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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1/13 14:31:34
Name 글곰
Subject [일반] 베텔게우스(Betelgeuse)와 시간
1. 과학적 사실

베텔게우스는 오리온자리의 알파성입니다. 해당 별자리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은 리겔이지만 인지도는 바닥에 가깝지요. 반면 베텔게우스는 어마어마한 크기(지금 태양의 위치에 갖다 놓으면 지구는 물론이고 화성 궤도도 너끈히 집어삼킨 후 소행성대마저 한입에 해치우고 목성 근처에까지 갈 정도입니다)에다 지구에서 상당히 가까운 거리(643광년), 그리고 그 덕분에 밤하늘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밝기, 마지막으로 왠지 멋들어지게 들리는 이름까지 곁들여져 여러모로 유명한 별입니다. 변광성이라는 특징도 인상적이지요.

그런데 이 별은 조만간 초신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천문학자마다 견해가 다르지만 길게는 10만 년에서 짧게는 수십 년 안에 폭발한다는 거지요. 혹은 지금 이 순간에 이미 베텔게우스는 수명을 다하고서 화려하게 터진 이후고, 지금은 그 빛이 지구까지의 643광년 거리를 달려오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2. 음악적 감상

베텔게우스는 일본 가수 유우리의 명곡입니다. 목소리는 아름답고, 운율은 섬세하며, 가사는 서정적입니다. 빛이 우주를 가로지르는 동안, 별 자신조차 잊을 만큼 아득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전해지는 별빛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앞선 단락에서 643광년 떨어진 베텔게우스는 상당히 가까운 별이라고 언급했었지요. 하지만 643광년을 킬로미터로 환산하면 대략 6083조 2496억 9386만 9454킬로미터에 해당되고, 사람이 걷는 속도로 치자면 먹지도 자지도 않고 지구의 나이보다 38배나 긴 1736억 년 동안 걸어가야 합니다. 한낱 인간으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이 머나먼 거리이자 짐작할 수조차 없는 유구한 세월이지요. 그런 영겁의 벽을 지나 마침내 지구에까지 도달한 베텔게우스의 별빛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들에게 있어 그야말로 마법과도 같은 존재가 아닐까요.



3. 개인적 소회

주말에 강원도에 갔다가 우연히 겨울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형편없는 시력에도 불구하고 별자리들 몇몇을 어렵잖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겨울철 별자리라면 단연 오리온자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붉은 베텔게우스와 푸른 리겔은 확연히 눈에 띄고, 오리온의 허리띠에 해당하는 세 별들은 일렬로 늘어서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게다가 요즘은 별지도 어플이 워낙 잘 나와 있어서 굳이 별들의 이름을 외우지 않더라도 쉽게 확인할 수 있지요.

추운 날씨였지만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딸아이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달 옆에 목성이 밝게 빛나고 있고, 반대쪽에는 붉은색 화성이 보이며, 카스토르와 폴룩스 쌍둥이 별이 위아래로 나란히 있고, 저곳에 바로 오리온자리가 자리 잡고 있다고요. 어두운 별들이 눈에 띄지 않은 탓인지, 혹은 별자리의 크기가 너무 컸던 탓인지, 처음에는 잘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잠시 끈기를 가지고 가르쳐 주자 곧 알아보더라고요.

별자리를 알아보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특히나 더 그렇죠. 옛 그리스 사람들이 밤하늘을 쳐다보며 엮어낸 이야기들을, 이천여 년이 지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천 년이면 우주의 관점에서는 찰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껏해야 백여 년을 사는 게 고작인 인간 개개인에게는 흡사 영원이나 마찬가지인 시간이지요.

