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1/10/13 23:16:24
Name 눈시BB
Subject [일반]  고려의 마지막 명장 - (1) 공민왕

Bayan Temür 바얀 테무르.
공민왕의 몽골식 이름입니다.

몽골이 고려에 대해 한 정책은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쌍성총관부, 동녕부를 만들어 북방지역을 뺏긴 했지만 어차피 -_-; 고려의 지배권이 크진 않았으니까요. 탐라총관부 역시 이 때 당시 제주도가 온전한 고려 땅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죠.

부마국의 지위라는 건, 최하층으로 떨어진 한족에 비해 나쁘지 않았습니다. 버틸만큼 버틴 것과 함께 쿠빌라이 칸에게 제대로 줄을 댄 것이 주요하게 작용했을 겁니다. 몽골은 마주 등 동북지역에 있던 동방 3왕가에 대한 견제를 위해 고려의 왕족들에게 심양와의 지위를 주었습니다. 고려왕과 심양왕을 동시에 맡은 충선왕은 일단 명목상으로는 만주와 한반도 양쪽을 다 통치한 게 됩니다. (...) 이 심양왕 역시 공민왕 때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공민왕도 어릴 때 몽골로 갔고, 몽골인 아내를 맞았습니다. 몽골식 이름을 받고, 몽골식 문화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고려왕이 되기 위해 고려로 갔습니다. 늘 했던 것처럼요.

고려는 조선에 비해 형제상속도 많았고, 형제나 부자관계로 따지면 꽤나 복잡합니다. 애초에 그러던 게 무신정권 때는 더 했고, 몽골항쟁기 이후에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_-; 가령 공민왕 이전으로 가 보면, 충목왕은 충혜왕의 아들이고 충정왕은 충혜왕의 아들이지만, 공민왕은 충혜왕의 동생이었습니다. 그냥 이 시기 고려의 왕위 계승은 몽골의 간섭이 크게 개입됐다고 보면 됩니다. 이 충숙왕은 아들 충혜왕이 타락하자 쫓아내고 다시 왕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 얘기 하면 또 산더미겠네요.

조선을 얘기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왕권이 의미가 없으니 이 때 멸망한 거나 다름없다고 하지만... 고려로 따지면 대체 언제 멸망한 걸까요 ( ..)

몽골이 공민왕에게 바란 것 역시 자기 말 잘 따르고 적당히 잘 해라, 이런 거였을 겁니다. 하지만... 공민왕은 그러지 않았죠. 이름부터가 충이 아니잖아요.

1. 바얀 테무르

공민왕이 왕위에 오른 후 처음 한 것은 정방 폐지였습니다. 무신정권 이후 최우가 인사권을 관리하기 위해 설치한 게 정방이죠. 인사 문제가 왕이 아닌 실세 무신들의 손에 넘어간 거였습니다. 그는 이걸 폐지함과 동시에 모든 국정을 직접 담당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거기에 서연을 다시 열게 되었습니다. 많이 들어 봤죠? 이를 통해 등용된 것이 바로 신진사대부, 불교와 원나라를 배척하는 유교 세력이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반발에 부딪히게 되니, 의외로 기철이 아니라 조일신이었습니다. 그는 여러 대신들을 죽이고 공민왕을 협박, 우정승에 앉죠. 이렇게 왕보다도 강한 힘을 휘두르며 나름 세력을 뻗어보려 했으나... 공민왕은 반격을 가해서 그를 제거하고 그 측근들을 모두 하옥합니다. 이어 자기만의 정권을 만드려 했죠.

이 때까지는 그의 독립 의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무신과 권문세족에게 뺏긴 왕권을 되찾으려는 노력만 보였죠. 시작하자마자 조일신이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을 보면 고려가 어느 수준까지 갔는지 알 만 하죠. 시작은 이걸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공민왕 3년, 몽골에서 파병을 요구합니다. 홍건적의 난이 기승을 부릴 때였죠. 고려는 이 요청을 들어주는데, 이 원정군에 최영 등의 이름을 볼 수 있군요. 그 병력은 2000, 그들은 돌아와서 원의 정세를 자세히 보고한 모양입니다.

