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이 아닌- 여성이 남성에게

"야. 나 빼빼로데이 기대할게"

라고 하는건 꽤나 쉬운 일입니다.

친한 오빠동생. 혹은 친구 등등의 인연을 매개로 한 간단한 장난같은거거든요. 뭐 실제로 주면 좋고 안줘도 상관은 없고.


그러나 반대로 남성이 여성에게

"야. 나 빼빼로 데이 기대할게"

라고 하는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건 "난 너에게 관심 있으니깐 너도 나한테 호감이 있다면 그날 니가 나에게 조촐한 선물을 해줄 것을 기대해도 되겠니?"
라는 긴 문장을 짧게 축약한거니까요.



뭐 그런 덕분에.

빼빼로 데이에 있어 빼빼로의 주 수급원은 남성입니다.

남성이 사서, 친하건 친하지 않건 말을 꺼낸 여성에게 선물하는것이 메인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반면에 여성의 경우에는 아주 악질적이거나 정말 별 생각 없이 빼빼로를 뿌리는 경우 이외에는 항상 일자전승 한개를 준비할 뿐입니다.

왜. 어째서. 하나 받기도 힘든데 왜 줄 곳은 계속해서 늘어가는가. 어째서.



네. 그렇죠. 이렇게 말도 안되는 순환구조를 지닌 기념일도 흔치 않습니다.

가령 발렌타인 데이라는 정체불명의 기념일의 경우.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입니다. 간단합니다.

더 정체를 알 수 없는 화이트 데이라는 기념일을 봅시다. 남성이, 여성에게 캔디를 주는 날입니다. 마찬가지로 간단합니다.

요즘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블랙 데이라는 기념일을 봅시다. 솔로들끼리 자급자족하는 날입니다. 아예 신경 쓸 필요가 없군요.



이 앞선 두 기념일이 빼빼로 어쩌고와 무엇이 다른가.

그것은, 이 기념일에는 수요와 공급을 그을 획이 존재합니다. 남성과 여성. 바꿀래야 바꿀 수도 없는 절단선이요.

그렇기에 주는 사람이 되더라도. 받는 사람이 되더라도 부담 가질 것은 없습니다.

어차피 주는 사람은 줘야만 하는 날이고 받는 사람들은 받기만 하면 될 뿐인. 그런 구조니까요.

일방적인 소통이긴 합니다만, 어느 한 쪽만이 불합리한 피해를 보는 그런 구조는 아니라는 이야기지요.

피해를 보는 쪽이, 피해를 본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것을 감수한 채 상대방을 위하는 날이니까요.



하지만 빼빼로 데이는 다릅니다. 상호 합의를 빙자한, 사기극이지요. 남성만이 피해를 보는, 그런 말도 안되는 날인 것입니다.

같은 상호 합의 기념일인 크리스마스를 볼까요. 이 경우에는 남성도 여성도 1:1로 선물을 교환합니다. 당연하죠. 당연합니다.

대뜸 폰을 꺼내서 전체 문자로 이성에게 "크리스마스 기대할게" 같은 말? 상상도 못합니다. 그렇죠. 네. 당연합니다.

그랬다간 정신나간 아해 취급을 받게 되지요.



그런데, 빼빼로 데이는 그게 아니란 것입니다.

귀엽게 이모티콘 몇개 붙여가며 "빼빼로데이 기대할게용~!"같은 문자를 보내도 어색하지 않은. 그런 기념일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남성과 여성은 이런 부분에 있어 말도 안되는 입장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상호간에 선물을 주고 받기로 합의된 기념일임에도, 상호(相互)간에 있어 행복을 맛볼 수 없는 그런 기념일이란겁니다.

어째서. 왜. 서로 즐거워야 하는 날인데 어째서 즐거운 사람들은 정해져 있고, 즐겁지 않은 사람이 정해져 있는가.

어째서. 왜. 하필 이 날만 그런건가.

어째서. 왜.



그렇습니다. 전국의 남성 동지 여러분. 이런 빼빼로 데이. 언제까지 끌려다니시겠습니까. 정말. 이대로도,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참고문헌 - 투아모리와 카트리나의 상관관계 (주 - 현재는 소실되어 원본을 찾아볼 수 없다)



여기까지 긁어서 보시는 분들이 계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뭐 우스갭니다 우스개;

벌써 밀린 빼빼로 선약만 7갠데 주겠다는 사람은 없어서 열폭(...)한 나머지 아침에 끄적거려봤습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