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까지 콘스탄티누스라는 사람이 디오클레티아누스가 4등분한 제국을 다시 하나로 통일하는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가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긴 것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콘스탄티누스의 말년을 따라가 보면서 그의 행적을 "저"의 눈으로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일단, 콘스탄티누스가 왜 비잔티움을 수도의 적임지로 삼았는지 논할 것입니다. 이전 글에서 저는 콘스탄티누스가 왜 비잔티움을 수도로 정했는가 고민했습니다.
1. 헬라스어권이다 : 이전글에도 밝혔듯이 알렉산드리아나 에페소스같은 도시들이 더 크고 번성했습니다.
2. 헬라스 문화권이다 : 비잔티움은 헬라스 문화의 변방이었고, 헬라스 문화권이라면 역시 코린토스나 아테네같은 도시가 위의 조건도 만족시켰을 것입니다.
3. 두 대륙의 연결점이다 : 역시 비잔티움 건너편에는 크리소폴리스, 칼케돈이라는 도시가 있었습니다.
4. 동부에 속했다 : 이것 역시 알렉산드리아나 에페소스, 아니면 코린토스가 더 적임지였을 것입니다.
5. 방어가 쉬웠다 : 물론, 비잔티움이 마르마라해와 골든혼이라는 존재로 인해 방어하기가 쉬웠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와 싸웠던 디라키온 역시 공격하기가 까다로운 도시였습니다. 또한, 디라키온에서 브린디시까지는 해로로 얼마 안되는 거리였습니다.
6. 자기 입맛대로 다룰 수 있는 소도시다 : 그렇다면 차라리 새로 도시를 하나 만들어서 '새 로마'라고 불러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콘스탄티누스는 대체 왜 비잔티움을 새로운 로마로 만들었을까요? 저의 가설은 이렇습니다. 도시의 외적인 면보다는 콘스탄티누스라는 사람의 성격에 원인이 있지 않았을까요? 콘스탄티누스의 행적으로 미루어볼 때, 그는 상당히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본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것도 추측할 수 있습니다. - 이것은 저의 가설입니다. 다른 생각도 충분히 있습니다. - 아마도 리키니우스와 비잔티움에서 싸웠을때, 그는 비잔티움을 직접 보게 됩니다. 물론, 싸움은 그의 아들인 크리스푸스가 주로 했습니다만...... 어쨌든 그 때의 경험으로 인해 그는 새로운 로마로 비잔티움을 정한게 아닐까요?
324년, 콘스탄티누스가 제국을 통합한 이후, 또다시 새로운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군사적인 문제가 아닌 종교적인 문제입니다. 바로 아리우스의 일입니다.
인간은 서로의 철학이 달라도 같이 살 수 있고, 친하게 지낼 수도 있습니다. 사상이 다른경우에도 서로가 같이 지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의 종교가 다른경우에는 어떻게 될까요? 특히, 다신교가 아닌 일신교를 믿는 사람 둘이 있을 경우에는?
같이 지내기도 힘든 경우가 발생할 것입니다. 게다가 같은 종교를 달리 해석하는 사람들이라면 싸움이 나기 쉽습니다. - 그중에서도 특별한게 바로 크리스트교입니다. -
그럼 아리우스는 대체 어떠한 주장을 했기에 그렇게 커다란 문제를 일으켰을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주장이었습니다. 현대 크리스트교, 비록 지금은 로마카톨릭교와 정교, 프로테스탄트교로 나뉘어져있지만, 이 세 분파가 공통으로 인정하는 것, 아니 인정해야만 하는 것은 바로 삼위일체입니다. 신은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세 위격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은 하나라는 것.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론입니다.
하지만, 아리우스는 그 중 예수 그리스도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신에 무한히 가까운, 신의 종으로서만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 했습니다.
- 더 이상 이야기하다가는 짧은 밑천이 드러날것 같아서 이만 줄입니다.
어찌 되었든, 콘스탄티누스는 이 상황을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수밖에 없는 이유가 동방의 도시 - 특히 알렉산드리아 - 에서 아리우스파와 반 아리우스파가 싸웠기 때문입니다.
결국, 콘스탄티누스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또한 앞으로 있을 일들의 시범이 될 제 1차 에큐메니컬 공의회를 소집하게 됩니다. - 에큐메니컬은 세계적인이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
처음에 정한 장소는 앙키라였지만, 결국 니케아로 옮겨지게 됩니다. 그리고, 325년 제 1차 니케아 에큐메니컬 공의회에서는 아리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성부는 동일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흔히, 잘못 알고 있는 역사상식중 하나가 니케아공의회에서 삼위일체론이 채택되었다는 것인데, 삼위일체론은 아직 채택이 되지 않았습니다. 니케아에서는 단지, 성부 = 성자라는 결론을 내렸을 뿐입니다.
하지만,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이 죽기까지 아리우스 주의와 반 아리우스 주의를 계속해서 양립시켰기 때문에 아리우스의 이론은 소멸되지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왜 이러한 행동을 했을까요? 그가 신학을 잘 몰라서였을까요? 아마도 그는 황제의 권력을 크리스트교가 위협하게 방임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리우스파와 반 아리우스파를 계속해서 충돌시켜 크리스트교가 황제를 위협하는 권력을 지니지 못하게 하도록 자신이 솔선수범하여 아리우스 주의와 반 아리우스 주의를 왔다갔다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다음해 콘스탄티누스 가정에는 비극이 닥치게 됩니다. 바로 큰아들인 크리스푸스를 처형시키고 그 다음에 아내인 파우스타를 처형한 것입니다. 그 이유로는 둘이 간통을 했다는 등의 가설들이 있자만, 일단은 넘어가겠습니다.
다사다난했던 3년 - 324 ~ 326년 - 이 지나가고 330년, 드디어 콘스탄티누스는 비잔티움으로 수도를 옮기게 됩니다. 그 곳에 세워진 주요 건축물들은 일단 생략하겠습니다. 하지만, 성 사도 성당은 꼭 기억을 해야 할 것입니다.
337년, 콘스탄티누스는 사산 페르시아를 공격하러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동안 처리했던 일들의 피로와 노령등 여러가지 요인이 겹쳐 결국은 쓰러지게 됩니다. 소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콘스탄티누스는 니코메디아의 주교인 에우세비우스에게 세례를 받고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감하게 됩니다.
우리는 3부에 걸쳐서 콘스탄티누스라는 사람이 걸어온 길을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가 했던 일들이 좋은 결과를 낳았는지 나쁜 결과를 초래하였는지는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그가 했던 일들이 결국에는 로마제국의 진로를 바꾸게 되었고, 더 나아가 세계를 바꾸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살펴본 콘스탄티누스는 상당히 세밀하고, 자신과 그 주위의 몇몇만 믿었으며, 자신의 권력을 침해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제거해 버린 냉혹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있는 비잔티움 제국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2회에서는 콘스탄티누스가 죽고난 후, 로마제국이 동과 서로 결정적으로 분할되는 이야기를 다루게 될 것입니다.
P.S : 콘스탄티누스가 행했던 일들중 더 중요하지만 덜 알려진 것으로는 노미스마 금화의 주조가 있습니다. 앞으로 1000년간 제국및 지중해 세계의 금융과 유통을 책임질 화폐입니다. (헬라스어로는 노미스마, 라틴어로는 솔리두스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