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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12/27 12:49:16
Name epic
Subject [일반] 남극점 경주 - 아문센, 스콧과 섀클턴(4)
연재가 뜸했습니다. 좀 바쁜데다가- 새로운 자료 뒤적이다 재밌어서 계속 보다보니 글 쓸 시간이 안나더라구요.;
스스로 지금까지의 글을 읽어 보고 앞으로 쓸 내용을 따져보니, 3편으로 마무리 짓겠다는 최초 계획에 매여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생겨나는걸 깨달았습니다. 애초에 높은 조회수 등을 기대하고 시작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길어지면 소수의 독자들마저 지치지 않을까 싶어서 정한 것이 3편이라는 한계였는데, 이제와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겠더라구요. 그리하여 (2-1), (2-2)를 그냥 (2), (3)으로 바꾸고, 앞으로 몇 편까지
이어지건 신경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번 편의 내용은 '남극탐험의 본질'에 대해서 입니다.
원래는 지금부터 스콧의 1차 탐험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극점 탐험대의 이야기를 쓰고, 이번 편 내용은 중간중간에,
그리고 뒤에 끼워넣을 생각이었는데, 따져보니 먼저 정리해 두는 편이 보다 이해가 쉬울 듯 싶습니다.
이번 편은 <영웅들이며 말하라, 마이클 H. 로소브 저>라는 탁월한 책에 많이 기대고 있습니다. 이 절판된 책을 찾아낸건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특히 책 앞에 실린 맥머도만 일대의 지도를 보고 제가 얼마나 기뻤는지 상상 못할 겁니다.)

남극점 경주 - 아문센, 스콧과 섀클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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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점 경주 - 아문센, 스콧과 섀클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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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점 경주 - 아문센, 스콧과 섀클턴(3)
https://pgr21.com/zboard4/zboard.php?id=freedom&page=1&sn1=&divpage=6&sn=on&ss=on&sc=on&keyword=epic&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3892

6. 그들은 왜 남극점에 갔는가.

(1) 남극 탐험의 임무
'남극'이라는 단어는 다양하게 쓰입니다. '남극권', '남극대륙', '남극점'. 따라서 '남극 탐험' 또한 (완전히 별개가 아니라
단지 그 영역이 다른) 셋 중에 하나 이상을 탐험하는걸 의미 합니다. 지금까지 문맥상 통하리라 믿고 별로 구분하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남극권' 전체를 가리킨다고 따로 밝혀 둡니다.
소위 영웅시대(1895~1922년) 전반기에 남극 탐험 붐이 일어났습니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많은 비용과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남극(또는 북극)으로 탐험대를 보냈습니다. 국가가 직접 (해군이나 지리협회를 통해) 탐험을 주도하거나
민간인이 주도하는 탐험에 후원을 했습니다. 이 열기는 1914년의 대사건, 1차 세계대전으로 수그러 듭니다.

<영웅들이여 말하라>에 당시 주요 탐험대들의 행적이 망라되어 있는데, 연도별로 목록을 적어 보겠습니다.

연도 국적(탐험대장) 배
1897~1899 벨기에 (게를라슈) 벨지카 호
1898~1900 영국-노르웨이(보르츠크레빈크) 서던크로스 호
1901~1904 영국(스콧) 디스커버리 호
1901~1904 스웨덴(노르덴시욀드) 남극 호
1901~1903 독일(드리갈스키) 가우스 호
1902~1904 스코틀랜드(브루스) 스코티아 호
1903~1905 프랑스(샤르코) 프랑세 호
1907~1910 프랑스(샤르코) 푸르쿠와-파 호
1907~1909 영국(섀클턴) 님로드 호
1910~1913 영국(스콧) 테라노바 호
1910~1912 노르웨이(아문센) 프람 호
1911~1912 독일(필히너) 도이칠란트 호
1911~1914 호주(모슨) 오로라 호
1914~1917 영국(섀클턴) 인듀어런스 호, 오로라 호

