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1/08/12 17:08:43
Name 눈시BB
Subject [일반]  [한국 문명 출시 기념] 세종대왕 특별편 (중요부분 정정 봐 주세요)

+) 권채의 살인 부분 수정했습니다. 해당 부분에 대한 실록이나 사료를 보면 연쇄살인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고, 정금이라는 노비를 권채의 부인이 잔혹하게 고문했고(하지만 본문에 적은 것처럼 죽었다는 말은 없습니다), 권채 역시 "다른 남자와 간통했다"는 부인의 말을 듣고 방조 혹은 협조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그래서 둘 다 벌을 받죠. 여기에도 부민고소금지법(백성이 수령을 신고하는 걸 금지하는 제도)을 적용할까 논의하지만 세종은 오히려 그들의 잘못이 분명하니 취조해서 신문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가벼운 벌을 받긴 했지만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였고, 남편의 잘못을 덮어 쓴 부분도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정금도 아내도 사건이 해결되는 순간까지 죽지 않았죠.
카더라만 믿고 쓴 치명적인 오류라서 댓글 달아주신 분들께는 따로 쪽지를 드리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으신 분은 이거라도 봐 주시고 오류를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제 실수라고 하기엔 너무 큰 문제네요.

+) 지적해주신 서주현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전체적으로 해보려다가... 이것도 너무 기네요. =_=; 에이 재밌게 봐 주세요~ 오늘 저 생일이라서 겸사겸사 써 봤습니다... ( ..); 너무 생색냈나요.

처음에는 문명에 아예 맞게 써 볼랬는데... 힘드네요. 한 지도 너무 오래 됐고 다시 할 생각은 없으니... 더 맞춰서 써 주길 원하신다면 "지금 저보고 문명 하라는 겁니까"라고 반문하겠습니다. -_-



1. 국가의 기틀
(1)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세종 11년에 완성된 [농사직설]의 맨 첫 구절입니다. (원문에는 천하 뒤에 국가가 붙어 있습니다) 태종 때부터 농서 (농사에 대한 책) 들을 정리하며 인쇄해서 반포하게 했습니다. 대왕께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셨습니다.

"오방의 풍토가 같지 아니하여 곡식을 심고 가꾸는 법이 각기 적성이 있어, 옛 글과 다 같을 수 없다 하여, 여러 도의 감사에게 명하여 주현의 노농들을 방문하게 하여, 농토의 이미 시험한 증험에 따라 갖추어 아뢰게 하시고, 또 신 초와 변효문과 더불어 피열 참고하여 그 중복된 것을 버리고 그 절요(중요)한 것만 뽑아서 찬집하여 한 편을 만들고 제목을 《농사직설(農事直說)》이라고 하였다."

농사직설의 서문입니다. 조선 땅에 맞는 농사법을 찾기 위해 경험이 풍부한 농사꾼들을 직접 찾아가서 조사한 거죠.

(2) 공법

세종은 전세제도를 정비합니다. 그 때의 방법은 답험손실법, 추수기에 관원이 직접 수확량을 보고 액수를 정하는 제도였습니다. 당연히 불확실했죠. 이 때 논의된 것이 공법입니다. 세종 10년부터 이러한 논의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12년에 그야말로 폭탄 발언이 나옵니다.

"정부·육조와, 각 관사와 서울 안의 전함 각 품관과, 각도의 감사·수령 및 품관으로부터 여염의 세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부를 물어서 아뢰게 하라" (12년 3월 5일)

네 글자로 줄이면 설문조사죠. 그리고 이건 실제로 이루어집니다. 이에 대한 다음 논의가 나오는 게 바로 8월 10일이죠.

"무릇 가하다는 자는 9만 8천 6백 57인이며, 불가하다는 자는 7만 4천 1백 49명입니다"

재밌는 건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_-; 그 후로도 계속해서 시행을 의논하고, 18년에는 공법 상정소를 만들고 19년에 시험삼아 시작해 보죠. 흉년이 들어 지체되기는 했지만 나쁘지 않다는 결론을 얻고 22년에 경상, 전라 양도에 공법을 우선 시행하기로 합니다. 23년에는 충청도로 확대됩니다. 25년에는 전제상정소가 설치되어서 등급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해서 연구하게 되죠. 26년에 그 결과가 나와서 우리가 아는 전분 6등법과 연분 9등법입니다.

이에 대한 논의는 정말 정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습니다. 논의를 시작해서 시험에 보기까지 10년, 그걸 또 다듬고 세부적인 내용을 정하는 데 또 10년... 그 분량은 어마어마하죠. 세종의 정책 결정은 늘 이랬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오래 다듬어진 공법은 인조 대에 이르러 등급을 나눌 수 없을 정도로 막장이 된 후에야 영정법으로 바뀝니다.

(3) 법전
조선에 법전이 처음 생긴 것은 태조 6년으로, 이를 [경제육전]이라고 합니다. 태종 때에는 이를 보강해서 [경제육전속집상절]을 짓죠. 이는 임금의 명령을 모아 놓은 것으로 한계가 있었습니다. 법치를 꿈꾸었던 세종은 이를 정리하기로 결심하죠.

우선 옛 법과 새 법 사이에 어긋나는 것을 정리했고, 임금이 내린 명령(수교)도 중복되는 걸 정리하고 각 항목별로 분류했습니다. 또 기본적인 법은 법전으로, 일시적으로 내리는 법은 등록에 수록한다는 방침이 세워지죠.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 [신속육전][육전등록]입니다. 또 이를 수정하기 위해 [신찬경제속육전]까지 완성됩니다. 이것이 발전해서 후에 나온 것이 바로 [경국대전]이죠.

형벌에 대해서도 확실히 법을 정하기 위해 세종 21년, 각 감옥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 각 도에 전했고, 여러가지 벌에 대한 형법 역시 정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죄수들의 위생을 걱정하는 법을 유시하기도 했죠.



2. 연구
그럼 지금부터 세종대왕께서 찍으신 연구들을 보겠습니다.

