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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5/10 23:44:42
Name 헥스밤
Subject [일반] '딱히 드실 거 없으시면 적당히 추천해드릴께요.'

'딱히 드실 거 없으시면 적당히 추천해드릴께요.'

최근 한달 간 가장 많이 한 말이 아닌가 싶다. 조명은 어둡지. 메뉴판은 아직도 10포인트로 뽑힌 작은 글씨가 가득한 임시메뉴지. 게다가 오탈자가 꽤나 많이 섞인 영어지. 치치니 마이타이니 하는 대중적인 트로피칼은 거의 없지. 이런데서 오는 여러가지 문제가 아닌가 싶다. 뭐. 칵테일 추천은 바 컨셉이기도 하고.

하지만 추천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책이든 소개팅이든 영화든 음악이든 잘못 추천하면 욕먹기 좋고, 잘해봐야 본전이다. 칵테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뭐. 그래도 오지랖 넓고 가게에 손님은 없고 할 일은 없고, 추천이라도 해야 일하기 즐겁지 아니한가. 라는 생각으로 산다. 그렇게 추천하며 느낀 작은 감상을 써볼까 하는 생각에, 쓴다. 아. 그리고 전에 올린 글에 덧글로 누군가 칵테일 추천을 부탁드려서 쓰는 것도 있고 겸사겸사. 너무 유명한 녀석들을 살짝 빼고 어딘가 2군스러운-여러가지 이유로 잘 취급하지 않는, 혹은 손님 입장에서도 이름만 보고 대체 뭔가 싶은-것들을 중심으로 써보련다.


1. 네그로니

인생에서 한 잔의 칵테일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네그로니를 꼽는다. 이탈리아의 독보적인 리큐르 '캄파리'를 사용하며, 이탈리아인 <네그로니 백작>이 식전에 마시는 술로 즐겼다는 이탈리아적 칵테일 네그로니. <맛의 밸런스>라는 차원에서 거의 최고의 칵테일이 아닐까 싶다. 들어가는 재료가 잘 쓰이지 않는 녀석들이라(+가격도...) 없는 바가 좀 많은 느낌이기는 한데, 아쉬운 일이다.

약간 붉은 빛에 오렌지 가니쉬. 그레이프푸르츠와 포도를 중심으로 한 섬세한 향과 맛. 오렌지 과육의 단맛이 잡다한 맛을 잡아주며 껍질의 향이 섬세함을 한 단계 높여준다.

식전주답게 식욕과 음주욕을 매우 돋궈주는 효과가 있으며, 섬세한 맛과 향과는 별도로 도수도 은근히 높다. 전체적으로 레이디 킬러로 쓰기에도 상당히 괜찮다. 다만 심플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그레이프푸르츠류의 드라이한 향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비추. 그리고 바텐더 입장으로도 별로 추천하고 싶은 술은 아니긴 하다. 이거 마시고 나면 다음 술들이 어딘지 부족하게 느껴지게 되는 부작용이 있어서...

2. 스푸모니

네그로니의 롱드링크/트로피컬버전이란 느낌의 술. 들어가는 재료는 캄파리 빼고는 완전히 다른데, 맛이 주는 느낌은 비슷하다. 알콜 도수는 상당히 낮음. 개인적으로 도수 낮은 칵테일을 굉장히 싫어하는 편인데, 그 와중에 몇 안되는 마실만한 술이라는 생각. 역시 그레이프푸르츠주스님의 여러 영업적 단점들(잘 안씀. 구하기 귀찮음. 비쌈. 보존이 구림 등등) 덕에 있는데는 있고 없는데는 없다. 내가 존경하는 바텐더가 있는 바에도 아쉽게도 없다. 핑크색. 과일쥬스 마시는 기분으로 마실만한 술.


3. 발랄라이카

화이트레이디와 비슷한 레몬의 신맛과 큐라소의 오렌지맛을 중심으로 하는 상큼한 칵테일. 발랄라이카/화이트레이디/XYZ/카미카제/사이드카의 '시큼하고 적당한' 칵테일 계열 중에 단연 탑이 아닌가 싶다. 레몬 쥬스의 투명한 흰색. 여자가 먹기에 부담없는 맛과 부담있는 알콜도수로, 나름 작업용으로 쓸만한 편. 색도 이름도 예쁘다는 건 덤. 더불어 다른 동류 칵테일에 대해 짧은 평을 하자면, 화이트레이디는 맛이 너무 가볍고, XYZ는 맛이 너무 무겁다. 카메카제는 어딘가 촌스러운 맛이 좀 나고, 사이드카는 괜찮지만 취향을 심하게 탄다. 역시 추천은 발랄라이카.

4. 마티니

뭐 말할 게 있을까. 재료와 만드는 사람의 손과 취향에 따라 백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딱 봐서 아니다 싶은 바에서는 절대로 시키지 말고, 딱 봐서 정말정말 괜찮다 싶은 바에서는 시킬 만 하다. 괜찮은 진이 백바에 몇 병 꽂혀 있고 기구들이 잘 갖춰진 곳에서는 시켜볼 만 하고, 유흥가의 평범한 바에서는 절대로 시키지 말자.

5. 헌터

이녀석도 참 괜찮은 녀석인데 여러가지 이유로 없는데가 더 많은듯. 위스키 베이스 칵테일 중 드라이한 맛을 느끼고 싶다면 가장 무난하고 우수하다. 도수도 높고 맛도 날카롭다. 물에 피를 탄 색. 물에 피를 탄 맛. 이라고 어떤 친구가 평했다. 보다 정확히는 위스키의 쓴맛과 약간의 체리향? 터프하지만 어딘가 우수에 찬 느낌의 맛.

