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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11/05 22:35:45
Name swordf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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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2차 대전 이야기) 장군들의 회고록


은영전의 양웬리에 비해 군인으로써 능력은 떨어졌지만 역사가로써 작가로써 능력은 훨씬 뛰어난 장군
버나드 로우 몽고메리 원수

2차 대전 이후 많은 장군들이 회고록을 썼습니다.
특히 주요 장군들은 상황이 된다면 거의 다 썼을 정도 였으니까요.
(미국의 명장 패튼 같은 경우 처럼 전후 사고로 죽거나, 독일의 전차 지휘관 폰 클라이스트
처럼 포로 수용소에서 죽었을 경우가 있겠군요.)
그럼 왜 장군들은 회고록을 썼을까요?

1) 자기 업적을 남기기 위해- 미국
인류 역사상 거대한 전쟁을 참가했던 기념으로 자신이 이 전쟁에서 무엇을 했는지에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겠지요.
대표적인 미국의 총 사령관 아이젠하워 같은 경우에는 '유럽에서 십자군'
그의 부하이며 훗날 참모총장이 되는 오마 브레들리 같은 경우에는 '한 군인 이야기'
더글라스 맥아더는 대필이긴 하지만 '회고'(그런데 대필이 아닌 사람이 더 드물것 같은데요.)
특히 아이젠하워 같이 회고록 출간 시 정치적 진출을 노리는 경우에는 더욱 회고록에서 자기
업적 과시는 중요했을 것입니다.
뭐 미국의 사례는 우리나라의 회고록과 크게 다를게 없습니다. 뭐 특징이 없달까요.

2) 책임 떠 넘기기- 독일
사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2차 대전 장군들의 회고록은 이런 미국 장군들의 회고록이
아닙니다.
무려 번역 되어서 나온
독일 전차 군단의 아버지 구데리안의 '전차 지휘관'(Panzer Leader)
2차 대전 최고의 명장이라고 평가 되는 만슈타인의 '잃어 버린 승리'
같은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이들 책은 역사 연구와 전술 발전에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특히나 자료가 적었던 독소전 연구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냉전 종결 이후 소련의 자료가 풀리면서 이들 장군들의 회고록은 많은 비판을
받게 됩니다.
왜냐?
그들의 전략적 전술적 실수를 모두
'이게 모두 히틀러 탓이다.'로 몰았습니다.
또한 모든 업적은 '자기들이 잘나서'로  만들었죠.
하지만 이러한 왜곡이 소련쪽 자료와 교차 검증한 결과 많은 경우 허구로 드러난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가 아는 독일군 전설이 많은 경우 이 장군들의 회고록에서 나온 것이 많습니다. 사실 뭐 요즘은
많이 비판당하고 있는 분위기지만요.

덧붙이자면 가장 특이한 독일 장군의 회고록은 1차 대전 때 초급 장교 경험을 2차 대전 이전에 쓴
롬멜의 '보병전술'일 것입니다. 롬멜이 그 책을 쓴 이유는 당시 교관이었던 그는 교재로 쓰려는
목적이 큽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감명 먹은 히틀러가 그를 출세 시켜 주지요.
그리고 아마 장군으로만 따지만 몽고메리의 '전쟁의 역사' 빼곤 많이 팔린 회고록 중 하나일 것입니다.
역시 이책도 우리나라에서 번역 된 적이 있습니다. 장교들 교육을 위해서...