(1) 천문학, 역법
"책력과 천문의 법은 쉽사리 자세히 알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다시 계산법을 연구하여 초안을 작성해서 장래에 이를 잘 아는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리라" (12년 12월 11일)

당시 조선은 동맹의 기술을 공유, 아니 명의 역법을 그대로 받아 썼습니다. 당연히 차이가 생기죠. 세종은 이를 바로잡으려 했습니다. 정초, 이순지에게 천문과 수학에 능한 이들을 모아 역서를 연구하게 하고, 나중에 정초가 정인지도 보내달라고 하자 보냅니다. 김헌, 김자안을 중국으로 보내 산법(수학)을 배워 오게 하기도 했죠. 한편 이천, 장영실에게 관측 기구를 만들게 하는데 이게 바로 혼천의입니다. 이를 통해 한양의 위도가 파악되고, 칠정(일월화수목금토)의 운행 궤도와 주기도 밝혀졌죠.

"역법을 교정한 이후로는 일식·월식과 절기의 일정함이 중국에서 반포한 일력과 비교할 때 털끝만큼도 틀리지 아니하매, 내 매우 기뻐하였노라." (14년 10월 30일)

맨 처음 뭔가 자신 없는 느낌을 보이던 것과는 반대로 이는 성공리에 이루어집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세종실록 부록으로 있는 [칠정산]이죠. 칠정산은 중국의 역서들을 연구한 [내편]과 아라비아의 역서들을 연구한 [외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연구를 통해 조선의 독자적인 역법을 제작할 수 있게 된 거였죠.

안타깝게도 스톤 헨지는 만들지 못 한 것 같습니다 ( ..)

(2) 철학(?) 교육학(?)
나라를 세운 태조, 그 나라가 나아갈 방침을 세운 태종에 이어 세종이 해야 될 게 무엇인지는 확실했습니다. (중간에 뭐가 빠졌지만 무시합시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모습을 완성시키는 것이죠.

세종은 용비어천가를 지어 조선 왕실의 위대함을 알렸고, 삼강행실도를 반포해 유교 가치관을 조선에 퍼뜨렸습니다. 훈민정음에 대해 반대가 나오자 말한 게 "삼강행실도를 언문으로 지어 백성들을 교화할 것이다"였죠. 그 말대로 그는 유교 사상을 조선 전체에 깊숙히 침투시키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유교 자체에만 머물지 않아서 고려사를 지었고 지리지를 만들었으며, 의방유취 같은 의학 서적도 만들었죠. 이 고려사를 지을 때의 에피소드를 보면 그가 얼마나 완벽을 추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정도전이 지은 고려사를 고치라고 명령한 것이 세종 1년이었습니다. 그 고려사가 완성된 것은 문종 1년, 그 동안 수 없는 수정을 반복했죠. 세종이 그 때까지 살아 있었다면 아마 또 고치라고 했을 것 같네요. 의방유취 역시 그 어마어마한 내용 때문에 한참 후인 성종 대에야 간행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식의 뚝심과 완벽주의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3) 인쇄 기술
문자도 만들고 책도 많이 만들 때 필요한 게 바로 활자죠. 여기에 동원된 위대한 과학자가 바로 이천입니다. 그의 희생 덕에 조선은 인쇄술을 습득... 이 아니라 갑인자라는 활자를 만들게 됩니다. 인쇄 속도가 20배나 빨라졌다고 합니다.

(4) 공학(?) 기계(?)
적당히 넣을 게 없군요. 당시에 태어난 위대한 과학자가 바로 장영실이었습니다. 세종은 과학을 연구하는 흠경각을 지어 장영실에게 맡깁니다. 여기서 천체를 관측했고, 각종 기구를 만들어냈습니다. 별 등을 통해 하루의 길이를 재는 일정정시의도 만들어지죠. 또한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를 만들어 시간마다 북을 쳐 알 수 있게 했습니다. 각종 해시계를 만들고 대로에 설치해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했으며, 측우기를 만들어 강수량을 잴 수 있게 했죠. 이 측우기는 문종에게서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합니다. 공법을 만들 때 풍흉에 대해 기준을 나눌 때 이 측우기가 크게 활약했다고 합니다.

(5) 문자
특히 현대에 들어서 그 빛을 더욱 발하게 되는 게 바로 훈민정음이죠. 최만리 등의 상소에 대한 세종의 답입니다.

"또 네가 운서를 아느냐. 사성 칠음에 자모가 몇이나 있느냐. 만일 내가 그 운서를 바로잡지 아니하면 누가 이를 바로잡을 것이냐." (26년 2월 20일)

이 말을 뒤집으면, 세종대왕께서는 음운을 알고 계셨다는 거죠. (...) 훈민정음 창제 과정을 보면 그야말로 세종대왕 일가족의 단독 프로젝트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수양, 안평 등 대군과 공주들이 그를 따랐죠. 핑계를 대고 김시습을 중국으로 보내는데, 중국의 음운학자를 만나게 한 거였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유일한 과학적인 문자 훈민정음은 이렇게 탄생합니다.

다만 세종대왕께선 이를 통해 중국의 음을 완전히 표현하려고 하셨습니다. 덕분에 세종 대의 훈민정음은 국어국문 전공자에게 있어 악몽이죠. OTL;;; 정말 다행히도 세종께서 승하하시고 중국의 음 대신 조선에서 쓰이는 음 (톈<->천) 을 쓰자는 게 대중화 되면서 조선 중후기의 훈민정음은 비교적 현대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6) 음악(?)
조선 초, 조정의 예식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태종 때부터 이에 대한 정비를 시작하는데, 성종대에야 완성됩니다. 이것이 [국조오례의]죠. 이들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음악이죠. 중국 음악부터 고려의 향악이 뒤섞여 있었고, 악기들도 제대로 돼 있지 않았습니다. 이 때 등장한 위대한 예술가가 바로 박연입니다.

