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우, 관제, 관신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삼국지의 인물은 관우입니다. 아니 중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사랑받고 있는 인물이라고 해야겠지요.
관우는 만부부당(만 명이 덤벼도 당하지 못함)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무예를 가지고 있으며 충의의 화신으로 불리지만 중국 역사를 통틀어 관우 정도의 전공과 충성심을 가진 인물은 발에 채일 정도로 많습니다.
하지만 관우는 관공, 관제, 관신 으로까지 불리며 중국 각지의 수많은 사당에서 오늘날까지 숭배를 받습니다.
관우는 뛰어난 성품의 성인도 아니고 학문의 일가를 이룬 것도 아니며, 만세에 남을 전공을 세운 것도 아닙니다.
도대체 왜 중국인들은 그토록 관우를 사랑할까요?

삼국지 연의에 그려진 관우의 모습 중 몇 장면을 살펴봅시다.

장면1. 하비성에서 관우는 조조에게 패하여 조조의 밑에서 유비의 식솔들을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조조는 당시 최고의 권력자였고 관우의 환심을 사기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관우는 사무적인 태도로 조조를 대할 뿐 결코 조조에게 아첨하지 않습니다.

장면2. 적벽에서 패하여 화용도로 도망친 조조는 관우의 매복에 걸려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이합니다. 천군만마를 거느린 조조였지만 화용도에서 조조는 일개 병사의 운명과 다를 바 없는 가련한 처지가 되었지요. 조조가 눈물을 흘리며 빌자 관우는 조조를 놓아줍니다.
(중국인에게 각인된 관우의 이미지로서, 화용도의 이야기가 실제 역사적 사건이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장면3. 손권이 관우에게 사돈을 맺어 화평을 청할 때 관우는 손권을 자염서배(붉은 수염의 쥐와 같은 인물)라 욕하며 거절합니다. 손권은 조위 다음으로 강성한 오의 최고 권력자였지만 관우에게는 그런 인물조차 서슴없이 욕하며 무시합니다.

위 세 장면은 중국인들의 관우에 대한 이미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관우는 자기보다 높은 권력의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뻣뻣하고 오만했지만 자신보다 낮은 이들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부드러운 성격을 가진 인물로 묘사됩니다.

자기보다 높은 권력을 가진 이에게는 머리를 조아리고 자기보다 약한 이에게는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은 이천년 전의 삼국지의 시대나 현대 사회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항상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는 위치의 민중들에게, 약자에게 약하고 강자에게 뻣뻣한 관우는 카타르시스 그 자체였습니다.

비록 현실에서는 아무 말 못하고 굽실거리는 민중들이지만, 인민에게 따듯하고 권력자를 향해 쓴 소리를 하는 그러한 인물에 대한 염원을 관우에 대한 숭배를 통해 표출했습니다.



2. 회피연아, 미네르바, 촛불

그들이 정말로 법적인 처벌을 받을 정도의 잘못을 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겠습니다.
위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은 모두 고소를 당했으며 이들은 전부 힘없는 개인들입니다.

대한민국의 주류세력은 힘없는 개인들에게는 언제나 엄중한 법치를 외칩니다.
하지만 이러한 잣대는 삼성처럼 힘 있는 권력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약한 민중들에게는 법치라는 무기를 날카롭게 휘두르지만 강한 권력에는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대한민국의 주류라 불리는 분들입니다.

회피연아 동영상이 악의적인 왜곡을 통해 유인촌 장관을 모욕한 것인지는 본질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입니다.
"까불지 마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라, 높으신 분들이 다 알아서해 줄 것이다."

이 분들이 머릿속에서 그리는 이상적인 사회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입니다.(물론 이 분들은 펄쩍 뛰겠지만...)



3. 떠난 이의 연설

......전략......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 번도 바꿔보지 못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들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고 패가망신 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권력에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 체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다.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 주었던 제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며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 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고만 두거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후략..........


관우는 결국 손권에게 사로잡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천년 후의 대한민국 민중은 아직도 관우를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