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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5/12 06:06:58
Name 네오크로우
Subject [일반] 으하하 아이고 친구야... 너도 이젠 아빠구나..
- 제가 겪은 소소한 일상을 일기체로 남긴것이기에 반말체입니다.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새벽 3시 언제나 처럼 나는 가게 카운터에 앉아서 멍하니 웹서핑이나 하고 있었다.
갑자기 울리는 내 시계 ( -_-) 핸드폰..

'xx야 뭐하냐?'

'몰라서 물어보냐 당연히 가게지, 비가 자꾸 와서 손님도 없고 출출해서 라면 하나 먹고 있다'

'아~ 진짜 꾸리하게 총각티 팍팍 내고.. 그만 먹고 기다려.. 머릿고기 사가지고 간다. 소주 한 잔하자'

그렇게 그 녀석은 20분쯤 지나 짤그락 거리면서 검은 봉지에 소주 두 병과 편의점표 머릿고기 하나를 사들고 왔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 녀석을 보자마자
헉! 일주일 전에 봤을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그 녀석 머리스타일에 뭐라고 말은 못하겠고 그냥 보일듯 말듯한 애매한 미소만 지었다.


' 아.. 내일 쉬는 날인데 잠은 안오고 이 시간에 술 먹을 사람은 너 밖에 없고.. 간단하게 각 1병 마시자'

평상시 처럼 늘 그렇듯이 자연스레 간이 식탁을 만들고 꼴랑 손바닥 만한 요상한 상표의 머릿고기에 우리의 연인 (?) 이슬양을
곁들여 종이컵에 듬뿍 담아 마시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이야기 꺼리는 어디서나 듣는 흔한 넋두리들뿐.. '이러니 나라 꼴이  이 모양이지..에이구..'로 시작해서
누구누구는 어찌어찌 해서 지금 이렇게 산다더라.

어릴적 친했던 그 녀석은 건강하다가 갑자기 심근 머시기가 와서 지금 중환자실에 호흡기 꼽고 있다더라..
신세 한탄도 좀 하고 어릴적 기억 떠올리면서 낄낄되고 평상시와 다를 바 없었다.

다만 계속해서 드는 의문.. '너 도대체 그 머리 스타일은 뭐냐?' 이 말을 정말 하고 싶었지만 좀 처럼 타이밍이 나질 않았다.
마침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그 친구는 전원 꺼진 모니터 화면에 자기 얼굴을 비치면서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냥 넘어가려 했지만 정말 너무 궁금했기에 대놓고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다.

'야..낼 모레 마흔인데.. 도대체 그 베컴 머리는 뭐냐?? '

사실 이것도 순화해서 물어본 것이지 정확히 말하자면 1박2일의 강호동의 그 머리였다.
술에 엄청 강한 그 녀석은 금새 귀까지 빨개지면서.. 아... 그게 있쟎냐.. 하면서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이 친구는 어릴적부터 그늘진 곳(?)에서 활동했고 성인이 된 이후로도 줄곧 속칭 말하는 깡패의 길을 걸어온 친구였다.
그 친구가 남한테 어떤 해를 입혔고 사회적인 규율을 어떻게 어겼는지는 알지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다.

그냥 어릴적부터 알던 친구였기에 지금도 쭈욱 그런 사실은 배제한채 혹은 무시한채 같이 술잔 기울이면서 친하던 친구였다.


"원래 어버이날에는 오전에 우리 어머님한테 감사드리고 오후에는 우리 집 사람 아버님 산소를 가는게 일상이거든...
근데 올해는 어찌 어찌 스케줄이 꼬여서 며칠 뒤에 가기로 했고 간만에 집 사람 고향에 가는거라 집사람 친구들, 아는 사람들이랑
같이 모여서 술 한잔 하기로 했어 "

정말 뜬금 없었다. '그거랑 도대체 너 베컴(강호동) 머리 스타일이랑 무슨 상관이냐?' 속에선 이렇게 묻고 싶었지만 털털한 미소를
던지면서 계속되는 친구의 말을 경청했다.

"야 xx야 너도 알지? 내 스타일.. 나 이런거 정말 하게 될줄 몰랐는데 와이프가 이번에 자꾸 조르더라구.. 가족들 커플티도 안입고 매번
이러는데 솔직히 고향가서 좀 어깨를 펼수 없다고... 가족인데 어떤 구심점을 드러내는게 있어야 하지 않냐고..
마침 우리 첫째랑 둘째놈이  날이 따스해지니까 머리를 시원하게 깎았는데 둘 다 모히칸 스타일인거야..
내가 진짜 가족들을 위해 뭐든 할 수 있는데.. 인간적으로다가 가족 4인 노란 티셔츠는 정말 못입겠어.. 그래서 대신 우리 아들 둘이랑
똑같이 미장원가서 이 머리 했어..."

잔뜩 놀리려고 머릿속으로 1 부터 10까지 정리했던 골려먹을 멘트들이 일순간 사라져 버렸다.

거기다가 갑자기 이 녀석의 머리스타일이.. 진짜 베컴 스타일 같이 멋져 보였다.

말을 이어가면서 그 녀석은 얼굴에 함박 미소를 머금고 계속 불꺼진 모니터 화면에 얼굴을 비치면서 닭벼슬을 살리고 있었다.  



'아이고 친구야... 나야 아직 그 길에 발을 딛지 못했지만 넌 정말 아빠가 됐구나.'

'진심으로 멋지다. 너가 정말 남자다.'

속으로 몇 번을 되뇌었다. 분명 대놓고 말하면 이 녀석 콧대가 하늘을 찌르며

'그러니까 남자는 장가를 가고 애를 낳아야 남자가 된다니까~'
'넌 아직 애거든~~ 어디 한 손으로 술을 따르냐? 버르장머리 없게'

이 멘트가 나올것이 뻔했기에 꾹꾹 참았다.


ps : 결국 사온 술 말고도 집에 있던 술들 이리 저리 들쑤시고 거하게 취해서 나가면서 가게 냉장고에 있는 제티 두 개와
온장고에 있는 핫바를 꾸역 꾸역 주머니에 챙겨갔습니다.

' 우리 강아지 (아들)들이  이거 좋아해 헤헤헤헤 '

'나름 깍두기 머리에 무지개 원단 정장입고 레이져 나갈듯한 눈빛을 지니며 동네 휘적거리던 내 친구야..'
'너 진짜 이제 아빠가 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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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스탠드
11/05/12 06:13
수정 아이콘
우와
왠지 가슴이 찡하네요.
잘 보고 갑니다.
다다다닥
11/05/12 11:03
수정 아이콘
너무 잘 읽었습니다 뜨뜻한 글이네요 ^^
lupin188
11/05/12 12:11
수정 아이콘
결혼하고 싶네요......크크크
Aeternus
11/05/12 16:55
수정 아이콘
따뜻한 글이네요.. ^^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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