 할지 예언할 수 있다.
2. 전능한 존재가 자신의 미래 운명을 알게 되었다면, 그 운명을 바꿀 수 있다.
3. 운명을 바꾸었다면 전지한 존재가 예언한 미래는 틀린 것이 된다. (논리적 오류!)
4. 따라서 전지, 전능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논증은 심심풀이 삼아서 인터넷을 두어 시간 돌아다니면 수십 개는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오류(로 보이는 상황)를 극복하기 위해서 CS 루이스 (영국의 소설가이자 기독교 변증학자입니다. 9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아버지, 절친, 아내까지 차례대로 하나씩 죽는, 대단한 불행한 삶을 살았고, 자연스럽게 강력한 무신론자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다가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과 친분을 맺고, 로마 가톨릭 신자였던 톨킨과 몇 년간 종교에 관해 이야기 나누면서 기독교를 받아들였습니다. 다만 루이스는 가톨릭이 아닌, 영국 국교를 자신의 종교로 삼았습니다) 가 보인 몇 가지 논증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논증이 가장 와 닿았습니다)

첫 번째 논증은 다음의 대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은 논리적으로 가능한 한도 내에서 전지, 전능, 선하다. 신에게 '파란색은 얼마나 무거워요?' 라고 물어보면, 당연히 대답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신이 전지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자유 의지를 선물로 주기 위한 악의 허용:
1. 신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선물로 주고 싶어한다.
2. 이 세상에서 악을 없애려면 인간이 악을 선택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3. 인간이 악을 선택할 자유가 없다면 인간이 자유 의지를 가진 것이 아니다.
4. 따라서, 신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악의 존재를 허용했다.

즉, 신은 '악이 존재하지 않지만 자유 의지도 없는 세상' 과 '자유 의지가 존재하지만 악도 존재하는 세상' 이라는, 두 가지 논리적으로 성립 가능한 세상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했고, '자유 의지가 존재하지만 악도 존재하는 세상' 을 택한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지요. 하지만 제가 더 좋아하는 논증은 다음의 것입니다. 논증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말 돌리기인데, 그렇다고 해서 문제를 회피하는 것은 아닙니다:

악의 존재가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1. 세상에 '악' 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악이 존재하지 않는 절대 선' 의 세계를 이미 은연중에 상정하고 있고, 우리가 그 절대 선의 세계에서 벗어나 있다고 믿고 있다.
2. '내가 싫으니 악한 것임' 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무엇무엇이 악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이미 절대 규범의 존재와, 절대 규범을 규정하는 절대자의 존재를 가정하고 있다.
3. 따라서 Problem of Evil 을 주장하는 사람은, 마음속으로는 이미 "선한 신이 존재하고, 우리 세계는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즉 이 문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에게 분노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오해를 피하고자 2번 항목에 대한 부연 설명을 조금 덧붙이겠습니다. '선과 악' 이라는 문제는 당위에 대한 문제입니다. 당위는 또 다른 당위에서만 유추해낼 수 있고, 최초의 당위 (종교에서는 신의 명령이 최초의 당위입니다) 에 대한 합의가 없다면 모든 도덕과 법은 그 근거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사람을 죽이면 나빠' 라는, 일견 너무 당연해 보이는 말은, 조금 깊이 생각해 보면 사실은 전혀 근거가 없는 말입니다. '왜 나빠?' 라고 물어보면 답이 없거든요. '사람들이 사람들을 죽이면 사회 전체가 무너지고 우리의 생존이 위험해' 라고 대답한다고 치고, '그게 왜 나빠?' 라는 질문이 나오면 또 답이 없습니다. '우리의 생존이 위협받으면 너도 죽어' 라고 궁색한 대답을 해 봤자 '나는 별로 살고 싶지 않은데?' 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젠 진짜 답이 없습니다. 즉, 제대로 파고 들어가 보면 법과 도덕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냥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지, 그렇게 해야만 하는 당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귤은 맛이 없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귤이야' 라고 말할 수 없듯이, '나는 절대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 여자들을 연쇄 살인할 거야' 라는 사람이 있을 때 '그럼 안돼' 라고 말할 근거는 사실은 전혀 없습니다.

도킨스가 자신의 저작인 '만들어진 신'에서 도덕 관련한 부분에서는 형편없는 논리를 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도킨스는 '우리의 도덕규범은 진화의 결과다' 라고 이야기하면서 대충 퉁치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진화의 결과가 도덕규범이라고 치고, 나는 그 규범을 따를 생각이 없는데?'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도킨스는 그 사람에게 '너는 그러면 안 돼' 라고 말할 근거가 전혀 없거든요. 도킨스의 논리를 따라간다면 선과 악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행동 패턴을 인간의 편의에 따라서 대충 정리해놓은 것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정리하겠습니다.
'기독교적 입장에서 볼 때, 자유 의지가 존재하려면 악의 존재는 필연이다. 다만 <악의 존재 때문에 발생하는 피해자들의 인생은 누가 책임질 것인지> 에 대해서는 기독교 변증학자들 중에서 그 누구도 만족할 만한 대답을 주지 못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나면 절대적인 선과 악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인은 만인에 대해서 투쟁하고 있을 뿐이고, 개인이나 집단의 생존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행동 패턴 몇 가지를 선과 악 (실용적인 의미에서) 이라고 규정했을 뿐이다. 그 규정을 어김으로써 많은 이득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실용적인 의미에서의) 악한 행동을 할 경우, 우리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그를 처벌할 수는 있지만,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

악의 문제에 대해서는 양쪽 모두 100% 만족스러운 대답을 주지 않습니다. 기독교 입장은 조금 더 밝은 대신에 뭔가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고 덮고 넘어가는 느낌이 있습니다. 무신론의 입장은 굉장히 일관되고 깔끔한 대신에 매우 어둡고 황량합니다.

합리주의 -- 신앙은 비이성적이지 않은가

합리주의/유물론/무신론에서 보는 세상은 '그냥 존재하는 것' 입니다. <세상은 그냥 있는 것이고, 그냥 있는 세상에서 어쩌다 보니 특정한 물리 법칙이 존재했고, 그 법칙에 따라서 세상이 돌아가다 보니 별과  행성들이 생겼고, 워낙에 수가 많은 행성에서 반복적으로 화학 작용이 일어나다 보니 생물이 생겨났고, 이후에는 자연선택을 통해 생물이 점진적으로 더욱 복잡하고 강력한 존재로 변했고, 이런저런 기능을 추가하다 보니 이성이 생겨났고,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존재하는 본질적인 이유를 궁금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매우 미안하게도 우리가 존재하는 본질적인 이유 같은 것은 없다. 우린 그냥 있는 것이고,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우리도 사라질 것이고 우주 자체도 사라질 것이다> 가 제가 보는 세상입니다.

다만 이런 입장은 -- 넌 그냥 어쩌다 보니 태어난 거고 곧 다시 없어질 거야. 그리고 남는 건 없어 -- 뭔가 좀 울적합니다. '사람이 존재 이유를 찾고자 하는 것' 과 '미안하게도 세상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 간의 불일치를 카뮈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입니다. 당연히 무신론자.... 정도를 넘어서서 이 사람은 신의 부존이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그것을 증명하는 따위의 일에는 아예 관심이 없습니다.) 는 'absurd' 혹은 '부조리' 라고 표현했는데 (사회적 부조리랑은 다른 의미입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인 '시지프의 신화' 에서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또 다른 무신론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 (그 유명한 '화성 근처에서 공전하고 있는 조그만 찻잔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증명할 수 없다고 해서 그런 찻잔의 존재를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신은 그런 찻잔과 비슷한 존재이다. 내가 굳이 그런 사소한 문제에 시간을 쓸 이유가 없다' 라는 이야기를 한 사람입니다) 이 '진지한 무신론자라면 궁극적으로 ultimate despair 를 만나게 되어 있다' 라고 이야기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반면에, 신앙은 '모든 것에는 목적과 이유가 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증명은 하지 못하기에 신앙은 본질적으로 비합리적인 면이 있고, 그러다 보니 '불만족스러운 우리 마음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만들어낸 환상' 이라는 느낌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 (저 같은 사람들) 는 비합리적이고 환상적인 것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 체스터톤이 (19세기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기독교 변증학자입니다. 루이스가 자신의 사상적 스승으로 삼은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이고, 니체나 프로이트, 맑스와 그럭저럭 동시대를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말을 인용합니다.

'사람들의 인생이 비참한 이유는, 이성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상상력이 부족해서이다'

신앙은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는 면에서 비합리적이지만, 합리적인 논증을 통해서 신앙을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기적의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섹션에서 얘기하겠습니다). 또한, 설령 완벽한 합리주의자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가 합리주의를 자신의 가치관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비합리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카뮈는 '내가 비록 존재의 의미를 궁금해하지만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 라고 결론을 내렸고, 루이스는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내가 궁금해한다는 사실 자체가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존재한다는 증거이다' 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신앙은 너의 욕망이 만들어낸 환상' 이라는 공격에 대해서 '내가 무엇인가를 욕망한다고 해서 그 대상이 굳이 환상일 이유는 없다. 내가 밥을 먹고 싶으면 밥이 환상인가? 마찬가지로 내가 신의 존재를 욕구한다고 해서 신이 환상일 이유는 없다. 너희는 상상력이 부족하다' 라고 반박했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기독교적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신의 목적을 위해서 이 세상에 왔고, 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불멸의 존재가 되어 신과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근거? 세상의 수많은 사람이 이 말을 본능적으로 믿는다는 것이 그 근거다.'
'무신론적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그냥 어쩌다 보니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네가 네 삶의 이유를 궁금해하는 것은 유전자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추가한 '이성' 이라는 기능의 부작용 같은 것이다.'

다시 한번, 기독교 입장은 '눈 감고 받아들이면' 매우 밝은 삶을 약속합니다. 무신론의 입장은 '네가 머리가 있는 놈이라면 세상이 황량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라는 쪽입니다.

기적이 정말로 일어나는가

기적이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한 사례 연구를 하기보다는, 체스터톤의 강력한 논평을 하나 보이고 시작하겠습니다. 그의 대표 저서인 Orthodoxy 의 문구입니다. (책이 옆에 없어서 대충 기억을 되살려서 씁니다. 고로 상세한 표현은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 최종 결론을 어느 쪽으로 내리든 간에,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신론자들은 기독교인들을 보고 생각이 없는 교조주의자들이라고 욕하지만, 기적에 관한 한 진짜 교조주의자들은 무신론자들이다. 기독교인들은 기적에 대한 수많은 증거가 존재하기에 기적을 믿지만, 무신론자들은 자신들의 교리 (무신론) 가 기적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기적을 믿지 않는다. 그들에게 기적에 대한 아무리 많은 증거와 증인을 보여줘 봤자 소용없다. 그들은 언제나 '그 증거는 조작이다. 그 증인은 착각이다. 그 증인은 무식한 사람이라서 믿을 수 없다. 그 증거는 다른 방식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 수많은 증거와 증인을 부인하는 진짜 이유는, 증거와 증인이 못 미더워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교리에 사로잡혀서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능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이야기지요? 체스터톤이 보기에는 무신론자들은 타진요인 겁니다!!! 사실 기적의 문제에 대해서는 저도 저런 식으로 접근하는 면이 있습니다. '기적이라.. 그런 건 당연히 다 사람들의 착각이지! 뭐 네가 원한다면 기적 얘기 한두 개 정도 갖고 와봐 내가 그 얘기에서 어디가 틀렸는지 찾아줄께' 라는 자세 말이지요. '기적은 왜 예수 때만 일어나고 요즘은 안 일어나나요 크크크 요즘도 예수처럼 빵 다섯 개로 수천 명 먹여주고 그러면 내가 당장 기독교 믿을 텐데 말이죠 크크크크' 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속으로는 같은 심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적 기적은 요즘도 일어납니다. 1917년의 파티마의 기적은 (이 기적은 가톨릭에서만 인정합니다. 시간 관계상 개신교 계통의 최신 기적을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1. 성모가 스페인 파티마 지방의 어린이들에게 1917년 7월 13일, 8월 19일, 9월 13일의 세 차례에 걸쳐서 나타났고, 성모는 어린이들에게 인류에게 일어날 몇 가지 고통스러운 미래를 보여줍니다.
2. 어린이들이 그 이야기를 동네 사람들에게 전했고, 사람들이 아이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3. 아이들이 성모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10월 13일에 사람들을 모아 오너라. 내가 기적을 보여줘서 그들이 믿도록 해주겠다' 라는 대답을 듣습니다.
4. 아이들이 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했고, 최소한 3만 명, 최대 10만 명이 파티마에 모입니다.
5. 약속한 10월 13일에 그 모든 사람이 "태양이 일시적으로 땅으로 내려오는 현상" 을 목격합니다.
6. 이후 스페인 파티마는 지금까지도 순례자들이 찾아가는 성지가 되었고, 그 어린이 중에 유일하게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루치아는 수녀가 되었습니다.

