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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2/28 02:59:05
Name 쿠베
Subject [일반] 친일파냐 아니냐?
피지알 자게에는 두번째로 쓰는 글이네요.
친일 인명 사전을 찾아보다가, 혼자 생각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느끼게 돼서,
제가 생각하기에 최고의 지식 커뮤니티인 피지알에 이렇게 글을 씁니다.

정권이 바뀌고부터 이른바 친일파에 대해서 말이 많습니다. 역사교과서 문제도 있고,
현재진행형인 친일파 자손 재산 문제도 그렇고 말이죠.
그렇지만 제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싶은 건 (너무 고전적인 떡밥일지도 모르겠지만) 크게 말해서 '친일파를 어떻게 정의내릴 것인가' 입니다. 친일파의 처리문제, 그러니까 해방 후 반민특위의 활동이나 현재 친일파 자손 재산 문제는 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집에 있는 백과사전을 뒤져 보니 친일파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친일파
- 親日派 일제강점기 민족을 배신하고 일본제국주의에 적극 협력한 부류의 총칭. 친일행위의 성격에 따라 크게 지주/자본가, 지식인, 경찰, 관료, 군인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들 중에는 자진해서 친일을 한 자도 있고, 피동적으로 친일을 한 사람도 있었다..... (중략).....이들은 친일행동을 자발적으로 수행하기보다는 그들의 계급적 이익과 식민체제 속에서 수동적으로 자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후략)

출처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입니다.
저는 이전까지, 친일파냐 아니냐는 특정한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친일했는가, 혹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친일했는가' 라는 기준입니다.
전자의 예로는, 일제 때 경찰간부로 활동했고 해방 후에도 고문경찰로 유명했던 김태석의 경우, 자신의 입신을 위해서 친일을 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친일파입니다. 1937년부터 친일활동을 시작한 김활란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후자로는, 일제시대 당시의 수많은 일반 민중들을 들 수 있겠지요. 이들의 창씨개명 등 친일행위는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즉 자발적으로 하지 않은 친일이므로 우리가 비난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실제로 이봉창 의사도 한인애국단을 찾아가기 전까진 일본 이름을 쓰고 일본인 행세를 하는 소시민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혼란이 온 때는, 친일인명사전을 찾아보면서 친일파의 여부가 저렇게 간단하게 판단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입니다. 아까 백과사전에서 봤을 때도, '이들 중에는 자진해서 친일을 한 자도 있고, 피동적으로 친일을 한 사람도 있었다' 라던가 '이들은 친일행동을 자발적으로 수행하기보다는 그들의 계급적 이익과 식민체제 속에서 수동적으로 자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라는 문장들이 켕기는 거죠. 과연 '수동적으로 자행' 했다는 것이, 어디까지가 자발적이고 어디까지가 수동적인 것인가요?

예를 들어서, 이광수와 같이 너무 명확한 사람 말고, 문학인 중에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 '태평천하' 등으로 유명한 채만식을 들어 봅시다. 채만식은 친일인명사전 '문화예술' 편에 포함되어 있는, 친일인물이라 규정된 문학인입니다. 그렇지만 친일이다 아니다의 논란이 정말 많은 사람이기도 하죠. 그가 친일파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해방 직전 그가 썼던 작품이 친일 색채가 강하다고 하며, 찬일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것이 항일문학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채만식 본인이 해방 이후 '민족의 죄인' 이라는 자기반성적 작품을 내기도 했고, "나는 결국 본심도 아니면서 겉으로 복종이나 하는 용렬하고 나약한 지아비의 부류에 들고 만 것이었다." 라는 말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만 (이 점이 기회주의적이라고 비판받기도 하지만) 저는 채만식을 그렇게 나쁘게 보지는 않습니다. 1944,45년을 제외한 그의 작품들은 충분히 일제 당시의 상황을 효과적으로 풍자하는, 민족문학의 성격을 띠고 있거든요.
요컨대, 그가 친일작품을 쓴 건 사실이지만 저는 그것이 '자발적인 것이었나,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수동적인 것이었는가'  가 헷갈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일반민중이 겪은 진짜 생계의 위협, 죽음의 위협에는 비할 바가 못되더라도, 소설가에게 '절필'의 위협은 그만큼 충분히 위협적이였을 거라 사료된다는 말이죠.