3) 좀 학구 적이거나 사적이거나-  영국
2차 대전 사적 중 노벨상 받은 서적은 (장군은 아니지만)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의 회고록 삘의 역사서 '2차 세계 대전'
이었습니다.(물론 다른 서적 영어 사용 민족의 역사 쪽도 상을 받는데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영국의 이탈리아 방면 사령관 헤롤드 알렉산더 같은 경우에는 회고록은 안쓰고, 아예 전쟁 중에서
신문에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기사로 써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점은 처칠의 군사적 조언자이자 참모총장이었던 앨런 브룩 장군도 마찬가지었습니다.
회고록 쓰기 보다는 아예 일기나 신문에 기사를 직접 투고 하거나 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 저서 속에서는 치칠에 대한 앨런 브룩의 험담이나 불평 불만이 그대로 써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장 골 때리는 회고록를 쓴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많은 욕을 먹는 몽고메리 장군일 것
입니다.
아예 그 사람은 선사 시대부터 한국전쟁까지의 전쟁에 관한 역사책을 써버렸습니다. 그리고 1차 대전
과 2차 대전 섹션에서 자신의 회고 같은게 담겨져 있죠.(그 유명한 '마켓가든은 성공한 작전이다' 드
립은 이책에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아마 몽고메리 저서 '전쟁의 역사'는 2차 대전 장군들이 쓴 저서(순수 장군들 중) 중 최대 판매량을
자랑하고 있을 것입니다. 전쟁사 입문서로는 가장 잘쓰인 책이기도 하고(좀 옛날 학설이 많긴
하지만) 저자의 이름빨도 있으니까요. 우리나라에서도 이 책은 번역되어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이순신 장군이 언급되어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사실 회고록은 사료로써 가치는 있습니다만, 액면 그대로 받아 드리기 힘든 면이 있습니다.
결코 자기가 잘못했다고 쓰는 사람은 없거든요.
모든 회고록이라는게 그래서 읽을 때 주의해야 하는 거죠. 그걸 못지킨게 독일 장군들의 회고
록입니다. 이 때문에 무능한 히틀러와 유능한 독일 장군이라는 허상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몇몇 회고록의 경우 회고록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제가 언급
한 처칠의 '2차 세계 대전'과 몽고메리 장군의 '전쟁의 역사' 그리고 장군은 아니지만 E.H. 카
의 외교 관련 저서 같은 경우에는 회고록 이상의 가치가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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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지평선
09/11/05 23:53
수정 아이콘
흥미롭네요
공참 괴링은 조금 막장삘인건 익히 알고 있지만
전격전과 기갑전의 현대전의 교본이라 생각되었던
구데리안과 만슈타인이 뻥튀기 된것이 있어다니 새삼스럽네요 소련군의 어떠한 기록이 그러한지 궁금하네요
소련군은 주코프랑 바실리, 레즈노프동무만 아는지라..
09/11/06 00:20
수정 아이콘
몽고메리 징군이 왜 우리나라에서 욕을 많이 먹나요? 이순신장군에 대해 잘못된 비판을 했나요?
09/11/06 00:26
수정 아이콘
엘 알라메인에서 롬멜을 격파한 것까진 좋았지만 마켓가든의 초대형 삽질로 모든걸 날려먹은 장군이죠. 보급선도 확보 안해놓고 지형지물도 파악 안하고 적 규모도 확인 안한채 "노인과 어린애들로 이뤄진 군대만 있을거임 고고싱" (당시 네덜란드에는 히틀러 친위대 SS기갑사단 2개가 있었습니다)

결과는 영국 제1공수사단 궤멸(사망자 8000명 이상) 밴드 오브 브라더스로 유명한 미 101공수사단도 큰 피해를 입었고 아인트호벤이 공습으로 초토화 됐죠. 44년 크리스마스까지 베를린에 들어가려던 연합군의 전략도 전면수정, 마켓가든에 물자를 쏟아붓느라 노르망디 이후 미친듯한 진격속도를 보여주던 패튼의 기갑부대도 정지. 결국 종전은 45년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네덜란드 국왕은 몽고메리같은 장군이 두번 다시 네덜란드에서 작전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가장 큰 피해를 본건 연합군이 아닌 네덜란드 국민들이었거든요.