궁중 음악의 정비라는 면에 있어서 그는 독보적이었습니다. 세종은 그를 등용했고, 그는 궁중 음악 전체를 정비하기 위해 일을 시작하죠. 당시 조선에는 고려 예종 때 중국에서 받은 악기들이 있었습니다. 박연은 이들을 새로 만들려 했죠. 온갖 시행착오를 통해 표준음을 정했고, 전국을 누비며 그에 맞는 재료들을 찾아냈습니다. 그 때 만들어진 것 역시 계속 이어졌죠. 하지만 그보다 더 한 사람이 있었으니... 편경을 만들었을 때의 기록입니다.

"지금 소리를 들으니 또한 매우 맑고 아름다우며, (중략) 내가 매우 기뻐하노라. 다만 이칙(夷則) 1매(枚)가 그 소리가 약간 높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15년 1월 1일)

박연이 이를 다시 확인한 후 다시 갈자 소리가 바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를 재현해 보니 그 음 차이는 일반인이 확인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박연은 아악보를 편찬하죠. 재밌는 건 이 때 박연은 아악, 주나라부터 이어진 중국의 음악을 따르자고 주장합니다. 유학자다운 태도였죠. 하지만 세종대왕께서는 우리는 우리 걸 들어야 한다면서 거부했죠.

이후 세종대왕께서는 막대기로 땅을 두드리며 박자를 맞춰 여러 곡들을 만들었는데 이들이 여민락, 취화평 등 용비어천가에 쓰입니다. 이 중 보태평, 정대업은 세조 때 종묘 제례악으로 정해져 지금까지 부르고 있습니다. 말년에는 정간보라는 새로운 악보를 개발해 냅니다. 소일거리로요 (...)



3. 북방 개척
"조종께서 지키시던 땅은 비록 척지 촌토(尺地寸土)라도 버릴 수 없다." (19년 8월 6일)

임진왜란 편에서 명종-선조 때 조선의 화약무기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고 적었었죠. 그렇다면 그 이전의 기점은? 바로 세종대왕 때입니다.

대장군, 이장군, 삼장군 등으로 불리던 고려 말의 화포는 태종부터 세종대까지 꾸준히 업그레이드 돼 흔히들 말하는 천지현황 시리즈를 만들게 됩니다. 세종 27~30년에 이들을 다시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이 때는 장군화통, 일, 이, 삼총통으로 불렀다고 하죠. 이를 이른바 조선 전기 1세대 화포라고 부르는데 사실상 조선시대 화포 개량 역사는 이 때 시작됐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화차 개발이 이루어진 것도 이 때죠. 특히 세종의 아들 문종 역시 군사에 대한 지식이 깊었는데, 화차를 직접 만들고 그에 대한 인원들을 시험한 후 변경에 배치했다고 합니다. 그가 즉위한 해에 진법을 만드는데 그게 조선 군사 체제의 기본이 되는 오위진법입니다.

이렇게 세종 대에는 군사에 대한 발전이 급속히 이루어진 시대입니다. 정벌도 활발했죠. 그 첫 스타트를 끊은 게 대마도 정벌입니다만... 이건 아직 상왕으로 남아 있던 태종의 작품이죠. 화려하게 알려진 것과는 달리 산 깊숙히 추격했다가 역습을 받아 피해도 컸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왜구는 크게 줄어들죠.

세종대왕께서 주로 목표로 삼은 것은 북쪽 여진족이었습니다. 특히 이만주를 중심으로 한 세력은 심심하면 강을 건너 왔죠. 더욱이 명은 초기에 동북면이 원의 땅이었으니 내놓으라고 협박을 많이 했습니다. 이 곳을 확실하게 조선의 땅으로 삼아야 했던 것입니다.

반대하는 신하들이 있었지만 세종대왕께서는 밀어붙이셨습니다. 최윤덕을 중심으로한 일만오천의 병력은 큰 승리를 거두었고, 지배를 확실히 하기 위해 4군 6진을 설치합니다. 이후 김종서와 이징옥을 보내 관리하게 하죠. 이 때 김종서는 부친상을 당했음에도 임지로 돌아가야 했고, 이징옥은 10년 넘게 이 곳을 관리하게 했습니다. 세종대왕의 뚝심과 그들의 능력을 통해 함경도는 확실하게 조선 땅이 되게 되죠.

이후 세종대왕께서 추진하신 것이 사민정책입니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백성들을 평안도와 함경도로 이주시키는 거였죠. 당연히 백성들은 반발했고, 기후가 맞지 않아서 많은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에 대한 대왕의 답입니다.

"임금이 백성의 원망을 피하기만 생각하고 장래를 생각지 아니하여 그 일에 힘쓰지 아니하고 한갓 세월만 허비한다면, 어찌 고식지계(姑息之計)가 아니겠는가" (23년 윤 11월 6일)

백성들의 행복도를 끌어올리는 데 힘 쓴 분이셨지만, 불행이 올라가는 것 역시 감수한 분인 거죠. 많은 원망이 있었겠습니다만, 그 덕분에 함경도는 확실히 한국 땅으로 남게 되었죠.

"비록 내가 있다 하더라도 만일 종서가 없었다면 이 일을 족히 할 수 없었을 것이고, 비록 종서가 있다 하더라도 만일 내가 없었다면 족히 이 일을 주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명신록)

김종서를 탄핵하는 말에 대한 그 분의 답입니다.



4. Scholars of Jade Hall
집현전은 당 현종 때 완비된 기관이었습니다. 이 곳에 학사를 두어 서적의 수집과 간행을 맡았죠. 고려 때도 있었지만, 공민왕 때 없앴습니다. 이를 재설치한 것이 바로 세종대왕입니다.

집현전의 목적은 학문 연구와 저술, 국정 자문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사가 독서제를 실시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게 했죠. 옛 제도를 상고할 때 언제나 집현전이 행했고, 책을 편찬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농사직설부터 향악집성방, 의방유취, 팔도지리지, 오례의, 동국정운, 자치통감, 고려사 등 수많은 책들이 집현전을 통해 나올 수 있었죠.

물론 그 학자들의 중심은 세종대왕이었습니다. 잠 든 신숙주에게 곤룡포를 벗어 줬다는 일화는 유명하죠. 그는 책을 손에서 떼지 않았고, 중국과 일본에서 많은 책을 구했으며, 학자들에게도 여러가지 책들을 인쇄해서 보급했습니다. 임금을 가르치는 자리인 경연은 오히려 임금이 신하를 가르치는 자리가 되었죠.

