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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10/12 05:56:08
Name 대장햄토리
Subject [일반] 노스포] 달리는 인간들의 찬가 - 영화100m가 보여준 ‘나다움’의 진짜 의미.

귀주톱(귀멸의 칼날, 주술 회전, 체인소 맨)의 강세가 계속되는 가운데 (롯데시네마 단독) 100m를 관람하고 왔습니다.
예고편만 보면 스포츠물인가..? 싶지만 형식만 빌어오고
달리기를 통해 무언가의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 이유, 마음가짐 같은 철학적인 주제가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의외로 작가가 젊고 철학과 출신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작가의 다른 장편 작품인 지.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 를 봐도 그렇고 대체적으로
이런 묵직한 내용을 다루면서 본인이 생각하는 철학을 작품에 잘 녹여내는 작가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렇다 보니 100m 원작의 백미는 인물들 간의 독백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2시간여 남짓의 극장판으로 담아내면서 독백과 일부 에피소드를 과감히 덜어냈고
확실히 인물들 간의 서사 부분이 부실해지면서 왜 여기서 이런 대사가 나오지? 왜 저런 행동을 하지?라고 느끼실 수도 있긴 합니다.
(연결고리가 살짝 부실)
그 대신 영상미와 핵심 메시지는 잘 유지하면서 각색했습니다.
달리기 장면들도 꽤나 볼만하고 음악들도 너무 좋았습니다. 흐흐
보고 나면 뭔가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게 있는 그런 영화입니다.
메시지에 힘이 있는 좋은 작품이니 여유 있을 때 한 번쯤 감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영화를 보고 -> 마음에 들면, 원작을 읽어 본다.를 노린 거 같기도 합니다. 원작도 추천드려요!)


(한국어 자막 켜시면 나옵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엔딩 크레딧과 함께 울려 퍼지는
Official髭男dism(이하 히게단)의 らしさ(나다움)
그 순간, 작품이 던지고자 한 모든 메시지가 하나로 모입니다.
(작품 전체가 품고 있는 철학을 가장 농축된 언어로 전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히게단 팬이 아니시더라도 꼭 크레딧까지 다 보고 오시면 좋겠어요. 여운이..)
히게단의 보컬인 사토시는 가사를 섬세하게 쓰기로 유명하고 가사를 그냥 흘려보내긴 아까우니 조금 들여다보면

이 노래는 나(僕), 너(君) 두 인물을 통해서 우리 내면의 빛과 어둠, 이상과 현실이 끊임없이 부딪히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僕)는 이상을 좇고, 끝없이 도전하려는 자아고 현실의 벽에 부딪혀도 납득할 수 없고, 타협하지 못합니다.
반면 너(君)는 현실을 직시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타협하려는 또 다른 나, 즉 어두운 자아이자 자기방어 본능입니다.
이 둘은 끊임없이 충돌합니다.
너 어차피 1등 못 해, 세상은 넓고 천재는 많아, 그냥 즐겜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이런 현실의 목소리들이 ‘너’를 통해 들려오는데 화자인 '나'는 그 위로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왜냐면 납득이 되지 않거든요..
그래서 “僕はやっぱ誰にも負けたくないんだ” 라는 구절
(“역시 나는,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
는 단순히 승패를 떠나서 "도전하지 않으면 나도 없다." 라는 나라는 존재의 의의를 말하면서
비록 부적합한 장점이라 불릴 만큼 세상과 엇나가도, 그 모순된 자질 속에서만 ‘나다움’이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참 좋다고 느낀 구절인데,
작금의 현실을 찔렀다고 생각한 부분입니다.
「オンリーワンでもいいと 無理やりつけたアイマスクの奥で…」
(‘온리 원이라도 괜찮아’라고 억지로 안대를 쓰고…)
이 구절은 단순히 자신을 사랑하자는 따뜻한 위로가 아니라, 그 위로를 억지로 믿으려 애쓰는 피로감을 보여줍니다.
요즘에 우리는 너는 유일한 존재(온리 원)라는 위로 많이 듣지 않습니까?
비교하지 말고 너답게 살아, 1등 아니어도 괜찮아, 너 자신을 사랑해. 같은..
사토시는 저 구절에서 말합니다.
이런 말들은 분명 긍정적인 위로처럼 들리지만,
반복되다 보면 현실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패배를 합리화하는 주문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1등이 안 돼도 괜찮아 → 넌 어차피 1등 못 하니까 → 그걸 인정해처럼)
긍정의 메시지가 어느 순간 패배를 감싸는 포장지처럼 변한 거라고

그래서 화자는 억지로 안대를 씁니다
온리 원이라도 괜찮다는 말을 진심으로 믿어서가 아니라, (억지로 스스로를 속이기 위해서)
그게 바로 가사 속 다음 구절
無理やりつけたアイマスク 인데요..
(무리하게 안대를 쓴다)
안대는 상징적으로 현실을 보지 않기 위한 도구 ->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자신을 위로하지만,
그 위로는 현실 회피에 가깝고, 결국 눈을 가린 채 잠조차 못 이루는 자신(=현실을 외면했지만 마음이 불편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자기 긍정의 말들조차, 현실의 고통을 덮는 가짜 위로가 되어버린 시대 아닌가?라고
(사토시는) 이러한 위로의 허상을 짚어 내고 있습니다.
보통의 노래는 너를 믿어, 괜찮아, 너답게 살아 같은 위로를 긍정적으로 다루지만,
거기서 현실의 모순을 짚어내면서
오히려 ‘자기 긍정’이라는 말이 지치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진짜 힘이 되지 못할 때가 있다는 걸 한 줄로 함축시켜버렸습니다.
(즉, 너답게 살아라는 말조차 - 정말 내가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진짜 나로 살고 있나?)