연합군 지휘관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자리를 차지하려고 든 점도 그렇고 여러모로 존경하기는 힘든 인물입니다.
09/11/06 00:35
수정 아이콘
롬멜의 보병전술을 읽어보았는데,
사러갔을때에도 대형서점 군사학 섹션에 있더군요.
뭐, 있잖습니까... 북한에 관련된 책들이나, 탄도학이나 전술 서적이 꽂혀있는 밀덕 전용 섹션....
내용은 1차대전때 장교로 참전한 롬멜이 소대/중대 병사들을 어떻게 이끌었나,
자신과 신념이 상이한 직속 상관의 명령을 어떤 자세로 따랐었나 하는 경험위주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09/11/06 00:36
수정 아이콘
패튼은 마켓가든 직전 휘하 부하들까지 쩔쩔 맬 정도로 미친듯이 진격해 나갔습니다. 노르망디 상륙 이후 석달도 안돼서 프랑스 거의 전역을 회복하죠. 이제 독일 입성만 남았는데 보급선이 문제가 된 겁니다. 노르망디는 항구가 아니라 해안일 뿐이고 연합군의 대규모 보급을 위해서는 대형 항구가 필요한데 당시 북해연안에 이정도의 하적능력을 갖추고 있던것은 벨기에의 엔트워프 항구 뿐이었습니다. 엔트워프는 연합군이 점령하고 있었지만 그 외의 벨기에땅을 독일이 점령하고 있어서 사실 무용지물이었죠. 그래서 물자는 노르망디와 영국에 쌓여만 가는데 정작 최전선의 부대들은 보급이 제대로 안되는 상황에 다다릅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압도적인 연합군의 공군전력이 각종 교량이나 교차로, 선로등을 꼼꼼하게 폭격하여 박살내 놓은 탓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이 시기에 연합군은 두가지 기로에 서게 되죠.

패튼에게 모든 물자와 보급을 밀어주어 지금까지 진격속도 그대로 독일로 진격하느냐, 아니면 몽고메리의 제안대로 네덜란드에 강하, 제대로 된 또하나의 보급로를 확보하고 네덜란드에서 라인강을 건너 독일로 입성하느냐 였는데 당시 연합군 최고사령관 아이젠하워는 몽고메리의 손을 들어줍니다. 그래서 전개된 작전이 마켓 가든이고

결과는 위에 제가 쓴 것과 같습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패튼을 밀어주었다면 전쟁은 좀 더 일찍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무너지기 시작한 군대라는건 정말 끝도없이 무너지는 것이라서요. 바르바로사때의 소련군이 그랬고 바그라티온때 동부전선의 독일군이 그랬죠. 노르망디 이후 서부전선 독일군도 비슷하게 무너져 내렸으나 마켓가든의 실패로 연합군은 보급선을 탄탄히 할 때까지 정지할 수 밖에 없었고 독일군은 체제를 정비, 몇개월간 전쟁을 더 끌 수 있게 됩니다.

뭐 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요.
09/11/06 00:41
수정 아이콘
2차대전 이야기 너무 재밌죠.

언젠가 한 번 써보려 했는데.. 아는게 적어서...;;