"무릇 배우는 자들이 스스로 모른다고 하는 자는 옳다 하겠지만,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하는 자는 이른바 ‘용류’ 인 것이니, 그대들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혐의쩍게 여기지 말라" (14년 12월 22일)

경연에서 어려운 게 있어서 신하들에게 물으니 아무도 대답 하지 못 하자 하신 말씀입니다.



6. Sejong the Great
한국사에 대왕이라는 말을 붙이는 건 단 두 명입니다. 광개토대왕과 세종대왕이죠. 둘 모두 그 이름이 붙기에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 세종대왕의 업적은 한국사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합니다. (광개토대왕은 아무래도 기록이 많이 부족하고 평가도 정복에만 기울어졌죠) 일을 해 낼 때의 뚝심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고, 수 없는 토론을 통해 나온 정책은 그대로 조선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정말 공부밖에 모르는 바보, 나라밖에 모르는 바보, 백성밖에 모르는 바보였죠. 한 나라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그의 손길이 빠지지 않으며, 군사 같은 분야를 뺀다면 각각의 분야에서도 독보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신하들을 대함에 있어서 (말년에는 좀 까칠해졌지만) 공포를 보이지 않았음에도 신하들은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이런 카리스마를 가진 왕을 그 누가 무시할 수 있었겠어요. 윤대(신하들이 정치에 대해 건의하는 것)를 통해 나온 말을 문제삼지 않아서 신하들의 생각을 숨김 없이 알 수 있었고, 능력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면서 그의 시대에는 수많은 명신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장영실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죠. 반면 박연처럼 흠이 있었는데도 계속 중용된 사람도 있습니다. 워낙에 그 위치에서 독보적이었으니까요.

정말 대단한 점은 훈민정음 반포나 정간보를 지을 때 그가 이미 많은 병을 안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병 때문에 세자 문종에게 대리청정을 시킬 때였죠. 그런 가운데서도 끊임 없이 무언가를 생각했고, 실행했습니다. 오히려 정치에서 한 발 물러난 상황이여서 이런 일이 가능했을지도요. 그리고, 이게 그의 병을 더 심하게 했을 겁니다.

"내가 궁중에 있으면서 손을 거두고 한가롭게 앉아 있을 때는 없다." (5년 12월 23일)

이런 왕이었기에 그런 수많은 업적을 이룰 수 있었고, 지금도 대왕이라고 부르는 것일 겁니다.

"이 앞서 임금의 몸이 완전하게 평복되지 못하여서, 승정원에서 사건을 아뢰지 않았으므로, 일이 지체되는 것이 많았는데, 이에 이르러 비로소 사건을 아뢰매, 모든 사무를 재결하는 데 처리하기를 물흐르듯 하되, 모두 끝까지 정밀하게 하기를 평일과 다름이 없었다."

그 분이 가시기 3일 전의 기사입니다. 문종의 병이 악화돼서 대신 정무를 본 것이었지만, 그 순간까지도 저렇게 성실하고 빠르게 일을 한 것입니다. 그 분은 가시는 순간까지도 그 분 다웠습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해 얘기할 때 "누가 봐도 부정할 수 없는 영웅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지 않은가"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조금 바꿔 보죠. 정말 필요했던 시대에, 정말 필요했던 자리에 이런 분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우리 역사는 충분히 자랑스럽지 않을까요.



5. 성군의 뒷이야기
- 그렇다고 세종대왕에게 안 좋은 부분이 없는 건 아닙니다. 사민정책은 그렇다 치더라도 대명 외교는 정말 굴욕적이었죠. 매를 잡기 위해 전국을 뒤지며 민폐를 끼치고, 애들이 강제로 내가 고자라니를 당한 후 명에 끌려갔습니다. 명황제의 첩이 되기 위해 끌려간 여인들도 많았죠. 명의 사신이 올 때마다 바친 것도 엄청났습니다. 세종은 분개하긴 했지만 "지성사대"를 계속 실천합니다. 명의 힘이 가장 막강할 때였습니다. 사대 관계가 개선된 건 그 후였습니다.

- 화폐 유통 역시 실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운 뚝심으로 밀어붙였지만, 농업을 통한 자급자족이 발달한 조선에서는 힘들었죠. 이에 강압적으로 밀어붙였지만 반감만 쌓았습니다. 일례로 물물교환을 하다 걸리면 "재산을 몰수한 후" "돈으로" 벌금을 내라고 했다고 합니다. 가진 걸 다 뺏겼는데 갚을 수 있을 리가요. =_= 결국 포기합니다.

- 세종대왕은 고기를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태종이 죽으면서 "세자가 고기를 좋아하니 상 중에도 고기를 먹게 해라"는 유언을 남겼겠어요. 그런 식성과 책을 너무 열심히 보는 것 때문에 그는 내내 병에 시달렸습니다. 그의 증세를 당뇨병으로 봐도 충분하다더군요. 우리가 아는 세종대왕님은 미화되신 겁니다 (...)

- 가족을 죽이고 몰살시킨 태종과 달리 세종대왕은 가족들을 많이 아꼈습니다. 특히 왕이 되지 못 하는 대군들의 한을 알았는지 안평, 수양대군에게 많은 일을 맡겼죠. 문종이 오래 살았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결과가 너무 혹독했죠. 특히 문종은 오랜 실무경험과 문무를 고루 갖춘 왕이어서 그 아쉬움이 더 합니다. 그나마 세조가 정치를 잘 한 편이어서 다행일 뿐이죠.

- 앞서 세종의 능을 정할 때 풍수가가 "절사손장자"(후손이 끊어지고 장자를 잃는다)할 땅이라고 했습니다. 그것 때문일까요. 문종이 일찍 죽었고, 그 장자 단종은 비극적인 삶을 살다 죽었으며 세조의 장자 의경세자, 예종의 장자 인성대군까지 일찍 죽었습니다. 장자 계승을 원칙으로 하는 조선이 성종에 이르기까지도 제대로 되지 않거나 일찍 죽었죠. 그나마 성종의 장자 연산군은 반정을 당했습니다.