이라는 사건입니다. 이 현상은, 독하게 마음먹는다면 광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현상이 왜 하필 아이들이 약속한 그 날짜에 일어났는지는 여전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저는 여전히 이 사건이 기적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조금 꺼려집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10만 명이 착각한 거임 우왕 굿' 이라고 대답한다면 체스터톤의 '너는 무신론 교조주의자임 크크크' 이라는 조롱에 반박하기 어려울 것 같긴 합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기적의 문제에 상당히 집착한 사람은 CS 루이스입니다. 루이스는 체스터톤과 마찬가지로 '기록에 있는 기적을 하나하나 증명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별로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다. 그러지 말고 바로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서 <기적이라는 것이 가능한지 아닌지>를 논하도록 하자' 라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루이스의 정의에 따르면 (저도 동의하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할 겁니다), 기적이라는 것은 '자연법칙을 위배하는 현상' , 즉 초자연적인 현상입니다. 제가 앞으로 25주간 연속으로 로또 1등에 당첨되는 것은, 확률적으로 아주아주 낮은 일이지만 기적은 아닙니다.

기적으로 저렇게 정의하고 나면, 기적의 가능 여부는 우리의 세계가 물리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자연 세계로 끝인지, 아니면 초자연적인 세계가 존재하며 그 세계와 우리 세계가 어떤 식으로든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변해버립니다. naturalism vs supernaturalism 의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루이스는 naturalism 의 입장은 논리적으로 성립 불가능하다는 논증을 펼쳐서, 일종의 소거법을 통해서 기적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루이스의 논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Naturalism 이 진실이라면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물질 간의 인과율에 따른 상호작용에 불과하다
2.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이 인과율에 따른 물질 간의 상호작용에 불과하다면,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도 물질 작용에 불과하다
3. 인간의 이성이 물질 작용에 불과하다면 인간의 이성이 산출해내는 논리적 명제라는 것들은 바람에 나뭇가지에 부딪혀 내는 소리와 다를 바가 전혀 없다. 물질 작용에는 '옳고 그름' 이라는 개념이 없다. 즉 이성과 논리라는 개념은 환상에 불과하다.
4. 그렇다면 naturalism 이라는 주장은 환상이다. (논리적 모순!)
5. 고로 Naturalism 이라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 Naturalism 은, 마치 '이 문장에는 오류가 있다' 라는 문장처럼, 자기 파괴적 성격을 지닌다.

일견 말장난스럽지만, 말이 됩니다. 이 문장에서 저는 (루이스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추가적인 충격을 받았는데, "우리 세상이 물질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정신도 물질 작용이다" 라는 문장을 보는 순간, 제가 원래 알고 있던 다른 몇몇 지식이 합쳐져서 다음의 결론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1. Naturalism 이 진실이라면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물질 간의 인과율에 따른 상호작용에 불과하다
2.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이 인과율에 따른 물질 간의 상호작용에 불과하다면,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도 물질 작용에 불과하다
3. 인간의 이성이 물질 작용에 불과하다면 인간의 이성은 인과율의 법칙을 따른다
4. 그렇다면 인간에게 자유 의지란 없다

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양자역학의 출현으로 인과율의 법칙은 확률적으로만 성립한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제가 2초 뒤에 양자역학적 확률론을 따라서 갑자기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달팽이를 주워 먹는다고 치고, 그게 저의 자유 의지에 의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기독교적 입장에서 볼 때, 기적은 인류 역사에서 수시로 벌어진 일이고, 물리 세계의 인과율의 법칙에서 벗어난 신이 우리 세계에 개입한 사건들이다. 다만 신이 왜 어떨 때는 기적을 일으키고 어떨 때는 기적을 일으키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만족할만한 설명을 주는 변증학자를 본 적이 없다. 대부분 '그것은 신의 뜻이고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의 입장을 취한다'
'무신론적 입장에서 보면, 우리 세계는 그 자체로 끝이다. 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거나, 설령 있더라도 우리와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다만 이 논리에 따르면, 조금 미안하긴 한데, 정신이라는 것은 환상이고 우리에게 자유 의지는 없다. '나' 라는 개념마저 환상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일관되는군요: 기독교 입장은 조금 더 밝은 대신에 뭔가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고 덮고 넘어가는 느낌이 있습니다. 무신론의 입장은 굉장히 일관되고 깔끔한 대신에 매우 어둡고 황량합니다.

2천 년 된 성경은 그냥 설화 아닌가

이 문제는 무신론 vs 기독교라는 철학적인 논쟁과는 약간 궤를 달리하기에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실제로 교회에서도 구약 성경은 상당한 수준에서 신화라고 인정을 하더군요. 특히 창세기 부분은 뭐 답이 없습니다만......, 체스터톤은 창세기가 실제 일어난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우하하하하 이 양반이 되살아나서 현대 과학의 성취를 보면 창피해할 것 같습니다. 루이스도 구약에 대해서는 별다른 정당화를 시도하지 않았고, 신약에 대해서만 '성경은 설화 아님' 이라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 근거라면:

1. 일반적인 설화와는 상당히 다른 구조를 지니고 있고 (4대 복음서 중에서 요한복음을 뺀 복음서들은 글의 종류가 위인전에 가깝습니다),
2. 본인들이 창피할 만한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있고 (이후 교회의 지도자가 되는 베드로가 예수의 죽음을 맞이해서는 3번이나 예수를 부인했다든지, 12사도 중 예수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든지 하는 이야기들),
3. 일견 자신들의 교리를 위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들도 담겨있다는 점에서 (예수가 죽음 직전에 '아버지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 라고 원망하는 장면은, 후대에 조작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뜬금없지요),

정도가 있습니다. 물론,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홀로 기도하는 내용이 성경에 버젓이 기록되어있다는 사실은, 신약의 상당 부분이 후대에 첨삭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이게 성경의 저자에게 성령이 임해서 쓴 것이라는 주장도 있긴 한데, 이런 주장은 양대 복음서에 쓰여있는 예수의 족보가 불일치하는 등의 어이없는 오류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정리하자면, 현대 자유 신학 등의 계열에서는 신약 성경도 상당한 수준에서 상징적인 이야기라고 이야기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성경은 그냥 아폴로와 다프네 얘기랑 동급임' 이라고 말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무겁습니다. 한 번쯤 스스로 성경을 통독해보시는 것은 종교를 받아들이고 말고를 떠나서 인생 살면서 한번은 해볼 만한 일일 듯합니다.

왜 기독교여야 하는가. 착한 이교도는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단군 신화 중동에는 수메르 신화 그리스에는 그리스 신화가 있는데 왜 하필 기독교를 믿어야 하나요? 님 말만 믿고 기독교 믿었다가 심판의 날에 단군께서 오시면 망하는 거 아님?"

이라는 비판은 당연히 2천 년 동안 있었습니다. 이것에 대한 주류 기독교의 입장은 역사를 거치면서 여러 번 변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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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31 07:34
수정 아이콘
이라는 비판은 당연히 2천 년 동안 있었습니다. 이것에 대한 주류 기독교의 입장은 역사를 거치면서 여러 번 변했고, 기독교 교단 내부에서도 입장이 많이 갈리는 편입니다. 크게 세 가지 정도의 입장이 있는데요 -

Exclusivist: 기독교만이 진리며, 따라서 기독교를 믿 (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종파도 있고) 고 선하게 사는 사람 (까지 요구하는 종파도 있습니다) 들만 구원받는다. 나머지는 모두 지옥으로 간다.
Inclusivist: 인간의 신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교류했으며, 기독교가 가장 올바른 종교이지만 다른 종교도 어느 정도의 진리가 있다. 따라서 신의 뜻에 따라서 올바른 삶을 산 사람들은 설령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몰랐거나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도 구원받는다. 악인들은 모두 지옥으로 간다.
Universalist: 신은 인간을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인간은 선과 악, 신앙 등과 아무 관계 없이 모두 구원받는다.

입니다. CS 루이스는 저 분류법에 따르면 Inclusivist 입니다. 그는 무신론자였던 시절에 mythology (신화학) 을 상당한 깊이로 연구한 사람이었는데, 대부분 신화에서 상당히 비슷한 도덕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런 보편타당한 도덕이 여러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이유는, 인간이 비록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나름대로 신을 느낄 수 있는 존재였고, 신의 뜻을 자신들의 신화와 종교 체계에 무의식중에서나마 도입했기 때문이다' 라고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물론 도킨스의 논리에 따르면 신화와 종교 체계는 진화의 산물이고, 진화의 법칙이 모든 인류에게 비슷하게 작용하니 신화와 종교도 비슷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결론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은 그의 변증학 책이 아니라 어린이 환타지 소설인 나니아 연대기의 최종회입니다. 나니아의 세계에서 예수에 해당하는 신은 Aslan이라는 사자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쪽에 위치하는 악의 신으로 Tash가 있습니다. Tash를 숭배하지만 용감하고 고귀한 성품을 지닌 전사인 Emeth 가 죽음 뒤에 Aslan 을 만나게 되는데, Aslan 은 Emeth 를 반갑게 받아들여 줍니다. 혼란스러웠던 Emeth 가 'Aslan 이여, 나는 평생 당신이 아니라 Tash 를 섬겨왔습니다' 라고 말하자 Aslan 은 '너는 얼핏 보면 Tash 를 섬긴 것 같지만, 그 섬기는 방법은 고결하고 용감한 것이었다. 너는 비록 알지 못했던 것 같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Tash 를 섬길 수 없다. 너는 그동안 실제로는 나를 섬겨온 것이다' 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대목은 루이스의 inclusivist 로서의 종교관을 가장 잘 나타낸다고 평가받습니다.

현대 기독교는 점점 inclusivist 를 넘어서 universalist 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지옥이라는 개념도, '죄를 지은 놈들을 신이 지옥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은 놈들은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서 지옥에 남게 되는데, 신은 그것을 막고자 예수를 보내서 죄를 대신 짊어진 것' 이라고 보는 쪽으로 점점 바뀌어왔고, '신의 위대한 사랑에 의해서 우리는 결국 모두 구원받을 것이다. 지옥은 텅 빌 것이다' 라는 시각이 (적어도 가톨릭에서는) 주류의 위치로 올라가는 중으로 보입니다. 해당 문제에 대한 Barron 신부의 이야기를 동영상으로 첨부했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dmsa0sg4Od4

(여담이지만 이 신부님 발음도 정확하고 내용도 쉽고 해서 영어 듣기 부교재로 써도 될 듯 합니다. )

<b>얘기의 끝</b>

애초의 얘기로 돌아가서, 저는 도킨스의 분류법에 따르면 6번의 위치에서 루이스와 체스터톤의 책들을 읽었고, 두 달 동안 교회에 나가보았습니다. 해서 이제 저는 4번의 위치가 되었습니다. 다만, 3번 5번 평균 내서 4번이라는 뜻이지 모든 면에서 중립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제 현재 입장은

'당신들 얘기가 결국은 다 착각일 것 같아. 근데 착각이 아니면 좋겠어'

입니다. 다른 분들도 한 번쯤 시간 내서 자신만의 여행을 다녀오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네의 난
12/05/3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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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있는 주제라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스타카토
12/05/3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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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래야 내 피지알 답지!!!!!!
정말 간만에 멋진글 잘 읽었습니다.
크리스챤인 저도 알지 못한 세계를 마치 신세계를 발견한 느낌까지 드네요!!
한번 깊게 고민해보고 싶은 주제네요~~
추천합니다!!!!!!
몽키.D.루피
12/05/31 08:40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겟세마네 기도 부분은 흔히 말하기를 마가라는 청년이 봤다고들 합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겟세마네 기도가 끝나고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될 때 벌거벗은 청년 한명이 도망가는 기록이 있거든요. 그 청년이 아마 마가일 것이다라고 가정하더군요.(복음서에는 필자가 자기자신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제외한 나머지 세 복음서의 기초가 마가복음이므로 마가에 의해 알려졌다는게 제가 알고 있는 정설입니다.
다른 부분은 좀 생각해보고 댓글 달아야 될 거 같아요.
몽키.D.루피
12/05/31 09:21
수정 아이콘
사실 루이스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가는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기독교인이라고 불리지는 않죠.. 크크
전 도킨스의 분류법으로 2번에서 3번 오락가락 하고 있는 나이롱 유신론자지만 왠지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걸 좋아합니다.
이 글에서는 도덕에 관한 무신론의 입장을 일관되게 어둡고 황폐하게 묘사했지만 굳이 그렇게 생각할 필요도 없을 거 같아요. 처음 이유야 어찌됐건 인간 사회에 도덕이 생긴 건 생긴 거고, 그러한 도덕적 삶의 기준이 무제약적인 절대자에게 기초된 것이 아니라 할 지라도 인간 사회에 이익을 주고 더 나은 공동체의 삶을 보장에 준다면 충분히 가치있는 거 아닐까요?
제 생각에는 유신론이든 무신론이든 인간 존재와 삶의 근본 이유를 파헤치려고 하는 절대적인 환원주의의 환상이 있는 거 같습니다. 무신론은 자연법칙의 인과론으로 환원시킨다면 유신론은 신의 의지라는 목적론으로 환원시키는 거죠. 그래서 둘은 달라보이지만 논증의 기본 구조는 비슷해보여요. 결국 무신론이 스피노자와 같은 자연주의 범신론 쪽으로 기울 수 밖에 없는 것도 이런 이유겠죠.
어떤 종교나 과학에 의해서도 인간은 하나의 원인이나 하나의 목적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인간은 그 근본 시작이 어떠했을지라도(신의 목적에 의한 창조or자연법칙에 의한 진화) 적어도 현재 인류는 그런 환원의 속박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복잡하고 복합적인 개체가 되어버렸다고 봅니다. 한마디로 인류의 진화가 도덕법칙을 만들어냈다고 할지언정 그 도덕 법칙을 진화의 산물이라고 치부하는 환원주의로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 공동체에서 도덕은 중요한 것입니다. 유신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혹시 만약 인간이 신의 목적에 의해 창조됐다고 한들 인간이 반드시 신의 목적에 의해 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즉, 진짜 인격적인(기독교적인) 신이라면 인간이 자기마음대로 살지라도 언젠간 결국엔 신에게로 되돌아오게 만드는게 진짜 신의 전능성 아닐까요?

