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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9/28 02:02:20
Name 눈시BB
Subject [일반]  그 때 그 날 - 과거 번외편. 경종과 영조


새벽 중에 미래 번외편 또 나갈지도 모르겠네요. 왠지 오늘은 폭풍처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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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지키는 것만 숭상하시어 떨쳐서 면려하는 바가 없으시면, 장차 어떻게 신민의 큰 바람에 부응하고 대조의 부탁을 이루실 수 있겠습니까? 대조께서 40년 동안 근로하신 나머지 저하께서 정일한 교훈을 이어받아 계술하는 책임을 맡으셨으니, 밤낮으로 근로하셔야 할 것인데, 어찌 방관하신 채 침묵만 지키고 계십니까?” (숙종 45년, 9월 24일)

왜 조용조용히 있냐 이거죠. 이에 대한 답은 이거였습니다.

"마땅히 유의하겠다."

...

참 조용한 왕이었습니다. 숙종이 늙어가며 대리 청정을 맡겼지만, 세자의 태도는 영 아니었습니다. 알았다, 안 된다, 대조(숙종)께 아뢰고 결정하겠다, 유의하겠다... 하다못해 "유의하겠다고 하지 말고 좀 물어보고 좀 생각해보고 대답해라"는 상소가 위 말고도 하나 더 있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유의하겠다.

서른이 넘도록 자식이 생기지 않았고, 병에 골골대며 정사에도 무관심했던 세자. 하지만 저런 태도 덕에 별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숙종이 죽자 결국 왕이 되니, 바로 경종입니다.

1. 노론 천하, 소론 임금
숙종 말에 경종에게 대리 청정을 맡긴 것에 대해 흠을 잡아 폐세자시키기 위한 거라는 해석이 있죠. 뭐 맞는 것 같습니다만 그것까지 따지면... 번외편이 아니라 아예 시리즈를 하나 새로 써야 될 테니 넘기겠습니다. -_-; 그런 점에서 본다면 경종의 이런 대처는 그자신의 성격 탓이기도 하겠지만 살기 위한 정치적인 계산이었을 겁니다. 때는 바야흐로 노론 천하, 임금만 빼고 다 노론이었습니다. 남인은 실각했고, 소론은 세자 때도 자기를 최대한 도왔지만 소수였죠.

굳이 소론 임금이 아니라도 다들 불안하긴 했을 겁니다. 경종이 누굽니까. 희빈 장씨, 한 때 춘향이와 함께 사극 미인의 대명사로 꼽힌 장희빈의 아들입니다. 이랬던 사람이 한 명 더 있죠. 조선 최고의 흑역사, 연산군. 페비 윤씨의 아들이었던 그는 어머니의 복수를 신나게 외쳤고 폭군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윤씨는 왕실 내의 문제였지만, 장희빈은 크게 보면 당파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었죠.

어찌됐든 그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 역시도 어떻게 미치지 않고 버텼는지 신기할 정도죠. 병약한 것과 자식이 없는 것에는 이 스트레스 탓도 있을 겁니다. 야사에는 장희빈이 발광을 하다가 영 좋지 않은 곳을 잡아서 터져서(옴마-_-;)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됐다는 말이 있을 정도죠. 중국에 보고할 때도 공식적으로 "고자"라고 보고했다고 합니다. (...)

왕이 된 후에도 그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노론도 안심하긴 했을 겁니다. 오히려 경종으로서는 분통 터질 일이 벌어지죠. 즉위 직후 조증우라는 자는 장희빈의 작호를 바로 잡으라고 상소하는데, 일단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유배 보내긴 합니다. 하지만... 노론은 그의 처벌을 강요해서 마침내 고문 중에 죽게 되죠. 반면 윤지술은 장희빈의 일을 제대로 기록 안 한 게 있으니 제대로 쓰라고 상소합니다. 경종은 그를 유배 보내지만, 사헌부는 물론 성균관의 유생들까지 나서서 반대, 풀어줬습니다. 자기 어머니를 신원하라고 했던 이는 죽여야 했고, 자기 어머니의 죄를 제대로 밝히라고 한 이는 벌은 커녕 풀어줘야 했던 경종, 그 마음이 어땠을까요.