[주 :
끄트머리의 섀클턴은 유일하게 1차대전 기간 중 탐험을 떠난 사람 입니다. 그는 출발 직전 전쟁이 발발하자 탐험대의 배와
물자를 써달라고 자원하지만 처칠이 그냥 남극 가라고 해서 그냥 갑니다.
사유 재산이 아닌, 후원이나 투자를 받은 것인지라 다소 무책임한 행동이었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뻥카였을 것 같아요.
그리고 어차피 탐험은 대중의 평판이 대단히 중요하므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탐험대들의 임무를 중요도 순으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과학, 2지리적 발견, 3기록 (, 4극적인 모험)

(여기서 기록은- 기록(記錄)  [명사]
1. 주로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음. 또는 그런 글.
2. 운동 경기 따위에서 세운 성적이나 결과를 수치로 나타냄. 특히, 그 성적이나 결과의 가장 높은 수준을 이른다.
이 중 2번 입니다. 예를 들어 최남단 도달, 최초의 상륙, 최초의 남극점 도달 등이 여기 해당 됩니다.)

이 순서는 때로 대외적인 명분과 실제가 달랐습니다. 가령, 제임스 쿡의 탐험은 천문관측이 공공연한 임무였지만
사실은 새로운 식민지 탐색이 최우선이었습니다.

전시대 탐험가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저는 의도적으로 영국과 노르웨이 탐험가들, 그리고 '기록'을 부각시켰습니다.
이는 이야기의 흐름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필연적으로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기록'은 탐험의 일부일
뿐 입니다. 특히 '남극점 도전'은 앞서 설명했듯이 영국과 노르웨이 탐험대 외에는 없었으며 그 탐험대들 또한 다른 임무들을 같이
수행 했습니다.
(이런 임무들이 완전히 독립적인건 아닙니다. 가령 새로운 해안선을 발견하면서 해류를 측정하고 새로운 경도 돌파 같은 기록을
세울 수 있고 새로 발견한 섬에 상륙해 새로운 생물 표본을 수집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 남극 탐험대들이 공통적으로 최우선시 했던 임무가 '과학' 입니다. 주목할만한 지리적 발견이건 '기록'이건,
그 자체를 목표로 한다면 아무 성과가 없을 수 있습니다. 엄청난 비용을 쏟아붓고도 말이죠. 하지만 과학적 성과는 그저
적당한 인재와 장비를 가지고 가서 열심히 하면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자연 환경과 극단적인 기후 및 지형, 특히 지구의 S극과 가까운 위치 때문에 남극은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하기에 적당한 장소였습니다. 탐험대에 참여해 배를 탄 과학자 중에는 제2의 비글호 항해를 그리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다윈은 비글호를 탈 무렵 젊은 풋내기 과학도에 불과했지만 몇 년 후 돌아오자마자 수집한 표본들만 가지고도 권위있는
학자로 인정을 받았고 먼 훗날 '종의 기원'을 써서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 과학
[그러자 이 나이 많은 노학자는 나의 열성스런 설명을 잠자코 듣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네는 아직 젊지만 좀더 뭘 생각하는 바가 있는 것 같네. 그것을 말해 보게."
나는 곧 최초의 북서 항로 개통을 성취해 보겠다는 야심을 지니고 있음을 밝혔다. 그랬더니 그는 그것을 납득하지 않았다.
"아냐, 자네는 훨씬 더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거야."
하고 추궁하는 것이었다.
"저는 북자극의 진정한 위치를 결정하는 결정적 관측을 해보고 싶습니다." 하고 고백했다. 그러자 노이마이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로 다가섰다. 그리고 양팔을 벌려 나를 따뜻이 그의 품에 안아 주었다.
"만약 자네게 그런 큰일을 완수하기만 하면 자네는 금후 몇 세기에 걸쳐서 인류의 공헌자가 되는 걸세. 정말 그건
대단한 사업이야."
<아문센 탐험기(원제 : 탐험가로서 나의 삶), 아문센 저> 중에서]


스콧은 해군 장교였습니다. 섀클턴은 상선 출신이고, 아문센은 잠시 선원이었던 시절 외에는 전문 탐험가 였습니다. 이들 외에
당시 남극 탐험대의 탐험대장들은 본래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놀랍게도 그들은 대부분 과학자 였습니다.
독일의 드리갈스키와 스웨덴의 노르덴시욀드는 지리학자이자 대학 교수였습니다. 스코틀랜드의 브루스는 해양학자,
프랑스의 샤르코는 탐험대에서 의사와 세균학자를 겸했고 호주의 모슨은 지질학 박사 였습니다.