글이 많이 길어졌네요.
제 말을 요약하자면, '자발적이었나 수동적이었나' 라는 친일파의 구분방식에 문제가 있고, 그 경계가 참 모호하다는 것 같다-라는 말입니다. 피지알 분들이 친일파를 정의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수준높은 피지알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네요.
그저께 타쿠로 님 사건 때문에 글 올리기가 좀 무섭기도 하지만, 용기를 내서 올려 봅니다.

추가 - 합병 전 일본 쪽 사상을 연구하다보니 사상에 따라 친일 쪽으로 가게 된 친일파도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19세기 말에 후쿠자와 유키치 등의 사상(그게 또 유럽의 사회 진화론이기도 한데..)에 개화파가 많이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사상을 따라가다 보니 친일파가 된 사람도 있다는 말에는 좀 어폐가 있는 것 같은데, 이 점은 또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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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뉴
09/02/28 04:02
수정 아이콘
친일에 지나친 면죄부를 줄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일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이 했던 모든 일들은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의 반영이었을 뿐입니다.
Minkypapa
09/02/28 04:26
수정 아이콘
자기 자신이 민족주의자인가 아니면 민족자유주의자인가 국가주의인가 개인주의인가 이런걸 먼저 생각해보는게 도움이 됩니다.
그 다음에 세워진 자신을 토대로 처리해 나가면 자신의 입장에서는 좀 수월합니다.

분류같은거 할때 모든 것을 만족하는 기준은 보통 없습니다.
제 기준은 일부러 조국에 해를 입히거나, 친일행위를 해서 큰 이익을 본 사람들은 모두 숙청대상이 되는 친일파라고 생각합니다.
수동적 친일행위는 사람살아가는 세상에서 있을수 있다고 쳐서 처벌대상까지는 아니지만, 친일파였던 사실이 없어지는것은 아니고요.
sungsik-
09/02/28 05:12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친일에 대한 생각은 위정자들은 친일에 대해 너무 관대하고
일반인들은 친일에 대해 굉장히 엄격한 느낌이 듭니다.
친일이란 정의 자체가 좀 애매모호해서 일 수도 있고
어떤 정의를 내리고 거기에 모든 걸 다 집어 넣기엔 상황에 따른 변수나 다양성이 너무 많기도 하고요.
진리탐구자
09/02/28 05:44
수정 아이콘
뭐 강제성이 있느냐 없느냐, 다시 말해 행위에 대한 책임 소재가 본인에게 있느냐 타인에게 있느냐가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 될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사례에 따라 분류가 다소 달라지겠습니다만...

그리고 해방 이후에 공개적으로 자아비판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굉장히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에 언급된 채만식이라든지, 이태준 같은 작가들은 문학을 통해 속죄를 했지요.
진리탐구자
09/02/28 06:17
수정 아이콘
덧붙여, 사상적 친화성 때문에 친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공병호가 하이예크의 자유주의 철학에 기반해서 자기 주장을 편다고 해서 공병호의 주장이 타당성이 있는 것은 아니듯 말입니다. 사회진화론 자체가 식민국이 피식민국에 대한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주 사용된 이론이기도 하고요.
09/02/28 09:26
수정 아이콘
친일은 용서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만 참 애매하긴하네요. 사회상도 그렇고 가족 위협속에 살려고 한사람들에대한 판단도 문제고. 간단하게 북한에 뭐하나라도 연결되어있으면 빨갱이로 몰아서 처단한 안타까운일이랑 겹쳐보이기도 하네요. 우리나라는 그냥 피해자인거 같습니다. 전범국가가 악의축이죠 뭐..
09/02/28 09:30
수정 아이콘
주권이 넘어가는데에 정치적인 기여를 했는가, 해방 이후 친일행적을 포장하기 위해 어떠한 반민족 활동을 했는가가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큭큭나당
09/02/28 09:39
수정 아이콘
솔직히 친일했다고 이해가 안가는건 아닙니다.

