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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9/25 11:15:40
Name 나이로비블랙라벨
Subject [일반] 한 아주머니의 절규
긴 추석 연휴 잘 보내고 계시는지요?

추석 전날 강서, 양천구 지역에 집중 호우로 많은 피해가 있었습니다. 이번 집중 호우로 인한 한 아주머니의 절규 아닌 절규를 들어 피지알에 몇 글자 적어 보려 합니다.

이제 50대 초반인 이 아주머니는 평범한 가정을 꾸리며 아무 걱정 없이 살고 있습니다. 자녀 두 명은 출가하여 잘 살고 있고, 남편과 함께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는데, 이 아주머니는 너무 미련할 정도로 가족에 헌신적인 면이 있습니다. 자신보다는 늘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경우인데, 이번 호우 피해로 이 아주머니의 미련할 정도의 가족 헌신에 남편 분이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이 아주머니는 7남매 중 여섯째 이십니다. 아래로 여동생이 하나 있고, 위로 오빠가 다섯분이나 계시죠. 그러나 아주머니 집안에 무슨 마가 꼈는지 아주머니의 오빠들은 일찍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다섯 오빠 중 유일하게 큰 오빠만 결혼했고, 나머지 오빠들은 결혼도 못하시고 일찍 운명을 달리 하셨습니다. 그나마 결혼해서 아들도 낳은 큰 오빠도 천수를 못 누리고 세상을 떠나신지 30년이 다 됐습니다.

이렇듯 아주머니는 자신의 여동생 이외에 남은 직계 가족이라고는 큰 오빠의 부인과 아들, 즉 올케 언니 한 분과 조카가 남은 것인데, 이번 집중 호우로 올케 언니와 조카가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겁니다.

언니네는 가정 형편이 매우 어렵습니다. 남편과 사별하여 홀로 아들을 키운 언니는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았지만 지병을 얻게 되면서 집안이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이 올케 언니의 아들, 즉 아주머니의 조카가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후로 몰락의 시간을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올해 34살인 아주머니의 조카는 사실 천재라는 소릴 들을 정도로 뛰어난 학업 성적을 냈었습니다. 서울의 모 사립대를 뛰어난 성적으로 입학했고,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효자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공대를 나왔고, 일본어를 부수적으로 공부하며 일본 IT 기업 입사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여 결국 자신의 포부를 이루게 됩니다. 졸업 후 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에 일을 하다 일본에 건너가 열심히 일을 하면서 나름 돈도 열심히 모으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어머니(아주머니의 올케 언니)의 지병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아들의 저금통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고, 채워도 계속 채울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결국 아들은 한국으로 귀국하여 어머니 병수발을 하면서 간신히 직장 생활을 유지합니다.

그런데 한 3년 전부터 이 아들은 회사를 그만 두게 됩니다. 몸과 마음이 지쳤는지 아들은 모든 인생을 포기한 사람의 모습으로 급변하게 됩니다. 직장 잡을 생각도 안하고, 그나마 조금 모아 두었던 돈은 생활비로 모두 쓰게 되고, 빈털터리가 됩니다.

이 아들이 하는 일은 오로지 집안에 박혀 컴퓨터만 만지기 시직합니다.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밖에도 안 나가고 오로지 컴컴한 자기 방에 틀어 박혀 컴퓨터만 쳐다 봅니다. 아들의 어머니는 결국 먹고 살기 위해 병든 몸을 이끌고 식당에 나가게 됩니다. 유일한 수입이 바로 아주머니의 식당 일로 벌어들이는 월 100만 원이 전부였습니다.

양천구 신월동 지하 단칸방에 살던 두 모자는 죽지 못해 살며 근근이 삶을 지탱합니다. 3년 동안 아들은 일할 생각 전혀 없이 늘 컴퓨터만 하면서 인생을 자포자기한 모습만 보입니다. 평균 체형이었던 아들은 지금 100키로가 넘는 거구가 되었습니다. 눈은 점점 작아지고, 시력을 악화되며 늘 시커먼 얼굴에 살은 점점 부어 오르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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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올케 언니와 조카를 보면서 아주머니는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조카에게 수백 번 이야기를 해도 조카는 듣지 않았습니다.

