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07/07/21 14:40:39
Name kikira
Subject [일반] [가벼운 책읽기]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그녀는 억압의 실질적 증거가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우리 문화권에서 그것을 묻는 것은 태양이 존재하는 증거를 묻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로프터스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태양은 저 하늘 위에 있고, 우리는 눈으로 그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피부를 태운다. 하지만 억압은 보이지 않는다."       

증거를 보여줘.

하지만 그것은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
                                                                              (로렌 슬레이터,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에코의서재, p.257)








* 이 글은 책 속 몇개의 모티브를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한 것입니다.(과연 몇개일까요?)
이를 포함한 논의들은 책에 설명돼 있습니다 ^^; *








하늘엔 달이 떠있고 난 지금 골목길을 지나고 있다. 숨쉬기 힘들다. 식도가 통째로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다.




빌어먹을!




그 자가 나보고 누르라고 했어, 그 자가 누르라고 했어! 난 눌러도 괜찮냐고 물어봤어, 물어 봤다고! 괜찮다고 했잖아?
난 그저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야. 결국 진짜도 아니었잖아? 괜찮아, 괜찮아, 내가 나쁜게 아냐, 다 그 빌어먹은 X 때문이야.
난 그냥 시키는대로만 했을 뿐이야. 그렇지? 별거 아냐. 시킨 X들이 잘못이지.


shit the fucking!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집으로 들어가지만 아직도 기분은 바닥이다. 끼익, 문이 열린다.
당연히 안에는 아무도 없겠지.


그러나 포근한 인형, 어려서부터 나에겐 아무도 없었지만 이 인형만큼은 날 거부하지 않는다.
날 좀더 안아줘, 날 좀 더 따뜻하게 해줘.



너만은 날 버리지 않겠지?



말없는 인형을 쳐다보지만, 실망하진 않는다.
괜찮아, 날 받아주기만 해줘.



띠리링, 전화 벨이다.

난 수화기를 든다. 정말 지금은 전화받고 싶은 생각이 없지만, 코드를 뽑음으로 생기는 여러 불편함과 짜증나는 일들을 난 잘 알고 있다.


"어, 그냥 오늘은 좀 쉬려고."
"어, 어...."

난 계속 메모장에 뜻모를 단어를 휘갈겨 가면서 오늘의 빌어먹을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런데 순간.


"꺄악!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여자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 난 전화를 내려놓고 창문을 내다봤다.



젠장!
칼이야, 저건 칼이라고! 시퍼런 칼이 여자의 배 속으로 들어갔다 막 다시 나오고 있었다. 빨갛게 물들여진 칼.
난 고개를 돌렸다.


"그 여자를 그만 내버려 두시오!"
윗층 빌의 목소리다.
건물 여기저기 내다보는 발걸음 소리와 수근대는 소리가 들린다.


난 일단 집 안으로 들어왔다. 신고를 해야하나? 어떻게 하지?
전화번호가 뭐지? 생각이 도통 진행되지 않는다. 일단 본 사람들이 많아서 다행이야.



난 일단 수화기를 들었다.
어어, 아니 좀 밖에 일이 생겨서, 응, 아니 별건 아니고.....

믿기 어렵겠지만, 난 그렇게 메모장 몇장을 써가며 계속 통화를 했다. 나도 그날 힘들었고 무언가 얘기할 상대가 필요했다.
밖이 조금 소란스러웠지만, 별로 신경쓰이진 않았다.



다음날.
습관적으로 신문 헤드라인을 살핀다.


"동부지역 심야의 엽기 살인사건! 살인사건을 목격한 사람 38명 모두 경찰에 신고 안 해...."




동부지역? 어제? 모두 신고 안 해...? 분명 난 안 했는데. 그럼 다른 사람도 다?




난 몸이 떨렸다. 나 때문에? 정말? 내가 보고도 아무 것도 안 했다고?
난 봉사활동도 나간다고! 내가? 그냥 무시했다고? 죽어가는 사람을? 정말?






말도 안돼!





난 급하게 전화기를 들었다.


어, 어. 어제 있잖아. 내가 말했던 것, 응. 신문에 나온거, 사실 나 어제 자세히 본 건 아니었어.
응 그래. 내가 사람 죽어가는 거 보고도 그럴리는 없잖아. 칼 같은 것도 본적이 없고, 그냥 싸우는 줄로만 알았어.
그렇다니깐. 어젠 네가 잘못 들었던 거겠지. 야 생각해봐라. 사람이 죽어가는데 그냥 있을 사람이 어딨냐?

