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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10/13 21:47:29
Name love&Hate
Subject [일반] 택시
유난히도 예고없이 잦은 비가 내리고 9월이 되어서도 무더위에 푹푹 찌던 올해. 처음으로 가을의 느낌이 물씬 느껴지던 그날 난 수유리의 거리에 있었다. 멀리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무척이나 즐거웠지만 택시를 타고 집까지 가기엔 너무나 먼 거리였다. 일단 적당히 오른 취기에 길을 한번 걸어보기로 했다. 사실 시원한 가을을 한번 느껴보고 싶었던 호기가 있었지만 이내 다리가 아파서 빨리 택시타고 집에나 가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내 앞에 택시가 섰다. 그 옆에 서서 손님이 내리고 나면 기사님께 낙성대 까지 가줄수 있느냐고 여쭤본뒤 타볼 요량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반가운 택시였어야 했건만 문이 열리자마자 웬 여자가 튕겨나듯 튀어나왔다. 덩치 좋은 웬 남자가 조금 뒤에 따라나온뒤 앞서 튕겨나온 사람의 뺨을 몇차례 더 가격했다. 어느정도였냐면 맞는 여자의 목이 돌아가는 것이 내눈에 보일정도로 강력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다보니 절대로 길거리 시비에 끼어들지 말라던 내 주변사람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목구멍에서 뜨거운 한마디가 나왔다.

"저기요.."

뜨거운 말한마디였지만 지나치게 소심했다. 그래 너무 뜨거웠지만 좀 식혀서 나왔다고 하자. 여하튼 때리던 그 사람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말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 여자분은 내 말을 똑똑히 들었나보다. 난생 처음보는 그 여자분이 기어서 내 등뒤로 오더니 내손을 뒤에서 잡고 내 등에 기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뭐야 이건. 넌 뭐야?"



그 순간 갑작스럽게 의도와는 달리 난 그 남자와 수유리 거리 한복판에서 전경과 시위대마냥 대치하게 됐다. 정말로 그려러던 의도는 조금도 없었다. 말리고 싶었지만 절대 일대일로 대치상황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그 남자의 덩치가 너무 컸다. 185는 넘어보였고 넓은 어깨는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스무살때쯤 친구중에 하나가 길에서 시비가 붙어서 칼에 찔려 유명을 달리했다. 난 정말 피하고 싶었다. 유일한 목격자인 이 여자 역시 문제가 생기면 내편이란 보장도 절대 없다. 갑자기 술이 확 깨면서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그 순간에도 제발 칼은 없어야 할텐데..라는 생각이 머리속을 계속 멤돌았다..하지만 이왕꺼낸 말 끝은 봐야지 라는 생각에 좀더 용기를 냈다.



"아니 저기요."
"너 저X 알어?? 야 넌 이자식 아냐??"

낭패다. 이미 사람이 아닌 맹수의 모습을 하고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한다. 이럴 때 일수록 말로 설득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유혈사태가 일어나면 무조건 손해다.

"너 뭐냐고..."
"저기요 무슨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이러시면 안되죠."
"너 뭐냐고 저X은 맞을짓을 했어 너 모르잖아 어디서 끼어들어.."

그 남자는 쉴새 없이 욕을 하고 있었다. 난감하다..하지만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해보고 용기를 내보자. 설득이 가능할 것이다. 아니 절대로 가능해야 한다.


"저기 여자 친구분이신거 같은데 무슨 일인지 몰라도 지금 이러고 나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나요?"
"..."


쉴새 없이 육두문자를 쏟아내던 그의 입에 그제서야 휴식이 찾아왔다. 입질이 왔다. 여기가 바로 포인트다. 좀더 공략해보자.


"화가 나셔서 지금 이러고 나면 나중에 후회하잖아요."
"..."
"맞는 사람도 여친 때리는 사람도 남친 남이 끼어들지 못할 문제라기 이전에 때리는 사람도 마음 편하지 않잖아요.."
"..."
"그리고 제가 지금은 끼어드는 귀찮은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만약 여자친구가 누군가에게 곤경에 처해 있으면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게 좋지 않나요?"
"그래도 저X은 지금은 맞아야돼.."
"제가 신고해드릴 테니깐 일단 지금은 경찰서 가셔서 두분다 좀 분위기 좀 식히시고 대화를 나눠 보세요. 그때도 때리고 싶으시면 경찰서나와서 해결보시던가요.."
"..."
"제가 지금 신고 해드릴께요.."


가만히 아무말 없이 지켜보던 그 남자는 내가 전화로 난생 처음보던 수유리 지역 건물 간판들을 나열하며 신고하는 사이에 여자한테 소리쳤다.
"에이 XX.. 잠시만 일루와봐 말로할께.."
그리고 그 둘은 약 5분간 이야기를 했다. 정말 그후로는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남자가 날 한번 휙 쳐다보며 가야겠다 XX 이라고 하고는 잽싸게 택시를 잡았다. 다행히도 정말 무사히 아무일도 없이 막았다.  다행히도 무사히 끝났구나.



안도감을 오롯이 느껴보기도 전에 그 여자는 그 남자가 잡은 택시를 함께 타고 사라졌다.  나의 안도감이 당혹감으로 바뀌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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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사탕
10/10/13 21:58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읽었네요 예전에 버스에서 내려사람들이 많이 보이길래 뭔일인가하고 가보니
정류장옆에서 취객과 건장한 청년이 시비가 붙어
청년이 취객을 거의 복날 개패듯이 패고있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데도 구경만하고 있더군요
저도 모르게 싸움을 말리고 있더군요 어찌어찌하여 말리고보니 건장한 청년은 씩씩대면서 친구와
같이 도망가고 취객은 누워서 경찰서 가자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있고 제 손은 언제 찢어졌는지 모르지만
피가 철철나고 있는데도 다들 방관만 하고있더군요. 참 씁슬한 기억이 떠오르네요
10/10/13 22:22
수정 아이콘
흥미로운 소재에 수준높은 글솜씨로 다뤄진 글이라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흐흐...
저런 상황에 끼어들었다가 여자한테 혼나고 남자한테 욕먹은 기억이 나는데, 어찌 일이 잘 풀리셨다니 억울하기도 하고 그럽니다
헌데 마지막 줄은 수정하셔야 할 것 같아요. 실수하셨네요 ^^;
10/10/14 04:33
수정 아이콘
글솜씨가 부럽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어요 ^^
감성소년
10/10/14 08:34
수정 아이콘
전 정말 남녀가 저렇게 싸우는 걸 본적이 한번도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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