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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12/18 21:56:40
Name 헥스밤
Subject [일반] 연애, 코메디
# 0. 철수와 영희는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회, 혹은 대학 신입생 모임, 혹은 친구의 주선 따위를 통해서 만나게 되었고, 처음 만난 날 부터 격렬한 사랑의 스파크를 품어나가기 시작하다 결국 행복하게 연애를 시작. 몇 번의 고난을 겪고 나서 그 둘은 결혼을 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더래요. 하는 이야기의 현실성은 대략 '만국의 노동자들이 금일 오후를 기점으로 단결을 시작, 지역 기반의 꼬뮨을 건설하고 직접민주주의와 노동자 자주관리를 중심으로 한 유토피아를 만들었답니다'라거나 '어머나 한 번 실험을 돌렸는데 원하는 데이터가 나왔어요', 혹은 '착하게 살았더니 성공했군요'하는 이야기 정도가 아닐까요.

# 1. 남의 연애사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는 없고, 자기 연애사만큼 고통스러운 이야기는 없지 않을까. 방 안을 가득 매운 담배 연기를 환기하려고 창문을 열었더니 바람이 너무 시원해서, 주워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나 한두 개 혹은 서너 개 끄집어볼까 하는 기분으로 글을 써봐요. 시원한 밤입니다.

# 2. 신입생 조철수군은 대학 동아리에서 만난 신입생 영희양을 보고 사랑에 빠졌어요. 영희양은 예쁘고 똑똑하고 남자 친구도 없는 것 같고 뭐 아무튼. 매의 눈으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철수군, 어느날 영희양에게 고백을 하고 시원하게 차입니다. 나중에 영희양은 철수군에게 이렇게 고백했데요. '야. 근데 나 레즈비언임.' 철수군은 인생의 무의미한 의미를 깨우치고 바로 휴학을 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짧은 글들의 짧은 시작을 해볼랍니다. 나중엔 레즈비언에게 고백을 해봤다는 것도 조철수 군에게는 추억이 되겠지요.

# 3. 미국에서 어린 시절-중고등학교-을 보낸 심철수군. 고등학교 시절 임영희 아니 미셸 임양을 좋아했다네요. 문제는 미셸양이 국민학생이었던 것. 그러다가 철수군은 유아성도착 혐의를 받고 고등학교 퇴학. 귀국하여 중졸로 살아갑니다. 중졸인 덕에 공익근무요원이 되었어요. 공익근무를 하다가 우연히 만난 술집 아가씨와 사랑에 빠져 낮에는 공익질 밤에는 대리운전으로 번 돈을 탈탈 털어 아가씨에게 상납. 하지만 제대하는 날부터 연락이 안되는 아가씨는 어디로 갔을까.

# 4. 이번엔 남철수군의 이야기. 남철수군은 신영희양을 너무 사랑했고, 너무 사랑했던 나머지 자랑하고 싶어 자기 친구 최영철군에게 영희양을 소개시켜줘요. 그런 만남이 어디서 잘못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영철군은 영희양과 사랑에 빠져요. 철수군은 폐인이 되어 영희야 영희야 돌아와라 노래를 불러요. 노래를 잘 부른 덕인지 영철군과 영희양은 반년도 못사귀고 깨져버려요. 근데 어머나 이걸 어쩌나, 철수군은 영희야 영희야 돌아와라 노래를 부르다가 영희가 돌아오기 3일 전날 학교 후배 도미애 양과 사귀기 시작했는데......

# 5. 박철수군은 일병 계급장을 달고 있던 어느 날을 떠올려봐요. 부대 행사 관계로 야외에서는 꽤 멋지구리한 불꽃놀이가 벌어지고 있었고, 짬 안되는 철수군은 주섬주섬 내무실 청소를 시작해요. 청소를 하다가 화장실에 간 박철수 군은 몰래 가져온 핸드폰을 들고 화장실 창문으로 불꽃놀이를 촬영하고 있는 김영철 병장과 조우합니다. 착하디 착한 김영철 병장은 '아, 불꽃놀이가 너무 예뻐서. 여자친구한테 보여주려고. 철수야 너 여자친구한테 문자 한통화 보낼래?'라고 물어봐요.