사실 전 유신론이나 기독교의 신에 대해 할 말 많은데.... 할 말 다 하다보면 정리가 안 될 거 같아요. 그냥 제가 생각하는 (기독교적인) 유신론은 이런 겁니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톰 행크스가 땟목을 타고 섬을 탈출하잖아요. 톰행크스가 인간이라고 한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땟목 근처에 떠내려가는 윌슨을 건져내는 것 뿐입니다. 그마저도 바다의 거대한 조류와 파도에 의해 불가능하죠. 거대한 조류나 파도는 신의 의지라고 비유할 수 있겠네요. 아무리 인간이 발버둥 친다 한들 고작 작은 욕망(윌슨) 하나 건져내는 것도 힘겹고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더군다나 그 큰 조류를 거슬러 흘러갈 수는 없는 거겠죠.
이렇게 생각해보면 유신론이 더 우울해요. 거대한 신앞에 그냥 닥치고 조아리는 거 말고는 할 게 딱히 없거든요. 그 신이 기쁨과 평안과 쾌락과 안식을 다 가져다 준다는게 기독교의 기본 교리지만 전 그렇다기보단 그냥 우울하네요.
사케행열차
12/05/31 09:44
수정 아이콘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혹시라도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증명이 되면 그것은 종교vs과학에서 종교가 승리한 것이 아니라, 과학이 한발짝 더 진보할 수 있는 기회라고요.
개미먹이
12/05/31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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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마의 기적에 대해서는 http://en.wikipedia.org/wiki/The_Miracle_of_the_Sun 에서 볼 수 있듯, 태양의 모습에 대한 이상현상이라고 설명되어 집니다. 이러한 현상이 "마리아의 발현"이라고 보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 대해서는 설화 부분과 철학 부분이 적절히 섞여 있기 때문에 퉁쳐서 이 책은 설화다 혹은 철학서다 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역사책이면서 동시에 율법서로 활용되고 쓰인 책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가볍게 볼 수 없는 깊이가 담겨져 있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것에 씌인 내용이 현대적 가치가 있다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많은 저작들도 엄청난 내공을 지니고 있지만, 현대적 의미의 과학으로 보지 않는 것 처럼요.
12/05/31 10:00
수정 아이콘
저도 굳이 한 쪽을 택하라고 하면 이상현상을 택하겠습니다. 하지만 꼬맹이들이 어떻게 해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날을 미리 인지할 수 있었는지는 설명이 불가능하지요. '우연?' 이라고 하면 그만이겠지만, 사실 마음이 깔끔하진 않습니다.

성경에 대해서는, 제가 교인이 아닌 만큼 본문 이상의 쉴드치기는 가능하지도 않고 그럴 의도도 없습니다. 다만 한 번 정도 통독할 가치가 충분한 책이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선데이그후
12/05/31 10:02
수정 아이콘
주식하면서 신이나 기적을 바라본적도 있고 똥통까지 간적도 있었고.. 요즘은 믿는 편입니다.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인생은 너무 많은 "우연"이 교차하는것 같습니다.
12/05/31 10:50
수정 아이콘
귀한 시간과 노력의 산물 잘 읽었습니다. 이런 소중한 결과물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거의 다 중복되는 내용이기는 한데 리 스트로벨의 '특종 믿음 사건'이라는 책이 소위 무신론자들의 기독교 비판 지점에 대해서 잘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가 잘나가던 기자 출신이라서 주간지 커버스토리 같은 느낌으로 잘 서술했지요. 뭐 리 스트로벨이 참고했던 원전들을 읽으셨으니 애써 챙겨보실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만... 혹시 심심하시거나 하면 한번 그냥 후루룩 넘겨 보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합니다.

기독교도 친구들이 한명도 없는 기독인으로서 여담을 한마디 덧붙이자면 결국 종교 생활에서 코어는 '접신'의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종교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도 하구요. 기독교적 표현으로는 '임재'의 경험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인 종교 생활의 핵심은 임재의 경험을 통해서 생활의 변화가 생기는 거죠. 그리고 전도란 그 변화된 삶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변화의 이유가 예수님 때문이라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말씀하셨듯이 '일부' 기독교도들이 하는 건 사실 전도라고 보기는 많이 거슥한 게 대한민국 기독교의 현실이죠. 제 친구들 같은 경우는 흔히 하는 그런 기독교의 오류나 모순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하는 말에 대해서 잘 납득하는 편이기는 합니다. 물론 저도 대한민국 '일부' 기독교도들에 대해서 육두문자 섞어가며 비난하는 축이라 친구들과 대립될 지점이 없기도 하지만요. 다만 불필요한(제 생각에 불필요한 겁니다^^;) 오해들을 걷어내고 '좋은' 교회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친구들이지만 가끔씩 예배에 참석하기는 해도 신자가 되지는 못하더라구요. 그게 제 생각엔 임재의 경험 부재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굳이 쓸데없는 여담을 덧붙이는 이유는 기독교의 신은 인간과 관계 맺기를 욕구하는 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 친구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제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제 친구들과 간절히 관계 맺기를 갈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리 잃어버린 양을 되찾았을 때 천국에서 잔치가 열리는 그런 맥락이죠. 성경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제는 결국 자유의지를 가진 피조물과 '아주 간절하게' 친하게 지내고 싶어하는 신적 존재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계 모든 종교와 비교한 것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다른 종교들의 신과는(이라고 해봐야, 잘 모르지만 어쨌든 아브라함에서 뻗은, 이슬람교를 제외하자면 샤머니즘만 남겠네요; 불교는 대한민국에서 소비되는 방식은 잘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신에 대한 종교가 아니니까요) 차별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다른 차원에서의 접근도 나름 긍정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리 스트로벨의 책을 읽어보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설교자였던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절친이며 동역자였던 찰스 템플턴과 나눈 대화가 실려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의 집회를 바로 곁에서 기도로 지원하던 템플턴은 이후 무신론자가 되어 많은 무신론자들의 전거로 사용되었습니다. '봐라 빌리 그레이엄의 친구도 무신론자가 되지 않았는가!' 이런거죠. 그가 기독교에 등을 돌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악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저들을 돕지 않으시냐는 거였죠. 읽은 지가 오래되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스트로벨이 그와 대화를 나누던 중 그가 하나님이 꼭 계셨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며 우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제게는 꽤 감명깊은 장면이었습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주저리 주저리 말이 많았네요^^ 귀한 글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Je ne sais quoi
12/05/31 11:09
수정 아이콘
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재미있기도 하고 좋네요. 요즘엔 나름 바뻐서 신경 못 쓰지만 한 때 저도 열심히 써주신 책들을 읽었던지라... 시간 나면 다시 못 읽었던 것까지 보고 싶어지는군요. 감사합니다.
12/05/31 11:2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의견 표력은 하고 싶지만 왠지 쓸데 없는 것같아 댓글썼다가 지웠네요.
12/05/31 11:34
수정 아이콘
이런 글 좋네요!

개인적으로 강력한 무신론자인지라(라고 생각)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등의 저서들을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었는데,

그 외에도 많은 내용을 압축적으로 잘 소개해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이성또한 물리작용이며 인과율에 따른다... 에 대한 부분이 뭔가 논리적으로(감정적으로?) 납득이 가질 않는데,

오늘 점심 먹으면서 천천히 곱 씹어 봐야겠습니다.
12/05/31 11:37
수정 아이콘
만들어진 신을 보면서 뭔가 모를 위화감과 저자의
무리(?) 혹은 동어반복의 의도 등이 좀 불편하기도 하고 이해가 안갔는데. 약간은 그 이유를 알겠네요. 잘 봤습니다. [m]
VersionA
12/05/31 11:37
수정 아이콘
역시 이래야 pgr자게지 어헣헣... 다른글을 비하한건 아니지만.... 이런 좋은 글 좋아요!!!!!
저도 개인적으로 신의 존재는 없다고 생각하는지라......
읽으면서 이해안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다시한번 차근차근 읽으면서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어느정도 궁금한게 풀린거같아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Montreoux
12/05/31 11:57
수정 아이콘
레만호수 근교에는,
처치 못하는 돈으로 쳐바른 저택들 사이로 럭셔리급_이라 하나 헐리우드식 삐까뻔쩍한 스타일은 없음_ 호화주택은 아니나
아늑하고 우아한 마당 딸린 집에서 미스마플식 정원을 가꾸고 토론을 좋아하고 (외모는 꾀죄죄한) 영국인들이 제법 삽니다.
도시성격상 역시 영국인들의 영어위력 때문인지.
남편부서장이 영국인이었어요. 알리스테어.
동료스웨덴인이_알랭드보통처럼 영국에서 학부 이후의 교육을 주욱 받은 사람임에도_
우리가 볼때는 막힘없이 유려한 문장을 써서 가져가면 알리스테어가 항상 영어를 고쳐주곤 했답니다. 고급언어의 길은 멀고도 험한 법-.-
알리스테어는 작은 키에 온화한 얼굴에 도수 높은 안경을 썼어요.
도수 높은 안경만 아니라면 의외로 또 공부만 한 얼굴은 아니고요 미남이었답니다.
지독히도 안 씻었습니다. 머리는 언제나 떡져있고요.
무남독녀인 부인쪽 집안에서 대대로 이어받은 가죽장정의 오래된 책들이 서재에 가득했었습니다.
정원의 꽃들은 잘 가꾸어져 있었고 송아지만한 개 두 마리가 유순했어요.
안토니라는 다른 영국인동료, 이 독신친구는 장신매력남에 볼때마다 다른 여친을 대동했습니다;
다운타운스튜디오에 소박하게 사는 그는 레만호수에 쪼꼬만 요트를 매두고 출퇴근을 자전거로 하는 만능스포츠맨이었습니다.
장신에 자연스런 선탠으로 잘 그슬린 얼굴과 허벅지가 거무스름하고 탄탄했지요.
알리스테어집에 남여부서원+부인, 남편 들이 정기적으로 모였습니다.
주로 날씨 얘기 가족 얘기 그당시 블레어총리 시절이라 블레어 아들 이안(이었나;;;) 얘기 등등을 서로 했어요.
평소에는 무뚝뚝해 보이리만치 과묵했던 알리스테어와 안토니는 언제나 그들끼리 어느 시점부터 자기들끼리의 이야기에 몰두해 들어갑니다.
한국인 치고?^^ 영어하는 남편이 들어도 무슨 맥락인지 도통 모르겠는 얘기.
그들의 유전자에 습속으로 새겨진 오래 오래 묵고 묵은 이야기의 이야기.
2000년 부터 10년 동안 한국에서의 스덕들끼리 통하는 이야기처럼.
노동8호나 피지알태동기의 근사했던 글들의 모티브가 되었던 스덕들만 알수 있는 돌발영상처럼.
이 스토리텔링에는 외부의 타자는 절대 낑낄수 없지요_ 이 비유는 사실 되게 야케요 야케.