세월이 흐르면 딸아이도 제 나이가 될 것이고, 다시 자녀를 낳겠지요. 그리고 저는 언젠가 세상을 떠날 겁니다. 그런 후에도 오리온자리를 비롯한 별자리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겠지요.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딸아이가 과거 저와 함께 밤하늘을 쳐다보았던 추억을 떠올려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추위에 벌벌 떨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던 그날 밤이 가치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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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13 14:38
수정 아이콘
(수정됨) 베텔게우스... 이름은 멋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뜻이 겨드랑이인 것을 알고 좀 부끄러워졌어요.
25/01/13 14:45
수정 아이콘
으윽 베텔게우스 냄새!
사일런트힐
25/01/13 15:16
수정 아이콘
겨드랑이가 아니라 손이라 하니 안심하십쇼
25/01/13 16:48
수정 아이콘
그럼 야드 알 자우자로 부릅시다!
Betelgeuse
25/01/13 14:49
수정 아이콘
접니다
25/01/13 16:39
수정 아이콘
꼭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언제 폭발하시나요?
25/01/13 21:15
수정 아이콘
대답 들으시려면 1286년만 기다려주세요.
Pelicans
25/01/13 15:04
수정 아이콘
노래도 별도 둘 다 좋아요 :)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가이브러시
25/01/13 15:12
수정 아이콘
베텔게우스? 비틀쥬스!
25/01/13 15:19
수정 아이콘
죽기 전에 베텔게우스 폭발하는 장면을 꼭 보고 싶네요
노둣돌
25/01/13 16:01
수정 아이콘
제가 대학에 다니던 80년대엔 분명 베텔게우스가 리겔보다 밝았거든요.
변광주기가 이렇게 짧아지면 초신성 폭발이 임박한 신호라고 하데요.
우리 천년만 더 살면서 폭발장면을 기다려 봅시다
25/01/13 16:49
수정 아이콘
불과 사오십년 사이에 밝기가 급격히 변하는 건, 뭔가의 조짐이긴 하겠습니다.
저 살아생전에 폭발하는 거 볼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헬리혜성은 아슬아슬할 거 같고요.
이쥴레이
25/01/13 15:26
수정 아이콘
노래 참좋아하는데 뮤직비디오는 볼때마다 청춘과 우정이야기인지.. 뭔가 난해한 내용이라 아직도 잘 이해는 못합니다.
일반상대성이론
25/01/13 15:29
수정 아이콘
절대등급이 가장 높은 별들을 2개나 갖고 맨눈으로도 보이는 대성운을 갖고 있는 오리온자리의 위엄...
無欲則剛
25/01/13 16:06
수정 아이콘
그러나 전갈이 출동한다면
25/01/13 16:11
수정 아이콘
멋있짆아...
아델라이데
25/01/13 16:30
수정 아이콘
혹시 이미 죽었지만 살아있는 모습을 보려면 더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게 아이러니하네요.
25/01/13 16:51
수정 아이콘
삶이란, 때로는 가까이에서는 오히려 볼 수 없는 것들이 많지요.
아케르나르
25/01/13 17:13
수정 아이콘
그 아이러니에 착안해서 쓰인 '태양풍교점(호라 아키라 작)'이라는 SF소설이 있습니다. 95년에 발간된 세계SF걸작선(고려원미디어)에 실려 있어요. 관심있으시면 도서관에서 찾아보시길.
덴드로븀
25/01/13 16:34
수정 아이콘
https://youtu.be/FEP7D4BSFmo
[베텔게우스 곧 초신성 폭발? ???? | 베텔게우스를 표면까지 관측할 수 있다?!] 2022. 8. 28

https://youtu.be/e-tbkL3N_2E
[베텔게우스 100년 안에 폭발한다!? | 새롭게 조정된 초신성 폭발 시계] 2023. 6. 25.
겨드랑이 정보 보고 가시죠.
25/01/13 16:52
수정 아이콘
베텔게우스는 베텔기우스 친구인가요? 
아케르나르
25/01/13 17:15
수정 아이콘
찾아보니, 과거에는 베텔기우스라고 불렀는데, 이게 일본에서 부르던 이름의 중역이라고 하네요. 베텔게우스가 더 정확한 명칭인가봐요. 저도 나름 별 좀 보던 사람인데 베텔기우스로 많이 불러서 베텔게우스는 입에 안 붙는군요.
아케르나르
25/01/13 17:16
수정 아이콘
나무위키에서 찾아보니 베텔게우스의 상상도?가 나와 있던데... 뭔가 편도 결석 비스므리하게 생겼네요. 워낙 거대한 초거성이라 그런지 구형 유지를 못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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