숙종실록에는 숙정보궐실록이 딸려 나옵니다. 경종실록 역시 수정실록이 딸려나오죠. 자기 입맛에 맞추기 위해 새로 쓴 것입니다. 이 때 노론의 위상이 이러했습니다. 그들은 송시열의 직계로 숙종에 의해 확실히 인정받은 집단이었죠. 반면 소론은 송시열에 실망해 떨어져 나온 집단, 애초에 그 수가 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숙종 때의 계속된 환국은 겉으로는 왕권을 확실히 강화시켜주었지만, 그 속에는 이런 커다란 문제를 낳은 것입니다.

이 때 노론이 보여 준 모습은,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 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 움직임은 경종 즉위 다음해에 곧바로 시작됩니다.

2. 세자 거르고 세제
"지금 우리 전하께서는 춘추가 한창이신데도 아직껏 후사가 없으시니 다만 중외의 신민만이 근심스럽게 걱정하고 탄식할 뿐만이 아닙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빨리 이 일을 자성께 상품하시고 대신들에게 의논케 하시는 것이 바로 사직의 대책을 정하는 것이며, 억조 신민의 큰 소망을 매두는 일이 될 것입니다" (경종 1년 8월 20일)

이정소의 상소입니다. 후사가 없으니 걱정이다, 빨리 후계를 정해야 된다, 대비께 보고하고 정하자. 지금 정하자는 게 어디 지금 밤일을 열심히 해서 열 달 후에 보자는 거겠습니까. 나이가 들었다 하나 서른 넷, (이 때 왕비인 선의왕후 어씨는 열일곱살 -_-; 도둑...) 사도세자가 태어난 게 영조 마흔 둘 때였습니다. 그 때로 봐도 지금 봐도 한창 때인 왕한테 자식이 없으니 다른 사람을 후계로 삼으라는 거였습니다.

경종은 대신들을 부르게 했고 의논이 시작됩니다. 대신들이 다 누구겠습니까. -_-; 다 노론이죠. 내용은 참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이건명의 말을 보죠.

"이 일은 일각이라도 늦출 수가 없으므로 신 등이 감히 깊은 밤중에 소대를 청한 것이니, 원컨대 전하의 생각을 더하시어 빨리 대계를 정하소서"

왕이 무슨 오육십 된 것도 아니고 지금 당장 자리에 누운 것도 아닌 상황에서 뭐가 그리 급했답니까. 비슷한 경우로 인종과 명종이 있는데, 둘 다 죽기 직전에야 결정을 내렸습니다. 인종의 경우 문정왕후가 눈에 불을 켜고 있기도 했지만 인종 측인 대윤도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상황이었고, 명종은 진짜 자식이 없어서 방법이 없는데도 질질 끈 케이스입니다. 한마디로 이 때의 일은 조선 사상 초유의 일이었던 거죠.

여기에 더해서 대신들은 대비, 인원왕후에게 결제를 받으라고 강요합니다. 아니 왕보다 더 높은 어른이긴 해도 일단 왕입니다. -_-; 이 모든 일들이 한 방에 끝났습니다. 인원왕후가 내어 준 종이에 적힌 세 글자는 연잉군. 그 외에 언문 하교가 있었고, 대신들은 "울었다"고 합니다. 뭐가 그리 급하고 감동적이라서 울었을까요.

당연히 이런 일처리에 딴지가 걸릴 수밖에 없죠. 소론 유봉휘의 상소입니다. 대충 정리하겠습니다.

"아니 나라에서 후사 정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건데 대신 중에 한강 밖에 있는 사람은 알지도 못 하게 급하고 바쁘게 굴면서 임금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었으니, 이게 뭐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만약 이걸 대비께 아뢰야 할 일이면 그렇게 건의하고 물러나서 하교를 기다려야제, [마치 명령하듯 독촉]했응께, 이게 참말로 신하라고 할 수 있는 거다요?" (8월 23일)

당연히 노론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지들이 유봉휘를 역이라 지목하고 기어코 그 부도함을 성토할라고 하는데, 대신은 유봉휘더러 충성이라 하고 딴 마음이 없다 카니, 피차의 의견 차이가 천양일 뿐만이 아입니더."

