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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4/08 15:50:34
Name happyend
Subject [일반] 보들레르의 <악의 꽃>
1.

17세기에 가장 인기있는 공산품은 비누, 유리, 금속세공제품 들이었습니다. 이미 지리상의 발견을 통해 새로운 판로를 개척한 상인들은 몸이 달았습니다. 이것들을 얼른 팔고, 차,향신료,도자기,비단 등을 수입해와야 했는데 문제가 생겼던 것입니다.바로 생산이 너무 더뎠던 것입니다.

차나 향신료,도자기,비단 등은 비교적 1차산업인데다 재배단지가 넓고 분업화가 잘 진행되어서 착착착 만들어지는데 비해 공산품의 생산속도는 너무 느렸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이것들을 가공하는데 들어가는 연료인 '땔감'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전반적인 인플레가 지속되어 다른 제품들도 서너배 가량 물가가 뛰었지만 땔감 가격은 무역붐을 타고 최소한 8배 이상의 폭등을 보였으니 상인들은 죽을 맛이었지요.

그래서 목재의 대체품으로 새롭게 각광받기 시작한것이 바로 '석탄'입니다.

하지만 이 석탄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는데요,그것은 지하에서 캐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깊은 지하에 들어가 석탄을 캐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위험한 일인가를 걱정할 상인들이 아니지요.그들이 우려했던 바는 오로지,지하에 끊임없이 '지하수'가 차서 석탄을 캐내지 못한다는것이었습니다.

이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성능좋은 펌프를 개발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펌프에는 말 500마리가 동원되었다고 하니,지하수의 공포가 어느정도였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습니다. 이렇게까지해서라도 '석탄'을 필요로 했던 절박한 상인들의 심정도 이해가 되고요.

모든 필요는 발명의 아버지라고 하지요? 이 절박한 요구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을 낳았습니다.바로 증기기관입니다.토리첼리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비교적 소프트한 비이과생이라도 알만한 원리를 이용해서 데이비드 램지는 증기를 이용, 기압차를 이용한 펌프를 만들어냅니다.이것이 바로 증기기관의 할아버지뻘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짐작하던 바 그대로입니다. 세상은 완전히 변해버렸습니다. 도구의 시대에서 기계의 시대로,열역학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지요.

그것은 상인자본가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그들은 손끝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신시킬 수 있는 재주를 부렸고, 부지런하기만 하면 세상을 손아귀에 움켜쥘 수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웅장한 자본가들의 환희의 송가가 울려퍼질 무렵, 한 우울한 시인은 뒷골목을 서성거렸습니다.

2.

19세기 중반. 유럽은 탐욕의 시대였습니다.
탐욕은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사명'이라는 이름으로 유럽을 강타했습니다.

이 시대를 바라보는 얇고 여린 종잇장같은 감성은 견딜 수 없었습니다. 물론 그 댓가는 처절했습니다. 그는 철저히 외면받았고, 처절하게 짓밟혔습니다.

유럽은 그의 양심을 짓밟고, 12살 소년의 가슴에 결핵균을 심으며 성장했습니다. 아마....그들에게 식민지가 없었다면 그 독이 스스로를 물어뜯었겠지요.

100년, 그리고 다시 50여년이 지난 지금.
그가 다시 태어났다면 같은 시를 지었을까요? 되풀이하는 탐욕의 역사를 위해 그의 솜털같은 심장이 울어주었을까요?

보들레르를 짓밟았던 유럽인에게는 '식민지'라도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들의 탐욕은 그그 촉수의 끝을 어디로 돌릴까요?

3.

어떤 정직한 학자가 대중매체에서 펀드의 손실은 '탐욕의 댓가'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돌멩이를 맞고 퇴장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에게 돌을 던지면서 비로소 깨달았습니다.아,이 비극의 씨앗은 '탐욕'에서 비롯되었구나 하는 것을 말이죠.

마치 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돈에 불을 질러버리듯이....세상은 사용가치와 동떨어진 교환가치로서의 화폐의 놀음에 완전히 넉다운 되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보들레르의 노래가 범상치 않게 들리는 것은....


악의 꽃 /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어리석음, 과오, 죄악, 탐욕이
우리 정신을 차지하고 육신을 괴롭히며,
또한 거지들이 몸에 이.벼룩을 기르듯이,
우리의 알뜰한 회한을 키우도다.


우리 죄악들 끈질기고 참회는 무른고야.
고해의 값을 듬뿍 치루어 받고는,
치사스런 눈물로 모든 오점을 씻어내린 줄 알고,
좋아라 흙탕길로 되돌아오는구나.


흘린 우리 정신을 악의 배갯머리에서
오래오래 흔들어 재우는 건 거대한 <악마>,
그러면 우리 의지의 으리으리한 금속도
그 해박한 연금술사에 걸려 몽땅 증발하는구나.