공민왕의 개혁은 이후 시작됩니다.

2. 나는 고려의 왕이다
공민왕 4년, 1355년 말 비밀리에 동북에서 온 이가 있었습니다. 쌍성 총관부 지역의 세력가 이자춘이었죠. 공민왕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 합니다.

"네 할아버지와 네 아버지는 몸은 비록 원 나라에 귀화하였으나 그들의 마음이 우리 왕실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 고조께서도 총애하고 가상하게 여겼다. 이제 너는 할아버지, 아버지를 욕되게 함이 없을지어다. 그러면 내가 장차 그대를 잘 성취시켜 주리라"

그들이 원나라 밑에서 벼슬하고, 여진족들의 땅에서 살았다고 여진족 설, 몽골 군벌 설들이 나옵니다. 역사가 계속됐으면 그들이 몽골이나 여진족에 동화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헌데 일단 족보 상으로 전혀 섞이지 않았고, 고려인들은 거기서 집성촌을 이루어 살았습니다. 여진족들은 그들을 이민족으로 보고 멸시했죠. 동화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여진족이랑 섞여 살았다는 것으로 여진족으로 본다면, 함경도가 우리 땅이 된 건 정말 최근의 일입니다. 조선 들어 사민정책을 실시하고 그들을 조선인으로 동화시킨 거죠.

이 시기까지 이자춘의 세력은, 쌍성 총관부 내에 있는 고려인들의 집단으로 봐야 됩니다.

몽골이 밀려나고 있다 하나 그건 공민왕에게도 이자춘에게도 큰 도박이었습니다. 공민왕은 쌍성 총관부를 공격할 때 이자춘이 안에서 호응하라고 명령했고, 그는 돌아갔죠. 이렇게 전주 이씨, 이성계의 일족은 역사에 화려하게 등장합니다.

공민왕 5년, 1356년 일은 시작됩니다. 그는 기황후를 믿고 날뛰던 기철 일당을 일망타진했죠. 역시 핑계는 역모였습니다. 그들을 처리한 후 바로 쌍성총관부 탈환이 시작됩니다. 여기에 동원된 건 인당과 강중경, 신순, 유홍, 최영, 최부개 등이었죠. 압록강부터 두만강까지 대대적인 전쟁이 시작된 거죠. 이 때 이자춘 등 세력가들이 내응하고 귀순해 왔습니다. 이 때 정벌군은 압록강을 넘어서 몽골의 참, - 그냥 기지라 생각합시다. - 을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 몽골은 별 반응을 보이지 못 했습니다. 그럴 힘이 남아 있지 않았죠. 명분도 기철 일당이 역모를 일으키려 했다는 것에서 발전한 거였구요. 공민왕도 화전양면 전술을 써서 원나라에 여전히 사신을 보내면서 일을 무마시킵니다. 한 번에 "반원"의 기치를 든 게 아니라 비교적 야금야금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때 좀 보기 안 좋은 모습도 있는데... 맨 밑에서 다시 얘기하겠습니다.

한편 기철의 누이, 원에서 황후가 된 (솔직히 중국에서 활동한 고려인들 중 가장 잘 된 케이스죠 ( ..)) 기황후는 복수를 부르짖습니다. 태자에게 그 나이 먹고도 자기 복수 안 해 주냐 징징댔죠. 공민왕은 여전히 원나라에 적대하면서도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 끈이 풀린 건 공민왕 12년, 1363년이었죠. 최유 등 원에 있던 고려인들은 기황후와 함께 공민왕을 폐하고, 덕흥군을 내세웁니다.

이 때 이공수라는 이가 사신으로 갔는데 그 모습이 참 재밌네요. 기황후는 그를 환대했는데 참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 설득했습니다. 기황후는 그걸 듣고 감동 먹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명령을 취소하지 않아서 덕흥군 데리고 왕위에 앉히라고 하니 병을 핑계 대고 눌러 앉습니다. 그는 강을 건너기 전 공민왕을 복위시키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했었죠.