nein님// 재밌어요~
나이트해머
09/11/06 00:41
수정 아이콘
nein님// 그때 예측을 잘못하긴 했지만 만약 연합군 기갑부대 지휘관들이 독일 급은 안되더라도 최소한 소련 수준의 감투정신만 있었어도 막대한 손실이 있다고는 하나 성공할 수는 있었습니다. SS기갑사단 2개라 해도 실 전력은 크진 않았고, 그렇게 무기력하게 전진했는데도 80%까지 도달했으니까요. 길이 좁고 어렵다고는 하나 독일군은 더한 상황에서도 시간을 맞추어 돌파한 적이 있습니다.(40년 프랑스 전역. 이땐 한쪽은 프랑스 국경 넘고 있는데 같이 넘어가야 할 부대는 길이 막혀서 룩셈부르크도 못넘어갔던...)
나이트해머
09/11/06 00:51
수정 아이콘
패튼이 먹혔던 건 소속 국가가 보급의 슈퍼본좌 미국이였기 때문이죠. 그런 미국도 항구 하나로는 그 속도 못따라갔고요.
패튼도 그 이상 돌파는 어려웠을 겁니다. 보급이 정말 미국답지 않게 눈물나는 수준이였거든요. 그래서 항구 하나를 더 먹어 보급을 편하게 하겠다는 몬티 영감의 계획이 매력적으로 다가온 거고. 결국 실패했지만 말이죠.
독일군이 동부전선에서 보여준 저력을 봐도 그렇게 쉽게 무너질 군대는 아닙니다. 소련군이 돌파에 성공한 것도 미국의 대규모 차량지원 덕에 한번 방어선을 뚫은 뒤 수백km를 달려도 보급이 가능했기 때문이죠. 소련의 공세와 독일의 방어를 보면 보급역량이 다하는 지점에서 독일의 반격이 정확히 이루어졌고, 그순간 공세가 끝났습니다. 서부전선도 마찬가지가 될 공산이 크죠. 이미 보급한계에 다다른 패튼군이 더 달리려 해 봐야 얼마 못가 공세가 저지될 것이고, 한계선을 넘었다면 반격에 다시 뒤로 밀려나 버릴 겁니다. 동부전선의 패턴이 재현되 버리는 거죠. 그 사이에 피해는 꽤나 늘어날테고.
정 주지 마!
09/11/06 00:57
수정 아이콘
스워드피쉬님 글은 언제나 재미있어요. 예전에 용병회사 글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09/11/06 00:58
수정 아이콘
그렇죠. 지휘관이 문제입니다. 그 지역의 독일군들은 이미 캐나다군과 교전을 치뤘던 부대였고 많은 정보가 사령부로 들어갔습니다만 몽고메리를 위시한 지휘부는 이를 무시해버리고 독일군을 매우 얕잡아 보았습니다.

반면 독일군은 국방군 서부전선 총사령관 룬트슈테트(Gerd von Rundstedt) 원수가 패잔병들을 빠르게 수습하여 방어선을 구축하였고 그는 60개 연합군 사단이 공격해올 것을 상정하고 수주간 견고한 방어 태세를 갖추었습니다. 게다가 독일 국방군의 공수부대 선구자인 쿠르트 슈투덴트(Kurt Student) 대령이 전투 가능한 3천의 공수부대원들을 규합하여 알베르트(Albert) 만 주위를 점거하고 있었으며, 쿠르트 칠(Kurt Chill) 중장 또한 제 85 사단을 지휘하여 네덜란드의 각 교량을 방어하고 있었고, 제 719 보병 사단 또한 이 지역으로 이동하였죠.

그리고 SS기갑사단 2개의 역할은 매우 컸습니다. 이들 전력은 사실 완편도 채우지 못한 반쪽짜리 기갑사단이었지만 연합군의 주력이 무장이 빈약한 공수부대였던만큼 소수의 기갑부대는 정말 치명적이었죠.

80%까지 진격했다지만 앞서 말했던것처럼 제일 깊숙히 들어간 영국 제1공수사단은 완전히 포위되어 궤멸 직전이었습니다. 80%까지 진격한 것이 아니라 80%에서 겨우 후퇴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09/11/06 01:01
수정 아이콘
나이트해머님//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결과론적인 이야기라고 한 것이구요. 역사적 사실 외에는 어쨌든 모두 이러면 저렇지 않을까 하는 가설에 불과할 뿐이죠. 패튼의 작전이 채택되었다고 해도 어떤 장애물이 가로막았을지는 모를 일입니다.
swordfish
09/11/06 01:02
수정 아이콘
사상의 지평선님// 대표적인 사례가 스탈린그라드 였습니다. 만슈타인은 이 때 패전 책임을 현지 고수를 지시한 히틀러와 이를 추종한
6군 사령관 파울루스에게 돌렸습니다.
하지만 병력도 부족하고 당시 육군 참모총장의 꿈을 꾸고 있었던 만슈타인은 실재로 스탈린그라드에서 포위된 6군 구출에 별로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괜히 적극적이었다가 책임 질 일을 만들기 싫었던 것이죠.
또한 쿠르스크에서도 호트의 진격에 너무 삘 받아서 자신이 지휘하는 남부 집단군 만으로 작전을 완수할 수 있다고 했다가, 나중에서 역공 들어온 소련군에게 그대로 밀려 버린 경험도 있었습니다.

