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다룬 연이을 련(聯)은 실뭉치를 서로 이어 놓은 형상의 글자였다. 그런데 이 글자와 거의 뜻이 같고 소리도 같은 글자가 있으니, 바로 이을 련(連)이다. 일본에서는 상용 한자에서 聯을 제외하고 聯이 들어갈 자리에도 連을 대신 쓰고 있다. 한국에서는 連과 聯을 구분해서 쓰고 있지만, 연계(連繫/聯繫)·연동(連動/聯動)·연탄(連彈/聯彈) 등 일부 단어에서는 連과 聯을 함께 쓸 수 있다.
이는 지금만의 일이 아니다. 聯에서도 설명했지만, 옛날에도 聯의 초기 형태인 一+絲으로 連에서 파생된 호련 련(璉)을 가차해 쓴 적이 있었다.
連은 쉬엄쉬엄 갈 착(辵)과 수레 거/차(車)가 합한 회의자며, 辵은 발을 뜻하는 그칠 지(止)와 거리를 가리키는 조금걸을 척(彳)을 이어 쓴 글자다. 彳이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 좌우 반전해서 있기도 하지만 의미는 달라지지 않는다.
왼쪽부터 連의 금문, 전국시대 제나라 문자, 전국시대 초나라 문자, 소전.
그래서 連은 사람이 발로 수레를 끌고 거리를 다니는 모습을 나타낸 한자, 곧 인력거를 운행하는 모습을 묘사한 한자다. 처음에는 가마 련(輦)과 같이 쓰다가, 인신하여 연합(聯合)을 뜻하고, 또 인신하여 연속, 연루 등을 뜻하게 되었다. 한문에서 連이 연합의 뜻으로 쓰일 수 있음에도 정작 연합에는 連이 아닌 聯을 쓰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이외에도 連은 쇠사슬 련(鏈), 잔물결 련(漣), 璉 등 나중에는 連이 들어가서 만들어진 형성자를 가차해서 쓰일 수 있다.
連(이을 련, 연속(連續), 관련(關連) 등, 어문회 준4급)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連+水(물 수)=漣(잔물결 련): 연천(漣川), 청련(淸漣) 등. 어문회 1급
連+玉(구슬 옥)=璉(호련 련): 한명련(韓明璉), 호련(瑚璉) 등. 어문회 준특급
連+艸(풀 초)=蓮(연꽃 련): 연근(蓮根), 수련(睡蓮) 등. 어문회 준3급
連+金(쇠 금)=鏈(쇠사슬 련): 도련선(島鏈線) 등. 급수 외 한자
連+魚(물고기 어)=鰱(연어 련): 연어(鰱魚), 백련어(白鰱魚) 등. 급수 외 한자
連에서 파생된 한자들.
連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많지도 않거니와 역사도 짧은 편이다. 대개는 제기로 쓰이는 글자들은 옛 풍습을 반영하기 때문에 오래된 자형을 보존하는 경우가 많지만, 連에서 파생된 호련 련(璉)은 이것도 적용되지 않는다.
《논어》에서 공자가 제자 자공을 호련, 곧 종묘 제사에서 곡식을 담아 신에게 바치는 제기라고 평가했으니 호련에 쓰이는 글자인 璉도 많이 쓰였구나 하는 기대를 배신하듯이, 《설문해자》에는 璉이 나오지 않는다. 금석문에서 璉을 찾으려면 삼국시대까지 기다려야 한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옛날에는 聯의 초기 형태로 璉을 가차해서 쓴 것으로 나온다.
역사적으로는 聯 계통의 한자를 가차해서 호련을 표현했고, 連 계통의 한자가 聯 계통의 한자보다 사용이 늦음에도 결국 호련을 나타내는 한자는 聯이 아니라 連에서 파생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連 계통의 한자가 다른 성부를 쓰는 한자와 겹치는 또 다른 예로는 잔물결 련(漣)이 있다. 《설문해자》에서는 漣이 아니라 瀾을 제시하고, 漣은 瀾의 혹체라고 설명한다. 지금은 瀾은 '물결 란'이라 해서 漣과 별개의 글자로 취급하지만, 옛날에는 둘을 같은 글자로 보았다.