하이라이트 부분으로 가면서
“君と僕のものだよ全部”
“기쁨도, 슬픔도, 불안도, 기대도, 절망도, 절정도 전부 너와 나의 것이야.”
는 이상과 현실, 희망과 절망, 그 모든 감정이 나를 완성시킨다는 의미고
‘너’ 또한 '나'의 일부이기에, 빛과 그림자를 통째로 껴안는 순간 진짜 의미의 나다움이 완성된다.
나다움이란 상처를 피하지 않고, 타협 대신 도전을 택하며,
그 안에서 울고 웃는 나의 전체를 사랑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 노래는 자기 계발이나 승리의 찬가가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달리려는 인간에 대한 찬가입니다.
사토시(작사·작곡)의 말처럼,
“무엇을 향해 전력을 다해 달리고, 결과가 나오면 기뻐하고,
그렇지 않으면 필사적으로 분해하는 것 그게 인생의 묘미 아닐까요.”

TMI. 작품은 초등~사회인의 긴 사이클을 그리지만 읽고 나면 순식간인데
그러한 감각을 음악에도 담고 싶다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제작하면서 러닝 할 때의 심박수와 같은 BPM(165)에 맞춰졌다고 합니다.
후렴은 일부러 다른 멜로디보다 음을 낮추었는데
후렴은 곡의 얼굴이라서 키를 낮추면 밋밋하게 들릴 위험도 있지만,
“가장 마음이 담긴 건 이 높이다”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은근히 러닝이나 운동할 때 듣기 좋습니다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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눕이애오
25/10/12 07:57
수정 아이콘
원작을 안 보고 영화만 봤는데 주제의식이나 영상미는 좋지만 대사같은 게 좀 자연스럽지 않단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장햄토리
25/10/12 13:43
수정 아이콘
원작에 비해 영화화는 덜어낼 걸 덜어내고
좀 담백하게 가면서 관객들에게 여운을 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씀해 주신 것처럼 뭔가 그 삐그덕 거리는 느낌들이 있긴 하더라고요..)
원작과 큰 틀만 같지 디테일적으로 많이 다르긴 해서
영화가 나쁘지 않았으면 원작도 보면 많이 좋을 거 같더라고요 흐흐
25/10/12 08:14
수정 아이콘
재밌게 보고왔습니다. 애니계의 F1같았어요, 그리고 주인공이 놀이터에서 보여주는 장면은 참.. 
대장햄토리
25/10/12 13:40
수정 아이콘
영화화의 장점이라고 해야되나
저도 그 장면 참 좋았습니다..흐흐
뉴민희진스
25/10/12 09:38
수정 아이콘
불호까진 아닌데 엄청나게 재미있진 않았네요

인생철학 같은 애니였어요
명언이 너무 많이 나오고...

그냥 굳이 시간내서 보러 갈 정도는 아닌거 같아서 비추천입니다. 귀찮은데 몸 이끌고 갈 정도는 아니라는거...
시린비
25/10/12 10:38
수정 아이콘
놀이터씬도 원작에선 뭐뭐하다가 다시 뭐뭐하던씬인데 극장판선 그냥 뭐뭐하던가요 그게 더 처절했던것도 같고
마지막 10초도 원작은 무슨 레이싱처럼 중계진이 벌써 세번째로 나란히 어쩌고 하던데 100m라는걸 생각하면
그냥 극장판의 표현이 더 좋았던것도 같으면서도 그래도 삭제된 나레이션들이 아쉽기도 하고요
여하튼 개인적으론 볼만했습니다. 주제가야 뭐 당연히 좋은 부분이 많아서..
대장햄토리
25/10/12 14:05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는 원작 팬분들의 입장에선 많이 아쉬울 거 같긴 하더라고요..
스토리나 메시지의 강점이 많은 작품인데
영화화로 얻은 장점에 비해 깎인 장점들이 너무 크게 다가온다고 해야 되나..
의견들이 일견 이해가 가더라고요..
그래도 뭐 만들어 준게 어디냐? 는 의견도 있고..흐흐
주제가는 히게단이라는 팀의 스토리도 있고.. 그냥 작품의 일부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진짜 너무 잘뽑힌 느낌..
25/10/12 12:15
수정 아이콘
놀랍네요. 이게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다니. 같은 작가의 테니스 단편 만화도 기억나네요.
대장햄토리
25/10/12 13:59
수정 아이콘
지.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 도 애니화 됐으니..
100m 도 언젠간 나올 거 같다 싶긴 했습니다 흐흐
퍼블레인
25/10/12 12:17
수정 아이콘
최훈의 잡념주자라는 만화가 생각나네요
25/10/12 12:38
수정 아이콘
요즘 일본 영화 음악등 한국으로 오는 문화가 힘이 강해지는게 느껴지네요.

한국 영화는 나이든 작가들이 선수입장 예술놀이 흥행공식 타령하다 투자금만 잡아먹고 창고 직행 또는 OTT용으로 망해가고 음악은 아이돌과 트로트만 괜찮고 말라가는데요.

일본은 저점까지 가니 반등하는게 아닌가 하네요.
알카드
25/10/12 13:41
수정 아이콘
전 너무 좋았습니다. 최선을 다해 쟁취해내겠다는 과거의 저도 떠오르면서, 또 다른 나의 목소리에 타협하려고히는 요즘 모습도 반추하게 되기도 했네요.

특히 엔딩곡 라시사는 멍하니 계속 듣게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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