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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6/20 01:22:57
Name nickyo
Subject [일반] 60년 전, 6월의 불꽃.
하늘이 부숴지는 것 만 같은 소리,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외침. 그 안에서 끊임없이 내 귀를 두드리는 나만의 숨소리. 들이쉬고 내시는 매 순간순간마다 매캐한 화약의 냄새가 함께 흉부 깊숙한 곳을 찔러온다. 인간의 욕망과 이념, 수많은 것들이 뒤섞인 이 곳의 하늘은 어느새 별과 달도 붉은 전화戰火의 기운에 가려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



"오 중령님!! 현재 적군이 본군의 방위선을 돌파, 현재 약 2km전방부터 진격중입니다! 퇴각하셔야 합니다!"



"중령님!! 이 방어선은 더 이상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주 전력이 7할이상 격파당했습니다. 이미 장병들이 사기를 잃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개죽음입니다!"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 사이에 짓눌린 잇몸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비릿한 내음의 피가 입안에 한방울 두방울 흘러들어오건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 내가, 우리의 군이 이 자리를 버티지 못한다는 것의 의미는 그만큼 커다란 것이었다. 내 뒤에는 무고한 시민들이 있다. 전쟁과 착취, 지배에서 이제막 벗어난, 평화와 타협, 민주주의가 살아있고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비록 불합리한 구조속에서도 함께 웃으며 살아갈 수 있게 될 그들이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있다. 수많은 힘없는 자들의 목숨이 나의 등 뒤에 놓인것이다. 고작 5년이다. 그들의 삶을 찾은지 고작 5년밖에 되지 않았는데......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겠다며 나선,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모르는 순진한 청년들이 저 불꽃앞에서 죽어야했다. 나는 그들을 그렇게 사지로 몰아버린 것이다.


"중령님!! 빠른 결단을 내리셔야합니다! 더 늦으면 사령부마저 위험합니다!!!"


"중령님!!!"


타는 가슴을 뒤로하고 억지로 목소리를 가다듬어 말했다. 울컥이는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애써도 이미 목소리에는 패기가 없었다.


".......남은 잔존병력을 갖고 제 3 방어선까지 신속하게 후퇴하라. 제 1 목표를 생존에 두어라. 전달하라."


"이행하겠습니다! 중령님도 어서!"


"자네가 먼저 군을 인솔하라. 나는 바로 뒤따라 가겠다. 가기전에 상부에 보고를 해야한다."


"설마..중령님.."


"멍청한 소리는 하지마라. 군인은 적을 물리치지 못하면 죽을 수 없다. 너의 상관을 나약한자로 만들셈인가?"


"...무사하십시오!"


언제나 나의 밑에서 수족처럼 일했던 하 대위. 경례는 생략해도 된다고 그렇게 말했건만 또 저렇게 경례를 하는구나. 그는 유능한 장교이자 전술가이다. 분명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빠르게 군을 통솔할 수 있을것이다. 그라면, 분명 좋은 전투를 이끌 수 있다.


군인으로서, 언제나 죽음은 직면해 있다고 생각했다. 죽음은 나와 함께하는 전우와도 같다고 믿었다. 그러나 막상 죽음의 문을 마주하고나니, 잡스러운 생각들이 머리를 휘젓는다. 그 중에 작은 용기를 붙잡아 떨리는 손을 멈추었다. 전장에 내리는 마지막 죽음은 패장의 몫이다. 그것은 특권이며, 책임과도 같다. 장수는 패배하더라도 후일 승리로 값으면 된다고 하나, 나는 오늘 나의 밑에서 죽어간 나의 전우들을 두고 살아남을 수 없다. 이제 100일 된 아이 사진을 자랑하던 김 중사. 다음주면 어머니의 칠순잔치를 치루러 가겠다던 장 소위. 가족이 없어 휴가를 나가지 않아도 된다며 웃던 임 하사. 친구와 함께 군인으로 입대하여 이제 막 시작된 대한민국을 지키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박 병장. 그들에게 죽어야 할 죄가 있을까? 아니다. 그저 나의 부족함 때문이다. 역사속에서 영웅으로 남았던 명장들이 되려 했건만, 나는 결국 그들을 가족품에 돌려보내야 하는 가장 큰 의무를 져버리고 말았다. 안이했던 나의 마음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지척까지 들려오는 적군의 소리가 들린다. 이 고요한 초소에서, 나는 마지막 방아쇠를 당긴다. 남은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조국에 죄송하다. 무능하고 졸렬한 장수로서 나는 이 곳에서 스스로를 죽이리라. 그저, 하늘에서 나와 함께 죽어간 전우들을 볼 낯이 있을까. 하늘에서 날 본다면, 부디 날 용서치 말아라. 나는 이 전장에서, 겁많고 옹졸한 자로서 죽음으로 도망가노라. 대한민국이여, 제발 모두의 삶을 지켜내다오.

모두, 미안하다. 저 너머 하늘에서 만나자. 그대들에게 사과할 수 있도록.

철커억.


타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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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6.25 60년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60년전에 어떤죄도 없이 그저 민주주의와 조국,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려고 용기와 목숨을 바꿔야 했던 분들에게
슬퍼하고, 감사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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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다
10/06/20 01:40
수정 아이콘
저는 그분들에게 감사하지만, 그보다 전쟁중에 이유도 모르고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 가슴이 아픕니다.
거북거북
10/06/20 03:15
수정 아이콘
어제 육군 홈페이지에 가서 한국전쟁사 CD 정리해놓은걸 봤는데... 눈물이 나더군요.
살아서 후퇴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할 정도로 수세의 상황에서
순전히 시간을 지연시키기 위한 전투를 몇 시간 씩 해야 했던 분들을 정말 어떻게 기려야 할지. ㅜㅜ 아 또 욱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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