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근무요원 시절에 같이 공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대학생들이라 나이도 비슷비슷했습니다. 그중 제 동기에 형이 한명 있었는데 평소에 말 터놓고 지낼 정도로 편한 사이었습니다. 공익 대부분은 대학생 신분이었으나 이형은 어렸을적부터 집안형편이 좋지 않은 이유로 주유소에서도 기름 넣는 일, 식당 배달하는일 등 여러가지 일을 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요즘 남들 다 간다는 대학은 결국 못가게 되었고, 룸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을 태우고 다니는 일을 하다가 공익을 하러 오게 된것입니다. 4월말 공익근무요원 소집해제를 하기전에는 근무가 끝나면 술마시러 종종 다니곤 했습니다. 이 형의 특이한 버릇중 하나는 자리에 앉아서 고기와 술을 시키고 나면 항상 서비스를 달라고 했었습니다. 징글징글 맞게 능구렁이 처럼 웃으면서 사장님께 '에이 여기 서비스 하나 없어요~?'라고 한번씩 떠보면 사장님들께서는 콜라 한병씩들고 오셨죠. 다들 돈 없는 학생들이다보니 처음에는 좋아했으나 날이 갈수록 점점 진상를 띄게 되었고, 결국에는 같이 있던 사람들마저 창피해하는 상황이 오게 됩니다. 그럴때마다 형은 늘 '인생은 이렇게 사는거야.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뭐 하나라도 더 떨어지는 법이지'라며 늘 인생의 노하우를 우리들에게 전수(?)해 주곤 했었습니다. 결국 나중에는 우리 모두 동의하지 않게되었지만요. 곰곰히 생각해보면 콜라 가지고 나타나시던 사장님들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손님은 왕이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만고불변의 법칙입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그들이 해줄 수 있는 범위내에서는 무엇이든 해줄수 있습니다. 물이 필요하면 물가져다 주고, 포크를 떨어뜨리면 포크 가져다주고, 앞 접시가 필요하면 앞접시 가져다주고, 재떨이 가져다 줍니다. 그런데 가끔은 우리도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얼마 전쯤에 저희 카페에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 손주 등으로 구성되어있는 한 식구 총 8분께서 방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주문하신건 맥주500cc 3잔과 과일음료 2가지. 안주도 없이 총 2만원도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테이블 두개를 붙이고 앉으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보다 더 가관인것은 나중에 계산하고 나갈때 바로 앞에 아파트에 사는 주민인데 어떻게 서비스 하나 안해줄수가 있냐고 저희에게 따지십니다. 보통은 8명이 가면 8명의 메뉴를 주문하는게 매너라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강요는 아닙니다. 설령 10명이 와서 레몬쥬스 하나만 시켜도 저희 입장에서는 뭐라 할 순 없습니다. 네 다섯분이 오셔서 음료 한두개 시키시고 6시간동안을 앉아계십니다. 이런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라 이제는 그냥 웃고 넘깁니다.

어제는 아줌마 세분이 오시더니 블랙러시안을 세잔 시키십니다. 캭테일을 내어드리고 '맛있게 드세요~^^'하는 순간에 아주머니 한분께서 아뿔사 블랙러시안 한잔을 테이블에 쏟으십니다. 그리고 그중 제일 싸가지가 없으신 한분(-_-;)은 저한테 되려 역정내십니다. '아저씨(저 아저씨 아닌데요) 쏟았잖아요!(..?어쩌라구요) 서비스로 한잔더 가져다 주실거죠?' 상황을 사장님께 했더니 참 별꼴이라며 또 서비스는 서비스대로 한잔 더 해주십니다. 사장님께 왜 해주시냐고 여쭈었더니 결국엔 손님이 진상을 부리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영업주는 손해를 본다고 합니다. 그런 손님들에게는 그냥 그렇게 해주는게 최선이라고 하시더군요. 저희 사장님은 몇십년 넘게 이쪽에서 계셨습니다. 그래서 손님들 기분이 어떤지, 어떤 사람인지는 귀신같이 알아 내십니다. 그분의 말씀에 의하면 결국 손님과 누가 더 잘못했네 잘했네를 따지는 순간 우리가 더 손해라고 합니다. 진상 손님들 (특히 아줌마군단..)에게는 무조건 해줄 수 있는대로 다 해드려라 입니다. 안해주면 나중에 뒷말이 나와서 시끄러워 진다구요.

어제 가게 마감을 하면서 '왜 진상 손님들이 생겨날까'라고 진지하게 고민을 해봤습니다. 제가 내린 나름의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각종 대기업 및 서버에서 고객을 통한 부당이득 갈취 -> 현명한 고객은 투쟁함으로써 최소한 손해보지 않는법 터득 -> 결국 투쟁은 내가 소비하는 모든곳에서 발생(혹시라도 가만히 있다가는 손해볼거 같아) -> 선량한 기업 및 서버는 오히려 손해.
아주 짧은 시간동안 내린 나름의 결과이므로 논리성이 형편없음을 인정합니다. 흐흐.

사실대로 말하자면 제가 카페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저도 몰랐을법한 일들이기도 합니다. 고객센터 인바운드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나름의 고충이 있을테고, 영화관에서 알바를 하시는 분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서비스를 해주는 입장이 되어보면, 그 분야에서 고생하고 노력하는 분들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나중에 되려 서비스를 받게 될 상황이 오면 최대한 매너있게 합니다. 예전에는 참 몰랐던 것들 입니다. 손님은 왕이다. 분명히 맞는 일이지만 왕도 왕 나름입니다. 손님도 결국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받는 대접이 달라진다는걸 많이 배우는 요즘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