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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9/30 11:49:25
Name 눈시BB
Subject [일반]  그 때 그 날 - 과거 (완) 나경언의 고변

1. 나경언
"사람됨이 불량하고 남을 잘 꾀어냈다. 가산이 탕패되어 자립하지 못하게 되자 이에 세자를 제거할 계책을 내어 형조에 글을 올려, 환시가 장차 불궤한 모의를 한다고 고하였다."

환시는 내시, 일단 겉으로 한 얘기는 "궁 내에 역모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홍봉한은 놀라서 영조에게 아뢰고, 영조는 친국합니다. 헌데, 거기서 나경언은 전혀 다른 얘기를 합니다.

"이 글을 전하께 올리고자 했으나 올릴 길이 없기 때문에 우선 다른 걸 올려서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러면서 영조에게 준 종이, 영조는 보고 크게 탄식합니다. 그는 홍봉한에게 이걸 보여주었고 (홍봉한은 또 죽여 달라 하고) 윤동도에게도 보여준 후 신하들에게 말 합니다.

"오늘날 조정에서 사모를 쓰고, 띠를 맨 자는 모두 죄인 중에 죄인이다. 나경언이 이런 글을 올려서 나로 하여금 원량(세자)의 과실을 알게 하였는데, 여러 신하 가운데는 이런 일을 나에게 고한 자가 한 사람도 없었으니, 나경언에 비해 부끄럼이 없겠는가?"

또 나경언에게 이렇게 말 합니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처럼 진달하였으니, 그 정성은 가상하다. 그러나 처음 올린 글에 부언을 만들어 사람을 악역의 죄과로 모함하였고, 또 ‘변란이 호흡 사이에 있다.’는 등의 말로 임금을 공동시켜 궐문을 호위까지 하게 하고 도성이 들끓게 하였으니, 이후 불궤한 무리들이 다시 네 버릇을 본받게 될 것이다"

자... 이것을 잘 기억해 둡시다. 이어 대죄하고 있던 세자를 불러 꾸짖습니다. 이 나경언의 고변서는 태워졌고,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건 몇 개 안 되죠.

"네가 왕손의 어미(빙애)를 때려 죽이고(1), 여승을 궁으로 들였으며(2), 서로에 행역(관서행)하고(3), 북성(북한산성)으로 나가 유람했는데(4), 이것이 어찌 세자로서 행할 일이냐? 사모를 쓴 자들은 모두 나를 속였으니 나경언이 없었더라면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왕손의 어미를 네가 처음에 매우 사랑하여 우물에 빠진 듯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어찌하여 마침내는 죽였느냐? 그 사람이 아주 강직하였으니, 반드시 네 행실과 일을 간하다가 이로 말미암아서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또 장래에 여승의 아들을 반드시 왕손이라고 일컬어 데리고 들어와 문안할 것이다. 이렇게 하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겠는가?"

이외에도 그 후의 조치에서 그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어제 내가 본 바가 있어서【나경언의 글이다.】 내사와 사궁에서 시인들에게 빚이 많은 것을 알았다(5). 또 너희들이 억울함을 품은 일이 있을 것이니, 숨기지 말고 다 진달하라."

뭐 대충 이렇게 다섯 개는 나왔네요. 나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흔히 이 때 그가 말한 게 역적 고변이라고 하고 있고, 세자를 죽인 결정적 사건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또 그 배후에 대해서도 말이 많죠.

2. 누가 배후인가
이 날 이후 세자는 또 석고 대죄합니다. 그 때 그 날까지요.