- 며느리복도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처음 맞은 김씨는 문종의 맘에 들지 않아서 미신에 집착했다가 쫓겨났고, 봉씨는 다혈질이라서 성격이 맞지 않았죠. 다시 내보낼 수 없어서 화해를 권했지만 그게 어디 돼야죠. 문종이 후궁에게서 자식을 가졌다는 말을 들은 봉씨는 폭주해서 거짓 임신 소동을 일으켰고, 나중에는 레즈비언 행각을 벌이게 됩니다. 쫓겨났죠. 문종의 아이를 가진 권씨가 세번째로 비가 되는데 겨우 아들을 낳지만, 단종을 낳은 이튿날 숨을 거둡니다. 이 때 세종이 기뻐서 죄수를 사면하는 교지를 내리려 했는데 그 순간 초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단종은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어머니도 할머니도 없는 상황에서 왕이 돼야 했죠.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1/08/12 17:12
수정 아이콘
생신 축하드립니다.^^
후속편을 벌써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11/08/12 17:18
수정 아이콘
그나저나 레알 먼치킨이군요. 앞으로 대한민국에 이만한 인재가 또 있을까요?
11/08/12 17:19
수정 아이콘
오 마지막 연쇄살인은 처음 들었네요. 그래도 저게 최대의 오점이라면 역대 왕 치고 정말 오점이 없는 왕이라 할 수 있겠네요.
며느리에 관해서는 첫번째 며느리가 너무 색마여서 문종이 견디질 못했고, 이를 보고 놀란 세종이 두번째 며느리는 아주 참한 며느리로 데려왔더니 레즈비언이었다-_-.... 라는 야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여기서는 약간 다르네요.. 크크
큐리스
11/08/12 17:21
수정 아이콘
약간 뻘플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SBS에서 곧 세종대왕 시대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한다던데요.
눈시BB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덧붙임 ) 그러고보니 드라마 내용이 연쇄살인사건 어쩌고 하던데요.
호떡집
11/08/12 17:29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역시 대왕님.

절사손장자는 막연히 야사인가 하고 있었는데 실록 검색해보니 진짜로 있네요. 최양선은 조선의 노스트라다무스였을까요?

생일 축하드립니다. 생일 기념으로 문명 한 번 즐겨보심이..크크. 그럼 다음글을 내년에 보게 될테니 안되겠군요.
몽키.D.루피
11/08/12 17:32
수정 아이콘
너무 완벽해서 드라마로 만들기 힘든 분 아니신가요.
키스도사
11/08/12 17:52
수정 아이콘
문명에서 나온 아리랑입니다. 정확히는 디워ost-아리랑 이죠
<embed src="http://pds17.egloos.com/pds/201002/20/09/arirana.swf">
키스도사
11/08/12 18:10
수정 아이콘
선댓글 후 감상을 했습니다. 볼때마다 느끼는건데 눈시bb님은 글을 참 잘쓰시네요.
지금은 공돌이지만(ㅠㅜ) 한때 역사를 좋아해서 전국 유적지를 찾아 다니고 이런 자료들 찾아 보는걸 굉장히 좋아했는데 다시금 새록새록 느끼게 되네요.

고려사도 세종께서 직접 관여 했다고 들었습니다. 역사문제에도 꽤나 관심이 깊으셔서 고려사를 만들때 마다 퇴짜 놓는 바람에 문종때 완성이 된 고려사...세종도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 몇가지 실수를 하긴했지만 참 대단한 왕이었죠. 경연때마다 워낙 똑똑해서 공부 제대로 안한 신하들에게 갈굼 시전 하셔서 굉장히 열심히 공부했다는 훈훈한 일화도 있죠. 크크
11/08/12 18:13
수정 아이콘
저 집현전 학자가 권채였군요... 삼강행실도...
11/08/12 18:17
수정 아이콘
와 판님의 동물 설명 이후로 피지알에서 이렇게 재밌게 글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쪽에 종사하시는 분이시겠죠? 설마 단순 취미 생활 이신가요?
눈시BB님 께서 국사 선생님이라면 정말 재밌게 배울 것 같습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__)(^^)
캡틴호야
11/08/12 18:22
수정 아이콘
세종대왕님 생각하면... 부인도 많고 자식도 많았다는 기억이 어렴풋이 생각나네요..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었죠?? 부인이 6명인가 9명인가... 흠..
SpecialOne
11/08/12 18:27
수정 아이콘
아 정말 눈시울이 붉어질려고 합니다 ㅠ

아 세종대왕님 ㅠ 전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꼭 추게로 갔으면 좋겠어요~^^
elecviva
11/08/12 18:36
수정 아이콘
오늘 스팀에서 70달러 가까이 썼습니다. ㅠㅠ 외쳐 세종!! [...]
Montreoux
11/08/12 18:59
수정 아이콘
우왕 생일 축하 드립니다.

마지막 짤방 좋습니다, 딱 제 수준이고 제 취향임.
크~
대왕님 킹왕짱 !!!
지니쏠
11/08/12 19:02
수정 아이콘
생일 축하드려요~
물여우
11/08/12 19:10
수정 아이콘
왠지 관련글이 올라올 것 같았는데, 눈시BB이 올려주실 줄이야! 최곱니다!!
세종 대왕과 관련된 글을 읽다보면 '역시 대왕님' 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생일 축하드립니다. ^^ 생일빵(!)은 드셨는지요. 크
the hive
11/08/12 19:12
수정 아이콘
디시 모 갤러리에서는 더빙덕분에 활성화가...
롤링스타
11/08/12 19:12
수정 아이콘
생일 축하합니다.
존경하는 인물 세종대왕이라고 하면 초딩취급 당하는데
세종대왕 알지도 못하면서 ㅠㅠ
이 글 출력해서 가지고 다니면서 보여줘야겠어요. :p
진리는망내
11/08/12 19:16
수정 아이콘
내일 한국사능력검정시험친다고
고등학교 국사책을 오랜만에 봤는데
생각보다 되게 자세하더군요.

