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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7/11/21 05:49:17
Name 마술사얀
Subject [일반] 개잡종이 태어나다 호모 엑세쿠탄스
호모 엑세쿠탄스

이문열의 최신작 '호모 엑세쿠탄스' 는 라틴어로 처형적 인간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꽤 오래전부터 인터넷 어디선가 연재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제서야 묶음책으로 나와 접하게 되었다.

한때나마 열광적으로 이문열을 지지하던 내 취향을 차차 나를 실망시키게
된건 그의 정치적인 입장과 표현이 아니라 순수 문학적 성취때문이었다.
'사람의 아들' 을 통해 데뷔하여, 그 당시 아무도 얘기할 수도, 얘기하고 싶지도
않은 신과 인간의 구원에 대해 그 어떤 기교나 불순한 다른 목적없이 정면으로
주제를 돌파하던 그 역동성.
필론의 돼지, 칼레파타칼라, 들소 등의 중단편에서 당시 5, 6공의
정치적 불의에 대해 거침없이 저항하던 순수함.
'시인'과 '아우와의 대화' 에 이르러서야 월북한 아버지에 대한 담담한 그의
소회를 거장의 숨결로 풀어놓은 완숙미까지. 이제야 우리도 드디어 문학적 거장을
가지게 되는게 아닌가란 희망을 품었던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의 행보는 날 무척 혼란스럽게 했다.
스스로 이미 거장이란 인식을 하게 된건지. 혹은 그렇게 대접받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건지. 그 생각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부학문원' 이라는
도제시스템을 운영하며 제자를 기르기 시작했고, 세종대학교에서 국문학교수로
출강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와 때는 정확히 맞아떨어지는건 아니지만. 순수 창작활동이 아닌 새 번역으로
눈을 돌려 삼국지 등을 출간하고, 이문열의 세계문학 걸작이란 명작 모음집까지
내기에 이르렀다. 거기에 보수정당을 강력히 지지하고, 진보진영에 거침없이 비판하면서
정치적인 논란에 휩싸여 책 화형식을 당하는 험한꼴까지 당하게 된다.
소설가를 포함한 예술가들의 정치적 입장은 보통 중립이길 원하는게 일반인들의
생각이고 보면 나로서도 그간 그의 정치적 행동은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예전같은 소설만 내준다면 모든것을 용서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 간간히 내는 '선택', '아가', 술단지... ' 등의
그의 신작은 사회적 센세이션만 일으켰지 이미 문학적으로의 성취는 얕은 안목의
나로서는 도저히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이문열이 내는 신간엔 무관심할 수 없는 심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기대없이 관성적으로. 일말의 희망을 품고. 그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고
펼치게된 책. '호모 엑세쿠탄스'

