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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5/11 01:43:48
Name 사실좀괜찮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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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영화감상후기] 화이트푸님 사랑해요.



[머릿말]



화이트푸님 사랑해요.

이런 제목을 붙인 이유는 편견이 가득한 이 사회에서 용감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성적 정체성의 커밍아웃의 의도를 담은 것이 아니라,

4월 30일자 CGV 공짜표를 친히 내려주셨던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입니다.

그러니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화이트푸님 사랑해요’

가 아니라,

화이트푸님(의 공짜표를) 사랑해요’

가 되겠습니다.

요컨대, 콘텍스트를 파악하지 못하면 저의 성적 정체성이 의심받게 된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제가 무조건적인 이성애 제일주의자인 것은 아닙니다.

...

사랑에 편견이 없는 세상이 오길 기원합니다.



[배경]

지난 4월 30일은 제가 영화를 보러 나간 날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러 나간 날’이라고 거창하게 이름을 붙일 필요까지는 없어 보이지만... 어떤 잉여가 그래도 돈 좀 벌어보겠다며 각종 삽질을 거듭하다가 거의 한달 정도를 집에서 은둔(ㅠ)하게 되었고, 결국 인간으로서 이렇게는 살 수 없다, 어떤 분은 소설가란 엉덩이로 글을 써야 한다고 하셨지만 내가 소설가인가, 잉여는 어차피 잉여인데 일단은 삶을 즐기는 잉여가 되고 싶다, 이렇게는 도저히 못 참겠다 싶어 뛰쳐나간 날이라, 눈물과 해방감을 동시에 맛본 날이었습니다. 영화 보면서도 계속 질질 짜다가 낄낄 웃고 이지랄, 하고싶은 거 다 했습니다. 극장에 사람도 거의 없어서...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질질 짜고 있을 때에는, 스스로의 감수성(...)에 감탄하기보다는 무언가 이상이 있지 않은가를 재고해보아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거울을 봤더니 눈다래끼가 났더군요.
요거 때문인가?

왜 4월 30일에 본 영화 감상문을 이제야 올리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그게 피쟐 게시판에 고대로 쓰고 있다가 갑자기 컵퓨터 파워가 나가버리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그 이후 패닉과 슬픔, 게으름이 적절히 혼합된 사후 이야기는 지면이 모자라 생략하기로 합니다).

스포일러는... 아마도 없지 않을까요오오오오오? 라지만 예전에 피쟐 유게에서 절름발이 얘기 했다가 어떤 분께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은 적이 있는 터라(어떤 절름발이에 대한 것인지는 이야기하지 않겠어요), 이 아래부터는 알아서 패스해주심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스포일러는 쓰지 않습니다만, 잉여의 키보드질은 종종 의식의 범위를 넘어서고는 하니까요. 또한 어디까지가 항상 언급 가능한 클리셰인지, 아니면 충분히 의식해야 할 만한 반전 요소인지는 기준이 다르니까용.





[저는 그날 이런 영화를 봤습니다]



1. 인 디 에어

- 조지 클루니의 스타파워만 믿고 보러 간 영화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나의 클루니짱은 자기가 출연할 영화는 잘 고르는 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는 게죠. 생각해 보면 딱히 실망한 영화도 없고... 최근 몇 년 동안 봤던 영화는 [피스메이커] 빼고는 모두 괜찮았거든요. [시리아나]는 너무 정신없어서 DVD로 한번 더 봐야 했지만요.

(설마... [뱉흐맨&롸뷘] 같은 영화를 또 찍지는 않겠죠. 물론 지금이야 귀여운 괴작 취급을 받고 있긴 하지만)

무튼 집에서 은둔하던 잉여라, 딱히 정보도 없고 해서 잘생긴 클루니만 믿고 갔습니다. 이 영화는 입소문이 좋기도 했죠. 그러나 시기가 시기인 터라 서울에서 상영하는 극장은 눈 씻고 찾아보기도 어려울 정도였는데, 마침 중앙시네마에서 절찬리 상영중(...)인 것을 발견하고, 득달같이 손가락을 놀려 예매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인터넷 서점 플래티넘 회원이라서 2000원 할인도 받았습니다. 집 앞에 있는 단골 서점 아주머니께서는 제가 책을 살 때마다 남는 잡지 부록도 챙겨 주시고, 500원씩 깎아주시고 하시는데 저는 그 몇백원 아끼겠다며 인터넷 서점만 애용합니다. 요즘엔 베르세르크랑 원피스 새로 나올 때만 들리는 배은망덕한 단골이예요. 요즘 책방에서 팔리는 건 애들 문제집이랑 주부잡지 뿐이라고 하십니다(급우울 분위기 조성).