또한 구데리안도 모스크바 공략 때, 무단 후퇴한 일을 정당화하면서 현지 고수를 지시한 히틀러를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오히려 현지 고수를 주장한 히틀러 때문에 중부 집단군의 붕괴를 막을 수 있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급하진 않았지만 룬트슈테드도 덩커르크에서 영국군을 전멸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친데에 자신의 책임이 컸지만 이 역시 히틀러의 책임으로 몰아 버렸습니다.
09/11/06 01:05
수정 아이콘
그래도 마켓 가든의 실패로 인해 보급로를 탄탄히 할 필요가 있었던 연합군은 레드불 익스프레스라는 보급부대를 창설하게 됩니다. 주로 흑인 운전병들과 트럭으로 이루어진 이 부대는 영국과 항구에 쌓여있던 보급품들을 놀라운 속도로 각 전선으로 실어다 날랐죠.

당시 연합군의 보급능력은 어머니가 미국에서 구운 생일케이크를 서부전선 최전방의 말단 병사가 받아 먹을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고질적인 보급문제에 시달렸던 소련이나 독일에 비하면 치트키 쓴 미국이 얼마나 엄청난 국가인지 알게 됩니다.
코리아범
09/11/06 01:08
수정 아이콘
욕먹은건 모르겠고
제 기억엔 이순신 장군은 유능한 전략가이자 발명가였다.. 뭐 한 3줄인가 언급했던걸로 기억하네요
09/11/06 01:14
수정 아이콘
만슈타인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가지 만슈타인에게도 핑계거리가 있습니다.

바로 세바스토폴 요새죠.

세바스토폴 요새는 나이팅게일로 유명한 소련의 흑해방면 최중요 요새입니다. 당시 독일군은 북부집단군은 레닌그라드를 포위했고 중부집단군은 스몰렌스크를 점령하고 모스크마 코앞까지 다다랐으며 남부집단군은 우크라이나를 해방시켰습니다.

근데 이 시점에서 히틀러가 갑자기 모스크바 진격을 미루고 남부의 세바스토폴 요새와 키예프를 점령하는데 군사를 돌립니다. 만슈타인은 모스크바 진격을 주장했으나 히틀러는 "자네들은 전시 경제에 대해 모른다. 소련이 버티는 원동력은 키예프의 밀이기 때문에 그곳을 확보하면 소련도 함부로 초토화작전을 쓸 수 없다" 라고 했죠.

결국 만슈타인의 군대는 엄청난 피해를 입고 한달이나 걸려서 세바스토폴을 점령합니다. 세바스토폴은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닌 남부 러시아 대공세-블라우작전-의 후방을 제거하기위한 보조공격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독일 제11군은 완전히 탈진했고, 코카서스 진격이란 원래의 목표조차 포기한 채 8개월 간이나 그곳에 주저앉게 되었죠. 그리고 이 손실은 동부전선 말기까지 이어졌으며, 결국 후에 스탈린그라드의 파울루스를 구하지 못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됩니다.
swordfish
09/11/06 01:20
수정 아이콘
nein님// 레드불은 노르망디 부터 있었던 부대입니다. 애초에 마켓가든이 기획된 이유가 그 레드불 익스프레스의 이동거리가 너무 길어져 버렸다는 겁니다. 연합군이 쓰고 있는 항구는 노르망디 해변에 임시로 설치된 맬버리 항과 쉘브르 항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전선은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국경에 위치에 있었죠. 그러니 트럭이 실고 오는 연료보다 쓰는 연료가 더 많았다가 문제 였습니다.
이래서 몬티가 주장한게 가용 자원을 한쪽에 몰빵하자 였고, 아이젠하워는 오케 해서 한게 마켓가든이었습니다. 문제는 너무 작전이 복잡했다는 거. 그리고 무전기가 고장 났다는 것이었죠.
그후 연합군이 한일은 엔트워프 항구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엔트워프 항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고, 독일 쪽에서 크리스마스 때 알아서 남은 병력을 꼴아 박아주자. 자원 남는 아이젠하워는 이젠 '몰빵 필요없다. 그냥 전 병력 닥돌 오케?' 해서 전병력을 엘베강까지 어택땅 찍어 버렸습니다.
즉 교훈은 트럭 천대 보다 배 한대가 물류 비용이 싸다 입니다.