당시 일본은 중국 러시아와의 싸움에서도 이기고
미국에 시비를 걸만큼 국력도 배짱도 좋은 국가였죠.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그런 일본의 손아귀에서 독립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일제 지배가 몇십년을 넘어가자 실제로 그런 이유로 자기 합리화를 시키며 변절한 보수층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예전보다 잘 먹고 살게 되었지 않느냐면서.
당시에 핵이란게 뭔지도 몰랐을터였고, 그런 거 두방에 기세좋던 일본이 무조건 항복할지 그 누가 알았겠습니다.
수십년간 계속된 식민지 하에서 자기 몸 보신을 위해 몸을 사린 사람들 모두에게, 민족의 배신자라며 손가락질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건 소극적으로 친일 행위를 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죠.
시대에 타협했다고 해서 앞장서서, 독립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고문한 소위 매국노들은 용서할 수가 없는거죠.

당시 그런 놈들엔 정통보수라는 김구 선생의 암살에 관련되고 반민특위를 해산시킨 이승만도 있겠네요.
요즘엔 빨갱이 토벌엔 길길이 날뛰면서 친일파엔 관대한 모 정당도 있구요.
그러면서 그네들이 자칭 보수라고 하는게 더 열불 납니다.
그럴때마다
09/02/28 10:01
수정 아이콘
큭큭나당님// 100% 동의하고 갑니다.
星夜舞人
09/02/28 10:50
수정 아이콘
대동아 공영이란 아시아 각국을 부강시켜 서구열강에 대항하자라는 게 그 의견인데 표면적으로 보자면 결코 나쁜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에 와서도 지식인들이라면, 어느정도 동의할만한 내용중에 하나입니다.
허나 대동아 공영이라는 것이 일본 지식인들사이에서 여러갈래로 나누어 집니다.
첫째, 일본의 부강과 지식적 활력을 아시아 전체로 나누어 주어 같이 각국에 독자적인 입장에서 발전시키자라는 의견입니다. 20세 중반 후일 일본의 수상을 지녔던 이시바시 탄잔같은 사람이 이식자층의 의식을 받아들여 조선을 식민지에서 해방시키자까지 주장합니다. (이사람이 일본수상을 5년 아니 2년정도만 했어도, 지금의 일본의 모습은 좀더 양심적이고 아시아에서 정말 의식이 넘치는 나라가 되었을것라고 아쉬워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둘째, 일본이 일단 낙후된 아시아를 (조선,일본) 주권을 유지 시킨후(왕권) 경제특구화 하여, 어느정도 문화적, 경제적 제도에 맞춰졌을때 독립시키는 선생을 역활을 하자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이 의견에 섰던 사람중에 하나가 이토 이로부미였지만, 결정적으로 이사람은 열강의 식민지 제도의 모순점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채, 이상주의적으로 나갔고, 결국은 조선의 독립파와 일본의 과격파 (식민지 유지파)사이에 낑겨져 결국 안중근 선생에게 암살당하고 말죠. 뭐 이사람에 대해선 자신이 잘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국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원흉중에 하나고 해서 결코 용서받을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죠. (이사상을 받아들여 만주국을 제2의 아시아적 이상향으로 만들려고 일본인이 노력했고, 만주사변이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일본군부가 더이상의 독립화를 막기 위해 만주침략을 획책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만주국에 대해선 조선보다 자유로웠지만, 정통정부라고 하기엔 중국인의 독립국가도 아니었기에 어정쩡한 스탠스를 유지한것이 멸망한 원인이라고 봅니다.)