공민왕을 폐하려는 건 다음 해, 1364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최유가 군사 1만과 덕흥군을 데리고 의주를 공격한 거죠. 이 때 도지휘사 안우경이 일곱 번 싸워 물리쳤다고 합니다. 이 때 고려군이 여러 차례 싸우다 밀렸는데, 급히 파견된 장수가 고려의 마지막 명장, 이성계였습니다. 그 때의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최유는 패한 후 다시 시도하려 하지만, 원나라 내에서 공민왕을 옹호하는 움직임이 커지면서 실패합니다. 공민왕은 다시 고려 왕이 되었고, 이공수 등은 목표를 이루고 당당히 돌아오죠. 최유가 다시 군사를 내려 하자 몰래 이걸 알린 것 역시 이공수였습니다.

이 시기 동안 공민왕은 정말 악착같이 밀고 나갔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너무 혼란했습니다. 공민왕이 정말 미쳤는가 얘기는 나중에 하겠지만, 이 정도면 미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나 싶어요.

2. 내우
일단 즉위하자마자 조일신이 깽판을 쳤습니다. 기철 일당을 없애는 것도 쉬운 게 아니었죠. 그 상황에서 옛 영토를 수복하되 원나라에도 나쁘게 보이면 안 됐습니다.

좀 여유가 생기자 김용이 나섭니다. 그는 다른 장수들을 모함했고, 이 과정에서 안우, 이방실 등이 죽게 됐습니다. 그 후 그는 왕을 폐하고 덕흥군을 세우는 데 합류하죠. 공민왕 12년, 63년에 흥왕사에서 50여명이 공민왕이 있던 흥왕사를 습격했는데, 이 때 내시들이 나서서 겨우 살았습니다. 이강달은 왕을 업고 도망쳐서 담요를 덮어 숨겼고, 안도적은 그와 생긴 게 비슷해서 대신 왕인 척 해서 죽었습니다. 그 무리는 황제의 명을 받고 왔다면서 떠들어댔죠. 순군부가 출동해 이들을 제압했는데, 이 때 김용은 핑계를 대고 빠졌습니다.

이후 그 배후를 잡아서 처벌하려 했는데 김용은 하지 않았고, 이 일로 의심을 산 그는 유배된 후 처형당합니다.

3. 외환
(1) 왜구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하고 무로마치 막부가 들어서던 시절, 일본은 혼란했습니다. 특히 큐슈 지방이 더 했고, 그들은 외부로 힘을 분출합니다. 목표는? 고려였죠 뭐 -_-; 충정왕 2년, 1350년부터 왜구의 침략이 본격화 됩니다.

뭐... 간단히만 흝어보죠. (...)

내부소윤 김휘남에게 명하여 전함 25척을 거느리고 왜적을 막도록 하였는데, 풍도에 이르러 왜선 20척을 만나 싸우지도 않고 퇴각하였다.
왜적이 파음도(강화도) 사람들을 도륙하였다
왜적이 교동 갑산창을 불질렀는데, 전 대언 최원이 싸워 왜선 2척을 노획하였다.
1352년

여름 4월에 왜적이 전라도의 조선 40여 척을 약탈하였다. (54)
왜적이 전라도의 조선 2백여 척을 약탈하였다. (55)
왜적이 승천부의 흥천사에 쳐들어와 충선왕과 한국공주의 영정을 가지고 갔다 (57)
3월에 왜적이 각산수에 침략하여 배 3백여 척을 불태웠다. (58)
왜적이 장흥부와 해남현을 침범하였다 (59)

헥 헥 -_-; 하여간 끝이 없어요. 저것도 그냥 대충 추린 것 뿐이구요. 이렇게 고려의 연해 지역은 언제 어디서 적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해운을 통한 수송은 꿈도 못 꾸죠.

왜구에 대한 제대로 된 반격은 공민왕 이후에 시작되니 이 부분은 아직 다루지 않을게요.

왜구만 있었을까요? 아니죠.

