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커버 아트. 국내에서는 앨범 자켓이라고도 불리웠던 이 예술작품은 해당 앨범 아트를 통해 뮤지션들의 음악적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해주는 역할을 수행하며 해당 이미지가 지닌 디자인의 독창성 혹은 파격성으로 인해 아티스트들의 자체적인 정체성을 확립하는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유명한 앨범자켓의 경우에는 이따금씩 그 앨범 커버 디자인만으로도 화제가 되며 후대에도 지속적으로 언급되곤 합니다.
오늘날 디지털 싱글처럼 광디스크나 USB같은 특정한 물리적인 매체가 없는 형태의 음원이 발매되기도 하는 시대에 접어들었음에도 뮤지션이 발매하는 싱글 혹은 앨범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는 여전히 필연적으로 존재하게 되기 마련이기에 이처럼 상업적인 효과 때문이든 뮤지션들이 본인들의 음악성을 자체적으로 시각적인 수단으로 형상화하려는 목적에서든 많은 뮤지션들이 앨범 커버 디자인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본인들만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하기 위해 앨범 혹은 싱글 발매시마다 상당히 심혈을 기울여 디자인을 제작하게 됩니다.
대개 앨범 아트를 디자인 한다는 것은 음악과는 다른 영역의 예술이기 때문에 미술가 혹은 사진가 등의 전문가들에게 의뢰하는 경우가 많고 실제로 많은 뮤지션 혹은 밴드들이 디자이너들에게 앨범 아트 제작을 문의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앨범커버 디자인 역시 뮤지션들마다 제작하는 방식이 천차만별로,
매 앨범마다 각각 다른 컨셉으로 사진가 혹은 현대 미술작가들에게 요청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예 전속으로 본인들의 모든 작업물을 전부 해당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일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본의 유명 모던락 밴드인 아시안 쿵푸 제네레이션 (ASIAN KUNG-FE GENERATION)의 모든 정규/싱글앨범 디자인을 전담하는 것으로 알려진 나카무라 유스케(中村佑介). 2010년에 방영되었던 일본의 TV 애니메이션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 의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한 걸로도 유명합니다. 이러한 인연 덕분에 해당 TVA의 오프닝 테마도 아지캉이 담당했었죠.
물론 뮤지션 본인이 평소에 미술쪽에 일가견이 있거나 그림을 그릴 줄 안다면 본인이 직접 그려서 제작하기도 합니다.
앨범 커버 아트를 본인이 직접 그리는 것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요네즈 켄시(米津玄師)
보컬로이드 프로듀서인 하치(ハチ) 명의로 하츠네 미쿠나 GUMI등의 보이스로 니코니코 동화에 본인이 조교한 곡을 투고하던 시절에는 곡 제작 및 연주 뿐만이 아니라 아예 뮤비와 자막 디자인까지 싹 다 도맡아서 제작하곤 했습니다.
▲ 보컬로이드 프로듀서 시절 하치 명의로 온라인에 투고했던 곡의 뮤비에 삽입한 본인이 그린 일러스트들.
보컬로이드 쪽에서 작곡,작사,조교와 더불어 일러스트까지 병행하는 케이스는 피노키오피(ピノキオピー)등 유사 사례들이 더러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아티스트는 과거 90년대 초,
헤비메탈의 극단적인 대안으로 급부상했던 데스메탈씬에 있어서 역사의 산증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영국 태생의 화가 대니얼 시그레이브(Daniel Seagrave), 통칭 댄 시그레이브입니다.
시그레이브는 1970년 영국에서 태어났고 이후 캐나다에 주로 거주하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작품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화가입니다. 본업은 미술 분야이지만 이쪽 계통 예술가들이 으레 그러하듯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음악, 체육 등 다양한 영역을 두루두루 섭렵하는 경향이 있는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시그레이브 역시 영화제작, 음악활동, 프로듀싱 등의 영역에서도 크게 관심을 가지고 오랜 시간에 걸쳐 왕성하게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습니다.
본인 스스로의 예술관과 내면의 의식을 투영한 Temple 시리즈를 비롯해서 (해당 작품은 작가 본인에 따르면 하나 제작하는 데에 1년 이상 소요되기도 한다고) 다양한 밴드와 뮤지션들의 의뢰를 받아 앨범 커버 아트를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며,
특히 앞서 언급된 것처럼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부터 시작된 올드스쿨 데스메탈 거장들의 명반을 주로 맡아서 제작한 것으로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화풍에서 보여지는 가장 큰 특징은 작품을 보자마자 느껴지는 극한에 다다른 매우 세밀한 묘사와 압도될 수 밖에 없는 장엄하고도 놀라운 스케일에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러한 놀라운 디테일들을 CG가 아닌 직접 브러쉬 및 물감 등의 전통적인 기존의 채색도구를 이용한 작업방식을 고수함으로써 핸드메이드가 보여줄 수 있는 특유의 색감 및 묘사를 여감없이 보여주며, 극단적인 색감의 대비 등으로 인해 더욱 강렬하게 이미지를 뇌리에 박히게 합니다.