우릴 조종하는 끄나풀을 쥔 것은 <악마>인지고!
지겨운 물건에서도 우리는 입맛을 느끼고,
날마다 한걸음씩 악취 풍기며 큰 어둠을 가로질러
혐오도 없이 <지옥>으로 내려가는구나,


구년묵이 똥갈보의 시달린 젖을
입맞추고 빨아먹는 가련한 탕아처럼,
우리는 지나는 길에 금제의 쾌락을 훔쳐
묵은 오렌지처럼 한사코 쥐어짜는구나.


우리 뇌수 속엔 한 무리의 <마귀> 떼가
백만의 회충인 양 와글와글 엉겨 탕진하니,
숨 들이키면 <죽음>이 폐 속으로
보이지 않는 강물처럼 콸콸 흘러내린다.


폭행, 독약, 비수, 방화 따위가 아직
그 멋진 그림으로 우리 가소 가련한
운명의 용렬한 화포를 수놓지 않았음은
오호라! 우리 넋이 그만큼 담대치 못하기 때문.


허나, 승냥이, 표범, 암사냥개,
원숭이, 독섬섬이, 독수리, 뱀 따위,
우리들의 악덕의 더러운 동물원에서,
짖어대고, 노효하고, 으르렁대고 기어가는 괴물들,


그중에도 더욱 추악 간사하고 치사한 놈이 있어!
놈은 큰 몸짓도 고함도 없지만,
기꺼이 대지를 부숴 조각을 내고
하품하며 세계를 집어삼킬 것이니,


그 놈이 바로 <권태>! - 뜻없이 눈물 고인
눈으로, 놈은 담뱃대를 물고 교수대를 꿈꾸지.
그대는 알리, 독자여, 이 까다로운 괴물을
- 위선의 독자여, - 내 동류여, - 내 형제여!



Au Lecteur / Charles-Pierre Baudelaire


La sottise, l'erreur, le peche, la lesine,
Occupent nos esprits et travaillent nos corps,
Et nous alimentons nos aimables remords,
Comme les mendiants nourrissent leur vermine.


Nos peches sont tetus, nos repentirs sont laches;
Nous nous faisons payer grassement nos aveux,
Et nous rentrons gaiement dans le chemin bourbeux,
Croyant par de vils pleurs laver toutes nos taches.


Sur l'oreiller du mal c'est Satan Trismegiste
Qui berce longuement notre esprit enchante,
Et le riche metal de notre volonte
Est tout vaporise par ce savant chimiste.


C'est le Diable qui tient les fils qui nous remuent!
Aux objets repugnants nous trouvons des appas;
Chaque jour vers l'Enfer nous descendons d'un pas,
Sans horreur, a travers des tenebres qui puent.


Ainsi qu'un debauche pauvre qui baise et mange
Le sein martyrise d'une antique catin,
Nous volons au passage un plaisir clandestin
Que nous pressons bien fort comme une vieille orange.


Serre, fourmillant, comme un million d'helminthes,
Dans nos cerveaux ribote un peuple de Demons,
Et, quand nous respirons, la Mort dans nos poumons
Descend, fleuve invisible, avec de sourdes plaintes.


Si le viol, le poison, le poignard, l'incendie,
N'ont  pas encor brode de leurs plaisants dessins
Le canevas banal de nos piteux destins,
C'est que notre ame, helas! n'est pas assez hardie.


Mais parmi les chacals, les pantheres, les lices,
Les singes, les scorpions, les vautours, les serpents,
Les monstres glapissants, hurlants, grognants, rampants,
Dans la menagerie infame de nos vices,


II en est un plus laid, plus mechant, plus immonde!
Quoiqu'il ne pousse ni grands gestes ni grands cris,
Il ferait volontiers de la terre un debris
Et dans un baillement avalerait le monde;


C'est l'Ennui! L'oeil charge d'un pleur involontaire,
II reve d'echafauds en fumant son houka.
Tu le connais, lecteur, ce monstre delicat,
- Hypocrite lecteur, - mon semblable, - mon frere!
--------------------------------------------------
시집을 오래전에 잃어버려서 인터넷에서 업어왔습니다.

작년에 제 블로그에 올렸던 글인데요, 오늘 느닷없이 다시 보들레르의 시가 읽고 싶어 퍼왔습니다.(물론,제 글이니 불펌은 아닙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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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데로사도스
09/04/08 16:30
수정 아이콘
'탐욕의 댓가'라고 말했던 이가 실제 정직한 학자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말만은 틀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돌을 던지던 사람들이 깨달음을 정말 얻었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네요.

시집을 가까이 해본 적이 없는지라
happyend님 덕분에 시인의 이름과 제목만 들어 본 걸로 위안 삼던 시를 직접 접해보는 황송한 경험을 합니다.
감사합니다.
chcomilk
09/04/08 16:31
수정 아이콘
오랜만들 들어 보는 이름이네요.

읽다보니 갑자기 로뜨레아몽이 땡기네요... 집에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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