(2) 홍건적
원나라에 대항해 일어난 한족들, 붉은 악마도 아니고 홍건적이라는 이름이 붙은 그들은 식량을 약탈하기 위해 고려를 향했습니다. 그 1차 침략은 1359년 12월, 모거경이 이끄는 4만의 홍건적이 공격해 옵니다. 의주와 인주, 정주가 차례로 함락됐고 고려군은 패했습니다. 이에 이임, 경천흥, 김득배, 이춘부, 이인임 등으로 구성된 토벌군이 조직됩니다. 하지만 서경에 도착한 이임은 버틸 수 없다고 판단, 서경을 포기하고 청야전술로 적을 유인하죠. 공민왕은 그가 피하기만 한다고 이승경에게 대신 지휘를 맡겼고, 1360년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됩니다.

이 때 고려군은 2만, 고려군 역시 1천여명이 죽고 다쳤지만 홍건적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데 성공합니다. 안우는 승기를 타고 진격하지만 패했고, 이어 이방실과 합류해 2만 명을 사살하는 데 성공합니다. 4만 중 돌아간 홍건적은 300명 뿐이었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원에 쫓기던 홍건적은 계속 고려를 향했습니다. 이리 싸우고 저리 싸우던 고려, 헌데... 폭탄 드랍이 하나 날아 왔죠.

1361년, 압록강 너머에 다시 대규모 홍건적들이 집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곳곳을 휩쓸며 11월에는 영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방실은 이에 맞서 정공으로는 힘들겠다고 판단, 병력을 후퇴하고 백성들을 남쪽으로 옮긴 후 소규모 전투를 벌입니다. 이어 안우도 합세해 약간의 전공을 올리지만... 적은 안주까지 내려온 후 "1백 10만을 거느리고 가니까 빨리 항복하라"면서 협박했죠. 고려군은 계속 밀리면서 개성의 군사까지 동원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김용, 안우, 이방실, 최영 등은 개성을 어떻게든 지켜야 된다고 주장했지만, 적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백성들은 도망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안우 등이 막는 동안 공민왕은 안동으로 향합니다. 다행히 적은 개성 점령 후 움직이지 않았는데, 고려는 전국의 병력을 총집결합니다. 그 수는 20만, 62년 1월 개경 탈환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때 죽은 게 10만, 압록강을 넘어 도망간 게 10만이라고 합니다. 이 때부터 이름 대신 태조라고 나오는 어떤 장수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보이네요.

(3) 나하추
한편 쌍성 총관부를의 총관이었다가 수복 후 도주한 조소생은 나하추를 꼬득여 고려를 치게 합니다. 그는 원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 심양을 점령했고, 스스로를 행성승상이라 칭했죠. 7월, 그는 조소생 등과 함께 넘는데, 이 때 부터 이성계는 화려하게 등장합니다. 역시 그의 활약은 나중에~

이 때 이성계의 활약은 정말 괴물 수준이었죠. 나하추는 아무것도 얻지 못 한 채 돌아갔고, 다시 오지 않습니다.

4. 주저앉다
뭐... -_-; 너무 간단히 정리해서 그렇지 이 정도면 정말 막장 수준입니다. 조일신, 기철, 김용까지 신하들은 계속 반발했죠. 기황후를 등에 업은 친원세력이 얼마나 난리를 피웠을지도 충분히 예상이 가구요.

기존 친원세력의 반발, 특히 쌍성총관부 등의 반격과 홍건적, 나하추에 이르기까지 많은 세력들이 고려를 침략했고, 홍건적의 2차 침입 때는 개경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서울을 옮기자는 논의도 계속됐고, 자원 입대하는 자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죠. 심지어는 나라가 위급하니 3년상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왜구는 한 해가 멀다하고 계속 쳐들어왔죠.

이 과정에서 안우, 이방실, 정세운, 최영 등 많은 명장들이 탄생했습니다. 정말 임진왜란 병자호란 저리가라 수준의 침략이 계속됐던 겁니다. 특히 홍건적들이 공격해 오자 다시 원나라와 선을 대야 했고, 이런 필요와 원의 협박 속에 기껏 옛 식으로 돌아갔던 제도를 다시 원나라 식으로 돌리기까지 했습니다.