고백하자면. 난 이문열의 첫장편. 오늘의 작가상에 빛나는 그 '사람의 아들' 을
한국 현대문학의 최고봉중 하나로 꼽고 있다.
앞서 말했던. 파괴적 역동성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 어떤 작가에게서도 찾기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중학생때 처음 읽었던 충격은 평생 잊기 힘들것 같다.
백번도 넘게 읽어 이제 과장을 좀 보태면 몇페이지 몇줄을 읊으라고 해도 그렇게
할수 있을만큼 내가 사랑했던 소설이었다. 실제로 삼국지를 제외하고 제일 많이
팔린 그의 작품이 '사람의 아들' 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전정보 없이 접한 '호모 엑세쿠탄스' 가 그 사람의 아들 두번째 이야기란것이
밝혀지면서 내 가슴이 미친듯 뛰기 시작했다.
'사람의 아들' 에서 민요섭과 조동팔의 제자로 지냈던 이들이 성장하여 현대사회에서의
다시한번 치열한 신학적 고뇌를 시작하게 되는것이다.
그러나 '호모 엑세쿠탄스' 를 읽고 있자니 또 다른 이문열의 작품이 생각났다.
그것은 바로 이문열 스스로 최악의 졸작으로 꼽는  '오딧세이아 서울' 이었다.
이문열이 마음에 안들어했던 이유는 아니겠지만. 오딧세이아 서울에서는 등장인물의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그의 정치적 신념을 드러내려 노력했다.
착착 달라붙은 상황설정. 그리고 불편하게 느껴지던 그 정치적 입담도 동네 슈퍼주인
아저씨와 복덕방 아저씨간의 그것처럼 친근하고 구수하게 느껴져서. 나로서는 크게
불만없는 작품이었는데.
이번에 호모 엑세쿠탄스에서 다시한번 보여주는 그러한 정치적 변주는 솔직히 얘기하면
구역질이 났다. 순수하게 신에 대해 울부짖듯 고민하던 사람의 아들을 이렇게 정치적
도구로까지 이용하게 된 이문열에 대한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 스스로 근현대 문학에서 정치적 입장이 들어가지 않은 문학이 몇이나 되냐고
서문에 밝혔지만. 이데올리기 문학과 현재 그가 써제껴놓은 정치 뒷담화가 어떻게
비교가 되겠는가. 현대 정치가 포퓰리즘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해보면
이미 그의 소설은 특정 정당 찌'라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될 수 없는것이다.
그가 그 보수진영의 입담을 듣기 위해 비싼돈 주고 그의 책을 산게 아닌데. 내가
귀한 시간 돈 낭비하면서 그들의 광고를 보고 있어야 하나. 이만저만 고역스러운게
아니었다.
문학적으로 따져보아도. 연재소설의 티가 군데군데 나 있는데...
이문열 스스로 다시한번 이 단행본을 읽어봤는지 의심스러웠다. 또 하나 리얼리즘에
대한 포지셔닝이 분명치 않은것도 이 소설을 읽고 있는 내내 날 혼란스럽게 한 이유중
하나가 되었는데. 어쩔땐 '사람의 아들' 의 경우처럼 치열한 고민을 드러내는척
하다가 갑자기 또 '오딧세이아 서울' 에서 처럼 슬쩍 장난치는 말투가 듣기 괴로운
불협화음이었다.


잡종중에는 우성인자들을 받아 새롭게 진화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그 나마 원래 부모들의 미덕까지 모두 짓밟아가면서 태어난 개잡종에 다름아니다.
'사람의 아들', '오딧세이아 서울' 그 좋은 두 작품이 만나 이런 개잡종이 태어난건
내 지난 좋은 기억까지 앗아가는 재앙에 다름아니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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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luckyboy
07/11/21 09:33
수정 아이콘
10년전부터 실망만 주시는 작가분이시죠.

제가 역겨워하는 정치적 수순을 밟아나가고 있는 대표적 작가라서.. 과거의 그의 작품이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정치적 관점이 실망스러운 것에 관계없이 작품을 통해서 정치적 관점을 꽤나 저열하게 나타내고 있어서 더 실망스러운지도 모르겠네요.

홍보하실때는 정치적 관점과는 관계없이 작품만을 바라봐 달라고 하시던데 너무 대놓고 써놓고 그러시니 좀 난감하기도 하네요.
잃어버린기억
07/11/21 11:43
수정 아이콘
대선때마다 책이 나오더군요.
07/11/21 16:11
수정 아이콘
문인이기 이전에 국민이고 사람이기에 정치적 신념은 피할 수 없겠지만
문인이라는 직업인으로서의 자각이 있었으면 합니다.
왜 이문열이라는 작가가 힘을 갖게 된것인지
그 힘으로 정치적인 신념을 표시하게 될때
그 힘이 사라진다는걸 모르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쿨러닝
07/11/21 19:42
수정 아이콘
저 사람의 사상이며 행동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다른 건 몰라도 '사람의 아들'은 제게 있어서 무인도에 갈 때 가지고 가고 싶은 책 목록 100선에 들어갑니다.

그 이후의 모든 작품이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것이 너무도 아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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