코리아범님// 저도 어렸을 때 그구절 읽고 좀 놀랐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한국은 한국전쟁 정도 밖에 몰랐을 몬티 영감도 굳이 언급해 줄 정도로 뛰어난 장군이었구나. 라고요. 물론 언급된 부분이 일본 섹션이라서 문제였지만요.(일본 언급하다가 그냥 덧붙여 언급한 겁니다. )
09/11/06 01:30
수정 아이콘
swordfish님// 레드불은 제가 잘못알고 있었군요. 정정 감사합니다.
09/11/06 01:42
수정 아이콘
이건 뭐 댓글만 읽어도 떡밥이 열포대...!
나이트해머
09/11/06 02:20
수정 아이콘
레드불 익스프레스로 미친듯이 보급을 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보급한계선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미국은 보급을 제일로 여기며, 보급한계선에 도달한 상태에서 더 전진하라고 밀어주는 군대는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독일군은 보급역량 이상으로 전진한 적을 가만히 놔둘 정도로 무기력한 군대는 더더욱 아닙니다. 거기서 패튼이 무모하게 더 전진했다면 실패하고도 남았습니다.

지휘관 문제는, 기갑부대 지휘관은 몬티 영감님 아닌데요. 그 영감님은 작전 총사령관이지(...) 영-미 실전 기갑부대 지휘관들의 무기력한 전진이 최대 문제였지 그 이상은 아닙니다. 만약 지휘관들이 최소 소련수준의 마인드만 지녔어도 방어선이 제대로 구축되기 전에 돌파 완료되고도 남았습니다.
그리고 달성률 80%는 기갑부대의 달성률이지 공수부대의 전진속도가 아닌데요.(...) 그렇게 무기력하고 느릿느릿 전진했는데도 공수부대 괴멸 이전에 거기까지 전진했다면, 제대로 된 기계화전술 마인드를 지녔던 독일, 소련군이였다면 성공하고도 남았을 작전이란 소리와 마찬가지입니다. SS두개 사단의 존재여부는 손실률에 차이가 날 뿐이지 성패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첬다 보기엔 어렵습니다. 문제는 영-미 기갑부대였죠. 사소한 공격에도 일단 멈춰서 수색하네 뭐하네 하면서 질질 끌고, 참 너무나도 여유있게 전진했습니다. 공수부대는 아른헴 일대에서 녹아나고 있는데도 말이죠. 독/소 사령관들이 그런 짓을 했다면 최소한 문책을 받을 수준입니다.
나이트해머
09/11/06 02:35
수정 아이콘
바르바로사 작전도 독일군의 보급역량을 보면 상황이 다릅니다. 스몰렌스크를 점령한 시점에서 독일군 보급역량은 사실 그 절반수준의 거리에도 못미첬지요 거기서 바로 모스크바로 달려가 봤자 점령했을 가능성은 희박하고, 보급한계를 한없이 벗어난 시점에서 키예프의 대규모 소련군이 옆구리를 친다면 43년쯤엔 베를린에 붉은 깃발이 올라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보급부대가 충분히 그 거리를 도달할때까진 어쨌든 그 이상 동쪽으로 움직이는 건 미친짓이였고, 위협적인 키예프 일대의 소련군 제거는 필요한 일이였습니다.