영국인들을 우러러보고 부러웠단 얘기는 아닙니다.
물론 우리사회에 실종된 "말" 우리가 겪은 상황을 우리가 풀어낸 "말"이 빈약하긴 했지만요.
(그래서 자생적 스타리그가 내겐 더 특별하고 애착이 있음)
외부에서 빌려오지 않고 이식하지 않고 자기들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만드는 전통과
어떤 대상을 탐구하고 그 지식이 축적되어 가감없이 명료한 형태로 전해지는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분야가 과학.
알리스테어와 안토니가 빠져드는 이야기를 지켜본 바
그게 소크라테스의 dialectic, 플라톤의 대화에서 비롯된 것이든 기독교든 과학이든
***저는 자신의 정체성을 외려 발견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전달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아는 것도 없고 말주변이 그지같아서***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그리고 엄정하고 명료하고 아름답고 화려하게 세계사에 성취를 이룬? 과학보다
더 광범위한 빛과 그림자로 그들 _알리스테어와 안토니는 무신론자였음에도_ 유전자에 축적된 습속은 바로 기독교였고요.

있어 보이는 영국인. 식민지. 소외. 타자화. 프란츠파농. 아웃스커트주변인. 이딴; 얘기는 아닙니다.

절대 기독교를 받아 들일수 없어 라고 더 결심을 확고히 한 계기중의 하나.
말씀하신 바 한국개신교의 단점 따위는 고려사항 자체도 아니고 오히려 마음먹으면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 보겠습니다.
내 이야기 우리 이야기니까.
저는 민족이란 말 싫습니다. 민족이랑은 별개이고요.

알리스테어와 안토니의 이야기를 보고 저는 저기 못 낑기는 게 아니라 안 낑겨야 되겠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굳이 안 낑겨도 되잖아. 못 낑긴다고 기죽을 일은 더 아니고.
기독교는 내 정체성이 아니야. (믿음이니 과학이니를 떠나서)

제 입장은 제가 무신론자라 단순히 생각했었습니다.
본문 도킨스(저는 왜 이 아자씨 이름이 언제나 던킨도너츠랑 헷갈릴까염) 4. 모른다 5. 잘 모르겠지만 없는 것 같다
아리까리하게 정확하게 4. 5 도 아닌듯하고
아, 놔. 모르겠습니다. unknown unknowns 영역 같다능.
제가 제일 따르고 좋아하는 현명하고 예쁘기까지 한 사촌언니가 최근에 기독교인이 되었어요.
사촌남동생이 가엾게도;;; 자살을 했고요. 언니가 정신줄 놓았다가 결국 신에게 의지하게 되었어요.
영적인 것. 영적인 사람. 우리어머니들이 전통적으로 정화수 떠다놓고 자식 잘 되길 비는 그 행위에 깃든 경건함을 저도 모르지 않지요.
신이 만약 있다면 제가 확신할수 있는 하나는 그게 예수나 기독교식 하나님 하나임은 절대로 아닌것 같다 정도...^^;;;

아드님을 향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탐구방식은 느무느무 orbef님 답고요. 흐흐.
잘 읽었습니다.
강동원
12/05/3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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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덕분에 삭게로 날아갔군요. 크크 [m]
PoeticWolf
12/05/3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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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댓글에 잠시 언급된대로.. 만에 만에 만에 하나 귀의하시게 된다면... CS루이스와 비슷한 목소리를 내실 것 같습니다(칭찬입니다, 전 루이스 그분 참으로 대단하게 봅니다...). 하하.
키튼투
12/05/3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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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한가지 CS루이스 작가에 대한 설명에 대해서 다른 분들이 오해하실수 있는 이야기가 있어서 여기 적습니다.
"9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아버지, 절친, 아내까지 차례대로 하나씩 죽는, 대단한 불행한 삶을 살았고, 자연스럽게 강력한 무신론자로 성장했습니다."
위 문장에서 마치 CS루이스는 아내가 죽는 시점에도 무신론자인거처럼 이해할 수 있는데,
사실 그는 그 이전에 유신론자로의 회심을 했고 아내를 만나서 사랑을 해서 결혼을 한 것은 상당한 이후 이야기 입니다.

그가 중년에 아내를 만나는 과정과 아내의 죽음까지는 영화화 되기도 했습니다. (제목: Shadow Lands ).

다시한번, Orbef님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12/05/3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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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그렇습니다. 저도 소수파지만서도,
개인적으로 토템에서부터 모든 종교까지,
사고를 시작한 인간이 죽음을 똑바로 받아들이지 못해 개발해낸 정서적 도피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별로 남을 설득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제 생각을 바꿀 생각도 없어서...
저와 비슷하게 대부분의 무신론자들(또한 대부분의 진보주의자하고도 겹치죠.)은 기본적으로 개인주의적이라 남이사 뭘하든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소수파가 되는건 아닌가 합니다.
키튼투
12/05/3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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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Bef 님// 저도 그 책 (헤아려본 슬픔, A grief observed)을 전에 읽었는데, 꽤 재미있었습니다. 미국에 여러 해 있었지만 영어가 서툴러서 한글책을 구입해서 보았는데, 저도 아내가 있는 지라, 남 얘기 같지 않더군요.
12/05/3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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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튼투 님// 아 그렇군요! 언제고 한번 읽어봐야 겠습니다. 다만 그동안 이 "여가활동" 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한 관계로 후폭풍이 장난이 아닌 지라, 당분간은 "일하는 기계" 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는 새벽 1시라서 이제 자야겠습니다. 이후에 댓글이 더 달린다면 아침에나 확인할 것 같네요. 모두들 좋은 하루 되세요!
一切唯心造
12/05/3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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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습니다
저는 신은 있지만 종교는 믿지 않습니다
현재의 종교는 신을 섬긴다는 탈만 쓰고있지 사욕을 위함을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이게 불가에서 말하는 말세라서인지 기독교에서 말하는 심판의 날이 다가와서인지는 모르겠네요 [m]
아르바는버럭
12/05/3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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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 책 제목이 뭔가요? -_-;
12/05/3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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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200!! 아침에 중간까지 읽다 퇴근길에 다시 보는데, 제목 정하신 목적이 달성된듯 합니다.
정성들여 써주신 글 덕에 즐거운 시간 보냈습니다.

다만... 아무리봐도 6번입장에서 쓰인 글은 아닌거 같은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동지의식을 느끼며 읽어갔는데,
막판에 4번으로 전향했다고 하시니 시체말로 멘붕요. 크크.
Orbef님 같은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유신론(신=기독교적 인격신)과 무신론(범신론 포함) 사이의 어느 한 지점을 자기 스스로 판단하여 선택하는 거요.
어느정도 나이가 되어서 양자를 비교해볼 나이가 되기도 전에 모태신앙을 통해 한쪽 입장에만 크게 노출되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거든요.
김연아이유리
12/05/31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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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정하고 쓰셨는데 추게로 얼른 가버리세요!

2. 저는 꽤 오래전부터 4번에 가깝지만 조금은 다릅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신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던지 간에 그것을 진짜로 남과 공유하거나 보편적으로 인정받을 방법이 없다. 정도 일것 같습니다. 저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사실 왠지모르게 신이 있을것/있어야 할것 같다 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제가 신의 존재/부존재를 안다 하더라도 남에게 그것을 납득시킬 방법은 없다고는 확신합니다.

3. "정신이라는 것은 환상이고 우리에게 자유 의지는 없다. '나' 라는 개념마저 환상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결과적으로 이런 사유는 불교의 핵심에 속합니다. "나라는 존재가 환상이라는것" 다시말해 "무아"를 정말로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불가에서 말하는 수행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저는 진짜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믿는 세상이 어둡고 황량할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4. 뜬금없긴 하지만 사실 진지하게 고백하자면 제가 믿는 종교는 "수학"입니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의 손길이 닿은 것중에서 그나마 수학체계가 가장 신에게 가까운 것들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학의 언어로 기술된 것만이 그나마 남과 생각을 진짜로 교환할수 있고 비교적 상대방의 머릿속에 있는것과 제 머릿속에 있는것이 compatible 하다고 믿습니다. 사실 그래서 신에 가깝다고 생각하는것이고요.
루치에
12/06/01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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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어서 눈팅만 하려다가 댓글 달고 갑니다.
Orbef님 글에서는 겸손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져서 좋습니다.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자세일까요?
나의 의견과 충돌되는 타인의 의견을 포용하는 게 어렵다는 걸 종종 느끼는 저로서는, Orbef 님의 자세가 부럽습니다.

자유의지와 관련해서는 여러가지 논의가 있겠습니다만... 신경과학자 집단 중 상당수가 자유의지의 존재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그 근거가 무신론이라고 보는 건 다소 부적절하고, ('무신론적인 시각에 입각할 때 비로소 자유의지의 존재를 부정하게 된다'는 논리적인 인과관계는 없습니다. ) 유물론적인 시각에 입각할 때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유물론과 무신론의 밀접한 관계를 생각한다면, 그렇게 큰 차이는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1. Naturalism 이 진실이라면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물질 간의 인과율에 따른 상호작용에 불과하다
2.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이 인과율에 따른 물질 간의 상호작용에 불과하다면,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도 물질 작용에 불과하다
3. 인간의 이성이 물질 작용에 불과하다면 인간의 이성은 인과율의 법칙을 따른다
4. 그렇다면 인간에게 자유 의지란 없다

논증을 이렇게 정리하셨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대니얼 데닛의 독특한 논증을 소개하고자 합니다.(데닛은 도킨스의 철학적 지원자라, 도킨스의 저작을 접한 사람이라면 익숙한 이름이죠. Orbef님께서도 당연히 아시겠지만) 그는 유물론과 상충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의지의 존재를 이끌어 내는 논증을 펼칩니다. 거칠게 요약하면 < '인과율의 법칙'이 자유의지를 진화시켰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A의 상황에서는 a를 하라' 는 행동패턴을 가진 개체를 상황-행위 기계라고 한다면, 'A의 상황에서는 a-z비교하여 결정' 하는 행동패턴을 지닌 개체를 '선택 기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자연계에서 인간은 최고 수준의 선택 기계입니다. 물론 이런 의미의 '선택가능성'이 전통적인 의미의 자유의지 개념과 일치하는 지 여부는 논란이 있을 수 있고, 구체적인 진화 과정의 그림이 스토리텔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일견 설득력있는 논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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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루이스의 Naturalism 관련 논증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3. 인간의 이성이 물질 작용에 불과하다면 인간의 이성이 산출해내는 논리적 명제라는 것들은 바람에 나뭇가지에 부딪혀 내는 소리와 다를 바가 전혀 없다. 물질 작용에는 '옳고 그름' 이라는 개념이 없다. 즉 이성과 논리라는 개념은 환상에 불과하다.

고 하는데, 인간의 이성이 물질 작용인 것과 그 산출물은 별개로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인간의 이성이 물질 작용이라고 하여 이성과 논리가 환상이라는 것은 논리적 비약입니다. 이성의 산출물인 명제와 논리는 그 체계 내에서 진리값을 가지며, 그 체계 내에서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외부세계의 실재를 인정하고, 그 안에 물질 이상의 것은 없다고 주장하다고 하여, 관념론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어차피 유물론 자체가 관념론의 일종이기도 하구요.


뭐 사소한 트집....입니다.
무신론과 자유의지는 연결지점이 있어서 종종 생각하곤 했습니다. (전 강성 무신론자입니다.)
자유의지 관련 논의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자유의지의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는 사실입니다. 그 개념의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는 '인간 본성의 상징'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다소 과장된 이미지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의지가 뭔지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걸 부정한다고 하여 제 삶이 황폐해질 것 같지는 않네요. 흐흐

어쨌든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새로운 생각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타...타진요라니. 그건 좀 ㅠㅠ)
명랑손녀
12/06/01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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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글 잘 보았습니다. 하마터면 이런 글을 놓칠 뻔했군요. 다만 여기 대다수의 리플과는 달리, 좀 다른 생각을 말해 보고자 합니다. 본문을 멍하게 보다가 6->4 를 보고는 정신이 번쩍 들면서 정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신 듯하여 리플을 쓰게 되었습니다.

일단 이 리플은 기본적인 이성을 가지고 현대 과학 기술의 성과(진화론 포함)를 인정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이 리플을 보시는 분들은 '과학도 또 하나의 종교' 운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것만큼 바보 같은 소리도 없거든요. 저는 당대의 거인들과 비교될 수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그들의 의견에 대해 생각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아마도 남들이 다 해 놓은 얘기들이라는 생각은 들지만요.

orlef님이 제시하신 다섯 문제,
1. 신이 있다면 이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는가
2. 합리주의 -- 신앙은 비이성적이지 않은가
3. 기적이 정말로 일어나는가
4. 2천 년 된 성경은 그냥 설화 아닌가
5. 왜 기독교여야 하는가. 착한 이교도는 어떻게 되는가
이들 중 몇 가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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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이 있다면 이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는가
물론 '신이 못 드는 바위 만드는 신' 같은 논리 장난은 패스하면서 시작합니다.