한중록은 그가 윤급의 종이고, 윤급은 김한구와 한 패라는 것을 이용, 그 배후를 김귀주, 즉 정순왕후로 보고 있습니다. 현재 통설이 이렇습니다만... 이건 그녀의 예상일 뿐이었고, 그걸 밝혔을 때는 김씨가 몰락한 이후였습니다.
정병설 교수는 이 배후를 지금 와서 밝히기는 더 힘들다면서, 오히려 그 때 배후를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뒤에 큰 세력이 있었기에 배후를 밝히지 않았다는 거죠. 그러면서 여러 가지 견해를 내비치는데, 가령 현고기에는 세자가 욕 먹고 나온 후 "아무도 배후를 밝히라 하지 않으니 역적이다!"고 외쳤고, 신하들이 무서워 했다고 합니다. 특히 정원달은 이 때 무서워서 벼슬을 그만두고 기어이 미쳐 버렸다고 하죠.

글쎄요... 어느 쪽일까요?

세자가 대죄하고 있던 시기, 홍봉한은 몇 차례 세자를 위로하면서 그걸 영조에게 알렸다고 합니다. 허나 영조는 그 사실조차 몰랐다는 둥의 말을 하죠. 이 때 몇 가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세자를 모함한 나경언을 죽이라는 상소가 계속되자) 임금이 연달아 [차마 듣지 못할 전교]를 내렸다. 임금이 또 전교하기를,
“나경언이 어찌 역적이겠는가? 오늘의 조정의 신하들의 치우친 논의가 도리어 부당(아버지당), 자당(아들 당)이 되었으니, 조정의 신하가 모두 역적이다.”
하고, 사관을 돌아보면서 이르기를,
“너도 곧바로 쓰지 않으면 역시 역적이다.”
하고, 수없이 가슴을 치니, 여러 신하들이 두려워하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물러 나갔다."

(나경언을 죽이라는 말에 대해) "이번 삼사의 괴이한 행동은 후일 곧았다는 말을 듣고자 해서였다" (주모자들 처벌. 유배가는 길에 노잣돈도 주지 못 하게 함)

"중관의 무리들조차도 공을 세워 [후일]에 잘 보이려고 하여" "이목의 관원은 오로지 머뭇거리면서" "전의 영상이 (뭐라뭐라 했는데) 이 역시 의심하여 머뭇거리는 신하이다"
이에 대한 사관론입니다.
"전의 영상은 바로 김상로로서 동궁의 일 때문에 임금에게 미움을 받아 이런 하교가 있게 된 것이었다"

후일에 잘 보인다는 게 뭘 향한 거겠습니까. 후에 왕이 되야 하는 세자에 대한 거죠. 그리고... 여기에는 전 영의정 김상로도 포함돼 있었고, 김상로는 세자 일 때문에, 그러니까 세자를 실드 치다가 미움을 받았다고 하고 있습니다.

... 김상로는 세자의 원수래매요?

영조는 나경언을 처형하라는 말을 거부하며 신하들에게 쌍욕을 하고, 배후를 밝히라는 한익모를 파직시켜 버립니다. 그나마 세자는 배후를 파는 데 열중했는데, 나경언의 처자가 안성의 경주인, 에 그러니까 지방 관아에 있는 서울 출장소장이였습니다. 그를 잡아서 국문하니 나온 이름은 윤광유, 그는 윤동도의 아들이었습니다. 세자는 거짓말 한 거로 생각했고 그건 맞는 듯 합니다.

현고기에는 한중록과 비슷하지만 좀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흔히 우리가 아는 이미지가 많죠. 평양행은 역도를 없애기 위해, 세자는 노론에 밀려서... 이 책 나온 건 20세기입니다. -_-; 아무튼 여기서는 친국했는데 홍계희, 윤급 등의 이름이 나오자 급히 죽여 버렸다고 하고 있습니다.

자... 한꺼번에 정리해 보겠습니다.

3. 영조의 뜻
정순왕후의 힘은 이 때부터 강력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래편에서 봤듯 그들이 홍봉한을 공격한 것은 영조 47년에야 가능했고, 더 밀어붙이려다가 실패해서 자신들이 몰락했습니다. 그리고 이 때 했던 것 역시 세손, 정조의 지원 사격 아래였습니다. 십 년 전, 그녀의 힘이 얼마나 됐을까요? 아니, 있긴 했을까요? 그녀는 수렴 청정 이후 곧바로 몰락합니다. 그녀가 그 정도로 힘이 있었다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그랬다면 벽파는 왜 그렇게 쉽게 몰락했을까요?