그리고 탐험대원의 상당수 혹은 대부분을 과학자가 차지했습니다. 때로는 다른 직업의, 아마추어 과학도가 짧은 학습을
거쳐 임무를 떠맡는 경우도 있었지만 야심을 가지고 탐험에 자원한 과학자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그럼 그 과학자들의 전공이 뭐였는지, 남극가서 대체 뭘 했는지 간단히 분야별로 살펴 보겠습니다.

지자기
제임스 로스는 왜, 비교적 잘 알려진 남극반도 쪽이 아닌 로스해로 떠났을까요? 다시 말해, 물개사냥으로 경제적 효과가 있는
남극반도가 아닌 로스해 쪽으로 떠나도록 후원을 받을 수 있었던 동기가 무엇일까요?
바로 지자기학 덕분 입니다. 지구 자기장에 관한 학문은 19세기에 큰 관심을 받던 분야였습니다.
제임스 로스는 남극 탐험 이전에 이미 자북극점(자기장상의 북극점)에 도착해 깃발을 꽂은 바 있습니다. 그는 남극으로 갈 때
그와 똑같은 국기를 가져가서 자남극점에도 꽂을 생각 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그 목적이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남극점 인근에서 자기장을 측정하여 얻는 자료를 학자들이
원했기 때문에 지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주:

이 지도의 빨간 지점들이 자남극점인데, 아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위도와 경도를 보고 제가 대충 표시한 겁니다.

자남극점의 위치는 남극점, 즉 지리적 남극점과는 달리 계속 변합니다. (지금은 바다 위에 있습니다.)
제임스 로스는 결국 자남극점에 깃발을 꼽지 못했는데, 자북극점과는 달리 바다(얼음)가 아닌 대륙에 위치해 있었고 그가
(몇 차례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륙하는데 실패했기 때문 입니다. 자남극점에 최초로 도달한건 1909년 섀클턴 탐험대인데
섀클턴이 3명의 대원과 함께 남극점에 가는 동안 호주인들이 주축이 된 3명의 탐험대가 따로 자남극점으로 나아가 깃발을 꽂습니다.
섀클턴은 2차 탐험 때 약 4개월 동안 왕복 2,700km 정도를 이동했습니다. 자남극점으로 떠난 탐험대원들도 4개월 동안
약 2,000km를 이동했으며 님로드호에 구출될 때까지 해안에 고립되어 물개를 잡아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섀클턴 보다
열악한 장비로 (썰매차 1대를 가져갔으나 금방 고장나서,전 여정을 직접 썰매를 끌어야 했습니다.) 그 못지 않은 고된 모험을
했지만 그 과정이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자남극점 탐험에 참여했던 모슨은 1911년, 아문센과 스콧이 남극점을 향했던
시기에 호주의 탐험대장으로 남극에 또 가서는 남극 탐험사 최악의 단독 생존기를 남깁니다.]


아문센은 위에서 대화한 독일 학자에게 반 년 이상 지자기학을 배웁니다. (그리고 따로 기상학도 공부 했습니다.) 이 때는
벨지카 호 탐험에서 돌아온 후 였는데, 그는 벨지카 호에서도 자비를 들여 장비를 사다가 관측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런 학습의 결과로 그는 북서항로 탐험에서 엄청난 과학정 성과도 거둡니다. 그는 항해를 할 수 없던 겨울에는 월동 기지를
마련하면서 따로 자기 관측소를 지었습니다. 시계 장치로 계속 돌아가면서 자기를 측정해 자동으로 필름에 기록을 남기는
독일제 장비를 위해 구리못 등 자성이 전혀 없는 재료를 쓰고 빛이 새어들어가지 않으면서 진동도 없도록 하는 등 상당한
비용과 수고를 들였습니다.

남극 탐험대들은 대부분 월동기지를 지어 과학자 몇 명을 주축으로 한 두 계절을 보냈는데 그동안 대개 그 비슷한 관측소를
지어서 자기장을 관측했습니다. 아래 이어지는 다른 분야들과 함께 말이죠.