노론은 그가 역적으로 국본을 흔들려 한다고 하면서 국문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를 옹호한 것은 조태구 정도. 경종도 국문은 지나치다고 하면서 옹호하려 했지만 실패합니다. 결국 그는 유배됩니다.

이 때 막 세제로 임명된 연잉군이 나서서 세제가 된 걸 철회해 달라고 하긴 합니다. 그러면서 너무 큰 벌을 주지 말라고는 하죠.

3. 무리수
어찌됐든 노론은 계속 나갑니다.

"전하께서 신료를 인접하실 즈음이나 정령을 재결하는 사이에 언제나 세제를 불러 곁에 모시고 참여해 듣게 하고, 가부를 상확하며 일에 따라 가르쳐 익히게 한다면, 반드시 서무에 밝고 익숙하여 나라일에 도움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10월 10일)

불과 두 달도 안 되서의 일이죠. 조성복의 상소인데, 그 뒤에는 영의데있었다고 해석됩니다. 사실 이건 노론도 깜짝 놀랄 정도의 무리수였습니다. -_-; 그냥 한 번 떠 본 것일수도 있어요. 그런데...

"내가 이상한 병이 있어 십여 년 이래로 조금도 회복될 기약이 없으니 (중략) 대소의 국사를 모두 세제로 하여금 재단하게 하라"

다시 말 하지만 이건 한 번 떠 본 거일 수도 있습니다. 어디 상소가 한 방에 먹히는 거겠습니까. 하고 하고 또 하고, 들어주지 않더라도 나름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서 하는 게 상소죠. 근데 그걸 경종은 듣자마자 바로 알겠다고 하면서 이런 명령을 내린 겁니다.

급히 조성복을 탄핵하는 말들이 나왔고, 세제도 이번에도 철회해 달라고 나서려 했습니다. 이 분위기를 깬 것은 최석항, 그는 한 밤중에 와서 눈물로 만류했고, 경종은 쉽게 철회합니다. 이렇게 노소간의 전쟁에 막이 올랐습니다.

조태구, 조태억 등 소론계 대신들은 대리 청정을 요구한 조성복의 처벌과 더불어 그걸 힘써 만류하지 않은 노론계 대신들의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반면 노론의 반격은 좀 궁색했습니다. 최석항이 한밤중에 예의에 어긋나게 임금을 만났으니 그걸 공격한 거죠. 몇 일간 시끄러웠는데, 경종은 이번에도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내립니다.

"나의 병근이 날로 점점 더하여 나을 기약이 없으니, 일찍 후사를 정한 것은 실로 대리를 행하게 하려고 한 것이었으며, 이를 자성께 품한 지 오래 되었으나, 책례를 이제 막 거쳤기 때문에 실행하지 못하였다. 이제 여러 신하들이 나의 본의를 알지 못하고 대간의 상소로 인하여 나온 것처럼 여겨서 쟁론이 분분하기 때문에 우선 환수하여 나의 뜻을 보이고, 조성복의 망령되고 경솔한 죄를 다스린 것이다. 공사는 적체되고 수응이 절박하니, 일체 그저께의 비망기에 의해 거행하여 조섭하는 방도를 온전하게 하라." (10월 13일)

조성복이 급하게 말해서 처벌하긴 했지만, 대리는 세제를 정할 때부터 자기 본심이었으니 그저께 말 그대로 대리청정을 하게 하라는 거였습니다. 이번에는 노론 대신들도 반대했고, 세제도 또 상소해서 명을 거둬 주길 빌었습니다. 그러길 삼 일, 경종은 자기 주장을 그대로 지켰습니다. 이렇게 되자... 노론 쪽에서는 본심이 나오기 시작하죠.