김영철 병장은 철수군 앞뒤로 제대한 200여명의 대대원들 가운데, 유일하게 제대할 때 까지 헤어지지 않은 남자였어요. 7년 사귀다 온 놈도 깨지고 5년 사귀다 온 놈도 깨지고 입대하기 한달 전에 동네 친구랑 사귄 놈도 깨졌다는데 김영철 병장은 제대할 때 까지 안 깨졌데요. 화장실 창문으로 불꽃놀이 사진을 찍어서 여자친구에게 보낼 수 있는 사랑과, 그때 막 마주친 후임에게 멋쩍지 않게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인간성 정도는 있어야 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던 3년차 철수 군도 결국 상병때 깨졌다는군요.

# 6. 최철수 군은 지금 막 헤어져서 너무 슬퍼요. 그래서 단짝친구인 박영철 군에게 전화를 해요. 아 시발 형 헤어졌어요 소주좀 사주세요. 그런데 왠걸, 박영철 군이 심상치 않아요. 힘든 일이 있을 때나 좋은 일이 있을 때나 함께 웃어주던 인간성덩어리 만년솔로 박영철 군이 '시끄러워. 나 바쁘니까 좀 닥칠래' 하는 시크한 말들을 늘어놓아요. 야 너 왜그래. 최철수 군은 당황을 시작해요. 어찌저찌 끌고 나와 술을 마셔요. 최철수 군은 '야 나 헤어진게 그렇게 꼬운 일이라고 왜 그따위로 심기가 뒤틀렸냐'고 심술을 부려요. 술을 많이 먹은 박영철 군은 남자의 이야기를 시작해요.

'넌 사귀는 것도 유세고 헤어지는 것도 유세지? 난 못 그러는데. 나 얼마 전에 정말 좋아하는 사람 생겼는데 당연히 고백도 못하고 헤어졌어. 왜냐면 나는 게이거든. 니네 이성애자들은 사귀어도 X랄 헤어져도 X랄이지 아주?' 최철수 군은 궁지에 몰렸어요. 그렇게 막 헤어진 최철수 군과 평생 연애이야기 한번 딴 사람하고 못해본 박영철 군은 서로 껴안고 대성통곡을 시작해요.

# 7. 이철수 군은 이십오년 만에 첫 연애를 시작했어요 두근두근. 소개팅을 통해 만난 박영희 양과 사귀기 시작한지 이제 막 3일 되었어요. 오늘은 드디어 데이트가 있는 날 룰루랄라 신나게 향수를 뿌리는 이철수 군에게 문자가 와요.

'헤어지자'
그렇게 이철수 군은 '사귄 지 3일만에 문자로 헤어짐을 통보당한 이철수'의 칭호를 획득하였습니다.

# 8. 로맨티스트로 이름난 곽철수 군의 대학 졸업식. 곽철수 군은 오늘 저녁 같이 졸업하는 과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어 신이 났어요. 취직 준비한답시고 오랫동안 제대로 못 만난 과 친구들을 볼 생각에 기분이 들떠있어요. 곽철수 군은 그렇게 사귄 지 2년쯤 된 예쁜 여자 친구 송영희 양과 약속 장소의 문을 덜컥 열어봅니다. 아뿔싸 그런데 생각해보니 새내기 시절 한 2년쯤 사귀다가 참 안좋게 끝났던 과 동기 박미애 양도 올해 졸업이군요. 그게 왜 지금 기억나지 오분만 빨리 기억났어도 여기는 안 왔을 텐데 하고 생각하는 동안 분위기는 뻘쭘해지고 송영희 양은 울기 시작하고 박미애 양도 울기 시작하고 곽철수 군은 정신이 희미해지기 시작해요......