기상
탐험대들은 배 위에서나 월동기지에서나 매일 기온과 풍향, 풍속 등을 관측했습니다. 이는 당장의 여정에도 도움이 되었지만
새로운 지역의 기후를 알고 더 나아가 지구 전체의 기상을 파악하고 예측하는데에 기여 했습니다.

해양
배를 타고 항해하는 동안 계속 수심과 수온, 해류 등을 측정했습니다. 해빙은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흥미로운 관찰 대상
이었으며, 판구조론 또한 이미 널리 알려져서 측정한 수심과 해안선의 형태를 가지고 섬과 대륙의 본래 위치를 짐작해 보기도
했습니다.

지질/지리
지질학자 또한 필수요원 중 한 명 이었습니다. 그들은 빙하, 흙, 암석 등을 관찰하고 화석과 광물을 찾았습니다. 로스섬에는
화산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부가 본래 해안선이었던) 거대한 남극종단산맥 또한 대단히 흥미로운 대상이었습니다.

동물/식물
생물학자들은 주로 표본수집에 몰두했습니다. 배에서는 저인망 그물로, 육지에서는 채집망 등으로. 그리고 남극 펭귄의 생태가
여러 탐험대의 연구 대상이 됩니다. 스콧의 3차 탐험대는 겨울에 황제펭귄 알을 가지러 혹독한 탐험을 다녀오기도 합니다.

그밖에...
천문, 전기, 중력, 세균, 물리학 등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탐험에 참여했습니다.


-지리적 발견
["...두말할 나위 없이 명백했다. 그건 빙산이 아니었다. 허공으로 높이 솟아오른 뾰족한 봉우리들. 육지가 분명했다.
미지의 땅. 육안으로도 분명히 보이는 땅. 우리의 땅! 지난 몇 달 동안 실패에 대한 두려움, 무언가에 대한 갈망, 조국에
중요한 어떤 것을 돌려주고 싶은 열정 속에서 불안하게 기다려온 것은 이 두 마디 말로 이해될 수 있었다. 나는 속삭이듯
되뇌여 보았다. 새로운 땅!"
<영웅들이여 말하라> 중에서, 프랑스의 샤르코가 '샤르코섬'을 발견하던 순간]


남극대륙은 사실 그동안 서구열강들이 열중했던 식민지 사업에 전혀 적합한 땅이 아니었습니다. 일단 상륙 자체부터 힘들고
위험했습니다. 따라서 탐험에 노골적인 식민주의가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군사적 잠재력, 매장 자원, 또는 국가의
위신을 위해 은연중에 경쟁을 벌입니다. 섬에 먼저 상륙했거나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해서 꼭 자국의 땅이 되는건 아니었지만
암묵적인 우선권 정도는 확보할 수 있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국가와 개인의 위상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앞서 아문센이 참여한 벨지카호 탐험대 이야기를 읽은 분들은 게를라슈를 꽤 찌질한 인물로 그렸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그 탐험에서 (많은 과학적 성과와 함께) '게를라슈 해협'에 처음 들어가 몇몇 인근 섬에 벨기에 지명을 따서 이름을 짓는
성과를 거두었고 국민들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내륙 깊숙히 들어간 탐험대는 몇 안되지만, 여러 탐험대들이 많은 새로운 섬들을 발견하고 남극 대륙의 해안선을
수 백km씩 새로 그렸습니다. 여러 탐험대들이 지도를 그리는 전문가, 제도사를 데리고 갔으며, 샤르코가 새로 그린 남극반도
지역의 해도는 곧바로 포경선 선장들이 사용하기도 합니다. 곳곳의 빙붕과 반도, 섬, 산들이 발견되어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남극반도 지역이 거대한 섬이 아닌, 대륙의 일부라는걸 알아낸 것도 이 당시 탐험가들의 성과 입니다. 남극점 탐험 또한
남극 종단 산맥, 그 위의 고원지대 등 남극 내륙의 지형을 처음 발견하고 관찰했다는데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극지는 세계 지도의 마지막 여백 이었습니다. 남극 탐험대들은 대항해 시대 최후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셈입니다.

