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자해지 [結者解之] : '매듭을 묶은 자가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일을 해결해야 함을 비유한 한자성어.
3년 전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게임 방송사들이 멀쩡히 잘 운영하던 스타크래프트 게임 리그에 누군가가 갑자기 '중계권'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자고 이야기합니다. 말로는 대의 명분(?)과 게임 리그의 발전을 이야기했지만 그들이 숟가락을 얹자 스타크래프트 게임 리그는 주 5일의 노른자위 시간 동안 기업 홍보장으로 변하면서 개인리그와 다른 게임 리그들의 시간을 엄청나게 잡아먹었고, 결국 균형 있는 게임 리그의 발전은 물 건너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숟가락을 얹은 다음부터 진행되었던 저작권 협상이 얼마 전 결렬되자. 갑자기 그들은 게임사가 팬들과 선수들의 노력을 무시하고 있다고 하면서 e스포츠 파행이 온다면 그 책임은 게임사에 있다고 광분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팬들과 선수들의 노력 운운한 것도 모자라 'e스포츠의 중심에 있는 스타크래프트는 스포츠의 일환으로 많은 관람객이 함께하는 공공재라고 생각하고 있다. 스타크래프트2도 향후에는 공공재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라는 말을 하면서 공공재라는 개념을 자기 멋대로 재창조하는 블랙코미디까지 연출했습니다. 졸지에 그들의 입맛에 따라 볼모로 잡힌 팬들의 마음은 시꺼멓게 타들어갑니다. 중계권을 주장했을 때에 그들이 깽판친 덕분에 소중한 게임 리그가 완전히 멸망할 뻔했던 나쁜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제 와서 복돌이들이나 할 법한 격 떨어지는 변명을 지껄이며 남 탓만 하는 그들 때문에 소중한 게임 리그가 이번에야말로 아예 없어질지도 몰라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몇 달 전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검찰이 뇌물수수 혐의로 어떤 사람을 기소해 놓고 그 피고인에 대해 뇌물을 어떻게 전달받았고, 그게 어느 명목으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촌극이 펼쳐졌습니다. 알아봤더니 증거라고는 다른 사건으로 붙잡힌 오늘내일 할 것 같은 피고인의, 그것도 얼마를 줬는지조차 오락가락하는 진술 뿐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검찰은 골프 이야기, 호텔 예약 이야기도 모자라 피고인 아들의 유학 시절 자취방을 호화주택으로 둔갑시키는 말 그대로의 '버블효과'를 보여주며 끝끝내 피고인을 유죄라고 규정지었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그 피고인을 유죄라고 규정지은 것도 모자라 의기양양하게 그 피고인 앞에서 '누구보다 모범을 보여야 할 최고 관직에 있던 사람이 거액을 수수해 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심각하게 떨어졌다.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기는커녕 진실을 숨기려 거짓된 자세로 일관하는 것은 묵과할 수 없다' 라는 장광설을 늘어놓기까지 했습니다. 당연히 그 피고인은 무죄가 되었지만 아직도 그 피고인이 유죄라고 말하거나 심지어 징역 5년을 살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한둘이 아닙니다. 물론 그 피고인이 그렇게 여겨지는 데에 대한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고, 심지어 그 피고인을 고깝게 생각하는 이들은 아직까지도 그렇게 된 게 그 피고인이 자초한 일이라고 말하거나 도덕성이 끝났다는 식의 독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굳이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은 두 가지 이유인데, 하나는 많은 이들이 얼마 전에 다들 했던 이야기를 동어반복하는 것은 지겨운 일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식으로 한 사람을 몰아붙여 완전히 바보를 만들어버린 행동에 대해 서술하는 것은 - 제가 아무리 제 3자라 한들 - 정말 괴롭고 어이없고 창피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폭력'을 당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더 분노가 치밀고, 나중엔 분노를 넘어 허탈함까지 밀려오게 만드는 것은 이런 '폭력'이 정당화되는 구조가 철저히 '힘'에 의한 것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이런 폭력의 구조에는 논리도 없고 진실도 없고 배려도 없고 오로지 있는 것은 '힘' 그 자체입니다. 가령, 실권이 있는 이들에게는 실권이 힘이 되고, 누구의 생계나 볼거리를 볼모로 잡은 이들에게는 그것이 힘이 되며, 아무 것도 없는 이들에게는 집단이나 익명성이 힘이 됩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그들 자신들의 '힘'을 자기들이 고깝게 보고 반대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아닌 '구라 추정의 원칙'을 적용하고 처음부터 부정하고, 처음부터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결론을 내리고, 관련된 모든 것들을 그에 끼워맞춥니다.
마치 '레고'를 맞출 때 짝 안 맞는 퍼즐이나 부품을 무지막지하게 힘만 줘 가며 끼우는 것처럼, 본체가 터지건 말건 그저 끼워맞추는 것에만 신경씁니다. 그러다가 뭔가 모양 같은 게 만들어지면(어디까지나 자기 생각에) 그것을 실체라고 말하고 어쩌다가 다른 사람 눈에도 무언가처럼 보이는 게 나오기라도 하면(그것이 진실이건 거짓이건) 그것에 득의양양해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다가 만에 하나 본체가 터지면 손을 툭툭 털고는 잔해를 치우지도 않고 다음 장난감(!)을 찾아 헤맵니다. 자기들의 '힘'을 앞세워서. 그리고 더러는 '문제의 해결(재발 방지)을 위해 양쪽이 한 발짝 물러서야 한다. 둘 다 잘못했다'는 식의 양비론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정작 '레고'는 손가락을 누른 적이 없고, 자신의 힘으로 부서진 잔해는 두 번 다시 원래의 퍼즐로 돌아오지 않는데도 말이죠.
누가 짱돌 들어서 누굴 두들겨 패고 피 터지게 만들었다면, 짱돌에 맞아 피 터지고 다 죽어가게 만든 사람들은 벌을 받든 사과를 하든 배상을 하든 할 것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아는 '결자해지' 였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돌아가는 이런 일련의 일들을 보면, 요즘은 '결자해지'라는 말의 뜻이 바뀐 모양입니다. '짱돌 들어서 누굴 두들겨 패고 피 터지게 만든 작자들'이 그 짱돌에 맞아 피 터지고 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결자해지'를 하라고 악다구니를 쓰고 있으니 말이죠.
- The xi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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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로씨 관련해서는 저도 할 말이 없군요. 중간까지는 잘 참다가 마지막에는 저도 흙탕물에 잠시 들어갔었기 때문에 말이죠.
원문 관련해서는, 참 좋은 글입니다. 다만, '도덕' 은 당위일 뿐, 사회가 도덕을 따라서 흘러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적어도 2번 관련해서는 투표라도 열심히 해서 어느정도는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지만, 1번이나 3번은, 그냥 given condition 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