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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7/04/24 08:07:25
Name OrBef
Subject [일반] 자긍심과 행복은 때때로 반대방향인 듯 합니다.
멀지 않은 과거에 비슷한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근데 또 쓰면, '어허.. 이양반 훈장질하러 피지알 오나!' 라는 반응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그래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전 '수다 매니아' 이고, 뭔가 수다 떨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아버지를 아버지라 말하지 못하면(응?) 병이 나기 때문입니다.

훈장질은 본인은 앞가림 잘 하는 ( 혹은 그렇다고 믿는 ) 사람이 하는 것이고, 제가 하는 행위는.. 굳이 비유한다면 '나도 망했는데, 솔직히 그쪽도 크게 다르지 않죠?' 라는.. 동족을 찾아내 위안받기.. 입니다.

---------------------------------

사람이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것이

사랑 돈 명예 쾌락 열광 충만감 만화(?) 야한 영화(??) 등등등이 있겠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2가지는 저 위에 적지 않은 것들 - 행복과 자긍심 - 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사랑 돈 명예 쾌락 열광 등등등이 결국 행복에 이르는 여러가지 길인거야. 그니까 결국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지'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뭐 남이 살아가는 방식까지 자기 기준으로 다 설명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의 사람들의 극단적인 시각입니다만, 어느정도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근데 저 행복이라는 것에 쉽게 항복하지 않는 놈이 하나 있으니, 그것이 자긍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생부터가 다르고, 가꿔 나가는 법도 다르고, 둘 중 하나가 죽으면 다른 하나가 살아남아봤자 별로 재미없는 인생이 되기 십상입니다.

고려가 망하던 말던 중요한 것은 백성이지 왕 나부랭이가 아닌데, 그래도 선죽교에서 철퇴에 맞아 죽기를 택하게 만드는 것이 자긍심이고..

바보가 아니고서야, 솔직히 환갑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서도 유비가 정말로 한 왕조를 되살리려는 사람이라고 믿었을 리가 없는데, 그래도 마지막까지 충성을 바침으로서 자기 인생이 완성된다고 믿은 관우도 자긍심의 현현이라 할 수 있고..

여기까지만 보면, '오.. 뽀대나네. 뭐가 문제인가요?' 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신림동에서 부모님 돈 까먹는 생활 그만 접고, 이제 슬슬 학원 강사라도 해서 자기 앞가림 해야하는 것 본인도 알지만, 그래도 영감 소리 듣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게 하는 것도 자긍심이고..

고등학생 때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답안지 적는 능력이 조금 뛰어나서 일류대학 들어간 것을 '나는 위대하고, 위대한 사람은 위대한 인생을 살아야 해' 라는 결론으로 이어나간 뒤, 졸업을 거부하고 후배들한테 소주집에서 철학강의하는 재미를 10년째 즐기는 사람들의 원동력도 자긍심이죠..

이렇듯, 자긍심에 대한 방향이 빗나간 집착은 인간이 행복에 이르는 것을 방해할 수 있는 잠재적 파괴력이 굉장합니다.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서는 뭔가를 넘어서야 하고, 넘어서기 위해서는 뭔가에 맞서야 하고, 뭔가에 맞서기 위해서는 ...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제대로 된 코스라면,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패배해선 안돼고, 패배하지 않으려면 질 수도 있는 경쟁을 해선 안돼고, 경쟁하지 않으려면 사회에 나갈 수 없고, 사회에 나가지 않으려면... 아아 도저히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쓸 수가 없습니다. 하여튼 이게 가장 안좋은 방향으로 진행되는 경우겠습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지켜온 자긍심은, 그것이 어떤 경로로 형성이 되어서 어느정도 수준으로 커져있던지 간에, 파괴된다면 본인의 인생이 무의미로 돌아간다고 느껴질만큼 중요한 존재로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제3자에게는 쉽게 쉽게 '야 그딴 자존심 좀 접고, 걍 이러이러하게 해. 그게 답이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도, 본인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죠. 결국 이유는, '본인의 자긍심 내지는 자존심'이 '그딴 자존심' 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긍심이 무너지면 영혼도 무너지는 겁니다.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 라는 명 대사는, 그래서 최고로 지질한 대사이기도 합니다.

현실이 시궁창이란 것을 안다고 말함으로써, 난 아직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죠.

꿈이 높다고 말함으로써, 난 아직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죠.

근데 현실을 헤쳐나가기 위하여 월급 50만원짜리 직장을 가진다면, 결국 그 50만원짜리 인생이 평생 이어질 것 같은 불안감에, 아예 시작 자체를 못합니다.

'뽀대나는 직장을 가지거나, 아무것도 안하거나'
'유학을 가거나, 공부를 안하거나'

결국 이런식의 극단적 선택밖에 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 끝 ----------------

한줄 요약 :
그니까 정신 차리고 작은 거라도 일단 시작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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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24 09:31
수정 아이콘
요즘 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속의 그대>를 매일 듣습니다. 당시에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마냥 좋아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들을때마다 섬뜩~한 기분이 듭니다. 덕분에 매일매일 긴장 이빠이 하고 살 수 있구요.

"그대의 환상, 그대는 마음만 대단하다. 그 마음은 위험하다. 자신은 오직 꼭 잘될거라고 큰소리로 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그대가 살고 있는 모습은 무엇일까" 2절 도입부의 가사 입니다. 어쩌면, 서태지는 이미 천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07/04/24 09:56
수정 아이콘
행복의 조건이 '자기만족'이라면, 자긍심은 행복과 반대방향이 아닐 수도 있겠죠. 소록도 같은데서 적은 보수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환경에서도 즐겁게 봉사하는 의사분들이나, 자신은 비록 잘 못 먹고 잘 못 입더라도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인생을 바치는 분들이나, 국제 기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발벗고 나선 분들, 환경운동가들과 반전운동가들, 자신이 믿는 종교나 신념을 위해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분들... 이런 분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워낙에 꿈이 크기 때문에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죠.