무튼 각설하고... 영화 얘기를 해 보자면.

대단한 야심이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아카데미상 수상을 기대하시는 분들도 많았지만, 골드글러브라면 몰라도 오스카 아저씨하고는 그리 어울리는 영화가 아니지 싶습니다(물론, 각 분야 수상은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좀 더 과잉된 것이 있었다면 오스카의 허영심에 좀 더 와닿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영화는 아주 깔끔하고 자기 할 얘기만 딱 하고 끝내는 경제적인 영화입니다. 러닝타임도 104분밖에 안 됩니다. 짤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제가 접한 정보로는 딱히 잘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접하셨다면 많이들 아시겠습니다만, 클루니는 ‘대신 해고해주는 것’이 일인 사람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기업들이 별별 이유를 들어 해고해대는 사람들 앞에 대신 서서 ‘지금 당신 짤렸으니 새출발이나 하세요’라는 말을 해 주는 사람이죠. 우리 클루니씨는 이 직업의 베테랑이고, 자신이 하는 일에 상당한 자부심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단순히 대리의식이 아니라, 무언가 프로페셔널한 무언가를 요구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죠. 그는 비행기를 타고, 호텔에서 묵고, 일을 하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호텔에서 묵는 일을 반복하면서 살아갑니다. 영화 중에는 약 320일을 날아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 그 와중에 그의 성취욕을 자극하는 것은 계속해서 쌓여가는 마일리지입니다. 그는 역대 순위에 오를 정도의 엄청난 마일리지를 보유하고 있는데, 그는 그것에 꽤나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적어도 영화 시작 즈음에는 그렇죠.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방식을 아주 맘에 들어 하고 있고, 어떤 것에서 도피하기 위해 임시로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는 정말로 자신의 일과 생활방식을 좋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이윽고 그런 그의 일상에 두 여자가 끼어들게 되면서 영화는 본 궤도에 오르게 됩니다.

사실, 이 영화는 ‘해고’에 대한 메커니즘을 그리 진지하게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으레 이런 주제에서 나와야 할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이나 인류학적인 접근을 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거죠. 그런 얘기를 할 것이었다면 영화는 좀 더 길어졌을 것이고, 길어질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영화의 시점은 철저히 타자의 입장에서 접근합니다. 문득 영화가 그 이상으로 나아가려고 할라 치면, ‘이봐, 그 이상의 것은 우리가 신경쓸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라고 하면서 다시 본래 위치로 돌아오죠. ‘해고’라는 사회적 현상은 이 영화의 목적이 아니라, 영화가 이용해먹고 있는 여러 가지 수단 중 하나입니다. 그 기능적 위치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도 않구요.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클루니가 연기하고 있는 윌리엄이고, 늘 정착하지 않는(‘못하는’이 아닌) 생활방식, 끊없는 비행, 가족관계, 연애방식, 해고, 이 모든 것들은 윌리엄을 이야기(‘설명’이 아닌)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실상, 주인공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어느 정도 심정적인 변화를 겪게 되지만 여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은 그의 개인적인 영역에서 일어납니다. 물론 극중 후반부에 주인공이 겪는 어떤 사건을 두고 혹자들은 ‘마치 해고당한 것과 같은 상황 아니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음... 이건 스포일러일까요? 흐흐...).

무튼, 우리 주인공은 잡다한 사건을 겪게 되고 영화가 끝날 무렵 좀 달라진 모습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 딱히 만족할 만한 해답을 준 것도 아니고, 만족할 만한 결론이 주어진 것도 아닙니다. 표면적인 형태로 보자면 일단 제자리로 되돌아오기는 했습니다마는, 모 만화의 유명한 대사처럼 이것은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넘어간 것’일지도 모르죠.
물론, 영화가 이대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영화는 거의 끝나갈 즈음, 주인공에게 작고 깜찍한 선물을 하나 가져다주거든요. 물론 그 의미는 처음과는 많이 다르고, 그 해석의 범위 또한 오로지 관객에게 달려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는 데에서 나오는 깔끔하고 잘 만들어진 코미디입니다. 전 초반 5분 보면서 뒤로 넘어가는 줄 알았어요. 배우들은 아주 좋고, 클루니는 자연인 클루니를 연기하는 것처럼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데 그게 참 잘 어울립니다. 저는 숀 코너리가 이런 연기를 하면 되게 없어보이는데, 클루니가 하는 것에는 상당히 관대해지게 되더군요. 달콤쌉싸름한 초콜렛을 맛보는 느낌으로 가볍게 다가간다면 딱히 무리가 없을 영화일 듯 싶습니다. 음악도 괜찮은 편이었는데 관람한지가 오래 되어서 어떤 느낌인지 까먹어버렸어요.