국사는 나름 좋아해서 열심히 공부했었는데
오랜만에 책보니 재밌더라구요.

글 잘 읽었습니다~
11/08/12 19:24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항상 양질의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다 읽지는 못했어요 ㅜㅜ)

더불어 생일 축하합니다.
11/08/12 19:31
수정 아이콘
제가 조선이라는 나라에 감사하게 되는 두 분의 인물이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입니다. 역시 알면 알수록 왜 이 두 분이 우리 역사에서 그토록 많이 언급되고 배울점으로 가득한 사람들인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신교가 순수히 확립되었다면 세종을 신으로 모셔도 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나랏님이었습니다. 실록을 읽으면서 감탄사만 연발하게 되더군요. 훈민정음을 창제할 당시 사실상 눈이 보이지 않았다고 하던데, 드라마 대왕세종에서 반포식 직전에 '안해'를 활자로 더듬어 맞추는 장면이 와닿았습니다. 돈 좀 더 들였으면 정말 좋은 드라마였을텐데 말이죠 -_-)b

이 때 세종을 보좌하는 인물들도 정말 먼치킨급이었습니다. 마치 99년 트레블 맨유를 보는듯한 -_-a 정인지와 신숙주 아버지(신장이던가요?) 투톱이 중국 사신과 한시로 키워배틀을 떴던 기록도 잘 몰랐다가 실록을 읽고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품으로 보니 감회가 남다르더군요.

경연에서 유학 뿐 아니라 풍수지리, 도학, 불교 철학까지 섭렵하면서 신하들한테 공부 좀 하고 뎀비라고 디스 거는거 보면 정말 후덜덜합니다...

누가 뭐래도 제가 생각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인물은 세종입니다. 한국의 구세주라고 해도 될만큼 말이죠. 전 세계를 따져봐도 이만한 성군이 있을까 손꼽을 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집에서 반농담으로 아버지랑 얘기할 때 태종의 최대업적을 세종 생산-_-이라고 했었는데 정말 태종은 셋째 아드님 낳은 걸로만 해도 성군 반열에 올라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입니다..
씨밀레
11/08/12 19:43
수정 아이콘
지식채널e - 세종대왕과의 인터뷰 보신분들 많으시겠지만 못보신 분들 한번 보세요.

http://blog.naver.com/jkys08?Redirect=Log&logNo=130095234934&jumpingVid=C7EC4B98ACDF4102EB0A05BBB816147ABEA2

제가 지식채널e중 가장 좋아한 세종대왕편입니다.
나이트해머
11/08/12 19:45
수정 아이콘
태종때 명이 베트남을 점령하는 걸 보면서 덜덜덜 거리다가 세종때 베트남에서 밀려나자 '저거 봐라 저거. 그러니까 욕심을 부리면 안돼(그래도 주어는 빼고 말합니다.^^)'한 적이 있었죠. 조공외교가 기본적으로 바치는 쪽이 이득보는 외교라지만 때에 따라서는 그 반대도 되는 법이랄까요.
솔로처
11/08/12 19:46
수정 아이콘
세종대왕은 그냥 천재죠.

당시 대부분의 집현전 학자들은 한글 창제에 극렬히 반대를 했습니다. 사대사상이 널리 퍼진 당시에 한문이 있는데 뭘 또 굳이 새로운 문자를 창제하느냐가 그 이유였죠. 집현전 학자들 중 그나마 세종대왕에 우호적인 학자들의 주 역할은 자료 (음운학 이라든가 관련 자료) 셔틀이 주 였다는게 통설입니다. 한글 창제에 있어 세종대왕이 최소 90% 이상의 역할을 담당했고 핵심 부분은 100% 혼자 창제를 했다고 일반적으로 봅니다.

당시 집현전 및 학자들이 한글창제에 대한 당위성에 대한 이해는 둘째치고 문자를 만들기 위한 기본적인 토대인 음운학이나 문자관련 지식과 이해들이 거의 전무한지라 세종대왕 혼자의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할듯 하네요. 나중에 문종으로 즉위하는 아들과 자식들이 보조를 한 정도고(역시 세종의 아들들이니 능력치도..) 신숙주, 성삼문 등은 중국 학자에게 조언만 보낸 심부름꾼 정도죠.
Francesc Fabregas
11/08/12 19:47
수정 아이콘
좋은글 감사합니다.
저도 역사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중 하나가 비하인드 스토리들의 재미입니다 크크
근데 살인사건 이야기는 대박이네요
국사에서 잔인한 사건들만 모아도 재미(?)있을거 같네요
재이님
11/08/12 20:03
수정 아이콘
생신 축하드립니다!!
팬이에요 +_+!!
화성거주민
11/08/12 20:15
수정 아이콘
생일 축하드리고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이런글은 에게로!!크크
바람모리
11/08/12 20:5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어느 때 이야기나 뒷이야기가 제일 재미있는것은 저뿐일까요;;
11/08/12 20:55
수정 아이콘
생일 축하드립니다~
계속 좋은 글 부탁드릴께요~~
서주현
11/08/12 21:36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은데요.

마지막 문단에 나온 사건은 제가 알고 있던 내용이랑 너무 다르군요.

항상 눈시BB님의 글을 감사히 잘 읽고 있지만, 제가 알고 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내용인데다가, 엔하위키를 뒤지다가 알게 되셨다고 말씀하시니 좀 더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아서요.

일단 저는 저 사건을, 권채의 처가 권채의 첩을 시기해 인간돼지로 만든(여후처럼 팔 다리를 자르지는 않았지만, 방에 감금하고 똥을 먹였다는 것 때문에 이런 표현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사건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에 권채가 저 사건을 '나는 그런 일이 있는 줄 몰랐다' 라고 발뺌하다가, 나중에 결국 첩이 학대당하던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 징계를 받았다고는 들었지만, 권채가 여성들을 납치해서 저런 끔찍한 일을 벌였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눈시BB님이 걸어주신 엔하위키 링크에서는 '누명을 쓴' 권채의 처가 곤장을 맞고 죽었다고 나와있는데, 위에서도 썼듯이 제가 알기로는 가해자는 권채의 처가 맞고(따라서 누명도 아니고), 그녀는 사대부의 아내였기 때문에 곤장을 맞지 않고 속전을 내고 풀려났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건의 피해자인 여종 덕금은 사망하지도 않았던 걸로 알고 있고요.(물론 그런 끔찍한 일을 겪었으니 거의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겠지만)
사학과 교수님께 직접 들은 내용이니 확실합니다.

