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5/04/06 22:05:16
Name Thenn
Subject [일반] [단편] 세상 가장 편한 인생을 산 사람 이야기 (수정됨)
내 어린시절 우리 동네에서 제일 부자는 윤씨 할아버지였다.
항상 하얀 모시에 노란 모자를 쓰고 다니던 할아버지는 오래된 소나타를 타고 갈색 지팡이를 짚고 다니셨다.
멀리 땅을 보러가거나 일이 있을 때는 자기 차는 두고 부동산 아저씨 차를 얻어타고 다녀 있는 사람이 더하다며 구두쇠라는 소리를 들었다.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도 있었지만 땅을 사고 팔기를 잘 하고 사업하는 사람들에게 큰 돈도 빌려 주며 당시에도 수십억대 부자라는 소문이 있었다.

그런 윤씨 할아버지에게도 고민이 있었으니 늦으막히 낳은 윤씨 아저씨 였다. 윤씨 할아버지가 왜 늦은 나이에 아들만 하나 낳았는지는 모르지만 (재혼 했다는 이야기도 나중에 듣기는 했다.) 끔직히도 아끼는 아들이 어린 내가 보기에도 좀 못 미더웠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윤씨 아저씨는 항상 술자리 분위기 메이커였다. 젊은 시절에는 나름 사업한다고 이런 저런 일들도 벌여 보기도 하였으나 오래 가지 못했고 본인이 좋아하는 친구들과 무리지어 낚시를 다니고 술마시는 게 일이었다.

우리 아버지도 함께 어울리는 무리 중 하나 였는데 술자리에 심부름을 가면 윤씨 아저씨는 용돈도 시원시원하게 주고 항상 즐거워보이셨다.

그런 아들을 둔 윤씨 할아버지는 걱정이 많았었다. 아무리 많은 재산이라도 잃는 것는 쉬운 일이다. 그래서 윤씨 할아버지는 며느리 감을 직접 골랐다. 이 근방에서 예쁘지는 않아도 제일 야무지고 똘똘한 아가씨로.

윤씨 할아버지는 믿음직한 며느리에게 시내 큰 식당을 차려주었다. 윤씨 아저씨는 가게에 가끔 얼굴이나 비추고는 말았지만 아주머니는 식당을 잘 운영했고 이내 사람들이 넘쳐났다.

시간이 흘러 윤씨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게 되었고, 그가 윤씨 아저씨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은 ‘절대 사업 같은거 하지 마라.’ 였다고 한다.
자식들도 잘 되었다. 할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야무진 엄마를 닮아서인지 아들은 명문대를 나와 변호사가 되었고, 딸은 학교 선생님이 되어 의사랑 결혼했다.

윤씨 아저씨는 그냥 매일이 즐거운 술자리 이었다. 항상 그렇게 취해있는 사람의 몸이 멀쩡할리 없었다.
요새 나이로는 젊은 60대에 간암 판정을 받고는 얼마지못해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장례식장을 다녀오며 그래도 윤씨 아저씨는 ‘세상 가장 편하고 즐겁게 인생 살다 간 사람’ 일 거라고 한다.

‘인생이란 참 고행이다‘ 라고들 한다.
부자집 외동 아들에 잘 된 자식들. 아저씨는 그래도 참 편한 길을 걸으셨다.
하지만 그 인생이 썩 부러운 인생은 아닌거 같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밥과글
25/04/06 22:20
수정 아이콘
전 부러움..음주가무는 몰라도 가정의.평화까지..
25/04/06 23:22
수정 아이콘
부럽진 않지만, 자기 위치에 맞게 인생을 잘 살다 가신 것 같아요...
데몬헌터
25/04/07 12:32
수정 아이콘
낭비 안하며 사는 거도 최소한의 능력이긴 합니다
25/04/07 13:29
수정 아이콘
가정을 잘 지키고 자식들도 훌륭히 키웠으니 인간으로는 훌륭한 인생이네요. 부모님 + 배우자를 잘 만난덕도 있지만 그걸 잘 지키는 본인 능력이나 성격도 분명히 있었을테니 말이죠.
수리검
25/04/07 14:33
수정 아이콘
너무 부러운데요

하고 싶은 거 맘껏 즐기면서
자식 장성한 거 다 보고 갈 수 있다니
김꼬마곰돌고양
25/04/07 18:54
수정 아이콘
(수정됨) 엌 너무 부럽따..
근데 윤씨 아저씨도 자기 객관화 잘되고
영리하신거 같은데요 흐흐

놀거 다 노는데 집안 말아먹지 않음
부모님이 추천한 인연, 마음에 안들 수도 있는데 잘 지냄
자식 잘키움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4203 [일반] [노스포] 미션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후기 - 오타쿠는 오마쥬랑 수미상관에 약하다구 [26] 헤세드7126 25/05/20 7126 4
104202 [일반] 중국인 흉기난동 사건: 말해도, 말하지 않아도 혐오는 커진다 [76] 계층방정13431 25/05/20 13431 23
104201 [일반] 어떤 일본 축구선수의 만화와도 같은 생애 [42] 無欲則剛11006 25/05/20 11006 27
104200 [일반] SKT 해킹사태 2차 조사결과 IMEI 유출 가능성 발견 [81] 윈터13899 25/05/19 13899 7
104199 [일반] 책 후기 - <1973년의 핀볼> [9] aDayInTheLife7507 25/05/18 7507 5
104198 [일반] 광무제를 낳은 용릉후 가문 (7) - 미완의 꿈, 제무왕 유연 (6) [3] 계층방정6306 25/05/18 6306 4
104197 [일반] 태양광 산업 기사회생? [113] 如是我聞16329 25/05/18 16329 8
104195 [일반]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스트 액션 히어로. (노스포) [93] aDayInTheLife13112 25/05/17 13112 7
104194 [일반] 미신에 대한 생각 [25] 여기9537 25/05/17 9537 14
104193 [일반] AI 음악 딸깍! 도전해보기 [11] 여행의기술8885 25/05/16 8885 8
104192 [일반] 닭비디아 주가 [43] 퀀텀리프17790 25/05/15 17790 0
104191 [일반] <해벅> -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보인다는 것. (노스포) [7] aDayInTheLife8100 25/05/16 8100 1
104190 [일반] 북한은 과연 김주애가 권력을 승계받는게 가능할까요? [69] 독서상품권14717 25/05/15 14717 2
104189 [일반] 어쩌면 PGR의 미래? [45] bifrost10805 25/05/15 10805 4
104188 [일반] 중동외교의 대전환을 꾀하는 듯한 트럼프 [30] 크레토스9746 25/05/15 9746 1
104187 [일반] 유나이티드 헬스그룹의 행보가 매우 심상치 않습니다 [24] 독서상품권18468 25/05/15 18468 6
104186 [일반] 더 적게... 더 적게! 46키 키보드 [63] Kaestro8832 25/05/15 8832 12
104185 [일반] AI Agent와 MCP [12] 모찌피치모찌피치6115 25/05/14 6115 5
104184 [일반] 일본 여행중 지갑 잃어버렸다 찾은 썰.ssul [27] 오징어개임8386 25/05/14 8386 9
104183 [일반] 본조비... [38] a-ha10849 25/05/13 10849 5
104182 [일반] 걸레빤 물.. 평양냉면을 먹고 오다. [107] 김삼관13247 25/05/13 13247 4
104181 [일반] 고양국제꽃박람회에 다녀왔습니다 [11] 及時雨6789 25/05/13 6789 5
104179 [일반]  '주호민 아들 아동학대 혐의' 특수교사 항소심서 무죄 [205] 퍼그21266 25/05/13 21266 13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