셋째, 말 그대로 일본 보수적 과격파로 일본, 조선, 그리고 만주를 포함한 중국을 아예 흡수시켜 버려 황국신민화 시키자라는 게 그들의 목적이었고, 일본의 보수파를 지배한것도 이들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조선총독을 지닌 테라우치였고, 1920년을 기점으로 해서 완전히 식민지 정책은 그들손에 들어가 버리고, 양심적인 사상자체를 일본에서 말살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즉, 조선 지식인들이 단순히 일본에서 나온 아시아 근대론을 신봉하고, 좋아한다고 해서 친일파적 사상을 가졌다고 하기엔 너무나 단순 도식화 시킨것이라고 봅니다. 일본 지식인들사이에서도 여러가지로 분열되고, 서로 논쟁하고 싸워왔던것이 이것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친일파에 대한 논쟁에 대한 저의 관점은 이렇게 이야기 하죠. 1차대전이후 수많인 조선의 지식인들이 일본에 전향했다고 합니다. 그중에선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한결같이 내세웠던 이유는 일본을 보고 독립할수 없을것이라고 보았다라고 했습니다. 자 이건 무엇을 뜻할까요? 그 지식인들은 독립운동을 해서 조선이 독립을 하던 일본에 조선이 흡수되던 어차피 밥 굶어죽는데 이상이 없는 사람들이고, 조선이 독립이 될경우 한자리 할수도 있고, 일본에 흡수되더라도 먹고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즉 독립에서 친일로 전향한 사람들치고, 순수한 마음에서 독립운동을 했을것이다라고 보기엔 좀 그렇다 이야기죠. 독립운동자체를 한 공적을 인정하자라는 말자체도 저한테는 이름좀 남겨보자라는 의미밖에 안보이구요. 따라서 그들을 옹호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자기 재산 혹은 지위를 지키기 위해 일본에 협력한 경우가 있을지 모릅니다만, (드물다고 봅니다) 일본은 조선의 독립운동을 하지않고, 그냥 무관심하게 이도저도 아닌사람을 탄압한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일본에 협력했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다수가 자발적으로 한것이지, 독립과 관계된 아무일도 안하는 사람이라면야 논란이 될이유도 없죠.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이후의 친일 행위에 관한 건데, 그 시기엔 강압적으로 어느 한쪽을 택하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르는 분위기였으니, 어느정도 정상참작은 가능하겠지만, 그 이전의 행위엔 전혀 논란이고 뭐고 그냥 친일파라고 부르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내일은
09/02/28 12:32
수정 아이콘
우리가 친일파라고 부를 때 꽤 광의의 의미로 사용하지만, 반민특위 시절에 내려진 범죄로 처벌받아야할 친일파들의 기준이 있습니다. 지금봐도 그 기준은 꽤 합당하다고 보입니다. (친일인명사전은 처벌이 아니라 기록이라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합니다만...)

그리고 친일 행위에 있어서 적극적인지, 수동적인지는 그렇게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싸이코패스가 살인을 저질렀을때 그가 싸이코패스인 것과 상관없이 살인죄로 처벌받고, 가난에 찌들어 사람을 죽여도 역시 살인죄로 처벌받는 것처럼, 우리는 그 사람이 한 행위를 가지고 그 사람을 평가하지, 그 사람의 의도를 가지고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학문적으로나 접근하거나 그 사람들한테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을 때 그 사람들이 왜 그랬는지 의도는 중요하기는 합니다만, 법적으로 들어갈 때는 참조할 수는 있지만,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게다가 무엇보다 인간의 말은 믿을 수가 없으니까요.

참고
● 친일파를 처벌하기 위한 "빈민족행위처벌특별법(1949년)"
(대한민국 관보 제 5 호, 1949년 9월 22일 자)

제 1 장 죄
제 1 조 일본정부와 통모하여 한일합병에 적극협력한 자,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조약 또는 문서에 조인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과 유산의 전부 혹은 1/2을 몰수한다.

제 2 조 일본정부로부터 작위를 받은자 또는 일본 제국의회 의원이 되었던 자는 무기 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과 유산의 1/2을 몰수한다.