6. 러시안

블랙러시안이 아니라 그냥 러시안. 블랙러시안보다 스트레이트하고 무거운 칵테일. 독하고 달다. 섬세함이나 화려함과는 약 7광년정도 떨어져있는 칵테일. 단 맛이 강한 덕에 입에 닿는 맛 자체는 딱히 독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지만 마시면 도수가 느껴진다. 터프하고 스트레이트하고 마초답고 뭐 대충 그런 형용사 쭉 세워놓은 맛과 향.

7. 진 피즈

굉장히 드라이한 탄산 칵테일. 탄산수와 레몬과 진과 라임의 쓴맛만 모아둔 칵테일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색만 봐도 딱 느껴진다. 진 토닉을 상상하고 마시면 큰일날 녀석. <탄산수>라는 빌어먹을 재료+어딘가 마니아틱한 맛 덕에 역시 잘 취급하지 않는 느낌. 오리지널은 라임 대신 레몬 가니시를 쓰는데, 그러면 너무 매니악한 느낌이라 개인적으로 레몬쥬스+라임가니시의 괴랄한 레시피를 쓰는 편. 이건 진 리키도 아니고 진 피즈도 아니어라.

8. 슬렛지해머

오함마. 라는 이름 답게 강하고 직선적인 맛. 아무 생각 없이 적당하고 확실하게 취하고 싶을 때 킹굿. 단순한 맛이 주는 미학과 쾌감을 갖추고 있는 녀석. 달고 시고 독하고 시원하다. 이 네 가지 맛으로 맛이 완전히 표현되는 칵테일.

9. 선번

네이버 검색해보니 알콜도수는 상당히 낮다....라고 쓰여 있는데 안그렇다. 쥬스가 꽤 들어가지만 도수 안낮다. 크랜베리 쥬스 특유의 새빨간 색 덕에 컬러가 상당히 예쁘고 화사한 빨강이다. 맛은 현란하게 단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크랜베리 쥬스의 엄청 단 맛 사이로 데킬라의 깔깔함과 큐라소의 오렌지향이 편편히 박혀있는 느낌.

10. 어스퀘이크

슈터. 로트렉을 기리기 위해 어떤 바텐더가 만들었다는데 꽤 잘 어울린다. 맛도 향도 느낌도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만큼 강렬하다. 네이밍 센스가 좀 구리다는 것만 빼면 매우 괜찮다. 지진을 느낄만큼 독하기는 하다. 압생트계(아니스, 파스티스, 삼부카 등) 특유의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친 존재감이 드러나지만, 이거 쓰는 칵테일 치고는 무난하게 마실만하다. 적어도 보드카 아이스버그보다는 훨씬 마시기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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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테일은 어디까지나 <술>이다. 개인적으로 쥬스에 알콜 탄 것 같은 칵테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메뉴나 추천이나 그렇게 되어버렸는데. 어쨌거나 칵테일은 세네 잔이면 꽤 확실하게 취할 수 있는 <술>이다. <술>이기에 당연히 쓰고 독하고 취한다. 그저 다른 술에 비해 조금 더 맛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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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切唯心造
11/05/10 23:54
수정 아이콘
알콜을 섭취하면 안되기 때문에 이제는 마시지 못하지만 정말 마셔보고 싶네요. 병이 빨리 나아야지 어휴=3
coolasice
11/05/10 23:55
수정 아이콘
7. 진피즈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진피즈에 탄산수가 아닌 '진'토닉이 오리지날아닌가요? 그리고 진토닉을 토닉워터말고 좀 더 고급의 대체품이 존재하나요?

탄산수..도 페리에와 진저에일등 범위가 워낙다양해서...;
헥스밤님은 어떤걸 사용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이런질문 개인적으로 가게 가서 물어봐야하는데 지방이라;; 그리고 이렇게 공개시켜놓으면 더 많은분들이 좋은 정보를얻어가실수 있을꺼같아요 [m]
헥스밤
11/05/10 23:58
수정 아이콘
토닉워터, 칼린스믹서(탐 칼린스에 드가는거), 진저에일, 코카콜라, 사이다, 페리에레몬 등은 <착향탄산음료>에 들어갑니다.
탄산수는 초정리광천수나 게롤슈타이너, 아주라 등의 <탄산과 석회맛이 나는 물>이구요.
저는 개인적으로 게롤슈타이너가 가장 낫지 않나 싶습니다. 가게에서도 그거 쓰고 있구요..
왼손잡이
11/05/11 00:00
수정 아이콘
아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니 그냥 막 만든 진토닉 한잔이 떠오르는 밤이네요..

처음들어보는 칵테일이 굉장히 많은데 저 슬랫지 헤머라는 칵테일이 굉장히 끌리네요. 흐흐
녹용젤리
11/05/11 00:00
수정 아이콘
아아 주량이 소주 반잔이라 마시고는싶은데.....제가 마시면 그냥 뻗어버리겠네요.
seotaiji
11/05/11 00:08
수정 아이콘
레시피도 올려주시면 너무나 감사하겠네효 (굽신굽신)흑..
11/05/11 00:11
수정 아이콘
만화 바텐더를 보는 기분이..!

저도 적당히 추천 하나 날리고 갑니다. 응?
스바루
11/05/11 15:46
수정 아이콘
마티니 시켰다가 한모금먹고 너무 맘에 안들어서 치우고 바로 딴거 시키니까.. 미안한지 그냥 다른걸 그냥 서비스로 받은 기억이 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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