'자유 의지를 위한 악의 허용'부터 보도록 하죠. 악을 선택할 수 없다면 자유 의지가 없는 걸까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악한 마음이 전혀 없는 천사와 같은 존재라면, 오늘 출근을 자동차로 할지 지하철을 이용할지 결정할 수 없는 걸까요? 자유 의지라는 용어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선택 가능한 모든 것은 일어나야 한다' 라는 머피의 법칙스런 일이 벌어져야 자유 의지가 있다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악한 일을 할 수도 있지만 하기 정말정말 싫어서 안한다'고 누군가 대답한다면 그 사람은 자유의지가 없는 걸까요? 저는 길거리에 있는 달팽이를 절대 주워 먹지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가 '너는 자유 의지가 없어서 달팽이도 못 주워 먹는다'라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좀 물러나서 악이 있어야 자유의지가 있다고 하면, 진짜 절대선인 신이라면 그 악이 일어나는 빈도를 아주아주 낮추면 됩니다. 지금처럼 범죄율이 높을 이유는 전혀 없죠. 근데 신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건 진심입니다. 신이 존재한다면 말이죠.

아무튼 자유 의지 얘기는 뒤에 또 나오겠군요. 그 다음 문제가 더 중요한 것으로 보이므로 넘어가겠습니다. '악의 존재가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명제는 그 명제의 2번 주장, 즉 "'내가 싫으니 악한 것임' 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무엇무엇이 악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이미 절대 규범의 존재와, 절대 규범을 규정하는 절대자의 존재를 가정하고 있다."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선과 악을 먼저 정의해야 할 것 같군요. 위키백과(출처로 믿을 만한 문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에 의하면 선과 악은 각각 도덕률을 따르는 성질과 그렇지 않은 성질입니다. 즉 위의 2번 주장은 곧 '선악의 구별, 즉 도덕률은 절대자가 있어야 존재한다'라는 주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요?

위키백과의 morality 페이지를 참조하면, 도덕률은 의도, 결정, 행동이 가능한 존재(도덕존재라고 맘대로 부르겠습니다)에게만 의미가 있습니다. 맛없는 귤에겐 도덕은 의미가 없죠. 정신병자는 도덕존재와 좀 거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의도입니다. 행동이 나빴다 해도 의도가 나쁘지 않았다면 처벌이 경감되는 것은 모두 동의하시리라 봅니다. 도덕이란 무엇일까요? 도덕존재가 단 하나만 있다면 도덕은 의미가 없죠. 즉 도덕존재가 둘 이상 상호작용할 때만 도덕이 존재합니다. 도덕존재 A와 B가 있다고 가정합니다. 그들은 각자의 '이익'이 있고 그 이익을 위해 행동합니다. A의 의도, 결정, 행동이 B의 이익에 반하는 정도를 우리는 B의 '피해'라고 부릅니다. 모든 도덕존재는 각자의 의도를 가지면서 상호작용하고 각자의 이익을 늘리려 하죠. (경제학을 얘기하고 싶은 게 아닌데 죄송합니다)

이때 각자의 이익이 모두 커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원은 유한하므로 서로의 이익은 충돌하는 법이죠. 그때 필요한 게 도덕입니다. 도덕은 도덕존재가 둘 이상 상호작용할 때 의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로 상호작용하는 둘 이상의 도덕존재의 모임을 뭐라고 부를까요? 네. 정답은 '사회'입니다. 즉 도덕은 도덕존재들의 사회에서의 규칙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절대 잡히지 않는 연쇄살인자는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있고 그 사회의 적입니다. 도덕은 어떻게 생겼느냐는 질문은 중요한 질문입니다. 본문을 잠시 인용해 보죠.

"'나는 절대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 여자들을 연쇄 살인할 거야' 라는 사람이 있을 때 '그럼 안돼' 라고 말할 근거는 사실은 전혀 없습니다. 도킨스가 자신의 저작인 '만들어진 신'에서 도덕 관련한 부분에서는 형편없는 논리를 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도킨스는 '우리의 도덕규범은 진화의 결과다' 라고 이야기하면서 대충 퉁치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진화의 결과가 도덕규범이라고 치고, 나는 그 규범을 따를 생각이 없는데?'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도킨스는 그 사람에게 '너는 그러면 안 돼' 라고 말할 근거가 전혀 없거든요."

네. 그런 근거는 없습니다. 진화적으로 볼 때 저런 무적의 연쇄살인자가 나쁜 일을 하지 않도록 하는 진화 압력은 없죠. 도덕은 도덕존재들(사회 구성원이라고 부르죠)의 합의이고 그것을 범할 경우 법적 처벌을 받건, 사회적 평판이 떨어지건 합니다. 이것을 도덕적 처벌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도덕은 어디까지나 도덕적 처벌이 의미가 있는 존재에 한합니다. 사회에서 힘 쓰는 이들이 나쁜 짓 많이 하는 게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직장 상사, 지도교수, 군대 선임 등 (전문용어로 갑이라고 하죠) 나쁜 일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 경우에는 (혹은 평판이 떨어져 봤자 힘없는 말단직원, 대학원생, 일이등병 사이에서일 때) 문제가 생기기 쉽죠.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도덕률은 선한 신이 규정했다고 주장하는 분들에게 묻겠습니다. 그러면, 신이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진다면 악한 짓을 마음껏 해도 괜찮습니까? 신이 없으면 의미가 없는 게 도덕률일 테니까요. 무적의 연쇄살인범 이야기에서 신을 도입해서 좋아지는 것은 하나, '무적인 악인은 없다'입니다. 신은 누구든 처벌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오히려 '신이 처벌하지 않는다면 뭐든지 괜찮다'고 생각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쁜 짓 해도 믿기만 하면 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나오는지는 모르는 일이죠. 사실 5번 문제의 exclusivist 항목에서 보듯 믿기만 하면 나쁜 일 해도 된다(구원받는다)는 종파가 있다면, 그 종파에서 주장하는 도덕은 신이랑 대체 무슨 관계인 거죠?

저는 신이 있건 없건 스스로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가장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양심'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있는데 그것은 양심이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저는 신이 있건 없건 저에게 양심이 있음을 믿으며,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건 없건 그를 비난합니다. 왜 신이 있어야 도덕률이 있다고 주장하십니까? 신을 믿지 못하는 흡혈박쥐도 혈연 없는 다른 개체에게 피를 토해 먹입니다.

요점은 이것입니다. 선과 악을 신이 규정하느냐, 사회집단이 규정하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신이 없다고 해서 도덕이 없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악의 존재가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명제는 참이 아니며, 오히려 '선악은 신만이 규정한다' 내지는 '신이 금지하지 않은 일은 악이 아니다'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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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문제인 '합리주의 -- 신앙은 비이성적이지 않은가'는 사실 본문을 보면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인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저는 기독교에 대해 매우 무지하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각자가 존재하는 의미를 무엇이라고 설명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설마 '신이 만든 존재이고 신의 목적을 추구한다'인 건 아니겠죠. 애초에 모든 걸 할 수 있는 신의 목적이 따로 있어야 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리고 사람 아닌 존재의 목적은 도대체 뭐가 돼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알에서 깨어나 잎을 먹으며 자라다가 기생벌에게 산 채로 몸이 파먹혀 죽은 애벌레의 목적은 뭘까요?

좀 나쁜 예를 들자면, 제가 죽으면 우리 부모님은 틀림없이 매우 슬퍼하실 것입니다. (가끔 그런 상상을 하면서 매우 우울해질 때가 있습니다) 신이 있건 없건 저는 약간 존재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죠. 물론, 부모님의 존재 의의가 없다면 이 얘기들은 아무 의미가 없는 건 사실입니다. 다소 감정적인 얘기가 되었지만 이것은 중요한 주장과 관계가 있습니다. '각자의 존재 의의는 각자가 만든다'입니다.

무신론적 관점에서는, 우리는 그냥 어쩌다 보니 존재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문제라는 거죠? 저는 매일 일어나 일하고 먹고 싸고 놉니다. 사실 일하는 시간보다 노는 시간이 더 많은데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있지만 저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제 일이 있으며 즐기는 취미가 있습니다. 전 그걸로 족합니다. 물론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은 문구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과대 평가하게 만드는 (긍정적) 효과는 있을지언정 그게 진실을 말해 주진 않습니다. 인간 아닌 (어쩌면 인간을 포함해야 할지도 모릅니다만) 모든 생명체들의 눈 뜨고 보지 못할 생존 투쟁을 보노라면 이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세상이 아름다운가, 그렇지 않은가는 신의 존재 유무를 말할 때는 도움이 안 됩니다. 늘 좋은 게 진실인 건 아니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본문을 잠시 인용하겠습니다. '기독교적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신의 목적을 위해서 이 세상에 왔고, 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불멸의 존재가 되어 신과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근거? 세상의 수많은 사람이 이 말을 본능적으로 믿는다는 것이 그 근거다.' 자,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무신론은 세상 모든 종교(넓게 보면 신비주의)를 배격합니다. 무신론자 입장에서는 기독교는 그저 신자가 좀 많은 종교일 뿐이고 다른 종교, 예를 들면 이슬람교나 불교, 혹은 고대 그리스의 종교도 각자 주장하는 바가 있습니다.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요? 지금 어딘가에서 제우스와 아폴론이 농담 따먹으며 하품짓고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죠. 따라서 저런 근거는 저에겐 아무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모든 종교는 자기를 철썩같이 믿는 신도를 가져봤고 그 숫자는 아무 의미도 없죠.

아무튼 저는 종교가 없고 가질 생각도 없지만 전 제 스스로의 의미를 부여하며 잘 살아갈 겁니다. 물론 제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종교가 있다고 해서 딱히 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건 자기위안일 뿐이고, 자기위안을 위해서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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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문제는 기적 이야기입니다. 사실 기적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 수많은 증거와 증인이 있으니 믿어야 할까요?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모든 종교는 각각의 기적을 가졌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그 기적들은 어떤 특정한 신의 진실성을 보장하지 않은 그냥 초현실적인 (것으로 보이는) 현상이거나, 혹은 다른 종교의 기적들과 모순되게 됩니다. 다시 한 번, 신도 수가 많다고 해서 어떤 종교가 참일 확률은 올라가지 않습니다. "여러 종교 논리"는 그만하고 본문처럼 naturalism 과 supernaturalism 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리플 길이를 보면 아시겠지만 시간이 좀 걸리고 있습니다. 그 동안 루치에님께서 결정론(인과율)적인 세계에서의 자유의지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데닛의 주장을 소개해 주셨습니다만, 한 가지 예를 들어서 루이스의 주장, 즉 'supernaturalism이 참이다'를 반박하고자 합니다. 왠지 이 얘기는 틀림없이 누군가가 주장했을 것 같군요. 스타 트렉을 보시면 replicator 라는 기계가 있습니다. 이것과 비슷하게, 어떤 물체를 분자 구조 하나하나까지 완벽하게 복제하는 기계를 생각해 봅니다. 이 복제기계는 주어진 물체의 물질적인 성질만을 완벽하게 복제해 냅니다. 이 때 인간을 복제한다면 복제된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요?