"지금 성상의 비답에 ‘좌우가 하는 것이 옳겠는가? 세제가 하는 것이 옳겠는가?’라는 하교까지 있었다. 이와 같은데 다시 다투는 것이 옳겠는가? 정청(명령을 철회해 달라고 빌고 있는 거 -_-;)은 이제 정지하는 것이 옳다" (10월 16일)
이에 대해 이광좌의 반박입니다.
"해를 넘길지라도 인신의 분의로서 청을 허락받지 못하면 마땅히 그만둘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공 등은 도리어 오늘 의논을 그만두려고 하니, 백대 후에 공 등을 능히 신하의 절의를 다하였다고 이르겠습니까?”

경종 수정실록에서는 비슷하게 적고는 있지만, 이광좌 등에 대한 욕이 꽤나 들어 있군요. "다 맞다고 하는데 이광좌 혼자 잘못하고 있다"는 뉘앙스와 함께요. 이 때 노론의 4대신은 함께 상소를 올리고, 정청을 끝냅니다.

"어찌 감히 가볍고 갑작스럽다는 데 구애되어 일체 모두 거역하여 우리 전하의 마음을 상하게 하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빨리 유사에게 명하여 단지 정유년의 절목에 의하여 품지해 거행하도록 하소서"

반대는 했는데, 임금의 뜻을 알았으니 그만하겠다. 이런 내용이죠. 최석항 등은 이에 반대해 상소를 올렸지만 도승지 홍계적이 막습니다. -_-; 조태구는 몸이 안 좋아 걷지 못 했는데, 기어이 가마를 타고 와서 만나려 했지만 홍계적은 이번에도 막죠. 하지만...

"조태구를 인견하겠다는 전교를 전하고, 또 임금이 이미 전에 나왔음을 말하니, 승지들이 당황하고 놀라 합문 밖으로 나아갔다. 이때 대궐 안팎이 물 끓듯 진동하였다."

그 때 상황을 참 잘 기록해 놨네요. -_-; 이 때 노론들도 그 말을 듣고 놀라서 급히 입궁했죠. 이 때 조태구의 말입니다.
"오늘 천안을 뵐 수 있으니,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 임금의 자리는 인군이 스스로 사사로이 하는 곳이 아닙니다. 전사를 두루 상고해 보아도 인주가 한갓 한 몸의 사사로움을 따라 경솔하게 행한 것이 전하의 오늘날 하시는 바와 같은 것은 있지 아니합니다."
"신이 이것을 광구하지 못하면 다만 전하를 저버릴 뿐만 아니라, 또한 선왕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신이 살아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만일 반한의 명을 얻지 못하면 죽음이 있을 뿐이며, 청을 허락받지 못하면 감히 물러가지 못하겠습니다"

명령을 거두지 않으면 물러가지 않겠다는 말, 노론 대신들 역시 그에 맞추어 자신들을 변명하면서 청을 물려 달라고 빌었습니다. 참 재밌게 흘러갑니다. 경종은 명령을 물렸습니다.

+) 이 때 사관론이 전혀 다른 내용이 두 개 있습니다. 노론을 욕 하는 내용과 소론을 욕 하는 내용이었죠. 반면 수정실록에서는 사대신의 그렇게 한 건 충성에 나온 거라며 찬양하죠.

4. 폭풍
직후 대간들은 조태구를 탄핵하는데, 이번에도 문제 삼은 건 방식이었습니다. 승정원에서 조태구를 막았는데 왕이 어떻게 알았느냐, 그걸 비밀리에 전한 것이니까 처벌하라 이런 것이죠. 이외에 최석항 등도 문제 삼아서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알았다 알았다 하던 왕은 여기서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절대 안 된다는 거였죠.

일단 다시 물려진 대리 청정, 의외의 고요가 찾아왔습니다. 대리 청정을 막는데 성공한 소론도, 한 방 먹은 노론도 일단 조용히 있었죠. 그리고 50일이 지났습니다.