# 9. 홍철수 군은 평소 친하던 전영희 양과 오랜만에 만나서 오랜만에 술을 쳐묵쳐묵해요. 둘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새벽까지 술을 먹다가 정신줄을 놓고 어찌저찌 전영희 양의 집에서 잠만 자고 가기로 해요. 그렇게 누워 잠만 자던 홍철수 군이 이상한 기척을 느끼며 일어났어요. 눈 앞에는 평소 친하던 전영희 양의 남자친구 임영철 군이 싸늘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군요. 이걸 어쩌나. 간밤에 술이 과해 실례했습니다, 하고 나가려는 홍철수 군의 등뒤로 날아오는......

#10.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하는 게 인생의 유일한 낙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생각해보니 그리 재미있는 연애 이야기를 들은 적이 많지 않군요. 짧은 여덟 개의 이야기 속의 등장 인물이 된다면 인생이 참 다이내믹할텐데. 제 인생은 저런 종류의 다이내믹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참 안도가 되는 그런 밤입니다. 연말에는 저 이야기의 주인공들 중 몇몇과(운이 좋다면 모두와) 마주치게 되겠네요. 그러고보니 벌써 연말. 술과 사람과 모임이 번창하고, 그런 중에 또 저렇고 그런 코메디가 일어날 만한 그런 세팅.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생각을 하니 이상하게 설레네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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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09/12/18 22:00
수정 아이콘
글이 뭐랄까 그냥 참 재미있네요 ^^
arq.Gstar
09/12/18 22:04
수정 아이콘
와, 그럼 다 실화인가요!? ㅡㅡ;
어진나라
09/12/18 22:08
수정 아이콘
스타의 명경기는 보는 우리야 즐겁지만, 거기 안에 있는 유닛들 입장은 아유.....
이런 연애 이야기도 보는 우리는 즐겁지만, 당하는 사람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 거에요.
그렇다고 해도 저런 해프닝에 한 번 정도는 엮이고 싶긴 합니다. 인생은 너무 무미건조하면 재미없거든요.

그런데 글에서 남녀생활백서의 향기가 느껴지네요.
09/12/18 22:11
수정 아이콘
유머게시판에 가도 되겠어요?
growinow
09/12/18 22:14
수정 아이콘
7번 최고네요
다현아빠.
09/12/18 22:18
수정 아이콘
와. 독특한 즐거움
이승환
09/12/18 22:19
수정 아이콘
연애란 거 결혼으로 골인안되면 다 엔조이아니겠습니까... 후욱(담배연기)
09/12/18 22:25
수정 아이콘
7번 ㅠ
스칼렛
09/12/18 22:31
수정 아이콘
그 병장님 멋지네요. 꼭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샨티엔아메이
09/12/18 22:45
수정 아이콘
7번보다 더한 상황을 본 입장으로서....
KnightBaran.K
09/12/18 22:47
수정 아이콘
'어머나 한 번 실험을 돌렸는데 원하는 데이터가 나왔어요'에서 한 번 뿜었습니다. 지금 실험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서지훈'카리스
09/12/18 22:49
수정 아이콘
전 나름 다이나믹했네요. -_-a
柳雲飛
09/12/18 23:32
수정 아이콘
살아온 인생 = 솔로 인생..이다 보니..헤어진다 만다 하는 친구들도 부럽게 느껴지더군요..하아..ㅠ.ㅠ
lost myself
09/12/18 23:38
수정 아이콘
지난 번에도 느꼈지만 참 글을 재밌게 잘 쓰세요 ^^
진리는망내
09/12/18 23:44
수정 아이콘
친구 중에 7번보다 더... 바로 다음날에 저런 문자받은 친구도 있어요. ;;
샨티엔아메이
09/12/18 23:57
수정 아이콘
진리는망내님// 제가 아는 이야기는 5시간....이보다 빠를 수 없다.
바나나 셜록셜
09/12/19 06:08
수정 아이콘
항상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크크
동네노는아이
09/12/19 15:23
수정 아이콘
흠 이글을 보고 저도 용기내서 파란만장한 제 28년간의 연애 이야기를 써보겠습니다..

















ㅠㅠ
LightColorDesignFram
09/12/19 16:04
수정 아이콘
항상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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