2. 예언자

(이 영화는 결말을 모르고 아슬아슬한 상황을 즐기는 맛에 보아도 괜찮은 오락영화입니다. 고로 작은 정보도 알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이 글을 뛰어넘으세요)

- 2009년이 끝나갈 즈음(음... 중순쯤이었을지도), 각종 영화제를 다녀온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진 영화가 하나 있었습니다. 전 영화제를 놓쳐서(잉여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상황이었던 터라 절대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전전긍긍하고 있다가, 국내 개봉된지도 한참 된 이제야 막차를 탈 수 있었습니다. 상당히 밀도가 높은 범죄영화로 알려진 이 영화는, 역시 예상대로 상당히 잘 만들어진 마스터피스의 반열에 올라갈 만 합니다(라고, 범죄영화도 그렇게 많이 보지 못한 잉여가 마치 영화평론가라도 된 마냥 호언장담합니다). 다만, 여기에서 범죄영화에서 나올 만한 도덕률에 대한 근사한 고찰을 기대했다가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공산이 큽니다. 이 영화는 일종의 먼치킨 판타지와도 같은 감성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중독되기 쉬운 종류의 마약인데, 이는 ‘성장’과 그 ‘성취’에 대한 동경입니다. 이는 ‘성장통’과는 구별되어야 하는데, 보통 성장통에 대한 영화들은 그 이야기 과정에서 많은 이들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죠. 이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스릴’은 있지만 ‘불편함’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다른 먼치킨들보다는 세련되긴 했지만, 무튼 먼치킨인 것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어떤 먼치킨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 영화의 제목을 보고 유추해보시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옵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19세의 나이로 감옥에 들어와, 그 형기를 모두 마치는 기간 동안을 다루고 있습니다. 처음 등장했을 때 주인공은 뒷골목에서 돌아다니던 별 볼일 없는 소년이고, 소년원 경력도 있는데다가 변변한 기술도 없는 상태입니다. 사회가 써먹을 만한 구성원으로 복무하기에 주인공은 거의 백지 상태나 다름없다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런 자가 뒷골목에서 오랜 시간 동안 살아남았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어떤 능력이 있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가 코르시카인들에게 살인을 강요받는 상황을 보면서 십중팔구 관객들은 ‘아, 이 녀석 앞길이 순탄치 않겠구나’하는 예상을 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 웬걸, 그 끔찍한 상황이 지나면 그는 조력자도 생기고 이것저것 가르쳐 주는 사람도 생기고, 빽도 생기면서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규율기관에서 실제로 규율을 체득하면서 스스로를 단련해가기 시작하는 거죠. 물론 이렇게 배운 것들을 가지고 그가 충실한 시민의 일원이 되리라고 속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그렇게 배운 것들을 가지고 일종의 세련된 갱이 되려고 하죠. 그리고 그의 선택들은 너무 성급해 보이고 너무나도 불안해 보이지만, 어찌 된 일인지 하나같이 맞아떨어져가고 점점 더 그럴싸해집니다.
이 영화의 백미는, 주인공이 40박 40일동안 독방에 들어가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클라이막스입니다. 종교적 의미로 40일이라는 기간은 정화의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많은데(기독교만을 예로 드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로 40일 동안 교도소는 주인공이 의도한 대로 깨끗하게 ‘정화’돠어 버립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먼치킨’이 되어 돌아옵니... 아니, ‘예언자’의 당당한 모습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그 전에 발생하는 총격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건 이것대로 스포일러라는 느낌이 들어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아... 주인공이 죽지 않는다는 것을 벌써 이야기해버렸으니 스포일러고 뭐고... 위쪽에 스포일러니까 보지 말라는 이야기도 써놓아야겠군요. 무튼, 이 총격전은 주인공이 첫 번째 살인청부와 대비되는 마지막 살인 청부로서, 특정한 의미로 보아도 적당한 장면입니다. 저는 전통적인 관점에 따라 비극적인 결말을 예상했습니다마는,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았죠.