"이것도 오히려 부족하여 속으로 장심을 품고 적의 상소로 먼저 시험하고 흉악한 차자가 이어서 올라왔으니, 이것은 ‘우리 임금이 무능한데, 누가 감히 나를 어떻게 하겠느냐?’라는 뜻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빨리 법으로 다스리시어 사흉(四凶)으로 하여금 창궐하지 못하게 하고, 여러 불령한 무리들이 징계되어 두려워하는 바가 있게 하소서."
" 그런데 저 네 사람은 선왕을 잊고 전하를 저버림이 이에 이르렀으니, 죄악이 차고 넘칩니다. 나라 사람들이 모두 ‘죽이는 것이 옳다.’고 하는데, 어찌하여 전하께서는 지나치게 너그러이 용서하시어 여태까지 조정에 두시는지요?" (12월 6일)

김일경, 박필몽 등의 연명 상소입니다. 그들이 공격한 것은 사흉, 노론의 사대신이었습니다. 그들이 임금을 업신여겨서 저번의 일이 벌어졌다는 거죠. 이 때 임금의 보좌관인 승지들은 이렇게 말 하며 상소를 물릴 것을 청했습니다.

"김일경의 상소는 가리킨 뜻이 흉참하여 네 대신을 해치고자 하는 데 있을 뿐만이 아닙니다. (아예 노론 다 쓸어버리려고 하는 거죠) 청컨대 엄하게 통척하여 간사한 싹을 끊어 없애고 형벌을 쾌히 베풀어 나라일을 다행하게 하소서"

이 때, 경종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줍니다.
"나의 천심을 엿본다"
이렇게 말하면서 꾸짖고 승지들을 모두 파직하고, 상소에 대해서 이렇게 말 하죠.

"응지(임금의 명.령.에 호.응.함)하여 진언한 것을 내가 깊이 가납(받아들임)한다"

이 날, 영좌우의 세 정승들과 각 조의 참판, 참의, 승지, 삼사의 대간들이 모조리 바뀝니다. 알았다 알았다고만 하던 경종의 변모입니다. 하지만 어딘가 익숙하죠. 환국. 숙종 때의 환국이 재현된 겁니다.

+) 실록의 사관론에서는 소론, 노론 양 쪽 다 잘못이 있다며 둘 다 깝니다. 탕평의 영향인 것 같네요. 반면 수정실록에는 이 사관론이 없습니다.

이 때부터 신축, 임인년까지 이르는 일들은 보통 "소론에 의해 노론이 숙청된 것"이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꼭 빼면 안 될 사람이 있죠. 경종입니다.

경종은 여러 차례 대리 청정이 자기가 진심인 것처럼 얘기했습니다. 태종 때부터 대리나 선위 명령이 떨어지면 몇 날 몇 일이고 명을 물리기를 빌어야 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죠. 삼 일이면 충분히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정확히 그 순간에 조태구가 들어왔고, 기다렸다는 듯이 명을 물렸죠.
노론의 힘은 막강했고, 왕도 마음대로 하지 못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왕은 왕이었습니다. 소론이 아무리 맞는 얘기를 주구장창 한다 한들, 경종이 늘 하던 것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 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요? 뭔가 비슷한 상황이 고려 말에 있었습니다. 정몽주는 정도전 등을 죽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성계를 견제했습니다. 그 때까지 정몽주의 말을 충실히 따랐던 공양왕은 그 순간에 망설였고, 정도전은 목숨을 건집니다. 결국 결정을 내리는 것은 왕입니다.

노론 천하라고 하면서도 조태구는 우의정까지 올랐고, 그 외에 이광좌 등은 요직에 올랐습니다. 많은 비판이 따랐지만 경종은 언제나 거부하했죠. 대리 청정을 그렇게 한다 한다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이걸 한 방에 뒤집었습니다. 그 역시 숙종의 아들이었죠.

이 일들은 모두 경종의 계획이었다고 봐야 될 것입니다. 이를 얘기하는 책들이 요새 여러 편 나왔는데, 맘에 드는 구절이 있네요. 경종은 이 때서야 비로소 왕이 되었습니다.


영조 리즈시절

5. 세제 연잉군
이제 문제가 된 것은 바로 노론이 추대하려 했던 세제입니다. 이에 대해 소론은 둘로 나뉩니다. 김일경을 중심으로 한 준론, 조태구와 이광좌 등을 중심으로 한 완론이죠. 강경파와 온건파입니다. 그리고 경종은 준론을 더 중시했죠. 세제의 위치까지 흔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 세제는 정면 승부를 택합니다.