그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묘사되는 형상들은 압도적이면서도 대부분 극단적으로 왜곡되어 불길하면서도 위태로운 느낌을 선사하며 거기에 전반적으로 칙칙한 채도와 색조를 활용하여 이러한 불안감을 더욱 증대시킵니다.
패턴, 문양, 고딕, 건축 등 구조적인 요소에서부터 기계문명, 괴수, 흑마술 같은 오컬트적인 요소까지 포함해서 대놓고 고어틱한 컨셉으로 디자인을 구축할때도 있는데 이런 그의 아트워크를 보고 있자면 마치 다크소울 시리즈의 세계관을 그대로 화폭에 묘사한 듯한 느낌을 선사받기도 합니다.
죽음, 악마, 혼돈, 허무, 공포, 폭력, 파괴 등 어둡고 과격한 이미지나 키워드를 음악적인 모티브로 주로 차용하는 데스메탈이라는 음악에 있어서 이러한 시그레이브 특유의 화풍과 본인이 추구하는 예술관 등이 함께 더해지면 그야말로 장르적으로 최적의 시너지를 불러 일으키게 되어 시그레이브는 벌써 30년이 훨씬 넘는 세월동안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북미, 유럽을 주무대로 활동하는 대표적인 데스메탈 밴드들과 연결되며 그들의 작업물에 본인의 작품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에 따르면 해당 밴드로부터 의뢰를 받아 본인이 작업한 작품을 해당 밴드가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이따금씩 있다고는 합니다.
물론 그 경우에도 받을 건(?) 확실하게 다 받는다고)
시그레이브의 방대한 작품을 여기서 다 소개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그가 작업한 앨범 아트들 중에 워낙 데스메탈씬에서 전설적인 명반들이 많아 대표적인 작품들 위주로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Dismember (Sweden) – Like an Ever Flowing Stream (1991)
Entombed (Sweden) – Clandestine (1991)
Morbid Angel (USA) – Altars of Madness (1989)
Malevolent Creation (USA) – The Ten Commandments (1991)
Suffocation (USA) – Effigy of the Forgotten (1991)
Nocturnus (USA) – The Key (1990)
Carnage (Sweden) – Dark Recollections (1990)
Benediction (UK) – Transcend the Rubicon (1993)
Gorguts (Canada) – Considered Dead (1991)
Pestilence (Netherlands) – Testimony of the Ancients (1991)
Hypocrisy (Sweden) – Penetralia (1992)
Vader (Poland) – The Ultimate Incantation (1992)
Decrepit Birth (USA) – ...And Time Begins (2003)
Becoming the Archetype (USA) – Terminate Damnation (2005)
Rivers of Nihil (USA) – Monarchy (2015)
Demon Hunter (USA) – Exile (2022)
더 많은 작품을 찾아보거나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싶다면 시그레이브 작가 본인의 홈페이지 혹은 그의 인스타그램 등에 잘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SNS쪽에는 본인이 작업하는 과정이 짤막한 릴스로 이따금씩 영상이 업로드 하곤 합니다.
개인적으로 CG보다 손으로 직접 그리는 일러스트 제작 방식을 선호하는데다가 평소 음악적인 성향과 완벽하게 일치하다보니 완전 취향저격이 된 작가 중 하나인데 혹시 자신만의 최애에 해당하는 앨범 커버 디자인이나 아티스트들이 있다면 같이 공유해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무더운 날씨가 지속되고 있는데 이럴수록 더 빡세게 메탈 들으면서 간만에 음반들도 좀 새로 사며 여러모로 예전 시절 추억들을 소환하고 있습니다. 다들 건강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p.s. 장르 특성이 특성인지라 대놓고 고어한 앨범 자켓도 몇개 그리긴 했는데 여기선 가급적이면 제외했습니다. 워낙 세밀한 묘사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다 보니 당연히 고어묘사도 끝내주게(!) 잘하는데 본인이 선호하는 스타일이 아닌지 해당 묘사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사실 이 분야의 최고봉으로는 데스메탈 역사상 최고의 상업성을 지닌 미국의 브루탈 데스메탈 밴드인 카니발 콥스(Cannibal Corpse)의 전속 앨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래픽 노블 작가인 빈스 로크(Vince Locke)라는 끝판왕이 있기도 하고.
p.s.2 블랙,데스 등 익스트림 계열 밴드들에게는 이례적인 케이스입니다만, 영국의 전설적인 데쓰레쉬 밴드였던 볼트쓰로워(Bolt Thrower)의 경우 앨범커버를 밴드명의 어원에 걸맞게 워해머4000 시리즈의 일러스트를 차용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오른쪽은 리마스터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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