복제된 인간이 살지 못한다거나 아무 생각도 못하고 숨만 쉰다거나, 혹은 그럴싸하게 인간처럼 행동하지만 "영혼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맨 마지막 주장은 기각하겠습니다. 전 누군가가 저에게 '넌 인간처럼 보이고, 너의 행동을 보고서는 인간이 아님을 알 수 없지만 넌 영혼이 없어'라고 말한다면 전 그 사람과 상종하지 않을 겁니다. 박테리아를 복제해 볼까요? 박테리아는 엄청 복잡한 분자기계에 가깝습니다. 아마도 복제하더라도 제대로 작동할 것 같군요. 그러면 이끼, 버섯, 작은 곤충, 개구리나 개, 고양이, 침팬지를 복제한다면 어떨까요? 그들은 복제해도 여전히 아이덴티티를 유지한 생명체일까요? 박테리아의 영혼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딘가에서는 대답이 참에서 거짓으로 바뀌어야겠죠. 인간만이 예외라고 주장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인간은 미생물에서부터 연속적으로 진화해 왔으므로 어느 순간 영혼이 생겼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정 종교에서는 이 순간이 언제인지 알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그건 과학 하는 사람의 답일 수는 없겠군요. 따라서, 제 입장에서의 답은 당연히 무엇을 복제하건 똑같은 대상이 나옵니다. 생물체건 무생물이건, 사람이건 귀뚜라미건 말이죠. 이건 (복제기계만 있다면) 검증 가능한 과학적인 명제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이성은 물질 작용이 맞고 supernaturalism 은 배격됩니다. 본문에서 인용한 "정신이라는 것은 환상이고 우리에게 자유 의지는 없다." 와 같은 주장은 그 이후의 이야기로서 뇌신경과학자, 인공지능 연구자, 과학철학자들의 문제지 종교나 supernaturalism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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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썰을 풀었습니다만, 다소 논리적이지 못하고 감정적일지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6에서 4로 이전하셨다는 orbef님의 말씀에 '이렇게 무신론자 하나가 또 떠나는가' 하는 우울한 마음이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전 자러 가겠습니다.
12/06/01 07:37
수정 아이콘
명랑손녀님//
상세한 댓글 너무 감사드립니다. 아래에 제가 할 수 있는 한 자세하게 제 의견을 달아보겠습니다. (길어질 듯하여 계층형 댓글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1. 신이 있다면 이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는가
'자유 의지를 위한 악의 허용'부터 보도록 하죠. 악을 선택할 수 없다면 자유 의지가 없는 걸까요?
**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런 식으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네요. 사람들이 모두 좋은 일을 하되, 좋은 일을 어떤 식으로 할 지에 대해서만 자유로이 결정하는 세상이 있다면 그것도 별로 문제가 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좀 물러나서 악이 있어야 자유의지가 있다고 하면, 진짜 절대선인 신이라면 그 악이 일어나는 빈도를 아주아주 낮추면 됩니다. 지금처럼 범죄율이 높을 이유는 전혀 없죠. 근데 신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건 진심입니다. 신이 존재한다면 말이죠.
**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악이 일어나는 대로 바로바로 강력한 징벌을 가하는 신이 있다고 가정할 때, 실질적으로는 인간은 자유를 지닌 것이 아니다' 라고 (제가 아니라) CS 루이스를 비롯한 기독교 변증학계에서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의도입니다. 행동이 나빴다 해도 의도가 나쁘지 않았다면 처벌이 경감되는 것은 모두 동의하시리라 봅니다.
** 종교와는 관계가 없지만, 현대 철학에서는 도덕을 결과로 판단해야 하는 지 의도로 판단해야 하는 지도 굉장한 논쟁의 대상이 되더군요.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도덕률은 선한 신이 규정했다고 주장하는 분들에게 묻겠습니다. 그러면, 신이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진다면 악한 짓을 마음껏 해도 괜찮습니까?
** 도킨스도 마찬가지 질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기독교인에게 "그럼 결국 당신은 신에게 벌 받지 않기 위해서 도덕을 지킨다는 거요?" 라고 물어봤더니 기독교인이 대답을 못했다고 하더군요.

무적의 연쇄살인범 이야기에서 신을 도입해서 좋아지는 것은 하나, '무적인 악인은 없다'입니다. 신은 누구든 처벌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오히려 '신이 처벌하지 않는다면 뭐든지 괜찮다'고 생각하게 될 수 있습니다.
** 종교에서 말하는 도덕 원리의 기본이 꼭 "신의 처벌" 때문 같진 않습니다. "나는 신의 처벌이 두렵지 않아"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를 테면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루시퍼), 그 사람에게는 다시 처음의 문제로 돌아가서 도덕을 지키라고 강요할 근거가 없지요.
** 종교 쪽에서는 신의 처벌은 오히려 부수적인 것이고, 신은 위대한 분이고 신의 말은 항상 옳으니 신의 명령을 지켜야 하는 당위가 있다.. 이런 논리 아닐까 싶습니다. Be (존재) 에서 Ought (당위) 를 유도할 수 없다는 것이 도덕철학의 최대 난점이고, "신의 명령은 무조건 지켜야 해" "왜?" "그건 원래 그런 거야" 라는 것이 한 가지 해결책이 되는 것이지요. 다만, 언제나처럼 종교는 맨 끝에는 "원래 그런 거야" 라는 식으로 끝나지요. 이걸 철학적 자살이라고 보아도 할 말은 없습니다.

그래서 '나쁜 짓 해도 믿기만 하면 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나오는지는 모르는 일이죠. 사실 5번 문제의 exclusivist 항목에서 보듯 믿기만 하면 나쁜 일 해도 된다(구원받는다)는 종파가 있다면, 그 종파에서 주장하는 도덕은 신이랑 대체 무슨 관계인 거죠?
** 제 친구가 그래서 이번 대통령이 자신과 같은 교회를 다닌다는 사실에 좌절해서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사실 universalist 쪽도 그런 맥락에서 보면 조금 어이없는 면이 있지요.

저는 신이 있건 없건 스스로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가장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양심'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있는데 그것은 양심이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저는 신이 있건 없건 저에게 양심이 있음을 믿으며,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건 없건 그를 비난합니다. 왜 신이 있어야 도덕률이 있다고 주장하십니까? 신을 믿지 못하는 흡혈박쥐도 혈연 없는 다른 개체에게 피를 토해 먹입니다.
** 결국 무신론자는 이 방향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이 방향입니다. 다만 이 논리대로 도덕을 유도하려면 "히틀러, 유영철, 스탈린 나쁜 놈들!" 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양심에 따라서 행동했으니 말입니다. (최소한 히틀러는 확실히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 행동했습니다. 히틀러가 부정 축재등의 개인적 약점이 거의 없다는 것은 대부분 인정하지요)

요점은 이것입니다. 선과 악을 신이 규정하느냐, 사회집단이 규정하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신이 없다고 해서 도덕이 없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악의 존재가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명제는 참이 아니며, 오히려 '선악은 신만이 규정한다' 내지는 '신이 금지하지 않은 일은 악이 아니다'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게 할 수 있습니다.
** Problem of Evil 에서만큼은 이야기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런 악한 일들이 벌어지는가? 신은 어디에 있는가?" 라는 문제 의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무신론을 유지해도 됩니다. 하지만 저런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하는 사람은 무신론을 펼 수 없다는 것이 루이스의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해당 무신론자가 악을 자기 양심에 따라서 정의한다면, 결국 Problem of Evil 을 펴는 무신론자는 "왜 내 마음에 안드는 일들이 벌어지는가? 신은 어디에 있는가?" 라는 말을 하고 있는 셈이 되니까요.

두 번째 문제인 '합리주의 -- 신앙은 비이성적이지 않은가'는 사실 본문을 보면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인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저는 기독교에 대해 매우 무지하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각자가 존재하는 의미를 무엇이라고 설명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설마 '신이 만든 존재이고 신의 목적을 추구한다'인 건 아니겠죠.
** 저는 기독교의 교리가 저렇다고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인본주의 종교가 아니라 신본주의 종교입니다. 다만 "우리는 본질적으로 신의 목적에 따라 살 때 가장 행복하다" 라는 입장이 추가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 아닌 존재의 목적은 도대체 뭐가 돼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알에서 깨어나 잎을 먹으며 자라다가 기생벌에게 산 채로 몸이 파먹혀 죽은 애벌레의 목적은 뭘까요?
** 이것 역시 Problem of Evil 입니다. 기생벌에게 산 채로 몸이 파먹혀 죽은 애벌레를 (이걸 이벤트 A 라고 정의하겠습니다) 보면서 무언가 슬픈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이미 이벤트 A 가 뭔가 "본질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기생벌은 이벤트 A 를 보면서 즐거워할텐데, 왜 이벤트 A 를 보면서 문제를 느끼는 사람은 굳이 애벌레쪽으로 감정을 이입하고, 이벤트 A 가 "본질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느낄까요?
** 저 개인 입장 (기존의 무신론자로서의 입장) 이라면, 목적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냥 이벤트 A 가 발생한 것이고 그걸로 얘기는 끝입니다.
** 기독교적 입장을 대변하자면, 생태계를 창조하기 위한 댓가라고 이야기할 것 같습니다. 자유의지를 선물로 주기 위해서 악이 필요했듯이, 생명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죽음과 고통이 따라올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다소 감정적인 얘기가 되었지만 이것은 중요한 주장과 관계가 있습니다. '각자의 존재 의의는 각자가 만든다'입니다.
** 무신론자로서의 제 입장은 님에게 완전히 동의합니다. 성인이 된 이후로 평생 그렇게 믿으며 살았습니다. 제 성경은 시지프의 신화와 짜라투스투라였습니다.
** 다만 체스터톤의 말 중 몇 가지를 인용하겠습니다. "인간은 인간 이상의 대의를 움직일 때 가장 위대한 존재가 된다. 톨스토이는 전원의 삶을 찬양했고 니체는 투쟁의 삶을 찬양했지만 잔 다르크는 농부의 딸로 태어나 투쟁의 삶을 살았다. 누가 위대한 존재인가? 먹물쟁이들인가 잔다르크인가? 니체가 실제로 한 일이 뭔가? 뒤에서 비웃을 줄이나 알 지 호탕하게 웃을 줄도 모르는 니체같은 사람이 정말로 위대한 사람인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주인공으로 살아갈 때야말로 인간은 정말 조그만 존재가 된다."
** 저는 여전히 체스터톤보다는 카뮈와 니체가 더 멋지다고 느껴지지만, 한번쯤 내가 dogma 에 사로잡힌 것은 아닌 지 돌이켜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신론적 관점에서는, 우리는 그냥 어쩌다 보니 존재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문제라는 거죠? 저는 매일 일어나 일하고 먹고 싸고 놉니다. 사실 일하는 시간보다 노는 시간이 더 많은데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있지만 저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제 일이 있으며 즐기는 취미가 있습니다. 전 그걸로 족합니다. 물론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은 문구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과대 평가하게 만드는 (긍정적) 효과는 있을지언정 그게 진실을 말해 주진 않습니다.
** "진실" 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무신론자들은 신이 없는 것이 진실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 진실은 어떤 식으로 추론해낸 것일까요? 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했으니 회의하는 것입니다. 무신론자들이 말하는 진실이라는 것은 사실 따져보면 skepticism 입니다. 저는 그것이 "진실" 이라고 단언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우리는 신의 존재를 모르는 것이지, 신의 부존재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아닌 (어쩌면 인간을 포함해야 할지도 모릅니다만) 모든 생명체들의 눈 뜨고 보지 못할 생존 투쟁을 보노라면 이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세상이 아름다운가, 그렇지 않은가는 신의 존재 유무를 말할 때는 도움이 안 됩니다. 늘 좋은 게 진실인 건 아니죠.
** 위에서 말씀하신 것을 돌려드려보겠습니다. "눈 뜨고 보지 못할 생존 투쟁" 이 뭐가 문제라는 거지요? 저는 두 달 전만해도 전혀 문제를 느끼지 않았습니다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본문을 잠시 인용하겠습니다. '기독교적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신의 목적을 위해서 이 세상에 왔고, 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불멸의 존재가 되어 신과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근거? 세상의 수많은 사람이 이 말을 본능적으로 믿는다는 것이 그 근거다.' 자,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무신론은 세상 모든 종교(넓게 보면 신비주의)를 배격합니다. 무신론자 입장에서는 기독교는 그저 신자가 좀 많은 종교일 뿐이고 다른 종교, 예를 들면 이슬람교나 불교, 혹은 고대 그리스의 종교도 각자 주장하는 바가 있습니다.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요? 지금 어딘가에서 제우스와 아폴론이 농담 따먹으며 하품짓고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죠. 따라서 저런 근거는 저에겐 아무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모든 종교는 자기를 철썩같이 믿는 신도를 가져봤고 그 숫자는 아무 의미도 없죠.
**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제 첫 댓글에서 inclusivist 기독교쪽의 입장을 설명드린 것 같습니다. 아 물론 "일부" 한국형 기독교회에는 그런 거 없습니다. 팬티목사가 여전히 활동하는 교회에서 대단한 것을 바라진 않습니다. 한국 교회를 증오하는 것은 제가 탑 1% 안에 들어갈 겁니다.