+) 한중록에서는 이 때 영조가 아무것도 못 하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그럴 리가요.

"한두 환관이 나를 제거하려 하자, 대비께서 나로 하여금 대조께 들어가 고하게 하시므로 내가 울면서 대조께 청하였는데, 처음에는 나추하라 명하셨다가 돌아서서 또 도로 거두셨다. 이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그만이지만, 이미 발생한 뒤에는 임금 곁에 있는 악한 자를 없애지 않을 수 없어서 다시 진달하였더니, 갑자기 감히 듣지 못할 하교를 내리셨다. 내가 장차 합문을 나가 거적을 깔고 죄를 기다리며 사위하려 하므로 강관에게 나의 거취를 알리려는 것이다" (1년 12월 22일)

세제가 주장한 것은 내관들이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경종은 듣지 않았지만, 연잉군은 대비의 지원사격으로 강경하게 (전하 곁의 악한 자를 없애려 한다) 나갔죠. 이에 대해 경종은 [감히 듣지 못할 하교]를 내렸다고 합니다. 무슨 대화가 오갔을지 짐작이 가죠. 이런 상황에서 대비의 지원사격은 계속돼서 해당 내관과 궁녀들이 처형당합니다. 세제의 정면승부가 통한 거였죠.

경종과 영조 간의 우애가 깊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게 가능했을지 궁금합니다. 완론이었던 조태구는 여러 차례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하죠. 이에 대해 경종이 [대답하지 않았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안 그래도 정적이었던 세제, 살려두는 것만도 고마워해야 할 판에 감히 나섰으니 이뻐 보였을 리가 있나요. 하지만 연잉군은 대비의 지원사격 속에 자기를 향한 참소를 미연에 막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신축년이 끝나고 임인년이 밝았습니다.

6. 목호룡의 고변
"역적으로서 성상을 시해하려는 자가 있어 혹은 칼로써 혹은 독약으로 한다고 하며, 또 폐출을 모의한다고 하니, 나라가 생긴 이래 없었던 역적입니다. 청컨대 급히 역적을 토벌하여 종사를 안정시키소서" (2년 3월 27일)

목호룡은 남인 서얼 출신, 그는 역모를 꾸미던 무리와 결탁했다가 빠져 나와 그 역모를 알렸다는 거였죠. 관련자들이 줄줄이 나왔습니다. 후에 노론은 백망, 김용택 등 핵심 인사들이 자복하지 않고 죽었다는 걸로 목호룡의 음모라고 하지만, 그 외의 인물에서는 의외로 그럴듯한 말들이 나왔습니다. 영조도 서덕수가 자신을 위해 일을 도모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고 증언했었고, 경종도 자기가 누런 물을 토했다는 증언을 했고, 날짜도 얼추 맞았죠 (한 되나 토했다고 합니다) 반면 임금의 밥에 독을 탔다는 김씨 궁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독약을 구해 왔다는 장씨 성의 역관 역시 없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어디까지가 실체일 지 알 수 없는 이 사건, 어쨌든 건수는 제대로 생겼습니다. 준론은 노론 4대신, 감칭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채를 집중 공격했고, 성공합니다. 그리고 최종 타겟이 어디일지는 말 할 필요도 없었죠.

서덕수는 연잉군의 처조카, 백망은 세제의 왕자 시절 수하, 이기지는 사대신 이이명의 아들, 김용택은 그의 사위, 김창도는 김창집의 사촌형제, 김성행은 그의 손자... 진짜였으면 노론은 물론 세제의 중심 인물들이 경종 암살에 관여한 것이고, 거짓이었으면 준론에서 노론 전체는 물론 세제까지 없애려 한 것일 겁니다.

이 때 완론은 소극적이나마 4대신을 변호했고, 경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뭐... 여기서도 마찬가지겠죠. 경종의 뜻이 4대신을 죽이는 거였다면 이 때의 변호는 그저 명분 쌓기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김일경은 경종의 생각에 비해 더 나간 것일 겁니다. 글쎄요. 경종이 더 오래 살았다면 진심은 알 수 있겠죠. 이 이전까지 완론보다는 준론을 중시한 것은 확실하니까요.