세바스토폴도 마찬가지죠. 41~42년 겨율 동계공세때 소련은 세바스토폴을 교두보삼아 대규모 공세를 편 적이 있고, 이를 제거하고, 이후 이지역 방어에 필요했던 부대를 청색작전의 예비대로 쓴다는 것이 원래 계획이였습니다. 투입된 11군은 원래 그쪽 담당이였고 전선을 단축시키고자 세바스토폴을 공략했을 뿐입니다. 단지 그 사이에 전황이 변하면서 11군은 여기저기 보충병력으로 나누어져서 결국 통일된 전략예비로 활용되지 못했던 거죠.
청색작전과 스탈린그라드도 말하자면 정말 할 말이 많죠. 이건 단순히 말해서 소련군이 끝내주게 잘 버틴 것일 뿐입니다. 스탈린그라드의 지형적 특성상 거길 점령 못하면 청색작전은 무의미해지기도 하고.(바르바롯사~41년 동계전역으로 약화된 독일군은 볼가강을 이용해 방어선을 구축하지 않는다면 방어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스탈린그라드를 점령 못하면 볼가강 방어선 구축이 불가능해지니...)
이외엔 뭐.
독일군 지휘관들은 자신의 책임을 너무 히틀러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요즘 쏟아지는 비판 중 하나입니다.
freeaction
09/11/06 02:39
수정 아이콘
2차대전시 독일 장군들에 대한 평을 본게 기억이 나는데... 구데리안 롬멜이나 머 만슈타인까지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사단,군단급을 이끄는

지휘관으로서는 탁월할 지 모르나 1개군이나 집단군을 이끌 수 있는 역량이나 시야를 가진 지휘관들은 드물었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그 예가 바바로사 작전 당시의 독일 지휘부의 생각을 보면 알수 있는데 바바로사 초기에 파죽지세로 소련을 밀어붙일 때 소련이 밀리면서

도 계속 물량을 쏟아내는 걸 보고 그 소련의 물량의 본질에 대해서 이해한 장군들이 거의 없었다죠.. 소련이 물량이 엄청나게 많아서

밀리면서도 물량을 쏟아낸게 아니고 사실은 후퇴기동이라고 해야 되나 일단 현 거점에서 물러나면서 뒤의 예비부대와 합쳐진

거 뿐이었는데 그걸 이해한 장군들이 별로 없었다죠..
09/11/06 02:40
수정 아이콘
그럼 결론은 2차대전은 독일이 질 수밖에 없었던 전쟁이다.. 그런 느낌이 되는건가요?
freeaction
09/11/06 02:41
수정 아이콘
2차대전은 인류역사상 거의 처음으로 산업생산력이 승부를 가른 전쟁이라고 하더군요.. 고로 진리의 천조국이 있는한 독일,일본의 패망은

시간의 문제였죠
09/11/06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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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에 좋은 댓글에 좋은 불판이 마련되었는데 뜬금없이 주제와는 상관없는 제 생각을 얘기하자면,
전쟁 얘기에 꼭 재미있다는 표현을 써야하나요?
세월이 흐른후 후손인 우리들이 보기엔 막연히 상상만 하는 것이지만 실제 당시에 그 전쟁에서 싸웠던 수많은 병사들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필사적으로 싸웠던 것이고 실제로 죽어간 사람도 있을테고 무엇보다도 고귀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 밖에 없었던 당면한 현실이었을텐데요.

저는 전쟁영화를 안보는데 이유는 감정이입이 되기 때문입니다. 영화 자체는 픽션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실제로 그 전쟁이 일어날 당시에 저렇게 칼에 찔려서, 총에 맞아서, 손다리가 잘리거나 머리가 터져서, 불에 타서 잔인하고 아주 괴롭게 집에 있는 가족들을 울부짖으며 처참하게 죽어갔겠지 라고 생각이 되기 때문입니다.
공포 영화에 아무리 잔인한 장면이 나와도 그건 단순히 지어낸 이야기이기 때문에 큰 괴로움이 없지만 전쟁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실제를 기반으로한 픽션이니깐요.