보통 이런 드라마의 결말은 좋지 않게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선과 악에 대한 가치판단이라는 요소를 완전하게 배제하지는 않겠다는 것인지, 혹은 폭력적인 이야기는 비극적으로 끝내 주어야 더 그럴싸해 보인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보통은 너도 나도 다 죽는 파국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 보통의 사례입니다(혹은, 범죄자만 죽이거나 하죠). 이 영화는 그렇지 않은 사례들 중 하나입니다만, 보통 그런 영화라도 끝맛은 찝찝한 반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나쁜 짓은 나쁜 짓대로 다 해놓고도 별 탈 없이 해피엔딩을 맞습니다. 일종의 샐러리맨 성공 스토리같다고나 할까요. 범죄를 어느 정도 용인하고 들어간다는 점에서 [쉴드]같은 경찰드라마와도 비견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쉴드]의 긴장감에 어떤 모럴이 개입하는 것과는 달리, 이 영화는 어떤 도덕적 측면을 활용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주인공이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에서 긴장감을 끌어내는 측면에서는 꽤나 흡사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와 비슷한 사례는 널리고 널려 있겠습니다마는.
이렇게 이야기만 들으면 이 영화의 진가를 알기 어렵습니다. 좋은 범죄 영화가 그렇듯, 직접 보고 직접 즐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 이야기하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중간에 Sigur Ros의 노래가 하나 나와서 반가웠습니다. 무슨 노래인지는 극장에서 확인하시면... 음악은 이런 저런 음악들을 잡다하게 섞어놓은 형태로 되어 있는데, 적재적소에 쓰였고 괜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3. 경

- 이 영화는 인디 영화입니다. 관련 정보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1211)

화이트푸님의 공짜 표로 본 영화입니다. 이 날 영화를 네 개 봤는데, 하나는 집에서 영화를 보고, 뛰쳐나가서 3시에 중앙시네마에서 [인 디 에어]를 보고, 화장실에 갔다가 바로 5시쯤에 [예언자]를 보고,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가자마자 뛰쳐나가서 20분동안 대학로로 이동해서 땀을 줄줄 흘리면서 CGV로 들어갔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혜화역 지하철 계단에 엄청난 피범벅이 되어 있던데, 저처럼 열심히 뛰어가던 어떤 불쌍한 사람이 그만 넘어져 다친 것이 아닐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했습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그 당사자분께서는 부디 많이 다치지 않으셨기를 바랍니다. 잉여의 바람 따위야 말 그대로 황사에 날아가버릴 뿐이겠지만요.

옛날 옛적... 이 아니라 십수년 전에 프랑스의 꽤나 유명한 아저씨가 그런 얘기를 했답니다. 쁘띠부르주아의 허영심이라나? 그 사람 얘기에 따르면 소위 자신이 그럴 듯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럴 듯한 자신에 들어맞는 그럴 듯한 어떤가를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딱히 이유 없이 인디 컬처에 열광하는 것도 그런 쁘띠들의 허영심의 일부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뭐... 그런데 딱히 그래서 인디 영화를 고른 건 아닙니다(딱히... 그래서 그런 건 아니라구!!).

주위에 그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혹은 그런 일에 동경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디 프로젝트에 애정이 가는 것이 사실이긴 합니다. 솔직히, 소부르주아지 계층으로서 조금 있어보이려고, 혹은 죄책감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무튼 자신 스스로는 무기력하고 직접 행동하지도 못하면서 웬지 사회의 규칙 밖에서 운용되는 어떤 것에 대한 동경으로 이를 대충 무마하려고 한다는 것을 아주 부정하지는 못하겠습니다(뭔가 문장이 더럽군요- _-). 하지만 그런 것들을 모두 제외하고서라도, 인디 영화에는 그럴 듯한 매력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항시 ‘은하해방전선’같은 걸출한 물건을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창작 과정에서 어떤 것들이 문제에 부딪히는지, 이렇게 잘 하려고 했는데 결국 그렇고 저런 것들이 문제가 되어 버리는지, 그런 것들을 확인하는 과정이 꽤나 쏠쏠한 재미를 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물론, 저는 반응이 느려서 좋은 영화도 두세 번 보지 않으면 그 진가를 알 수 없는 막눈이지만요 - _-