이후 그가 정말 미쳤느냐의 논의는 다음 편에 하겠지만, 이 정도면 미쳤다 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죠.

그리고, 공민왕이 그렇게 잘나기만 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봐야 됩니다.

공민왕 재위 초의 명장, 인당은 쌍성총관부 탈환 과정에서 큰 공을 올렸고, 압록강을 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원이 위협을 가하자, 공민왕은 그의 목을 베어 원에 바칩니다. 자기는 기철 등을 토벌하려 했을 뿐이고 원에게 직접 위협을 가한 건 인당이 혼자 한 거라면서요.

김용의 난 역시 살펴봐야 될 부분입니다. 김용은 왕의 명령을 핑계로 안우, 이방실 등에게 정세운을 죽이라 했고, 안우는 실행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개선하자 김용은 그들을 죽이죠. 이후 김용이 공민왕을 몰아내려 했다고 하지만, 이 부분에 공민왕의 개입이 없었을지는 의심됩니다. 그들이 죽었을 때는 홍건적의 2차 침입을 격퇴한 직후거든요. 전형적인 토사구팽이 떠오르죠. 안우가 죽었을 때 한 말입니다.

"잠깐 참아라. 주상 앞에 나가서 주머니에 든 글을 바치고 나서 죽음을 받겠다"

좀 복잡합니다. 김용이 공민왕 몰래 안우에게 공민왕이 시킨 것처럼 꾸며 정세운을 죽이게 했고, 안우는 그 명령을 받은 글을 공민왕에게 바치려 했으며, 안우는 그걸 들키지 않기 위해 죽였다고 합니다. 공민왕은 정세운을 죽인 것만을 탓해 벌 주려 했지만 김용이 그를 죽인 후 김득배, 이방실도 죽여야 된다고 주장, 죽였다고 하죠.

글쎄요... -_-a 이런 가설이 맞을 경우, 공민왕은 그만큼 사람을 믿지 못 했다는 말이 됩니다. 이후 신돈의 일과 엮어 생각하면 더 그럴 듯 하죠. 복잡합니다. 그리고... 공민왕이 처한 환경을 보면 이해도 되구요.

노국 공주의 죽음은 그런 면에서 큰 충격이었을 겁니다. 1365년, 하필 첫 자식을 낳을 무렵이었습니다. 만삭의 몸으로 병이 심해지자 두 차례나 사면령을 내리고 여기저기 빌고 또 빌었지만, 그녀는 죽었죠. 반원의 모습을 보이는 남편을 끝까지 믿어 주던 아내였습니다. 그의 슬픔이 어땠을까요. 고려사절요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왕이 손수 공주의 초상을 그려서 밤낮으로 마주 대하여 밥먹으면서도 슬피울고, 3년 동안 고기 반찬을 먹지 않았다"

요승 신돈이 나타났을 때는 바로 이 때였습니다.

----------------------------------------------------------------

공민왕 얘기 하면 이성계가 페이크 주인공이 된다고 분명히 말 했잖아요 ( ..);;;;;;;;;

후우;;; 복잡하네요 진짜. 전체적으로 쓰면서 공민왕 역시 과장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몽골에 반대한 자주독립의 상징으로요. 하지만 쌍성총관부 탈환 등의 눈에 보이는 게 없진 않았지만, 가시적이라 할 만한 개혁의 성과도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시대가 그럴 수 없었거든요. -_-; 내외의 엄청난 압박 속에서 어디까지 갈 수 있었을까요.

그래도 그의 노력들이 아예 헛된 건 아니어서 그의 후반기와 죽은 후에 성과가 보이긴 합니다.