“이 놈아 그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왜 이렇게 썩히는 거냐? 니 애미를 봐라. 지금 죽기 일보 직전이잖아. 그런데 맨날 식당 나가서 일하는 거 보고 너 좀 정신차려야 하지 않겠니?”

3년간 이 말을 수백 번 했지만 조카의 대답은 무응답이었습니다.

이번 추석연휴에 퍼부은 비로 이 모자가 살던 집은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지하에 살다 보니 쏟아지는 비를 그저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아들은 살림살이를 밖으로 내다 놔야 함에도 그저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자신이 애지중지했던 컴퓨터도 결국 침수되어 폐기물이 되었습니다.

추석 차례 준비로 정신 없었던 아주머니는 갑자기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해봤지만 연락이 두절되어 결국 집을 찾아갔습니다. 아주머니의 눈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올케 언니는 아직 식당 일이 끝나지 않아 없었고, 조카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멍하니 자신의 어머니와 살았던 단칸방을 쳐다 보기만 한 것입니다.

“이 놈아 뭐 하는 거여? 빨리 뭐라도 끌어 내야지!”

아주머니는 비를 맞으며 밥솥이며 그릇이며 이것 저것 끄집어 내려 했지만 이미 물위에 둥둥 떠 다니는 살림살이는 자신의 힘만 낭비할 뿐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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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당일 날 급하게 차례를 지내고 아주머니는 남편 몰래 조카의 집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당장 뭘 해먹을 살림 도구도 없을 테고 이부자리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얼른 필요한 살림살이를 싸기 시작했습니다.

“철수(가명) 엄마, 지금 뭐 하는 거야? 그게 다 뭐야?”
“아니에요. 추석 바자회 한다고 해서 필요 없는 것들 갖다 줄라고요”
“그런데 뭐가 급하다고 차례 지내자마자 그러고 있어? 오후에 나랑 같이 가자고”
“아니에요. 곧 바자회가 끝난데요. 제가 얼른 갖다 주고 올께요”
“아니, 그 많은 짐을 어찌 들고 갈라고? 내가 차로 테워다 줄께”
“아니에요. 택시 타고 가면 되요”
“그게 무슨 소리야? 당신 왜 그래?”

결국 아주머니는 남편에게 사실을 털어 놨습니다.

“뭐라고? 당신이 왜 그렇게 하는데? 그 놈 정신 못 차리고 3년 째 저러고 있는데 그 놈이 뭐가 아쉬워서, 엎어지면 코 앞에 사는 우리집에 한번도 안 오고, 지가 어려우면 이만 저만해서 어렵다고 하면 내가 못 도와줘? 그리고 몸 멀쩡하고 머리도 있는 놈이 지 애미 저러고 있는데도 맨날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고, 뭐 하는 놈이길래 저러는 거야? 뭐가 이쁘다고 이런걸 갖다 줘? 당신 만약 이거 갖다 주면 알아서 해. 내가 그 놈한테 지금까지 한 거 생각하면 이가 갈려. 지독한 놈”

순간 참고 있던 눈물이 아주머니의 얼굴에 주르르 흘렀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요. 우리집에 마지막 남은 아이에요. 지도 얼마나 답답하면 그렇게 변했겠어요. 악착같이 살아도 형편이 나아지질 않고, 친척이라고 아무도 없고, 언니는 맨날 저렇게 아프기만 하고 쾌유도 안 될 병에 돈만 퍼부었잖아요. 그리고 당장 덮고 잘 이불도 없고, 밥 해 먹을 살림살이도 하나 없는데, 그걸 알면서 가만 놔둬요?”

아주머니는 남편에게 거의 필사적으로 울분을 토해냈습니다. 남편은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아내가 자신 몰래 그 집에 많은 도움을 준 걸 알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조카가 멀쩡하게 있다는 것에 화가 났지만,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남편은 조용히 아주머니와 함께 짐을 들고 차에 실었습니다.

“철수(가명) 엄마. 이래서는 끝이 없어. 그 놈이 얼른 정신차려야지. 언제까지 이럴꺼야. 당신도 맨날 집안 일 하느라고 몸도 성치 않은데….”