잔물결을 따로 표현하는 漣이라는 한자가 따로 있다니 낭만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이 글자는 일상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다. 경기도 연천군(漣川郡)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이 한자를 접할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고려 때에는 장주(漳州)였다가 충선왕의 이름인 장(璋)과 비슷한 한자였기에 연주(漣州)로 고치고 조선 태종 때에 규모가 크지 않은 고을로서 주(州)가 들어가는 이름을 천(川)이나 산(山) 등을 쓰도록 고치면서 지금의 연천이란 이름이 됐다. 그러나 장주에 들어가는 물이름 장(漳) 자는 강 이름이나 지역 이름 외에는 별다른 뜻이 없어서 漳을 漣으로 바꾼 전말을 짐작하기는 어렵다.
蓮은 지금은 식물 연꽃 전체를 가리키지만, 원래는 연꽃의 열매, 즉 연밥만을 가리키는 한자였다고 한다. 《설문해자》에서는 蓮을 부거(芙蕖)의 열매로 설명하니, 옛날에는 연꽃을 부거라고 부른 것이다. 여기에서 蕖가 '연꽃 거'이다. 지금도 흰 연꽃인 백련(白蓮)의 동의어로 백거(白蕖)라는 단어가 있다. 이렇게 원래는 식물의 열매만을 가리키는 한자가 나중에는 식물 전체를 가리키게 된 것은 예전에 설명한, 상수리나무 허(栩)의 열매 도토리였으나 나중에 뜻이 확대된 상수리나무 상(橡)도 있었다.
鰱은 한국에서는 연어를 뜻하는 한자지만, 원래의 뜻은 잉어였다. 하얀 잉어라는 뜻의 잉어과 물고기인 백련어(白鰱魚)에 아직 그 뜻이 남아 있다. 국내 서식종은 아니고 중국 원산지의 외래종이지만. 중국와 일본에서는 연어를 가리킬 때 鮭(복어 해, 어채 규)라는 한자를 쓴다. 일본에서는 일찍부터 그렇게 썼지만 중국에서는 청나라 때 나온 《강희자전》에도 鮭를 설명할 때 연어라는 뜻이 나오지 않으니 근대에 생긴 용법인 것 같다. 한국에서는 1527년에 나온 《훈몽자회》에서 鰱을 '련어 련'으로 해설하고 있고, 조선 시대의 다른 문헌에서도 연어를 동해에서 잡히는 물고기라고 하고 있다. 이로 보아 조선 시대에 이미 鰱을 한국에 살지 않는 백련어 대신 연어를 가리키는 한자로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連에서 파생된 한자들에는 '잇다'라는 의미가 부여되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의 언어생활에서 쓰이는 파생자들은 고유명사가 대부분이라 그렇게 분석되지 않는다. 그나마 漣이 이에 부합하는데, 급수 시험에 나오지 않는 또 다른 한자가 최근에 용도를 추가하게 되었다. 바로 鏈이다.
한때는 주변국과 평화롭게 공존하겠다는 자세로 나오던 중국은 최근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을 밀어내고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겠다는 야심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鏈을 쓰는 도련선(島鏈線) 전략이다. 일본과 대만을 잇는 제1도련선, 오가사와라 제도와 괌, 서파푸아를 잇는 제2도련선이 있으며, 섬을 쇠사슬처럼 이은 이 선을 기준으로 중국 해군의 작전 반경을 설정하고 해양 세력의 접근을 거부하는 군사 전략이다.
漣은 水(물 수)가 뜻을 나타내고 連(이을 련)이 소리를 나타내며, 連이 뜻도 나타내어 물결이 자잘하게 이어지는 모양에서 잔물결을, 또는 눈물이 이어지는 모양에서 울음을 뜻한다.
鏈은 金(쇠 금)이 뜻을 나타내고 連(이을 련)이 소리를 나타내며, 連이 뜻도 나타내어 쇠로 만든 이어지는 물건인 쇠사슬을 뜻한다.
이상의 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連에서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도.
요약
連은 사람이 거리에서 수레를 끌고 가는 모습을 나타낸 한자로, 이에서 연합하다, 이어지다의 뜻이 인신되었다.
連에서 漣(잔물결 련)·璉(호련 련)·蓮(연꽃 련)·鏈(쇠사슬 련)·鰱(연어 련)이 파생되었다.
連은 파생된 한자들에 '이어지다'의 뜻을 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