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어떤분이 정의구현사제단이 어떤단체인지를 물어보셔서 찾아보니 ytn에서 방송한 동영상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동영상 중간에 나오는 함세웅신부님의 강론 "침묵의 잠에서 깨어나야 할때다"를 보면 이 단체가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지를
알게해주는것 같습니다.
"다만, 만일 교회가 버림받고 가난하고 억울하게 짓눌려 있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있다면, 만일 교회가 불의와 부정앞에서
진리와 정의를 외치지 못하고 잠잠하고 있다면 그 교회는 존재 의미를 상실한 죽은 교회입니다."
이 링크는 네이버 이목지기님 블로그에서 퍼온것인데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될것 같아서 올립니다.
1974년 7월 6일 지학순 주교는 민청학련사건과 관련되어 구속된 김지하에게 활동자금을 주었다는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었고 지학순 주교의 연행에 항의하여 김수환 추기경이 주교회의를 소집하자 놀란 박정희는 10일 지학순 주교를 석방했으나 지학순 주교는 7월 23
일 비상군법회의의 소환을 거부하고 양심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즉 유신헌법은 민주헌정을 파괴하고 국민의 뜻과는 무관한 폭력 및 공갈과 국민투표라는 사기극에 의해 조작된 것이기 때문에 무효하다며 유신체제를 정면으로 비난했고 그 결과 지학순 주교는 그날로 구속되었으며 8월 12일 공판에서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9월 26일, 천주교 정의 구현 전국사제단이 결성되었고 본격적인 민주화투쟁이 시작되었던 바 사제단은 시국 기도회 등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알리고 박정희 정권의 인권 탄압과 폭압 정치를 고발, 규탄하였습니다.
사제단의 활동 중 가장 대표적이고 우리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 몇개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75년 김지하 시인의 양심선언 공개,
80년 광주민중항쟁(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 발표,
81년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 관련 성명 발표,
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사건 폭로(6월 민주항쟁의 계기)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민주화 운동으로 최기식, 함세웅, 문정현, 정호경, 문규현 신부 등등 사제단 소속의 많은 신부들이 옥고를 치루기도 했으며 여타 신부, 수녀들이 수시로 연행되어 조사를 당하거나 평상시에도 감시를 당하는 등 모진 박해를 격어야 했습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광주항쟁)
80년대 초부터 발생되던 민주화의 요구에 전두환신군부는 5.17일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전국에 주요 대학에 공수부대를 투입하였습니다. 헌데 5.18일 광주지역의 대학생들이 이들 공수부대에 의해 무참히 진압당하자 시민들이 항의하게 되었고 또 이를 저지하기 위해 공수부대원들은 무차별 진압을 감행, 유혈사태로까지 커지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를 내었던 참극이였습니다.
*6월민주항쟁
직접선거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요망을 뒤로 하고 전두환 정권은 4.13호헌조치를 발표하여 간접선거를 고수하고 통일민주당의 창당을 방해하는 등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억압하고 장기집권을 획책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5월 18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박종철고문치사사건이 은폐되었다는 성명을 발표,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같은 날 민주정의당 대표위원 노태우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자 전두환 정권의 간선제 호헌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 급격히 확산, 15일까지 명동성당농성투쟁, 18일 최루탄추방대회, 26일 민주헌법쟁취대행진에 이르기까지 20여 일간 전국적으로 500여 만명이 참가하여 간접선거 철폐, 직선제개헌 쟁취, 독재정권 타도 등 반독재민주화를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이렇게 되자 전두환정권은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 노태우가 직선제개헌과 평화적 정부이양, 대통령선거법 개정, 김대중의 사면복권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6.29선언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한국 근대사에 있어서 민주화운동 및 인권옹호운동에서 큰 업적을 남기신 분들이 바로 정의구현사제단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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