다만, 경종이 이 옥사를 제어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목표 역시 확실했죠. 아이러니하게도 그 목표는 세제였습니다.

"승지가 감히 군부에게 침묵만 지킨다고 말하다니! 모든 승지를 일체 나문하라"
"주방 나인 중에 의심스럽고 유사한 김씨가 전혀 없는데도 대신이 이처럼 조사해 낼 것을 청하니, 마음이 편치 못하다"

김씨 궁인을 조사하라는 계속되는 요구에 경종은 오히려 이렇게 화를 냅니다. 궁궐에 김씨가 하도 많다는 거였죠. (김씨가 좀 많죠) 이 이상 확대되면 결국 세제에까지 가게 됩니다. 아니 애초에 세제의 주변인들이 일으킨 옥사였습니다. 더 확대시킨다면 왕으로서도 막을 수 없었죠.

하지만 경종은 끝내 세제를 지켰습니다.

7. 신임 의리
신축년, 임인년간의 일들은 이렇게 일단락됐습니다. 이후 경종은 죽게 됐고, 준론은 이게 독살이라고 주장하며 각종 역모를 일으켰죠. 반면 완론은 탕평의 중심이 됩니다.

김일경은 영조 즉위 후 당연히 죽게 되지만, 이 때 영조의 방법이 남달랐습니다. 소론의 숙청을 원한 노론을 오히려 몰아낸 거죠. 탕평의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마침내 이 때의 일은 재평가 됩니다. 노론 4대신이 대리 청정을 요구한 것은 진정 충성을 위한 거였고, 경종은 그럴 뜻이 없었는데 김일경 등이 간사하게 왕을 꼬여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거죠. 하지만 경종은 그런 상황에서 우애를 놓지 않아 마침내 영조가 살아 있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노론의 논리가 옳았다는 의리, 이것이 바로 신임 의리입니다.

영조가 탕평을 한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소론을 다 몰아내고 노론에게서만 그걸 인정받으면 아무 의미가 없죠. 아니 애초에 소론이 미는 임금과 노론이 미는 임금이 달랐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 신하가 어디 임금을 선택할 수야 있었겠습니까? 영조는 소론을 통해서도 그 때 노론이 옳았고, 자기는 죄가 없었다는 것을 인정받습니다. 그리고 이 때 소론도 잘못된 부분이 있었고 노론도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는 논리를 냈죠. 어쨌건 나쁜 놈은 김일경, 목호룡 정도라는 것으로요.

정조는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 누구보다 신임 의리를 지켰다고 몇 번이나 자부했죠. 그의 탕평은 그런 면에서 조금 달랐습니다. 그는 신임년에 노론은 충이었고 소론은 역이었다고 확실히 규정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노소를 가리지 않고 어진 이를 등용하겠다는 것이 정조의 방침이었죠.

정조가 노론에 시달렸다고 하지만 이런 모습만 보면 누구보다 확실한 노론이죠. -_-a

8. 경종의 그늘
역시... 이번에도 길어졌네요. 자, 정리하겠습니다.

경종은 힘이 없었고, 소론에만 휘둘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일들을 보면 신축년의 일은 경종이 모두 계획했다고 봐야 될 것입니다. 정말 절묘한 정치력으로 노론을 휘어 잡은 것이죠.

다만 목호룡의 고변의 경우 그의 생각이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니 애초에 이게 노론의 주장대로 목호룡의 음모였는지, 정말 역모가 있었는지도 의문이죠. 하지만 전자든 후자든 공통점이 있습니다. 경종은 처벌의 한계를 확실히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세제에까지 확대되는 것을 철저하게 막았습니다.

경종이 휘둘리기만 했다는 평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이유가 충분히 짐작 갑니다. 우선, 애초에 조선은 공이든 과든 신하에게 돌렸습니다. 둘째, 그 일들이 경종의 진심이 아니어야 됩니다. 그래야 영조의 정통성이 살죠. 안 그래도 경종 암살설이 도는 상황에서는요. 이 둘을 떼어 놓지 않는 이상, 그는 역모를 일으켰다가 실패했고, 다시 해서 성공한 역적이 되구요.