물론 전공자이신 눈시BB님이 확인도 해보지 않고 엔하위키에 나와있는 내용만 가지고 글을 쓰셨을리는 없겠지만, 저로서는 너무 당황스러운 내용이기에 어디서 저런 이야기의 출처가 나와 있는지 꼭 알고 싶습니다.
홍승식
11/08/12 21:53
수정 아이콘
언제나 눈시BB님 글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계속 좋은 글 부탁드려요. ^^

그리고 생일 축하드립니다.
슬러거
11/08/12 21:58
수정 아이콘
그 콧대 높기로 유명한 조선 선비들(신하들)을 실력으로 제압할 정도였고 민생 정치와 경제면에서도 손을 댈 수 없는 넘버원이죠.

세종대왕-이순신 장군은 정말 대대로 손꼽히는 것이 당연한 인물입니다.
나라를 실제로 제대로 정비해낸 최고의 성군과 그 나라를 왜적에게 넘기지 않고 지켜낸 최고의 장수이니깐요.

그야말로 먼치킨 그 한마디가 적절하네요.
괜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만원권 지폐의 주인공 아니죠 ~
I.O.S_Daydream
11/08/12 21:59
수정 아이콘
먼저 생일 축하드립니다 :)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대왕님의 업적이야 말해 무엇하고 또 그분이 얼마나 먼치킨인지 일찍이 알고 있었습니다만,
보면 볼수록 대단하고 위대한 대왕님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어디서 현신한 신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흐흐.
지니쏠
11/08/12 23:11
수정 아이콘
쪽지 잘봤습니다. 누군가 드디어 나한테 고백하는건가 했는데.. 그나저나 역시 대왕님은 무결점이네요. 크크
11/08/12 23:12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항상 재미있는 역사글 써주시는 눈시BB 님이 저와 생일이 같다니 신기하네요.
생일도 축하드려요!
11/08/12 23:21
수정 아이콘
눈시BB님!! 진짜로 써주셨네요 크크
역시 세종대왕의 영향력!! 댓글이 흥하네요
초등교사
11/08/12 23:50
수정 아이콘
세종대왕님은 절대음감이셨...
박연이 악기를 가져온것이 편경인데 이건 돌을 16개 기억자 모양으로 깎아서 만든 악기입니다.
많이 보셨을텐데 돌들을 줄줄이 매단 전통악기가 바로 편경이죠.
종묘제례악 보러가시게 되면 볼 수 있습니다.
이 돌은 그냥 아무돌이나 막 가지고 하는게 아니고 특별한 암석으로 만듭니다.
그 전까지는 우리나라에 그러한 돌이 없어 중국에서 계속 사왔는데, 중국에서 사오다가 많이 깨지고(하나만 깨져도 못쓰죠..) 돈도 많이 들어서 세종께서 특별히 찾아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발견하게 되어 우리나라에서도 만들수 있게 된거죠.

근데 중요한건... 그 달랐던 음의 차이가
얇은 먹선 한줄차이였다는거죠 박연이 그걸 확인해보고 정말 그 얇은 모나미팬 한줄정도의 그 선이 마저 안깎였다는걸 보고 놀라 자빠졌다는....
이게 도와 도샾의 차이가 아니라
도와 도샾 사이를 100정도로 나눈상태에서의 1정도차이? 표현하기도 힘드네요;

세종대왕님은 정말.. 할말이 없는 사람입니다....
11/08/13 00:04
수정 아이콘
팔방미인.... 사실 이 표현도 모자랍니다;;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은 닥치고 숭배해야죠. 흐흐

그리고 눈시BB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키스도사
11/08/13 00:18
수정 아이콘
아 찾아보니 이런 기록도 있군요 크크 조선왕조실록에서 "개x끼(狗雛[구추] 혹은 狗兒[구아])"라는 단어가 나오는게 딱 5번인데 그중 3번이 세종실록에, 나머지 2번이 인조실록이네요. 물론 세종실록에 기제되어 있는건 진짜 개의 자식을 말하는 거고 인조는 자기 자식인 소현세자를 이야기하면서 "개x끼같은 놈을 억지로 내아들이라고 하니 이게 모욕 아니면 뭐냐" 라고 했었네요. 역시 킹왕짱 인조...

참고로 세종대왕 께서 가장 잘쓰신 욕은 "더벅머리 선비놈"이랍니다. 정조는 심환지에게 "호로자식"이라고 한 편지를 쓴 적도 있고..
왕들도 알고보면 사람이긴 합니다 하하
루크레티아
11/08/13 00:26
수정 아이콘
엔하위키가 물론 구라들만 늘어놓은 헛소리 투성이는 아니지만 역사 부분에 있어서는 많이 모자라는 것이 사실입니다.
엔하위키는 어디까지나 게임, 애니메이션 한정으로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역사에서 딱 예외로는 근,현대전쟁사 정도는 괜찮더군요.(밀덕들이 많아서..)