제 3 조 일본 치하 독립운동자나 그 가족을 악의로 살상 박해한 자 또는 이를 지휘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한다.

제 4 조 다음의 각 호 중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15년 이하의 공민권을 정지하고, 그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한다.

1. 작위를 받은 자(예, 공작, 백작, 자작, 남작 등)
2. 중추원 부의장, 고문, 또는 참의
3. 칙임관 이상의 관리가 되었던 자
4. 밀정행위로 독립을 방해한 자
5. 독립을 방해할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하거나, 그 단체의 수뇌로 활동한 자
6. 군 경찰의 관리로써 악질적인 행동으로 민족에게 해를 가한자
7. 비행기, 탄약, 등 군수공업을 책임 경영한 자
8. 도, 부의 자문 또는 결의기관의 의원이 되었던 자로서 일정에 아부하여 그 반민족적 죄적이 현저한 자
9. 관공리가 되었던 자로서 그 직위를 악용하여 민족에게 해를 가한 악질적 죄적이 현저한 자
10. 일본 국책을 추진 시킬 목적으로 설립된 각 단체 본부의 수뇌간부로서 악질적 죄적이 현저한 자
11. 종교, 사회, 문화, 경제 기타 각 부문에 있어서 민족적인 정신과 신념을 배반하고 일본침략주의와 그 시책을 수행하는 데 협력하기 위해 악질적인 반민족적 언론, 저작과 기타방법으로써 지도한 자
12. 개인으로서 악질적인 행위로 일제에 아부하여 민족에게 해를 가한 자

제 5 조 일본 치하에 고등관 3등급 이상, 훈 5등 이상을 받은 관공리, 헌병, 헌병보, 고등경찰에 있던 자는 본 법의 공소시효 경과 전에는 공무원에 임명할 수 없다. 단 기술관은 제외한다.

----------

60년이 지난 지금봐도 꽤 괜찮은, 저 정도의 처벌기준도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대체...
09/02/28 12:37
수정 아이콘
본문의 요지가 '친일파를 어떻게 정의내릴 것인가'인데요..
댓글들을 보니 오히려 너무 관대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당시 시대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이든
아니면 정말 가족이 위협을 당해서이든 친일행위를 했으면 친일파인거죠..
그럼 친일파 아닌 사람이 누가 있느냐.. 라는 변명도 의미없다고 봅니다..
목숨을 걸고 탄압받은 독립운동가분들도 많이 있고..
독립운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착취당한 일반 민중이 있습니다..

물론 소극적인 친일 억지로한 친일은 적극적인 친일파와 구분되어야 하는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정상참작'이란 것은 죄가 인정된 다음에 하는 것이지요..
그런 이유들로 자신들이 혹은 조상들이 친일파였던 것 조차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최소한의 자기반성도 못하겠다는 이기적인 욕심일뿐이라고 봅니다...
星夜舞人
09/02/28 13:07
수정 아이콘
내일은님// 아마 수용할수도 없고, 계속해서 방해할겁니다. 정치권만 봐도 서로 얽힌 관계인데 뭘 말하겠습니까? 전에 민주당 천정배의원이 한나라당 고문인 최병렬씨와 사돈관계라고 언급한 일이 있는데, 국회의원들도 서로 당을 초월해서 끼리끼리 뭉친건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사람들이 자기들 조상욕하는 법을 만들것이라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죠? 어차피 대한민국에 엘리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감언이설을 믿을수는 없습니다. 측천무후같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한 민중의 삶은 언제까지나 고달파 질겁니다. (아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측천무후는 중국역사상 희대의 악녀맞습니다. 단 그걸 그당시 권력자들에게만 한정지었을때 말이죠. 오히려 측천무후의 치세동안 다른 당황제보다 민중의 삶은 윤택했다고 합니다. 즉 재평가하자면 민중에겐 좋은 왕이 가깝습니다. 물론 말년에 아들들 권력투쟁 하는데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했다는 평가는 있긴합니다.)
토스희망봉사
09/02/28 15:47
수정 아이콘
작품은 작품대로 보존하면 되는거고 작가가 친일파라는 것은 명확히 표기 하면 됩니다
친일파를 너무 관대 기준으로 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 합니다.
gegovski
09/02/28 18:00
수정 아이콘
공산당에게 쌀을 뺏긴 민중들을 빨갱이라며 즉결처단하던 친일파 놈들이 무슨 적극 소극을 따진답니까
빨갱이 처형하듯 친일파만 처단했어도 지금처럼 한나라당이 저래 맘놓고 미친짓 하진 못하고 있을겁니다.
밑힌자
09/02/28 18:25
수정 아이콘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은 논리입니다.