아무튼 저는 종교가 없고 가질 생각도 없지만 전 제 스스로의 의미를 부여하며 잘 살아갈 겁니다. 물론 제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종교가 있다고 해서 딱히 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건 자기위안일 뿐이고, 자기위안을 위해서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으니까요.
** CS 루이스의 이야기 중 하나를 인용하겠습니다. "People say that Christianity is an escape FROM reality, but I'd say it is an escape TO reality. If you are imprisoned, your escape from prison will be INTO a real world, not from it"
** 무신론자들이 종교를 자기위안이라고 보는 이유는, 신이 없다고 전제를 깔기 때문입니다. 신이 없다면 종교는 당연히 자기위안이지요. 그런데 만약 신이 있다면? 종교야말로 현실적인 선택이고 무신론이 현실도피가 됩니다.
** 따라서 결국 이 모든 얘기를 통한 제 요지는, 평생 무신론자로 살더라도 최소한 한 번쯤은 자신의 신념에 어떤 근거가 있는 지 돌이켜보면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문제는 기적 이야기입니다. 사실 기적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 수많은 증거와 증인이 있으니 믿어야 할까요?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모든 종교는 각각의 기적을 가졌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그 기적들은 어떤 특정한 신의 진실성을 보장하지 않은 그냥 초현실적인 (것으로 보이는) 현상이거나, 혹은 다른 종교의 기적들과 모순되게 됩니다. 다시 한 번, 신도 수가 많다고 해서 어떤 종교가 참일 확률은 올라가지 않습니다. "여러 종교 논리"는 그만하고 본문처럼 naturalism 과 supernaturalism 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 모든 종교의 기적이 다 사실일 수도 있겠지요. CS 루이스는 그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 alleged miracles 중에 상당수는 착각이거나 조작이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중 진짜 기적이 있느냐입니다. 단 하나만 있어도 naturalism 은 무너집니다.

리플 길이를 보면 아시겠지만 시간이 좀 걸리고 있습니다. 그 동안 루치에님께서 결정론(인과율)적인 세계에서의 자유의지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데닛의 주장을 소개해 주셨습니다만, 한 가지 예를 들어서 루이스의 주장, 즉 'supernaturalism이 참이다'를 반박하고자 합니다. 왠지 이 얘기는 틀림없이 누군가가 주장했을 것 같군요. 스타 트렉을 보시면 replicator 라는 기계가 있습니다. 이것과 비슷하게, 어떤 물체를 분자 구조 하나하나까지 완벽하게 복제하는 기계를 생각해 봅니다. 이 복제기계는 주어진 물체의 물질적인 성질만을 완벽하게 복제해 냅니다. 이 때 인간을 복제한다면 복제된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요?
** 복제된 인간은 쌍둥이같은 존재가 되겠지요.
** 다만 저는 이게 supernaturalism 을 부정하는 근거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와우에서 캐릭터 생성을 하고 플레이어가 그 캐릭터를 조종하듯이, 물질로서의 인간이 생겨나고 영적 차원에서 어떤 힘과 결합함으로서 진정한 인간이 된다고 보면, 말씀하신 예와 supernaturalism 간에 아무 모순도 없지요.
** 물론 제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결론 부분에서도 말씀드렷듯이 저는 아직도 "이거 다 착각일 것 같아" 라는 쪽이고, 물질계로 얘기 끝일 것 같습니다. 다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 을 부정할 수 없다는 정도의 입장으로 옮겨왔을 뿐입니다.

인간만이 예외라고 주장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인간은 미생물에서부터 연속적으로 진화해 왔으므로 어느 순간 영혼이 생겼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 기독교의 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꼭 인간만을 위해서 이 세상을 창조했을 것 같진 않습니다. 인간이 최종 목적도 아닐테고요. 사실 100만년쯤 지나면 이미 인간은 조금 다른 존재로 진화할텐데 (잘 아시겠지만, 자연 선택은 절대로 멈추지 않지요), 인간이 우주 창조의 최종 목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이론이 성립하려면 우주는 빨리 멸망해야 합니다. 남은 시간이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이성은 물질 작용이 맞고 supernaturalism 은 배격됩니다. 본문에서 인용한 "정신이라는 것은 환상이고 우리에게 자유 의지는 없다." 와 같은 주장은 그 이후의 이야기로서 뇌신경과학자, 인공지능 연구자, 과학철학자들의 문제지 종교나 supernaturalism과는 무관합니다.
**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저도 님처럼 인간의 이성은 물질 작용이 맞다고 "머리로는" 생각합니다. 다만 감정적으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군요.

이상 썰을 풀었습니다만, 다소 논리적이지 못하고 감정적일지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6에서 4로 이전하셨다는 orbef님의 말씀에 '이렇게 무신론자 하나가 또 떠나는가' 하는 우울한 마음이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전 자러 가겠습니다.
** 양해랄 것이 뭐 있나요. 사실은 이런 댓글이 하나도 달리지 않아서 조금 아쉽던 차였습니다. 무신론자 vs 교인을 굳이 편을 가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본문에서 인용한 CS 루이스의 모든 글 중에서, 다른 것 다 빼고 딱 하나 완전 동의한 것이 있었는데, Aslan 과 Emeth 의 에피소드였습니다. 특정인이 어느 진영에 속했느냐보다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침에 뵙겠습니다.
마늘향기
12/06/0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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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독교에서 무교로 전환한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꽤 오랜시간 동안 선교단체에 몸 담아 온 경험에 의하면, 정말 말도 안되는 '기도의 응답'은 생각보다 흔히 일어납니다.
이런 것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본 신자는 다시는 무신론자가 될 수 없죠.
명랑손녀
12/06/01 19:04
수정 아이콘
1. 신이 있다면 이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는가

저는 신이 있건 없건 스스로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가장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양심'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있는데 그것은 양심이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저는 신이 있건 없건 저에게 양심이 있음을 믿으며,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건 없건 그를 비난합니다. 왜 신이 있어야 도덕률이 있다고 주장하십니까? 신을 믿지 못하는 흡혈박쥐도 혈연 없는 다른 개체에게 피를 토해 먹입니다.
** 결국 무신론자는 이 방향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이 방향입니다. 다만 이 논리대로 도덕을 유도하려면 "히틀러, 유영철, 스탈린 나쁜 놈들!" 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양심에 따라서 행동했으니 말입니다. (최소한 히틀러는 확실히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 행동했습니다. 히틀러가 부정 축재등의 개인적 약점이 거의 없다는 것은 대부분 인정하지요)
*** 제가 전 글에서 좀 말을 정리하지 않고 한 경향이 있습니다. 저 문단도 그랬던 것 같군요. 진화심리학에서는 보편적 도덕률 내지 보편적 양심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뭔지 잘 모르겠군요) 모두의 양심이 다 같은 건 절대 아니지만 대다수의 사람에게 대부분의 양심은 일치합니다.
도덕이 서는 과정에서 보편적 양심이 큰 역할을 했지만, 도덕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규범입니다. 즉 양심이 없는 사이코패스라도 사회에서 그를 악하다고 규정할 수 있죠.

요점은 이것입니다. 선과 악을 신이 규정하느냐, 사회집단이 규정하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신이 없다고 해서 도덕이 없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악의 존재가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명제는 참이 아니며, 오히려 '선악은 신만이 규정한다' 내지는 '신이 금지하지 않은 일은 악이 아니다'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게 할 수 있습니다.
** Problem of Evil 에서만큼은 이야기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런 악한 일들이 벌어지는가? 신은 어디에 있는가?" 라는 문제 의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무신론을 유지해도 됩니다. 하지만 저런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하는 사람은 무신론을 펼 수 없다는 것이 루이스의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해당 무신론자가 악을 자기 양심에 따라서 정의한다면, 결국 Problem of Evil 을 펴는 무신론자는 "왜 내 마음에 안드는 일들이 벌어지는가? 신은 어디에 있는가?" 라는 말을 하고 있는 셈이 되니까요.
*** 제가 오해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전(前) 리플에 따르면 '왜 이런 악한 일들이 벌어지는가?'에 대한 답은 간단합니다. 개개인의 이익이 상충하기 때문이죠. 신이 있건 없건 말이죠. 악의 정의를 제가 내려 보자면, '다른 도덕존재에게 해를 주려는 의도를 가진 행동'입니다. problem of evil 과 '악의 존재가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라는 명제에 대해 제가 오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므로 더 토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무신론적 관점에서는, 우리는 그냥 어쩌다 보니 존재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문제라는 거죠? 저는 매일 일어나 일하고 먹고 싸고 놉니다. 사실 일하는 시간보다 노는 시간이 더 많은데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있지만 저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제 일이 있으며 즐기는 취미가 있습니다. 전 그걸로 족합니다. 물론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은 문구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과대 평가하게 만드는 (긍정적) 효과는 있을지언정 그게 진실을 말해 주진 않습니다.
** "진실" 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무신론자들은 신이 없는 것이 진실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 진실은 어떤 식으로 추론해낸 것일까요? 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했으니 회의하는 것입니다. 무신론자들이 말하는 진실이라는 것은 사실 따져보면 skepticism 입니다. 저는 그것이 "진실" 이라고 단언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우리는 신의 존재를 모르는 것이지, 신의 부존재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 제가 심각한(?) 회의주의자인 것은 사실입니다. 신과 러셀의 찻주전자는 똑같은 이유로 존재를 인정할 '필요'가 없지요. 따지고 보면 신과 러셀의 찻주전자의 차이는 '믿는 사람의 수의 차이' 밖에 없습니다. 믿는 사람이 없으니 제우스는 존재하지 않는 걸까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본문을 잠시 인용하겠습니다. '기독교적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신의 목적을 위해서 이 세상에 왔고, 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불멸의 존재가 되어 신과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근거? 세상의 수많은 사람이 이 말을 본능적으로 믿는다는 것이 그 근거다.' 자,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무신론은 세상 모든 종교(넓게 보면 신비주의)를 배격합니다. 무신론자 입장에서는 기독교는 그저 신자가 좀 많은 종교일 뿐이고 다른 종교, 예를 들면 이슬람교나 불교, 혹은 고대 그리스의 종교도 각자 주장하는 바가 있습니다.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요? 지금 어딘가에서 제우스와 아폴론이 농담 따먹으며 하품짓고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죠. 따라서 저런 근거는 저에겐 아무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모든 종교는 자기를 철썩같이 믿는 신도를 가져봤고 그 숫자는 아무 의미도 없죠.
**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제 첫 댓글에서 inclusivist 기독교쪽의 입장을 설명드린 것 같습니다. 아 물론 "일부" 한국형 기독교회에는 그런 거 없습니다. 팬티목사가 여전히 활동하는 교회에서 대단한 것을 바라진 않습니다. 한국 교회를 증오하는 것은 제가 탑 1% 안에 들어갈 겁니다.
*** inclusivist 얘기와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제가 궁금해하는 것은 진실 그 자체지, 이교도가 처벌받느냐 구원받느냐의 얘기가 아니거든요. 무슬림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해서 기독교와 이슬람교 둘 다가 진실일 수는 없습니다. 어느 쪽은 예수가 신이라 하고 다른 쪽은 예수는 인간일 뿐 신이 아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리플 길이를 보면 아시겠지만 시간이 좀 걸리고 있습니다. 그 동안 루치에님께서 결정론(인과율)적인 세계에서의 자유의지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데닛의 주장을 소개해 주셨습니다만, 한 가지 예를 들어서 루이스의 주장, 즉 'supernaturalism이 참이다'를 반박하고자 합니다. 왠지 이 얘기는 틀림없이 누군가가 주장했을 것 같군요. 스타 트렉을 보시면 replicator 라는 기계가 있습니다. 이것과 비슷하게, 어떤 물체를 분자 구조 하나하나까지 완벽하게 복제하는 기계를 생각해 봅니다. 이 복제기계는 주어진 물체의 물질적인 성질만을 완벽하게 복제해 냅니다. 이 때 인간을 복제한다면 복제된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요?
** 복제된 인간은 쌍둥이같은 존재가 되겠지요.
** 다만 저는 이게 supernaturalism 을 부정하는 근거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와우에서 캐릭터 생성을 하고 플레이어가 그 캐릭터를 조종하듯이, 물질로서의 인간이 생겨나고 영적 차원에서 어떤 힘과 결합함으로서 진정한 인간이 된다고 보면, 말씀하신 예와 supernaturalism 간에 아무 모순도 없지요.
*** 미생물에서 인간에 이르는 진화적 연속체에서, 과연 어느 순간에 그 영적 차원의 힘이 결합했느냐가 제가 궁금한 점입니다. 인간이 최종 지점이 아닌 거랑은 아무 상관도 없죠.