난 그렇게 친구에게 변명을 했다. 메모장을 또 가득채우가며. 친구는 알았다고 했고, 난 계속 어제 상황을 반복 설명했다.
너무 어두운 밤거리, 마치 싸우는 듯해 보였던 연인의 모습, 사람들의 수근거림. 잘 보이지 않았던 싸움 장면,
창문을 내다 봤지만 분명 자세한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랜 설명에 친구는 귀찮아 하며 전화를 끊었고, 난 방금 쓴 메모지를 자랑스레 바라봤다.


거기엔
"싸움, 어두움, 보이지 않음, 별다른 소리 없음, 불분명함...."
등등의 단어가 몇번이고 반복돼 써져있다.

난 무심코 메모지를 뒷 장으로 넘겼다.


"살인, 칼, 여자의 배, 신고, 칼, 살인, 배, 죽임, 피, 흉기....."
난 흠칫 놀랐지만, 메모지 몇장을 그냥 찢어 버렸다.




"내가 그럴리 없어"




한장이 덜 찢겨져 나갔다.
젠장. 그런데 무언가 낯선 단어가 보인다.


"실험, 교수, fucking, 연극, 복종, 무죄, 실험..."
뭐지? 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제의 일이지? 어제 낮? 아니면 아침?
내가 뭘 했던거지? 실험? 그래 돈벌이를 하러 갔는데.... 그게 뭐지? 머리속이 뿌옇다.




즉,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띠리링. 아무 생각없이 가는 손. "예" 빌이다.
"존, 너도 어제 나와봤지?" 밑층에서 네가 나온 것을 봤어. 나도 신고는 못......"

난 전화기를 끊었다.
참을 수 없었다.          
"난 도대체 어떤 새낀거야!"









난 지금 정신병원으로 가는 길이다.
난 정말 미친것이거나, 지금 미쳐버릴 것 같다.

대기실 안, 접수하고 앉아있는데 한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건다.

"아 전 로젠한이라고 합니다. 혹시 접수하셨습니까?
아 정말 흥분되는군요. 저 안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꼬릿말, 김준영 화이팅!! ^_^;;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Good_Life
07/07/21 14:53
수정 아이콘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재미있죠..훗
저래서 위험을 당할때에는 한사람을 콕 찍어서 도움을 청하라 하더군요(책에 나와있던 말인가...)
저기 파란티 입은 아저씨~ 신고좀 해주세요~ 뭐 이런식으로 말해야 책임감을 가지고 한다나...
몽키.D.루피
07/07/21 15:00
수정 아이콘
이 책을 읽고 기억을 믿지 않습니다. 기억은 추측에 도움이 될 뿐이죠.
오름 엠바르
07/07/21 15:05
수정 아이콘
사려고 주문목록에 올려둔 책이예요. ^^;;;
빨리 서점에 가고 싶습니다. 우앙~
Qck mini
07/07/21 15:11
수정 아이콘
스키너의 심리상자 닫기 라는 책도 있더군요, 그 책 역시 재미있습니다.
07/07/21 15:45
수정 아이콘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굉장히 별로였는데...
그냥 겉핥기 식의 구성 때문에 잔뜩 기대했던 마음에 대실망만 가득.

심리학 서적 몇권 읽어봤지만 대중적으로 읽히는 책들은 다들 부족하다는 느낌만 들더군요.
교양쌓기에도 뭔가 수준미달이고. 그냥 시간 때우기용의 도서에 불과하다는 느낌.
07/07/21 15:54
수정 아이콘
Daydew님// 전, 그런 가벼운 점이 그 책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는데요. 행동심리학쪽으로 읽은 만한 책 좀 소개바랍니다. 요즘 시간이 남아도는데 그 방면에 문외한이라...
07/07/21 16:02
수정 아이콘
아;; 제가 심리학이라는 분야에 딱히 잘 안다거나해서 쓴말은 아닙니다.
kikira님께서 앞에 쓰셨던 미학오디세이 같은 책은 좀 어렵긴 해도 읽고나면 뭔가 남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개인적으로 '잘읽었다' 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런 책들은 읽고나도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글은 쓰여있는데 읽고나도 뭔가 남는게 없다는 느낌이랄까요.
제가 심리학 전공자도 아니고 해서 이런 류의 관련 서적은 잘 모르겠지만
그동안 출간된 일본을 중심으로 출간되고 지금도 나오고 있는 심리학 서적의 대부분은 읽고나면 이런 기분만 남더군요.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도 마찬가지구요.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감상이었고 어떤 분들은 이런류의 책에서 뭔가 얻으시고 흥미를 가지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새벽바람
07/07/21 16:20
수정 아이콘
저도 스키너의 심리상자열기는 좀 기대보다 실망이었죠..
이거 읽기전에 설득의 심리학을 읽었는데 설득의 심리학 쪽이 더 자세하고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더 실망했었을지도요..
07/07/21 16:55
수정 아이콘
Daydew님// 다른 종류의 심리학책도 같이 읽어보시는걸 추천합니다.
심리학이란게 '퍼즐'이랑 비슷해서 한종류만 봐서는 '이게 뭐지?'할때가 많습니다.
여러권 읽으면서 퍼즐조각을 붙여보다 보면.. '아. 이게 이건가?' 하면서 스르륵 머릿속에 들어옵니다.