세종은 어떻게 보면 조선왕조를 통틀어 가장 심플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임금이기도 했습니다.
그 가장 큰 본보기가 도량형의 통일입니다. 박연에게 아악을 정리하기 위해서 기본음을 내는 황종관을 만들라고 명한 이후에 황종관을 대령하자 대뜸 '황종관의 길이와 무게를 도량형으로 통일한다.'라는 조칙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조선 초기까지도 통일되지 않았던 되, 말과 같은 도량형이 세종대에 이르러 통일이 되게 됩니다.(물론 통일은 되었지만 길이와 무게로 사기치는 것은 막지 못했다는 것이 조선의 한계입니다...) 머리 싸매고 연구하는 학자의 이미지가 강한 세종이지만 이렇게 쿨하게 하나로 밀어 붙이는 심플함도 보여주었지요.
Je ne sais quoi
11/08/13 00:32
수정 아이콘
생일 축하드려요. 항상 좋은 글 고맙습니다.
wkdsog_kr
11/08/13 01:25
수정 아이콘
늘 글 잘 보다가 처음으로 댓글 달아요 늘 수고 많으셔요~

개인적으론 세종대왕의 제일 큰 오점이라면 이번에 글 수정에서 언급하신 '수령 고소 방지법'의 도입이었다고 생각해왔는데
이 부분의 배경은 어찌 되는지 궁금합니다
무리수마자용
11/08/13 01:29
수정 아이콘
아이고 재미있어라 심지어 오늘은 댓글도 재미있네요
좋은글 항상 올리시는데 조금 더 댓글이 많았으면ㅠㅠ 라고항상 생각하던 저에게는 오늘이 계탄날이네요
조금시간이 늦었지만 생일 다시한번 축하 드립니다 [m]
무리수마자용
11/08/13 01:31
수정 아이콘
세종대왕과 신하들이 논쟁하는 것을 피지알에서 댓글로싸우는 것처럼 짤방을 만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흐흐 [m]
아우구스투스
11/08/13 01:45
수정 아이콘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립니다.

정말 세종대왕은 우리나라 역사의 먼치킨입니다.
fd테란
11/08/13 02:29
수정 아이콘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남한산성은 여름 가기 전에 하루 날잡아서 진도 쫙 뺼려고 벼르는 중인데 좀처럼 짬이 안나네요.
차한잔 앞에두고 책한권 읽는 느낌으로 쭉 빼고 감상 남길게요.
생일 축하드립니다.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11/08/13 10:38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금요일날 바로 DLC 질러서 해봤는데, 대단하더군요...
제가 원더덕후, 과학덕후 성향이 강해서 황제 난이도가 한계인데 - 그 이상을 깨려면 많이 포기하고 군덕과 외교의 줄다리기를 잘 해야 되는데
그걸 못합니다 - 세종은 무려 황제난이도에서 타국의 발전도를 가볍게 능가하는 과학 발전속도를 보여주는군요...
그것도 꼼수도 안쓰고 말이죠;

무엇보다 배경음악이 너무 마음에 듭니다. 지금 벨소리가 바바예투인데 이거 나오면 바꿔야겠어요. 흐흐.
체념토스
11/08/13 11:58
수정 아이콘
문명5 세종대왕나와서 감격하고 있었는데...
이런글을 보니 또 뭔가 뭉클하네요 잘봤습니다!
11/08/13 17:50
수정 아이콘
눈시님의 글이 오랫만에 흥했네요~~!!
역시 세종대왕님의 인기란? 크크
행복하게살자
11/08/13 18:16
수정 아이콘
생일축하드려요~

눈팅족에다 댓글참여도 거의 안하는 1인이지만, 눈시BB 님의 역사연재물은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만.. 좀 많이 밀렸네요.. 아직 남한산성글은 읽지 못했습니다. ㅠㅠ)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33813 [일반] 명나라의 수군 도독이었던 진린 장군의 후손들이 우리나라에 살고 있었군요. [22] RPG Launcher6743 11/12/12 6743 0
33746 [일반]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 영화화 결정. [39] Nair5992 11/12/10 5992 1
32610 [일반] 투표일이 몇시간 안남았네요. [53] DeMiaN4027 11/10/25 4027 0
32247 [일반] [잡담] 내가 뽑은 한국드라마 BEST8(스크롤 압박) [80] 슬러거11907 11/10/11 11907 2
32154 [일반] [속편?] 멈춰 버린 전통 [42] 눈시BB11717 11/10/06 11717 6
32134 [일반] 와패니즈, 서양 속의 일본 [추가] [100] 눈시BB14648 11/10/05 14648 9
31506 [일반] 단종애사 - 4. 숙부와 고립무원의 조카 [26] 눈시BB6921 11/09/02 6921 2
31400 [일반] 단종애사 - 1. 준비되었던 임금 [37] 눈시BB8959 11/08/29 8959 1
31037 [일반] [한국 문명 출시 기념] 세종대왕 특별편 (중요부분 정정 봐 주세요) [135] 눈시BB17230 11/08/12 17230 13
30863 [일반] 선조의 파천이 잘못된 일이었을까 [15] 케이윌8145 11/08/05 8145 0
30076 [일반] 남한산성 - 7. 형제의 맹 [15] 눈시BB6177 11/07/03 6177 5
30061 [일반] 남한산성 - 6. 정묘호란의 시작 [6] 눈시BB5328 11/07/02 5328 8
30048 [일반] 임진왜란 못 다한 이야기 - 항왜, 김충선 [13] 눈시BB13063 11/07/01 13063 3
29955 [일반] 남한산성 - 3. 고려처럼 [10] 눈시BB7286 11/06/26 7286 4
29895 [일반] 돌아온 The Fan(가칭) [5] 페일퓨리4604 11/06/23 4604 0
29745 [일반] 추게 & 에게 업데이트를 위한 지원글 [29] Cand10652 11/06/14 10652 28
29669 [일반] 임진왜란 못 다한 이야기 - 참전 일본 무장 [17] 눈시BB15008 11/06/11 15008 0
29470 [일반] 왜란이 끝나고 (임진왜란 시리즈 완결) + 정기룡에 대해서 [31] 눈시BB13977 11/05/31 13977 7
29398 [일반] 왜란이 끝나고 - 왜란종결자 [26] 눈시BB11300 11/05/28 11300 6
29346 [일반] 정유재란 - 완. 이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유한이 없겠습니다 [35] 눈시BB9219 11/05/26 9219 1
29302 [일반] 정유재란 - 10. 꿈의 끝 [14] 눈시BB8423 11/05/24 8423 2
29243 [일반] 정유재란 - 9. 사로병진지계 [19] 눈시BB8948 11/05/21 8948 1
29087 [일반] 정유재란 - 8. 호랑이 사냥 [17] 눈시BB7619 11/05/12 7619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