이상 썰을 풀었습니다만, 다소 논리적이지 못하고 감정적일지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6에서 4로 이전하셨다는 orbef님의 말씀에 '이렇게 무신론자 하나가 또 떠나는가' 하는 우울한 마음이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전 자러 가겠습니다.
** 양해랄 것이 뭐 있나요. 사실은 이런 댓글이 하나도 달리지 않아서 조금 아쉽던 차였습니다. 무신론자 vs 교인을 굳이 편을 가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본문에서 인용한 CS 루이스의 모든 글 중에서, 다른 것 다 빼고 딱 하나 완전 동의한 것이 있었는데, Aslan 과 Emeth 의 에피소드였습니다. 특정인이 어느 진영에 속했느냐보다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침에 뵙겠습니다.
*** 맞습니다. 무신론자와 교인의 편을 가를 이유는 없지요. 하지만 진리는 하나일 테고 교인들이 저를 '구원받지 못할 인간' 이라고 마음 속 어딘가에서 생각한다는 것을 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각의 삼등분 작도법이 존재한다'라고 믿는 사람은 그저 바보일 뿐이지만 나의 인격과 인권에 대해 있지도 않은 신을 들먹이며 부정할 사람들을 상상만 해도 기분이 매우 나쁩니다. 각설하고, Aslan과 Emeth의 에피소드를 보며 든 생각은 이랬습니다. '누굴 믿건 상관없이 착하게 살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도덕과 신앙은 별개의 일임을 인정하는 것 아닌가?' 역시 inclusivist 이야기인가요? 제가 뭔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가요? 도덕은 신이 규정한 것이라면 어떻게 inclusivist 가 존재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다음 글을 기다리며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사실 이렇게 '평화롭게' 종교 토론을 하는 건 난생 처음이군요.
12/06/0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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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다른 관점에서 말씀을 드려야 제 입장이 더 잘 전달될 것 같습니다. 제가 기존 6번이었던 시절을 기준으로 보면:

*** 제가 전 글에서 좀 말을 정리하지 않고 한 경향이 있습니다. 저 문단도 그랬던 것 같군요. 진화심리학에서는 보편적 도덕률 내지 보편적 양심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뭔지 잘 모르겠군요) 모두의 양심이 다 같은 건 절대 아니지만 대다수의 사람에게 대부분의 양심은 일치합니다. 도덕이 서는 과정에서 보편적 양심이 큰 역할을 했지만, 도덕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규범입니다. 즉 양심이 없는 사이코패스라도 사회에서 그를 악하다고 규정할 수 있죠.
//저는 보편적 양심이라는 개념을 믿지 않습니다. 애초에 양심이라는 단어 자체가 말장난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인간에게 존재하는 것은 욕망과 이성 딱 두 가지 뿐이고, 이성의 특정 영역 -- 이렇게 하면 남들이 날 죽일 거 같애 -- 를 양심이라고 이름 붙인 것 뿐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양심에 따르건 말건 선악과는 아무 상관 없고, 도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규범으로 선악을 정한다면 "만들어진 신" 을 사려면 계산대에서 싸늘한 눈길을 감수해야 하는 미국에서 무신론은 "악" 입니다. 저는 그런 거 없습니다.

*** 제가 오해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전(前) 리플에 따르면 '왜 이런 악한 일들이 벌어지는가?'에 대한 답은 간단합니다. 개개인의 이익이 상충하기 때문이죠. 신이 있건 없건 말이죠. 악의 정의를 제가 내려 보자면, '다른 도덕존재에게 해를 주려는 의도를 가진 행동'입니다. problem of evil 과 '악의 존재가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라는 명제에 대해 제가 오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므로 더 토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해" 라는 것도 없습니다. 수능 시험에서 타인보다 좋은 결과를 받는 행위와 연쇄살인범이 사람을 죽이는 행동간에는 본질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그것을 반칙으로 보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고,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다수의 의견 같은 것은 저에게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 제가 심각한(?) 회의주의자인 것은 사실입니다. 신과 러셀의 찻주전자는 똑같은 이유로 존재를 인정할 '필요'가 없지요. 따지고 보면 신과 러셀의 찻주전자의 차이는 '믿는 사람의 수의 차이' 밖에 없습니다. 믿는 사람이 없으니 제우스는 존재하지 않는 걸까요?
//물론 제우스도 없도 찻주전자도 없습니다. 그리고 무신론->유물론->회의론 테크트리를 제대로 타고 나면 타인과의 소통 가능성도 없고 이성도 없도 자아도 없습니다. 회의론을 제대로 끝까지 말고 가면 그 끝에는 "남들을 회의하는 멋진 나" 가 남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사막에 바람이 불면 "사구" 라는 구조물들이 생기고 또 사라지지요. 인간도 딱 그 정도에 지나지 않는 존재입니다. 그냥 자연 법칙에 따라서 물질들이 특정한 형태로 잠시 결합했다가 사라지는 존재일 뿐이고 그걸로 얘기 끝입니다.

*** inclusivist 얘기와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제가 궁금해하는 것은 진실 그 자체지, 이교도가 처벌받느냐 구원받느냐의 얘기가 아니거든요. 무슬림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해서 기독교와 이슬람교 둘 다가 진실일 수는 없습니다. 어느 쪽은 예수가 신이라 하고 다른 쪽은 예수는 인간일 뿐 신이 아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저는 진실이라는 것도 말장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건 없습니다. 회의론의 끝에서는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무" 밖에는 없습니다.

*** 미생물에서 인간에 이르는 진화적 연속체에서, 과연 어느 순간에 그 영적 차원의 힘이 결합했느냐가 제가 궁금한 점입니다. 인간이 최종 지점이 아닌 거랑은 아무 상관도 없죠.
//물론 영적 차원의 힘 같은 것도 없습니다. 미생물과 인간이라는 이름도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사막의 사구중에서 조금 크고 복잡하게 생긴 것을 인간, 조금 작고 단순하게 생긴 것을 미생물이라고 굳이 분류해봤자, 역시 말장난일 뿐이지요.

*** 맞습니다. 무신론자와 교인의 편을 가를 이유는 없지요. 하지만 진리는 하나일 테고 교인들이 저를 '구원받지 못할 인간' 이라고 마음 속 어딘가에서 생각한다는 것을 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각의 삼등분 작도법이 존재한다'라고 믿는 사람은 그저 바보일 뿐이지만 나의 인격과 인권에 대해 있지도 않은 신을 들먹이며 부정할 사람들을 상상만 해도 기분이 매우 나쁩니다. 각설하고, Aslan과 Emeth의 에피소드를 보며 든 생각은 이랬습니다. '누굴 믿건 상관없이 착하게 살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도덕과 신앙은 별개의 일임을 인정하는 것 아닌가?' 역시 inclusivist 이야기인가요? 제가 뭔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가요? 도덕은 신이 규정한 것이라면 어떻게 inclusivist 가 존재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다음 글을 기다리며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사실 이렇게 '평화롭게' 종교 토론을 하는 건 난생 처음이군요.
//진리는 하나가 아니라 진리란 것은 없습니다.

이 정도로 제 원래 입장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제가 도덕이 성립 불가능하다고 이성적으로 결론을 냈다고 해서 제가 부도덕하게 산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저는 회의론의 끝에서

<진리는 없고 인간은 전혀 특별하지 않고 세상에 대한 인식은 불가능하고 묘사를 통해서 설명을 얻을 수 없고 존재를 통해서 당위를 얻을 수 없고 유물론의 세계에서 정신과 이성과 자유라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고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는 없기 때문에 이 얘기 자체도 nonsense 고 여기서 얘기 끝>

이라는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데이빗 흄과 비슷하지요. 저는 이 지점에 도달하지 않은 무신론자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무신론의 맛있는 부분만 취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님의 말씀처럼 "진리가 하나" 라면, 무신론을 출발점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제가 위에 말씀드린 저 문장만이 진리일테니 말입니다. 저는 20년을 저 입장을 (물론 시간이 지나가면서 천천히 더 강화/보수하긴 했습니다만) 바닥에 깔고 살아왔는데, 교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저것 알아보니까, 신이 존재한다고 믿기만 하면 이 모든 회의를 없앨 수 있더군요! 물론 카뮈는 그것을 "철학적 자살" 이라고 부르긴 했었습니다만...

끝의 문장이 공격적으로 보일 수 있는 데,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제 결론이 조금 극단적이다보니 그렇게 보일 수는 있습니다.
명랑손녀
12/06/01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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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으나, orbef님의 6번 시절은 무신론이 아니라 세상 만사에 대한 회의 그 자체인 것처럼 보이는군요. "진리는 존재하지 않고 미생물이나 인간이라는 이름도 말장난에 불과하다"라니요. 이건 철학적 장난에 불과할 뿐이고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차라리 유아론을 믿겠습니다. 회의주의 skepticism 는 그런 게 아닙니다. 적어도 과학적 회의주의는 그런 게 아닙니다.
6번 시절에 저런 생각을 가지셨고 지금 저런 리플을 '예전엔 저랬었다'라고 하면서 쓰셨다면, 즉 지금의 입장에서 답변하지 않으신다면, 더는 토론이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공들여 리플을 써 왔던 것이 허무하게 느껴지는군요. 아무튼 잘 알겠습니다.
LadyBrown
12/06/02 19:33
수정 아이콘
일단 이 글을 써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저는 사람이 살면서 이런 철학적인 생각들을 한번씩 해봐야 된다는 입장에 있는 사람입니다. 아직 머리가 부족해서 제대로 된 결론에 닿지는 못했지만 제 생각도 한번 말해보겠습니다 (저도 외국에서 공부하다 보니 영어단어를 많이 쓸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먼저 free will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제 입장은 흔히 말하는 compatibilist입니다.

본문에 '물론 양자역학의 출현으로 인과율의 법칙은 확률적으로만 성립한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제가 2초 뒤에 양자역학적 확률론을 따라서 갑자기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달팽이를 주워 먹는다고 치고, 그게 저의 자유 의지에 의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라고 말해주셨는데

이건 당연한 얘기입니다. 양자역학이 말하는 대로 우리들의 행동이 random하다면 free will에 대해 논할 필요도 없겠죠. 그러므로 어느정도의 determinism을 받아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naturalism이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이성이 deterministic하더라도 저는 인간이 어느 정도의 free will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큰 그림에서 봤을 때의 인과율의 법칙에 우리의 will도 포함이 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 '자신' 'self' 에서 시작 될 수 밖에 없고 우리 '자신' 'self'는 인과율의 법칙이 활동하는 흔히말하는 칸트의 'phenomena'에 작용은 하지만 포함되어 있다고 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free will을 가정한 것과 비슷한 이유겠지요.

여기서 '그러면 그 "self"는 물질적인 것이 아닌 것이냐' 라고 물어보신다면 아니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이걸 super-naturalism이라고 하시다면 그건 저도 어쩔 수 없네요. 하지만 제가 아는 한도내에서는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대부분 신을 믿지 않았던 것으로 압니다.

또 본문에서 언급하신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나면 절대적인 선과 악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에 관하여 제 생각을 말해 보겠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이 귤은 맛이 없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귤이야" 라고 말할 수 없듯이 나는 절대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 여자들을 연쇄 살인할 거야"라는 사람이 있을 때 "그럼 안돼"라고 말할 근거는 사실은 전혀 없습니다' 라고 예를 들어 주셨는데 이건 사실 전형적인 meta-ethics의 문제입니다. naturalistic fallacy라고들 하죠.

orbef님은 결국에 신이 없으면 실용적인 진리밖에 있을 수 없다 라고 하셨는데 이건 naturalistic fallacy를 가정하였을때 논리적으로는 완벽한 전제입니다. 하지만 꼭 naturalistic fallacy가 맞다고 믿고 그 길로만 가야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한참 이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학교에서 하도 읽으라고 해서 읽게 된 책이 Alistair MacIntyre의 After Virtue인데 여기서 MacIntyre는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생각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직접 책을 읽어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대충이라도 말해보자면 MacIntyre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신봉자이며 virtue ethicist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Eudaimonia(행복)를 쫒아야 하고 virtue를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죠. 이것 부터가 가정이기는 하지만 하여튼 MacIntyre는 virtue는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로마때의 virtue와 현재의 virtue가 다르다는 예를 들면서 말이죠. 하지만 여기서 internal good이라는 개념을 소개합니다. 축구라는 social form of practice가 있다면 축구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행동은 internal good에 포함 된다는 얘기죠. 따라서 MacIntyre는 virtue는 이 internal good을 더 많이 발전시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일종의 매너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거짓말을 안하는 게 virtue라면 거짓말을 안 하는 이유는 거짓말을 하면 internal good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 게 된다 뭐 이런 식이죠) internal good을 통해서 '이 세상에는 실용적인 진리만이 존재한다' 라는 전제를 벗어나 게 되죠.

설명을 참 못 하긴 했지만 '신이 없다고 해서 실용적인 진리만이 있는 것은 아니고 다른 이론들도 존재한다' 라는 것을 주장 하고 싶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제 입장은 무신론이지만 인생에 자유의지와 의미가 없다고는 믿지 않는 그런 이상한 라인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신에 비유해 보자면 인격신은 아니고 아마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신에 더 가깝겠죠. 그럼 저의 개똥철학은 여기서 마칩니다. 많이 부족한 의견이니 비판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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