그래도 교재로 나오는 심리학책들은 확. -_-; 두꺼운데 쓸모가 없어 흑. ;
07/07/21 18:15
수정 아이콘
10개가 넘는 심리학의 토픽들을 한권(그렇게 두껍지도 않은)에 묶어 놓은 기획만 봐도 깊이는 기대하기 힘든 책이지만, 각각의 이미지를 퍼올리는 솜씨와 대중적 글쓰기로 커버가 되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참 재미있게 봤는데 말이죠;;

글하나가 더 남았는데 아예 새로 쓸까 고민중 입니다.(누가 본다고... >_<;;)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07/07/21 20:38
수정 아이콘
kikira님//전, 재밌게 읽습니다. 앞으로 계속 부탁드려요.
저도 kikira님처럼 스키너의 심리상자열기는 읽을 만한 책이라 생각듭니다. 깊은 지식을 위한 책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을 다르게 보기, 그리고 기존 관념과 제도에 저항하는 삶의 자세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준다고 봅니다. '심리상자'는 어떤 심리학이론이 옳다라고 주장하는 책이 아니라 상반되는 이론을 독자에게 보여줌으로써 생각하게 하는 책이죠.
Golbaeng-E
07/07/21 21:42
수정 아이콘
문외한이 심리학에 재미 붙이기로 읽기에 딱 적당한 책
07/07/21 22:36
수정 아이콘
책장 한 구석에서 자고 있는 책인데 조만간 깨워야겠군요. 소개 감사합니다.^^
07/07/21 23:55
수정 아이콘
L.Bloom님// 감사합니다.
스키너의 조건화, 밀그램의 복종 실험, 달리 and 라타네의 방관자 효과, 할로의 근접성, 페스팅거의 인지 부조화, 기억에 관한 내용과 마지막 로젠한의 정신병동까지. 등장해준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

아, 댓글이 현실이 돼 정말 좋습니다.
5경기에 먹으려 했던 와인에는 손도 못대고 발만 동동구르면서 지켜봤네요.
와인은 너무열려ㅠㅠ 다 버렸지만, 남은 브리치즈먹으며 감동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대인배!!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236 [일반] 얼마전 제가 올렸던 글에 달린 리플을 보고 글을 올려봅니다. (비효리 루머관련) [16] 베넷아뒤짱3269 08/01/29 3269 0
4050 [일반] [세상읽기]2008_0117 [11] [NC]...TesTER3668 08/01/17 3668 0
3689 [일반] [Moral Hazard (도덕적 해이) - 대선관련] + 헌법관련 문의 [57] Arata_Striker3942 07/12/19 3942 0
3588 [일반] 김경준씨 모친 동영상 보셨나요? [24] IZUMISAKAI3981 07/12/13 3981 0
3049 [일반] 박철,옥소리부부로본 간통죄 존폐 [49] IZUMISAKAI6152 07/10/30 6152 0
2896 [일반] [세상읽기]2007_1008 [13] [NC]...TesTER3311 07/10/08 3311 0
2605 [일반] [가벼운 책읽기] 세계3대추리소설편 "환상의 여인" in CSI Lasvegas (스포 거의 無 !!) [8] kikira3398 07/09/06 3398 0
2476 [일반] [세상읽기]2007_0828 [17] [NC]...TesTER3049 07/08/28 3049 0
2437 [일반] 2007년 상반기 음반판매량입니다. [157] Dreamer6515 07/08/25 6515 0
1999 [일반] [가벼운 책읽기]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14] kikira2815 07/07/21 2815 0
1805 [일반] 오리걸음 사망사건에 대한 가해자 변호 [21] NIXIE3952 07/07/05 3952 0
1455 [일반] 이 작품이 국가보안법 위반인가? [110] 에헤라디야7542 07/05/30 7542 0
637 [일반] 한 노교수를 사지로 몰아넣은 여학생회... [71] SilentHill7842 07/02/22 7842 0
617 [일반]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떠나서 이건 정말 너무한거 아닌가요? [25] 어딘데7139 07/02/20 7139 0
271 [일반] 인민혁명당 사건이 무죄판결을 받았군요. [28] EndLEss_MAy5634 07/01/23 5634 0
196 [일반] 역전재판이라는 게임. [16] firewolf6605 07/01/18 6605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