영조는 세자를 옹호하고 나경언을 죽이라는 말에 격하게 반응하며 오히려 그들을 벌합니다. 여기에는 홍봉한, 김한로까지 섞여 있었습니다. 세자의 원수라는 그들이 마지막까지 세자를 옹호한 겁니다.

아니 그 전에, 세자가 빙애를 죽인 걸 영조가 알게 된 게 이 사건 때였습니다. 다른 사건들은 대충 알았고, 관서행도 알고 있었던 상황이었죠. 그가 세자에게 따진 것도 빙애를 죽인 것 뿐이었습니다. 세자가 돈을 하도 써서 남에게 빌린 걸 갚아 줄 때도 딱히 화 낸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사실"을 일러바친 것은 이간질도 뭣도 아닙니다. 사실을 말 해 준 것입니다. 유교 사회에서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영조는 정말 당연한 것, 남들이 자기 귀를 막았다는 것 때문에 화를 낸 거구요. 오히려 세자가 화를 낸 게 잘못된 거죠. 이건 사람 죽여놓고 숨겼다가 누가 이걸 신고하자 "신고한 놈 죽인다"고 한 거랑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 때 대신들은 물론, 대간들까지도 세자의 비행을 숨기고 옹호했던 것입니다. 만약 정순왕후 등이 이걸 배후에서 조종한 거라면, 그건 정말 소수파가 아주 조심스럽게 행동한 겁니다. 그리고 다수파는 여전히 세자 편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대신들은 모를까 영조가 배후를 밝히지 않은 건 당연한 겁니다. 다시 말하면, 나경언은 영조가 알고 싶었던 걸 말 해 준 것이고, 영조의 뜻을 따른 것입니다.

조선 역사 내내, 그 힘이 약하다던 중종도 신하들을 숙청할 때는 자기가 직접 말하지 않고 신하들에게 밀지를 내려서 탄핵하게 시켰습니다. 그렇다면? 나경언의 배후는 영조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하들이 그 배후를 밝히라고는 하지 않고 죽이라고만 한 것도 이해가 가죠.

그 고변서를 태웠다는 것으로 거기에 역모가 담겼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고변의 시작이 역모 고발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여기서는 그 날의 일을 다시 봅시다. 영조는 "니가 잘 하긴 했는데 처음에 역모라고 한 건 잘못된 거다"고 했습니다.

"가산이 탕패되어 자립하지 못하게 되자 이에 세자를 제거할 계책을 내어 형조에 글을 올려, 환시가 장차 불궤한 모의를 한다고 고하였다"

다시 그 날의 기사입니다. 나경언은 이렇게 큰 소리를 친 후 정작 세자의 비행만 담긴 것을 내린 것입니다. 굳이 어렵게 볼 필요 없습니다. 그 떄 그 날, 영조는 이 일에 대해서는 전혀 얘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죠. 명분이 너무나도 부족한 말이었습니다. 나경언의 고변이 역모 고변이었다면 그걸 말하는 걸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영조는 그러지 않았죠.

4. 명분
뭔가 사료에서 헤매는 것 같은 정병설 교수에 비해 박시백 화백은 비전공자답게 참 명쾌한 답을 내리고 있습니다. (엄밀하게 보면 정병설 교수가 국문과니까 사학 전공은 아니지만요) 만화라는 분량 때문이겠고, 정병설 교수의 방법이 맞긴 하지만, 이 직관적인 해답은 정말 큰 설득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때 그 날, 영조의 말입니다.
"여러 신하들 역시 신(神)의 말을 들었는가? 정성 왕후께서 나에게 이르기를, ‘변란이 호흡 사이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세자를 죽인 명분은 역모, 그리고 그 역모의 출처는 "정성 왕후의 영혼"이었습니다. 이게 뭔 어이 없는 말이랍니까? 관서행이 문제라면 그걸로 삼으면 됩니다. 나경언의 고변이 정말 역모 고변이라면 그걸로 삼으면 됩니다. 그러고도 보름 넘게 있었던 게 영조입니다. 부족했던 건 명분이었던 겁니다.