[주:
개인적으로 샤르코는 탐험가들 중에 꽤 호감이 가는 인물이었습니다. <영웅들이여...>에서 그의 어록을 발췌해 봤습니다.

"이제 결과는 여러분에게 달려있습니다. 여러분이 맡은 임무를 성실히 하지 않는다고 해서 여러분을 벌할 방법이 저에게는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수갑을 채울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런 건 가져오지도 않았으니까요. 또 선원이 너무
적어서 그럴 수도 없습니다. 전 여러분에게 술을 지급하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의 건강을 위해 그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전 여러분의 양식을 믿으며 여러분의 임무에 충실할 것이라 믿습니다. 혹시 저를 싫어하는 분이 있더라도 우리에게 부여된
사명을 먼저 생각합시다. 우리 프랑스의 명예가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결코잊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유다른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그는 드물게 2차례 남극 탐험대를 이끌었고 모두 성공했습니다.

"대원들이...물범 사냥을 한다...우리는 갓 태어난 새끼 웨들 물범을 발견했다. 생명의 징후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이 황량한
곳에서 이 작은 물범 가족보다 더 감동적인 장면은 없었다. ...그 육중하고 보기 흉한 어미의 모습관는 대조적으로 기묘하게 생긴
그 작고 동그란 얼굴에 호기심과 장난기로 가득한 눈망울을 하며 어미의 몸에 그 작은 몸을 비비며 주위를 기어다녔다. 아비가
얼음 구멍으로 고개를 내밀며...아름다운 선율이라 할 수는 없지만 조금은 노래 같기도 한 그 기이한 소리로 무어라 울부짖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작은 새끼를 안아 올렸다. 새끼는 무서워하는 기색도 없이 어린 아기처럼 응석을 부리며 즐거워했다. 그 작은
몸을 살며시 얼음 위에 내려놓자 나에게로 기어와 내 다리에 몸을 비비면서 다시 안아달라고 보챘다. 고향에 두고 온 어린 자식에
대한 그리움이 내 목을 날카롭께 찌르며 목이 메여오는 것을 고백해야 하는 것일까?
이제 동물의 생명을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는 명령 따위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나와 함께 온 대원들 거의 대부분이 한 가정의
가장이었기에 나와 똑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대부분 과학자였던 남극 탐험대장들은 대체로 동물을 사랑했고 함부로 살육하는걸 금지했습니다. (이는 아문센 같이 에스키모식의
생존법을 익힌 사람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물론 샤르코 탐험대를 포함해 다들 사냥한 고기에 의존하긴 했지만요. 그들의
동물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여러가지 일화가 있지만 위의 문장처럼 마음을 움직이는건 없었습니다.]


  
-기록
[...그러나 그로부터 79년이 지난 1988년에 '뉴욕 타임스'는 이례적으로 '정정 보도'라는 제목 아래 다음 기사를 내보냈다.
"피어리의 탐험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의 후원을 받았고, '뉴욕 타임스'는 그 탐험과 관련된 독점 보도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두 기관은 탐험의 성공을 믿고 싶은 마음에 그 결과를 엄밀히 검증하려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았다. ...오늘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쿡이든 피어리든 두 사람 다 최초의 북극 탐험가라는 명예를 요구할 권리가 없다는 점에 의견이
일치한다."
<만들어진 승리자들, 볼프 슈나이더 저> 중에서]


당대 최고의 탐험가였던 난센은 위대한 과학자였습니다. 북극탐험 또한 해류를 관찰하려는 목적이 컸습니다. 프람호의 표류는
그것만으로 의도했던 과학적 성과를 내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굳이 배에서 내려 썰매와 함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험한 길을 떠나 갑니다.

'왜 산에 오르는가? -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 이 유명한 말을 다른 각도로 해석해 보겠습니다.
'산 정상에 서서 사진 찍고 오는게 개인 또는 단체에 무슨 이익이 있는가? - 산에 올랐다는 기록 자체에 의미-이익-가 있다.'