아주머니는 아무 말 없이 그저 흐르는 눈물만 닦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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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남매에 호남 모 지역에 떵떵거리며 살았던 아주머니의 집안은 이제 서서히 막을 내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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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25 11:26
수정 아이콘
씁쓸하네요

어느쪽이 옳은 지 판단이 잘 안섭니다.
10/09/25 11:29
수정 아이콘
후 그것 참..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이래서 사회가 정말 많은 부분을 구조적으로 개혁해야만 하는데.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라고, 세상 많은 문제를 개인이 '열심히' 이겨내기엔 너무 막막하지요. 그런데도 세상은 그걸 그럴듯하게 포장해둡니다. 이겨내면 영웅에 초인이지만, 못하면 도태되어 스러져가는것. 조카에게 정신을 차리라기엔 그동안 자기 자신이 살아온 인생길안에서 얼마나 많은 갈등과 고생이 있었을지가 안타까워 차마 말하기가 힘들고, 그렇다고 계속 도와주라고 하기에도 넉넉하지 못하고. 정말 어려운 사람들끼리 연대해도 어려워질 뿐이니 어찌 ..참 답이없네요.
10/09/25 11:30
수정 아이콘
슬픈 이야기군요. 그 아드님은 100% 우울증입니다. 그것부터 치료 시작해야 하는데, 그게 또 쉽지가 않죠. 그런데 그걸 치료 안하면 3년이 30년이 될 건 분명합니다... 안타깝네요. 저도 옆에 그런 사람 하나 있어서 고민이 많습니다.
Lady ATHENA
10/09/25 11:46
수정 아이콘
아드님이 우울증이 왔는데 주위 사람들은 우울증을 ' 자신의 의지 '로 극복하기를 바라네요. 우울증은 본인의 의지만으로 힘듭니다.
마나부족
10/09/25 11:51
수정 아이콘
쩝 아래 위로 논란글에 끼여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글이 묻히는군요.

종교는 없지만 가끔 씩은 정말 신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10/09/25 13:44
수정 아이콘
마음 한 켠이 씁쓸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위의 Lady ATHENA 님의 말씀처럼 주변의 도움이 절실해 보이는데…
가족 뿐 아니라 사회 복지사 쪽에 연락을 해서라도 말이지요.
10/09/25 22:32
수정 아이콘
슬프네요
조카분 상태나 심정이 이해가 가는것도 슬픔이네요.
집안배경이 어떠든 나하나 노력하고,성실하고 똑똑하면 이세상 한구퉁이 정도는
차지할 수 있을것라고 믿고 앞만 보고 달려온 사람이,세상은 그렇지 않다는것을 알았을때,
지금 누리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깃털처럼 가벼운 것이라는것을 알았을때 그좌절감이 얼마나 클까요.
외교부장관따님 사건에 그렇게 분노하는 이유도 그런 이유가 있질 않을까 합니다.
나하나 노력하고 성실해도 당장 가족중에 병에 걸린 사람이 있다면,그것도 긴병에,앞으로도
늙어감에 새로운것은 새로운병 밖에 없는 현실에서는 가정이 풍지박산이 나죠
국가가 나서서 최소한 질병만큼은 전액무료로 치료하고 병원비로 인해 가정이 도산하는것만은 막아야 하는데
반대로만 갈려는 대한민국이다 보니 이런저런 현실의 무게감에 조카분이 짓눌렸나 봅니다.
독한마음 품고 산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차라리 일본에서 돌아오질 않았더라면
어머니의 처지에 눈돌리고 최소한의 노릇만 하고 모른척 했더라면 조카분 처지가 조금은 낫았을까 싶네요
어떤 사람은 유리처럼 날카롭고 투명한 심성을 가진 사람도 있는데 조카분이 그러한듯 하네요
10/09/26 02:19
수정 아이콘
아.. 진짜 아쉽네요. 똑똑한 사람이.. 왜 저렇게 됐을까요.
저두 한때 우울증 심하게 겪었나 보네요. 저두 저사람처럼 지냈거든요. 정말 혼자 힘으론 치유가 안되죠.

군대가 절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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