영화 줄거리는 위 링크에 나와 있으니 짧게 줄입니다. 남강휴게소 정경이 많이 등장하는 영화라서, 처음엔 관광지 관련 지원을 받았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에쁘게 찍었다는 말은 못 하겠습니다. HD 카메라가 많이 보급되어서 인디 영화 프로젝트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여건상 마감이 좋지 않은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오히려 촬영이 쉬워진 때문에 화면 자체의 질은 떨어지고, 늘어난 러닝타임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일단 과도하게 늘어난 정보량을 어떻게 처리해아 하는지 헤매는 것이 보입니다. 적어도 이번 영화는 그랬어요. 양적인 것을 보급할 수 있는 기술은 좋아졌는데, 그 질의 정도는 그대로라서 모 소설에서 나온 말처럼 ‘치즈를 길게 늘인’ 느낌이랄까요. 이미지들을 나열하면서 관객들에게 그 연계고리를 이해할 것을 강요하는데, 주제를 전달하기에는 이미지의 직관성이 떨어지고, 오히려 후반부의 대사 몇 마디로 영화가 완전히 설명되어버린다는 것이 이 영화의 한계를 드러내지 않는가 싶기도 합니다. 이미지를 텍스트가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의 빈 칸을 텍스트가 메꾸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감독님께서는 어느 정도 이름이 있으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음... 잉여의 눈으로 보기에는 여러 모로 어렵더군요. 한번 더 영화를 본다면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중간중간에 나왔던 애니메이션의 질이 인상적이었던 영화였습니다. 극중 컴퓨터 화면이 그대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 영화인데, 이런 장면들의 마감 상태가 애니메이션 정도만 되었어도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애니메이션은 꽤나 깔끔했습니다.
배우들은 그냥 그렇습니다. 비현실적인 배경이기도 해서 연기의 질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 적당히 제 역할은 해 주고 있다고 봅니다. 영화도 배우들을 도구 이상으로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인디프로젝트인 만큼, 음악에 참여한 멤버들의 정보는 개인이 직접 알아보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물론 저는 알고 있지만, 여백이 없어 여기에 적지 않습니...).


오늘 보니 [이끼]의 티저가 공개되었다더군요. 별로 기대는 안 되는데(티저도 아직 안 봤다는...), 뭐 원작의 유명세를 타고 중박은 찍지 않을까 싶습니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윤태호님 작품들은 늘 쌓아올린 떡밥에 비해 결말이 너무 쉽게 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아쉬운 게 많았거든요. 영화 짜임새는 어떨는지...





[잡설]

한 몇 년 전부터인가... 영화에서 흐뭇한 장면이 나오는데도 이상하게 혼자서 눈물을 짜고는 하는데...

잉여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인 게 많은가 봅니다.

무튼, 잉어킹도 갸라도스가 되는데, 잉여킹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해봅니다.

다시 한번, 화이트푸님 사랑해요.

하시는 일 대박 나시고...

물론 로또 같은 게 대박 나시면 연락 주세요.

전 되는 일이 없어서 내일 외출하는 길에 로또 한 장 긁으려 한다는...

영화 얘기 하다가 로또 얘기를 하니 갑자기 [Common Wealth]가 생각납니다.

저도 매트릭스 자세로 빌딩 사이를 뛰어넘고 싶어요. 물론 그래도 안생기겠지만...

무튼 피쟐 여러분 사랑 많이하세요.

혹시나 해서 다시 말하지만 사랑하라는 게 반드시 성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커플지옥 솔로천국에서 만나요. 커플은 뜨거운 지옥에나 떨어져버려요.

전 쟁여둔 하이네켄이나 먹으러 갑니다.

투표하면 세상이 확 변할까요? 안 변합니다. 투표 안해서 세상이 이리 됐을까요? 아닙니다.

그래도 투표 하세요.

그리고 부자 되세요.

적당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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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 Anscombe
10/05/11 01:46
수정 아이콘
제겐 메가박스 표 2장이 있다는..
BoSs_YiRuMa
10/05/11 06:47
수정 아이콘
숨겨왔던..
달덩이
10/05/11 08:48
수정 아이콘
여전히 본문 글보다 자기 소개 글에 눈길이 더 많이 갑니다.. 흐흐

글 천천히 잘 읽겠습니다 ^^
Zakk Wylde
10/05/11 10:03
수정 아이콘
전 혼자서는 이제 영화를 못 보겠어요...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무슨 영환지 기억도 안 나는군요.. 흑흑 ㅠ

그리고 저도 화푸님 사랑해요~
10/05/11 11:31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많이도 보셨군요.... 부럽네요.
요새는 영화라는 매체와 담쌓고 지내고 있습니다.
아... 그런데도, 쓰잘데 없는 웹상의 기사들을 향한 클릭질은 멈추질 못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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