당시 남극의 내륙은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쓸모없는 땅이었습니다. 비교적 안전한 해변 지대에서도 얼마든지 의미있는 과학적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남쪽 꼭지점에 인류 최초로 발을 딛고 서서 조국의 깃발을 꽂는다.'는 행위에 담긴
상징성, 가치는 물질적인 것을 초월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추상적인 것 자체를 추구하는데에 반대하는 여론도 많았습니다. 남극 탐험은 엄청난 비용이 듭니다. 더구나 무리한
탐험은 때로 인명 피해를 감수해야 하기도 합니다. 물론 탐험에 성공하면 쏟아지는 열정적인 찬사에 이런 여론들은 휩쓸려 가버리기
마련 입니다. 하지만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일을 미리 설득하긴 어려웠죠.
극점을 향해 나아간 영국의 탐험대들은 한결같이 '과학적 측면이 탐험의 주목적' 이라는걸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했습니다. 스콧이
죽은 후에 나온 책의 서문(1차 탐험을 주도한, 전 왕립지리학회 회장 클레멘츠 마컴이 썼습니다.)에도 같은 말이 쓰여 있습니다.
하지만-

스콧은 단지 97마일을 더 행진하기 위해 남극에 갔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섀클턴이 이미 남극점 97마일 앞까지 다녀왔기 때문에
남극점으로 나가는건 최소한의 변명 - 내륙에서 새로운 지리적, 과학적 발견을 시도한다.- 조차도 먹히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미
남극점까지의 지형은 섀클턴에 의해 다 밝혀진 상태였습니다. 남극점 일대가 바다가 드러난 지역도 험준한 산악지대도 아니라는걸
이미 세상이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지질학이건 뭐건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면 하다못해 섀클턴이 이미 개척한 길이 아닌 다른 경로를 택했을 겁니다. 새로운
지역을 탐사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스콧은 분명히 남극점 그 자체가 목적이었고 그러자면 이미 잘 알려진, 위험 부담이 적은 길로
가는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탐험가가 열망하는 개인적 영광이기도 했지만 그가 소속된 민족, 국가의 영광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탐험가들
간의 경쟁을 넘어서 국가적 차원의 경쟁이 되는게 자연스러웠죠. 이런 식의 경쟁은 훗날 히말라야 등반, 그리고 미국/소련의 달착륙
경쟁까지 이어 집니다.



- 극적인 모험

[여보세요, 여보세요, 마르셀, 내 말이 들리는가?
-잘 들린다. 무슨 일인가?
초오유 정상을 밟았는가?
-물론이다!
오케이-초등 루트인가?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빠르고 완벽한 등정이었다.
동상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한 대원은 없는가?
-없다. 이번 등정은 모든게 잘 진행되었다.
그 밦에 뭐 특별한 것은 없는가? 셰르파가 죽었다든가 아니면 다른 일이라도?
-그런 것은 없다.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그렇지만-이번에는 기사로 쓸 만한 내용이 별로 없어서 걱정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그러나 정상이 끝은 아니다, 한스 카멀란더 저> 중에서]


인간은 모순에 찬 동물입니다. 탐험대를 떠나 보낸 국민들은 대부분 아니 전부가, 그들이 무사히 생환하기를 바랐겠지만 한편으로
탐험대들이 절박한 위기를 겪을수록 열광 했습니다. 이 당시 탐험가들은 돌아와서 책을 쓰고 강연을 다녀서 비용을 벌충했는데
탐험 자체의 성과가 아무리 훌륭해도 극적인 모험이 없다면 그만큼 대중적 인기는 떨어졌습니다.
아문센이 훗날 책에 썼듯이, 모험은 탐험에 수반되는 것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대중은 모험을 원했고
따라서 탐험가들 또한 종종 모험을 부각시켜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고 다음 탐험을 위한 기반을 마련 했습니다.


(5)편으로 이어 집니다.
https://pgr21.com/zboard4/zboard.php?id=freedom&page=1&sn1=&divpage=6&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4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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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2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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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기다렸습니다~~ 이번편도 잘 읽고갑니다. 폰이라 추천이 안되니 마음속으로 추천!
예전에 왜 등반가들에게 국가적 지원을 해주고 관심을 가져주는지에 대해서 파이어됐었죠.. [m]
Zakk WyldE
11/12/27 17:42
수정 아이콘
잘 읽었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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