그 명분을 채워 준 것은, 세자의 어미 선희궁이었습니다.

"세자의 병이 점점 깊어 바라는 것이 없사옵니다. 어미 된 정리로 차마 드리지 못 할 말씀이오나 성궁을 보호하고 세손을 건져 종사를 편안히 하는 일이 옳으니 대처분을 하시옵소서. (중략) 처분은 하시되 은혜를 끼쳐 세손 모자를 편안하게 하시옵소서."

한중록은 그 때 그 날, 그녀가 영조를 찾아가 이렇게 말 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조선 역사 사상 최고 엽기적인 일이 시작된 겁니다. 어미가 죽이라 하고, 아비가 죽였으며 장인이 앞장 선 겁니다.

나경언의 고변으로는 명분이 부족했습니다. 그가 고변한 건 역모가 아니라 정말 세자의 비행일 뿐이었으니까요. 영조가 시킨 거라면 그는 마지막 순간에 한 발 물러난 것이고, 자기 생각대로 한 거라면 영조가 처음에 기대했던 것 (역모)에 비해 너무나도 부족했던 것입니다. 보름이 넘는 긴 침묵은 그것이었습니다. 그 명분을 채워 준 것은 세자의 어미 선희궁, 허나 그걸로도 부족했습니다. 결국 끌어들인 것이 "정성 왕후의 영혼", 뭔 택도 아닌 소리냐고 하지만 왕의 말이었습니다. 토 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영조는 토 달 시간도 주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고립된 곳에서 영조는 그 말을 꺼낸 후 바로 세자에게 자결을 명 합니다. 반대하는 신하들은 허둥지둥했고, 뒤늦게 반대했던 신하들은 모두 숙청당합니다.

+) 이 마지막 날 소론의 영수 조재호가 세자를 감쌌다 해서 세자가 친소론이라고 하는데... 세자가 도움을 청한 건 홍봉한과 조재호였습니다. 이 중 가장 강력한 지지자였던 홍봉한이 배신했죠. 세자가 친소론이었던 게 아니라 지금 상황에서 도움을 청할 유일한 게 조재호였을 뿐입니다.

5. 한편 세자는
한중록에서는 이 때 세자의 마지막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몇 날 몇 일 대죄해도 별 반응 없는 모습에 그는 최후를 직감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신 그는 영조의 소원대로 "발광"을 합니다. (나경언 사건 때 세자는 이게 자기 화증 때문이라 했고, 영조는 차라리 발광하라고 했죠) 칼을 들고 하는 말은 "내 기필코 [아모리] 하리라"

아무리, 뭐... 거시기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죠. 그 내용 때문에 혜경궁이 일부러 가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는 칼을 들고 하수구로 들어가서 어쩌겠다느니 하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 일을 선희궁이 알게 되었고, 혜경궁에게 "세손이라도 보호해야 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냅니다. 그 날로 영조를 찾아가죠. 이렇게 보면 세자의 역모는 이 때 선희궁이 말한, 세자가 "아모리 한다"며 왕에 대해 불경스러운 말을 했다는 것 뿐입니다.

한편, 전혀 뜬금 없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중국소설회모본]이라는 삽화책이 있습니다. 삼국지, 서유기, 수호지 등 중국의 소설들의 그림을 모아 놓은 책인데 세자는 그 서문을 쓴 거죠.