다음 편은 신돈과 공민왕의 죽음까지를 다뤄보겠습니다. 심심하면 튀어나오는 이번 시리즈의 진짜 주인공은 일단 무시하죠 (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Je ne sais quoi
11/10/13 23:28
수정 아이콘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겠네요 -_-;; 읽고 나니 일단 더 불쌍해집니다. 자세한 건 뒤의 이야기를 더 읽어봐야겠지만..
11/10/14 01:17
수정 아이콘
눈시비비님의 글은 역시 한반도사를 다루는 게 가장 재밌네요 크크
여튼 고려후기 역사를 다루면 어떤 식으로 내용을 끌고가도 이성계만 부각 되는 느낌-_-;;
무리수마자용
11/10/14 03:10
수정 아이콘
페이크주인공 그분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급인데요?? 덜덜
릴리러쉬^^
11/10/14 07:24
수정 아이콘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11/10/14 08:34
수정 아이콘
아..요즘 삶에 지쳐서 이런 장문의 좋은 글을 읽을 짬이 없네요...
언젠가 시간 내서 연재 글 전부 다 봐야 할텐데..
걍 책으로 출간해 주십쇼!!! 제법 팔릴 겁니다..^^
슬러거
11/10/14 12:22
수정 아이콘
눈시BB님 역시는 그저 쉽게 따실듯.... 박식한 지식 부럽습니다 ㅠㅠ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38905 [일반] 낙동강 - 6. 다부동으로 [20] 눈시BBver.27397 12/08/29 7397 0
38895 [일반] [드라마] 안타까운 드라마 '신의' [31] 슈슈8790 12/08/29 8790 0
38509 [일반] [스포츠] 한 주간 <스포츠 + 런던올림픽> 뉴스 올립니다.. [35] k`7554 12/08/06 7554 2
38375 [일반] 희망과 절망 - 3. 한강 방어선 붕괴 [6] 눈시BBver.27384 12/07/29 7384 0
38318 [일반] 희망과 절망 - 2. 적과 아군, 누가 더 빠른가 [27] 눈시BBver.27596 12/07/25 7596 5
37882 [일반] 폭풍 - 2. 옹진 함락, 김포지구전투사령부 [19] 눈시BBver.28074 12/06/26 8074 2
37868 [일반] [6.25] 폭풍 - 1. 개성, 문산지구 전투 [58] 눈시BBver.29004 12/06/25 9004 8
36689 [일반] 북한 광명성 3호 발사 + 김정일의 유언 [98] 눈시BBver.28868 12/04/13 8868 0
36413 [일반] [오늘] 4.3 (1) [14] 눈시BBver.28773 12/04/03 8773 11
36283 [일반] 19대 총선 D-13 각종 언론 여론조사 [21] 타테시6980 12/03/29 6980 0
36076 [일반] 검푸른 해협 - 완. 원 간섭기 [22] 눈시BBver.26956 12/03/21 6956 4
35234 [일반] 대몽항쟁 4부 끝과 시작 - 1. 최씨 정권의 끝 [4] 눈시BBver.24918 12/02/10 4918 1
35210 [일반] 도대체 왜죠? [38] polt9497 12/02/08 9497 0
34458 [일반] [국내야구] KIA 로페즈 , SK 행! [30] 본좌5554 12/01/05 5554 0
32775 [일반] [국내야구]이글스의 안방마님이 FA를 신청했다고 합니다. [27] Animako6530 11/11/02 6530 0
32694 [일반] 고려의 마지막 명장 - (완) 조선의 첫 번째 왕 [14] 눈시BBver.26345 11/10/29 6345 2
32651 [일반] 고려의 마지막 명장 - (6) 정몽주 [16] 눈시BBver.29919 11/10/27 9919 1
32627 [일반] 고려의 마지막 명장 - (5) 폐가입진, 해가 이미 저물었구나 [5] 눈시BBver.25954 11/10/26 5954 1
32564 [일반] 고려의 마지막 명장 - (4) 위화도 회군 [12] 눈시BBver.28052 11/10/24 8052 1
32388 [일반] 고려의 마지막 명장 - (3) 이인임, 최영, 그리고 잠룡 [12] 눈시BB7109 11/10/16 7109 2
32366 [일반] 고려의 마지막 명장 - (2) 신돈, 개혁의 끝 [12] 눈시BB7562 11/10/15 7562 1
32327 [일반] 고려의 마지막 명장 - (1) 공민왕 [12] 눈시BB7771 11/10/13 7771 2
32241 [일반] 글을 써 보아요. [24] 눈시BB5520 11/10/10 5520 5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