물론 전쟁 이야기에 흥미나 관심을 가질 수 있고 충분히 논의하고 얘기할만한 거리가 되겠지만 재미있다는 표현은 자제해 주심이 어떨까요? 우리에게 재미있는 얘기거리일지 몰라도 전쟁 당시에는 목숨을 걸고 처절하게 싸우며 죽어갔던 병사들에게는 눈앞에 닥친 생존의 문제였을테니까요.
평화로운 시기에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지내고 있는 우리가 역사의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예우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평화롭게 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재미있다는 표현은 게임을 하거나 친구들과 만나 놀면서 신날때 쓰는 표현이지 않나요?
저는 전쟁관련 글들을 읽으면 흥미롭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숙연한 맘부터 들더라고요.
와이숑
09/11/06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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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0904님// 잘 짚으셨네요. '재미'가 아닌 '흥미'롭다는 뜻이죠. academic interest...
루크레티아
09/11/06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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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0904님// 좋은 말씀입니다. 물론 전쟁의 역사는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이고 다시는 일어나면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알아두셔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역사를 좋아하고 그것을 재미있게 읽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항상 등장하는 것이 '가정'입니다. '만약 이랬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있기에 우리가 역사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이죠. 문제는 그런 가정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여러가지가 있지만 주로 인간 역사의 아쉽거나 못난 점에서 그런 가정을 즐겨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못난 점이나 아쉬운 점의 대략 70% 이상은 전쟁의 이야기죠. 그렇기 때문에 항상 전쟁사를 말하는 사람들은 이런저런 가정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에 대해서 흥미를 느끼고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가정에 뒤에 일어날 일들을 대입시켜보면서 웃을 수가 있는 것이고요.

절대로 밀리터리 매니아나 전쟁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전쟁이라는 비극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물론 제정신 아닌 사람도 있습니다.)
다만 그들의 흥미점이 그런 곳에 있었을 뿐이고, 아는 만큼 전쟁이라는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을 더욱 잘 알고 있을 뿐입니다.
될대로되라
09/11/06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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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헤머님//네덜란드에서의 연합국 기갑병력 전진이 느렸던걸 마인드 차이로 볼 수 있나 모르겠네요.
개활지에서 전격전을 벌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던걸로 압니다.
좁은 도로 하나에만 의지해야 했고 선두 전차가 파괴되면 잔해를 치워야만 전진이 가능했다고 압니다.
애초에 그런 환경에 전차를 몰아 넣게 계획을 짠 것 부터가 문제였습니다.
나이트해머
09/11/0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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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대로되라님// 독일군은 그 환경에서 돌파를 성공했는데요.(...)
아르덴 돌파시 독일군이 맞닥뜨렸던 지형은 한참 더 심했습니다.
선두부대는 프랑스 국경을 넘었는데 같이 병행진격해야 할 부대는 길이 막혀서 벨기에 국경도 못넘어간 상황... 이라면 이해가 가실려나요.
거기다가 중간에 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벨기에, 프랑스의 국경방어부대가 타 지역에 비해 약했다고는 하나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고, 마켓-가든때보다 이때의 조우가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독일군은 시간에 맞춰 돌파에 성공했습니다. 영국군은 그에 비하면 한참 짧은 거리도 느릿느릿 가다가 시간을 못 맞췄고요. 독일군 수준이 아니었더라도, 최소한 마인드가 소련군 수준만 되었더라도 돌파는 했을 겁니다. 불가능이 아니었지요. 무능하기로 소문난 영국군 기갑 군단장 및 기갑 사단장은 까고까고 또까도 모자랍니다. 코앞에서 공수부대 죽어나가는데 그냥 미적미적...

아, 덤으로 영국 정부와 총사령부는 빨리 전쟁 끝내라고 몬티 영감을 달달 볶았다는 군요. 이때 영국은 영국 남정네들 다 죽고 나서야 전쟁이 끝나겠다는 국가적 위기의식이 팽배해서 빨리빨리 끝내라고 계속 닥달했다고 합니다.
사상의 지평선
09/11/0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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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ordfish님// 감사 2차대전사에 이렇게 박식한 분들이 많다니. 디시 밀겔 수준인데요 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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