그가 정말 그런 말을 했을지는 또 알 수 없죠. 어쨌든... 한중록은 영조가 오는 순간 마지막을 느꼈다고 적고 있습니다. 영조는 편집증적인 성격이었고, 좋은 일과 나쁜 일 때 드나드는 문이 달랐습니다. 그 날 영조가 온 것은... 나쁜 일이 있을 때 쓰는 경화문이었습니다. 세자도 자기가 죽을 거라고 얘기했죠.

여기서 한 가지 촌극이 벌어집니다. 자기가 병에 걸렸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휘항(방한모, 때는 여름이었는데 세자는 말라리아를 앓고 있었고, 한기가 많이 든다고 하죠)을 갖다 달라고 합니다. 근데 자기 게 아니라 세손, 자기 아들 거였죠. 정병설 교수는 자기가 이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다는 걸 강조하면서 세손의 물건으로 동정을 얻으려고 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게 맞다면 혜경궁은 세자의 마음을 이해 못 한 거죠. 그녀는 세손 건 작으니 세자 걸 가져오겠다고 했고, 세자는 "자네 무섭고 흉한 사람일세"라며 욕 했다고 합니다. 그제야 다시 세손 걸 주려 했지만 거부합니다. 정병설 교수의 분석도 그럴 듯 하고, 그냥 미쳤다 생각해도 별 무리 없겠네요. 겉으로는 죽겠다 하지만, 세자도 아직 죽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구요.

그렇게 세자는 아버지를 따라 나갑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6. 사건의 재구성

영조는 호불호가 확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계산도 잘 하는 사람이었죠. 그런 면에서 무예를 좋아하고 공부를 싫어하는 아들은 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면박은 계속되고 편집증적인 성격 탓에 사소한 것에도 뭐라고 했겠죠. 하지만 미워한다고 버릴 수 없는 자식이었습니다. 실록에서 나오는 수 없는 칭찬은 거기서 나온 것입니다. 싫어했다면 정성 왕후처럼, 화협 옹주처럼 아예 무시하고 내버려 뒀겠죠.

하지만 세자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공부를 싫어하는 건 정말 고칠 수 없는 천성이었고, 그에 비해 영조의 꾸중은 너무 심했으니까요. 거기다 선위 쇼 때 보여 준 세자의 모습은 어땠습니까. 그는 영조의 쇼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 했습니다. 둘의 차이는 너무나도 컸죠.

정도가 다르지만 그 때 그의 병은 확실히 났습니다. 그렇게 사람을 죽이기 시작했을 무렵, 영조는 태도를 바꿉니다. 드디어 세자를 잘 대해 준 거죠. 하지만... 그 기간도 너무 짧았습니다. 세자는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고, 진현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건 병을 핑계로 한 거죠. 돌리기엔 너무 늦었던 거죠.

이런 상황에서 영조의 세자에 대한 관심이 극히 줄어듭니다. 온양을 가거나 말거나, 관서를 가거나 말거나였죠. 세자가 1년 동안 진현하지 않았던 기간과 영조가 세손을 만나서 애정을 쏟기 시작한 기간은 일치합니다.

여기에 정순왕후 같은 "세자의 적들"이 끼어들 곳은 없습니다. 홍봉한은 세자의 보호자였고 건재했습니다. 그는 나경언의 고변 때까지 세자의 비행을 철저히 숨겼습니다. 뭐 영조가 이걸 아예 몰랐을 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죠.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을 뿐.

세자의 비행은 폐세자의 명분은 될지언정 죽음의 명분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폐세자만 시키면 그가 죽은 후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습니다. 양녕과 세종대왕간의 일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형과 아우, 아버지와 아들이었죠. 세손이 안정적으로 왕위에 오르려면 세자는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죽이기는커녕 폐세자 시키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세자의 병이 어떻다 하더라도 조정의 사람들은 세자의 병을 묵인하고 그 비행을 영조에게 말 하지 않았습니다. 유생들의 상소도, 대간들의 비판도 영조의 귀까지 가진 않았습니다. 영조는 늙었고 언제 죽을 지 몰랐습니다. 영조의 말대로 그들은 다음 왕이 될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자의 비행은 공론화 될 수 없었습니다. 영조가 아예 몰랐다 해도 그랬지만, 영조가 알았다면 그는 이것을 공론화시키기를 계속 기다리면서 계산하고 있었을 겁니다.