여하튼, 저야 뭐 철저한 현실주의자니... 꿈이니 이상이니 하는건 별로 개의치 않고 있고, 자존심이나 자긍심 같은건 팔아봐야 별로 돈도 안되는거 같고. 낄낄낄... (아... 또 냉소모드 발동이다;;)

P.S: 자긍심보다 좀더 가치있는건 '양심'인것 같아요. 사회 생활을 하면 할수록 '양심'의 값어치는 꽤나 비싸다는걸 느끼죠. 양심을 팔면 한 몫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어찌나 많은지...
미친잠수함
07/04/24 10:11
수정 아이콘
그냥 갑자기 생각이 나서 그러는데요..


담배는 잘 참고 계신지...


혹시 성공하시면 제가 한 번 도전해볼까 해서.. 쿨럭..
07/04/24 10:23
수정 아이콘
미친잠수함님/
--vv 잘 참고 있습니다. 근데 감기에 징하게 걸려서 열흘동안 기침을 계속 했더니 목에서 피가 ㅠ.ㅠ

AhnGoon님/
그분들은 물론 훌륭한 분들이지만... 정작 자기 가족이나 친구와의 소소한 행복.. 내지는 취미를 통한 느긋한 여유같은 것과는 많이 거리가 있지 않나요? 훌륭한 사람중에 좋은 가장이 없다고.. 자기 자긍심을 위해서 자기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상당 부분을 포기하는 경우라고 봅니다.

물론 그분들이 소록도에서 보이는 환한 미소와, 그것을 훌륭한 것으로 칭송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좀 가려지는 면이 있지만요.

근데 전 양심을 언제든 팔 준비가 되어있는데.. 돈 안주던데요 ㅠ.ㅠ

중요한 일을 하시나봐요!
07/04/24 10:41
수정 아이콘
미친잠수함님// 담배는 끊는게 아니라 평생 참는거라죠 - -;;
OrBef님// 뭐, 행복의 기준이 어디 있느냐... 하는게 요점인거죠. 예를 들어서 슈바이처나 테레사 수녀님, 나이팅게일... 같은 사람들이 행복했느냐 아니면 불행했느냐.. 이런 논란이랄까? ;;

그리고, 양심이 안팔리는건, OrBef님이 양심적인 사람이라 그렇습니다! (이런 무한반복...)
홍승식
07/04/24 11:18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행복총량불변의 법칙을 믿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일생동안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총량은 누구나 다 동일하다는 거죠.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 따라서는 다르겠지만, 개개인이 평생동안 느끼는 행복의 총량은 모두 같다고 믿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행복한계효용의 법칙이 큰 원인이 되겠지만요.
07/04/24 11:30
수정 아이콘
홍승식님/
행복감을 얼마 이상 못느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근데 그 경지에 못가보는 사람은 꽤 많은거 같아서.. '정의'를 규정하긴 힘들어도 '악'한 사람은 많고, '행복'을 규정하긴 힘들어도 '불행'한 사람은 많고.. 그렇지 않나요?
07/04/24 12:31
수정 아이콘
이곳에 들어와서 몇줄 끄적거리는 것도 행복인 것 같습니다.

종종 주위에 자긍심이 지나쳐서 자만심이 되었다가 자괴감으로 변하는 것을 많이 봐왔습니다. 사회생활에 있어서 자긍심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의 겸손 역시 중요한것 같습니다..
아 내가 무슨 말을 하는거지..식곤증이 오고 있네요.
엘케인
07/04/24 13:01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본문과 댓글에 대한 감상이라도 적을라 하니
벌써 1시.. 점심시간 종료네요.
아쉬워라~
홍승식
07/04/24 13:10
수정 아이콘
OrBef 님//
인간극장 같은 다큐프로그램을 보거나 주의의 어려운 분들을 보다보면 작은 것에서 큰 행복을 느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 입장에선 그 힘든 와중에 겨우 저런 것이 무에 그리 대단하냐 라고 생각하지만 그분들은 또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행복이라는 게 사실 상당히 주관적이어서 나에게는 10의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도 누군가에게는 100이 될 수도, 1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07/04/24 13:40
수정 아이콘
예전에 '가족'이란 한 여성 작가가 지은 소설이 있습니다.
지금은 절판되어 저도 구하지 못하는 소설인데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소설입니다.

거기서 주인공(평범한 가정주부)이 어느날 집밖에서 배란다 창문을 통해집으 무심코 들여다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무심콘 본 집 안이 그렇게 행복하고 즐거워 보인다는 사실에 놀라는 본인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구성원에 속해 있는 자기자신은 행복하다는 사실을 모른채 살아왔는데 말이죠. 이처럼 행복은 파랑새처럼 옆에 있지만 자기자신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 진실인 것 같습니다.

전 OrBef님과는 조금 다르게 그 사람이 행복한지 불행한지는 그 사람만이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시 10년을 넘게 시도를 했던, 대학을 10년 다녔던 그런것과 상관없이 본인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만족한다면 그게 행복한게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집착인지 자긍심인지는 본인만 판단할수 있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주변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그러지 말아야겠지만요. -_-.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다면 너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충고하겠지만 현실은 거의 그렇지 않겠죠.
sway with me
07/04/25 14:16
수정 아이콘
sylent님//
저는 음악을 잘 알지는 못하기에 서태지가 음악적으로 천재인지 어떤지 잘 모르지만,
그 시대에 그런 음악을 할 생각을 했다는 것,
그리고 그 나이에 '환상 속의 그대'와 같은 가사를 썼다는 점만으로도 보통 사람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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