+) 사실 이건 조선의 모든 왕들에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번외편 따로 나갑니다.

경종이 죽기 직전인데도 연잉군이 찾아오자 "창문을 열어라. 세제가 덥겠구나" 했다는 일화, 영조가 심심하면 울면서 말했던 "황형의 은혜". 하지만 경종이 정말 그를 아꼈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세제를 지켰다는 것, 이건 정말 대단한 거죠. 박시백 화백은 이에 대해서 "어쩌면 진정한 우애일지도 모르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정적이지만, 자기를 죽이려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를 지켰다는 것. 형제라는 것과 자신의 뒤를 이을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것, 그런 생각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결국 왕이 된 연잉군은 그의 그늘에 평생 시달렸습니다.

심심할 때마다 황형의 은혜를 부르짖으며 경종이 그를 얼마나 아꼈는지 강조했습니다.
결국 자신의 문제가 됐던 대리 청정, 자신의 아들을 젊은 나이에 대리 청정을 시키면서 "대리 청정 아무것도 아니다"는 것을 새삼 강조했죠. 이게 또 다른 비극을 낳았지만요.
그런 상황에서도 소론을 끝내 벌하지 않고 탕평을 지킨 것은 정말 엄청난 인내심입니다. 준론은 끝내 그를 인정하지 않고 계속 역모를 일으켰으니까요.

그는 정말 오래 살았고, 그의 컴플렉스는 그의 인생동안 계속 이어졌습니다. 따지고보면 사도세자부터 정조까지 이르는 일들은 모두 이 때와 연결됩니다.

이글루스에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경종-영조 편에 대한 리뷰가 있습니다. 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왠지 괜찮은 내용인 것 같아 옮겨 봅니다.

"영조와 영조의 당파가 자기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을 압박하였지만 그는 끝내 영조를 지켜주었다. 그래서 영조는 왕이 될 수 있었다. 영조는 재위 내내 경종의 호의를 짐으로 진 채 지내야 했다. 영조대 전반기의 혼란과 탕평책, 심지어 사도세자의 비극까지도 이러한 호의와 업보의 직, 간접적 결과물일 수 있다. 심지가 굳은 피해자는 자신이 입은 상처를 안고서 가지만, 피해자의 용서를 얻은 가해자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 채 또 다시 누군가를 상처입히게 된다. 이는 경종과 영조의 어머니, 장희빈과 동이(현재 방영되는 드라마에서 숙빈 최씨에게 붙인 이름, 기록에 전하는 이름과는 다른 듯)사이의 문제로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당사자가 용서하든 아니든, 일어난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업이 제 역할을 다할 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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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11/09/28 02:56
수정 아이콘
경종이야말로 알수록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조금만 더 강하게 나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드네요. 자신의 아버지처럼 시도 때도 없는 환국까지는 아니어도, 그래도 왕인데...
11/09/28 04:10
수정 아이콘
저번 편은 정말 너무 어려웠는데 이번은 좀 아는 내용이 나오지 이해하기 편하네요. 미래편만 나오면 왜 이리 주눅이 드는 건지-_-;;
그나저나 경종에 대한 인상은 정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보고 확 바뀌었습니다.
물론 경종이 어디까지 가담했느냐, 그리고 정말 영조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느냐는 알 수 없겠지만
결과만을 봤을 땐 왕으로서의 정치적 힘을 충분히 보여준반면 동시에 끝까지 영조를 지켜주어 국가의 미래까지 걱정한 걸로 전 보이네요.

영조가 어떤 의미로 정말 못마땅했겠지만 자식은 없었고 결국 국운을 이을 사람은 자신의 동생이라는 걸 인지했다.. 라고 받아들여도 되려나요?
11/09/28 10:14
수정 아이콘
참....왕이란 직업(?)은 참 어려운거 같습니다. 정말로요. 사실 얼마나 영조가 미웠겠어요...
경종이 독살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그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리 죽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늘 글 재미나게 읽고 있습니다. ^_^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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