관서행도 아직 부족했습니다. 나경언의 고변은 역모인 척 했지만 알고 보니 역모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선희궁이 나서야 했습니다. 선희궁의 말로도 부족했습니다. 정말 기습적으로 하고도 조재호 등 반대하는 이들을 몰아낸 후에야 가능했습니다. 뒤주는 오히려 이렇게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기에 동원된 수단이었을 겁니다. 정말 역설적인 거지만, 세자 편이 정말 없었다면 뒤주 역시 없었고 세자는 편히 세상을 떴겠죠.

정병설 교수는 영조가 세자를 죽인 이유에 대해 선희궁의 말을 가장 큰 근거로 삼았습니다. 세자가 아비를 죽인다는 말을 했다는 것으로요. 하지만 영조는 충분히 그럴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세자가 석고대죄하는 걸 알았으면서도 모른 척, 관심 없는 척 하면서 위기감만 부추겼죠. 선희궁의 말이 사실이라면 세자는 이런 영조의 기대에 (처음으로) 부응했다고 봐야 됩니다. 만약 선희궁의 말이 거짓이라면? 영조는 선희궁을 부추겼을 겁니다. 나경언의 고변 때 영조는 이전의 일들에 비해 판을 크게 키웠지만, 정작 세자의 죄는 죽음에 비하면 너무도 가벼웠습니다. 그게 영조의 이십일간의 침묵의 이유입니다.

김상로는 마지막까지 세자를 감싸다가 미움을 받았고, 홍봉한 역시 최소한 공론화는 마지막까지 막았습니다. 그렇다면 영조가 김상로가 세손의 원수라고 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 영조의 마음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일 겁니다. 그는 죽었고 세력이 약했죠. 세력이 약하면서 자기 말을 들었던 자, 그렇기에 영조는 거리낌 없이 그 죄를 뒤집어 씌운 겁니다. 문녀와 문성국은 조금 다릅니다. 그들이 정말 왕위를 노릴 정도였다고 하더라도 영조가 그걸 싫어했다면, 그리고 홍봉한이 건재한 상황에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들이 정말 그걸 생각했다 하더라도 멀쩡한 음식에 파리가 끼어 음식이 상한 게 아닙니다. 똥에 파리가 꼬인 것일 뿐이죠. 그리고 영조는 그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겁니다. 정조 역시 영조 자신이 아닌, 그 파리의 죄를 물은 거죠. 그리고 김귀주의 죄로 올린 사도세자 관련 세초 거부 역시, 사도세자가 죽은 후의 일이지 죽을 때의 일이 아닙니다. 홍씨 가문은 마지막까지 세자를 보호하다가 영조의 뜻에 생각을 돌려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고, 김씨 가문은 세자에 대해서는 죄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세자가 죽은 후 세손에 관련해서 나타난 것이고, 그 죄를 크게 하기 위해 세자까지 소급한 것입니다.

6. 결론
세손이 있었기에 세자가 죽을 수 있었다는 것에는 별 다른 반론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으로 바꾼다고 해 봐야 세자의 서자들 뿐이니까요. 이들이 후에 역모에 심심하면 휩쌓이긴 하죠. 하지만 그건 보통 보조적인 이유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박시백 화백은 이것을 뒤집습니다. 그 이유가 전부라는 거죠. 다른 자질구레한 이유는 없거나 사소한 것이고, 세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이유가 바로 세손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세손이 왕위에 오른 상황에서 살아 있는 세자의 아버지, 거기다 죄인인 아버지가 살아 있는 것은 위험하니까요.