'그 시대 친일파 아니었던 사람이 어딨나. 결국 너도 나도 같은 친일파고 다 같이 나쁜놈이니, 친일파 숙청은 어불성설이다.'
'친일은 시대적으로 불가항력적이었다. 오히려 일본이 근대화에 긍정적으로 기여했고, 우리는 여기에 참여한 것이니 역사적으로 재평가 받아야 한다.'

어쩐지 많이 들어본 말인 것 같지 않나요?
서정호
09/02/28 19:46
수정 아이콘
내일은 님이 올려주셨던 대로 저 때 저 법안대로 해도 크게 문제 될 게 없을 겁니다. 친일파들 재산은 결국 자기 정체성과 나라를 팔아먹은 후 선량한 사람들에게 빼앗은 거기 때문에 몰수해도 후손들은 아무말 말아야죠. 근데 어떻게든 안 주려고 버티니까 문제가 많습니다. 개승만이 저 법안 그대로 실행하게 나뒀으면 우리 나라 지금보다 몇배는 더 나아졌을 건데 그러지 못한 게 천추의 한입니다.
풋내기나그네
09/02/28 20:06
수정 아이콘
일제시대 당시 모두가 항일 독립운동가로 살지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당시 평범한 민초가 다소 불만이 있었건 혹은 식민지 통치를 당연시 여겼던지 간에 왜 일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는가를 추궁할 수 는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까지 '친일파'로 몰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로 살지 못할지언정 일제의 식민지 통치를 돕거나, 부일하여 한민족을 핍박한 이들에 까지 면죄부를 준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일상을 살아가던 평범한 민초들은 '생존' 자체를 위해 일제 통치를 묵인했겠지만, 친일파들은 그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같은 민족을 핍박하고 부일한 세력이기에 당연히 심판받아야하지 않을지요.
09/02/28 20:40
수정 아이콘
평범한 민초가 과연 친일을 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는지부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독립운동가가 위대하다고 생각하지만, 일반 민초들의 친일행각이 '악의를 품은' 몇몇 다른 친일파와 동일선상에 놓이는게 달갑진 않습니다.
밑힌자
09/02/28 20:51
수정 아이콘
起秀님// 뭐... 보통 진짜 '친일파'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일반 민중과 악질 친일파를 동일선상에 놓는 그런 논리를 선호합니다. 너희들도 우리와 다를 게 없다, 고로 우리도 별로 잘못한 것은 없다... 라는 논리죠.
09/02/28 21:01
수정 아이콘
起秀님//누가 일반 민초들의 친일행각을 '악의를 품은' 몇몇 다른 친일파와 동일선상에 놓는다는건지 이해하기 힘드네요..
생존을 위해 묵인하고 저항하지 않은 것까지 추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 것과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친일을 했다는 것은 충분히 구분이 가능한 전혀 다른 이야기같군요..
평범한 민초가 버티기 위해 해야만 했던 친일이라는 게 과연 어떤게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단순히 창씨개명을 했고 부역자으로 끌려갔다고 친일파라는 사람들이 있나요?
정작 창씨개명을 주도하고 부역을 독려한 친일파들이 그런 일반민초를 끌여들여 같이 면죄부를 받으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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