이렇게 본다면 그 후의 조치와 한중록의 상황 역시 이해가 됩니다.

세자가 죽은 후 쓰여진 현고기와 이재난고, 그리고 영춘옥음기 등에는 세자의 병이 공통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세자가 정신병이 있었다는 것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원인과 증상입니다. 한중록에 나와 있는 것은 실록과 비교하면 너무 지나치죠. (현고기의 경우 어릴 때부터 세자가 사람을 죽였다 해서 더 심하긴 합니다)

선희궁이 세자의 죽음을 청한 것, 영조가 그걸 듣고 홍봉한 등에게 이 처분을 결정한 것에도 병이라는 말은 계속 나옵니다. 그 요점은 이거죠. "병이 있는 건 알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 이렇게 본다면 홍봉한이 마지막까지 그를 감싸다가 죽이는 데 앞장선 것 역시 영조의 뜻에 따랐기 때문입니다. 만약 애초에 영조의 뜻에 동감하고 있었다면, 그 역시 역모라는 거대한 건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게 되겠죠. 자질구레한 걸 막은 것 역시 죽일 죄까지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영조는 세자가 죽을 죄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 무리수는 정조까지 이어져서 손자만 고통스럽게 했죠. 하지만 이 모든 건 손자를 위한 거였다는 게 아이러니입니다.

그가 늙어가면서 죄를 대신들에게 뒤집어 씌웠다는 건 두 가지를 말해 줍니다. 첫째는 그 역시 사람이었다는 것, 아무리 이유가 있다 해도 아들을 죽였다는 건 심적으로 고통이 심했을 겁니다. 한 나라의 왕인 그, 다른 대신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건 그의 인간적인 모습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세손의 죄를 덜 수 있습니다. 죄인의 아들인 세손, 하지만 그 죄가 그나마 괜찮은 거였다면?

세자의 어머니 선희궁은 직접 세자를 죽일 것을 요청했습니다. 세자의 아버지는 세자의 장인에게 그게 부득이한 것을 몇 차례고 설득했습니다. 세자의 죄는 역모죄, 죽일 수밖에 없는 죄로 만들었죠. 하지만 그 죄는 본심이 아닌 병 때문이라는 것으로 수준이 몇 단계나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왕을 꼬신, 세자와 세손들의 원수가 있다는 것으로 그 죄는 없어지다시피 했죠. 이렇게 세손은 아무 죄 없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세손을 위한 작전이었으며, 세자를 죽인 이유는 바로 세손이 아무 탈 없이 왕위를 잇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세자를 죽인 원인은 영조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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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사실 모든 원인은 영조의 상식 밖의 장수에 있습니다. 자기가 죽을 마당에 세자에게 그 정도로 하진 않았겠죠. 충분히 더 살 자신이 있으니 그 정도의 일도 했을 겁니다. 세자는 아버지가 그렇게 죽기를 원했겠지만, 영조도 세자가 맨날 병 핑계 대니 제발 죽기를 바랬을 겁니다. 하지만 세자 역시 아프다 아프다 하면서 죽진 않고, (세자를 죽인 건 그가 말라리아에 걸렸다가 나은 후였습니다) 세손은 계속 커 갔죠. 시간을 더 늦출 수 없었을 겁니다.

사람의 수명이 역사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있긴 있는 것 같습니다.

뭔가 희한한 사족. 국문과 분들. 한중록에는 이렇게 [아모리] [마노라] 같은 모음조화 현상이 보입니다. 19세기까지 모음조화가 깨지지는 않았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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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수마자용
11/09/30 13:21
수정 아이콘
눈이 피곤해서 제목을 얼핏 뵜다거 자위 행사에 참여하심 그분인줄 알고 깜짝 놀랐네요 [m]
Je ne sais quoi
11/09/30 22:00
수정 아이콘
오 마이 갓. 읽으면서 설마 설마 했는데 그 배후가 영조였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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