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08/01 11:01:06
Name 말랑
Subject [일반] 나의 학습만화 연대기 - 유치원 -
저는 한글을 좀 일찍 떼었습니다. 한국나이로 3살에 한글을 뗐는데 제 생일이 12월 31일이니 좀 믿기 힘든 부모님의 증언이지요. 아무튼 한글을 뗐다는 것은 뭔가를 읽을 줄 알았다는 것이고, 그 뒤로 제 머리속엔 기억이라는 것이 생겨났습니다. 아직도 어릴 때 읽었던 그림책의 장면이 기억나는 것은 비단 저만의 능력은 아닐 것입니다. 아버지가 일하던 공사장 뒤편 쓰레기장에서 걸리버 여행기 책을 주워서 읽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저의 학습만화에 대한 기억은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한글 공부 겸사겸사 해서 어린 시절 제 옆에 꽂혀있던 책은 계몽사의 디즈니 그림명작입니다.

# 디즈니 그림 명작(계몽사)

MuNOcXQ.jpg

디즈니 그림명작이 학습만화라고 하면 그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이 책은 유치원 가기 전의 저에게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교양(?)을 쑤셔넣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디즈니 그림명작에서 본 내용이 명작동화였다던가, 한국에서 잘 볼 수 없는 로빈 훗이나 레이디와 트램프 같은 애니메이션의 내용이 남아있다던가... 나중에 디즈니 만화동산이 절찬리 방영할 때에는 초등학교 저학년주제에 향수의 아련한 느낌을 느꼈드랬지요.

하지만 어찌되었든 그림책은 그림책. 유아용 그림책은 놓아줄 때가 오기 마련입니다. 저는 사촌 형네 집에 놀러 가서, 커다란 문화적 충격을 받고 그림책의 시대를 접게 되었습니다. 이제 진짜 학습만화의 시대가 왔습니다. 그들은 유치원시절 제 사고와 호기심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는 지적 경험을 시켜주었습니다.

# 학습 그림 과학(계몽사)


xqbVunZ.jpg

1편부터 우주의 압도적인 그림으로 저를 압도한 과학 학습만화. 원시고대WHY?. 지금 한국의 거장 만화가 박문윤 화백의 그림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한국만화 최고의 사료. 아직도 숏컷이 이쁜 여자가 최고라는 이성적 관념을 심어준 기숙이. 전형적인 과학 학습만화로 우주, 동물, 식물, 곤충, 공룡 같은 주제와 당시 저로서는 이해가 불가능한 물리학이나 자성, 전자기, 밀리터리 같은 내용까지 빽빽합니다. 이 시대 학습만화의 흔해빠진 전개로 맨 마지막에는 미래사회의 모습을 예상하는 파트도 있지요. 줄기엔 토마토 뿌리엔 감자. 자동 번역기. 재택근무. 블라블라. 알파벳 약자의 경우 장음을 그대로 살린 표기가 구세대의 향수를 자극합니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학습그림과학 최고의 핀포인트는 과학의 불가사의입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에서 네시, 사스콰치, 버뮤다 삼각지대, 바벨탑, 아틀란티스 같은 유사과학 총집판. 빅 풋의 머리 피부 화석이랍시고 세모꼴 뚜껑 같은 것을 떡 하니 올려놓는 기괴함.

시대가 시대라서 그런가 아쉽게도 성교육이 없네요.

# 학습만화 세계의 역사(신진출판사)


5sPx6QP.jpg
이집트 피라미드부터 시작하는 전형적인 세계사 만화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봐 왔던 만화와는 궤를 달리하는 굵직한 선의 남성적 느낌이 가득한 만화지요. 사실 지금도 한국인이 그린 거 맞나? 싶긴 합니다. 일본 세계사 학습만화도 구성이 비슷하다고 들었거든요. 청동기와 철기를 넘어갈 때 대장장이의 능력을 보여주는 씬이라던가. 개인적으로 제일 인상깊었던 건 2권 말미였던가? 여자들이 상의를 다 까고 가슴 노출을 한 채로 돌아다니던 씬이었습니다. 그런 장면이 있었는데 진짜 한국인이 그린거 맞을까... 흠...

# 먼나라 이웃나라(고려원미디어)


MRqhKQN.jpg
먼나라 이웃나라 1편이 네덜란드냐 프량스냐로 세대를 구분할 수 있지요. 혹은 하드커버냐 아니냐. 한국인이 제일 잘 아는 프랑스요리는 코코뱅. 한국인은 서유럽의 봉건주의 시대를 그렇게 잘 알면서 왜 르네상스부터는 아무것도 모르나요. 6권은 왜 로마 편이 아니고 이탈리아편이죠?

먼나라 이웃나라의 힘은 재미입니다. 이 책이 그렇게 사방팔방에 오류천지에다 새로운 나라를 작업하고 개정판을 만들면서 점점 보수화된 이원복의 시니컬한 시선만 늘어남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학습만화의 지존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바로 이 구판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재미 때문일 것입니다. 만화 내내 3X5 컷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 내용 구성 및 연출을 전혀 지겹지 않게 해내는 실력은 지금 봐도 환상적입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4/08/01 11:11
수정 아이콘
계몽사 만화한국사, 만화세계사 도합 40권이 제 고교 초기까지의 국사, 세계사 점수를 책임졌었습니다. 최고예요.
강가딘
24/08/05 16:17
수정 아이콘
저도 그거보고 역사에 관심이 생겼네요
여수낮바다
24/08/01 12:17
수정 아이콘
유레카과학만화랑 먼나라이웃나라는 10번씩은 본거 같습니다

유치원-초2 사이에 본 이 책들로, 이후 고딩때까지 공부가 수월했던거 같습니다. 요즘 제 아이들에겐 Why? 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보여주게 되는데, 결국 큰 틀에서의 구성은 제가 어렸을 때 책들과 별 차이 없더군요.
24/08/01 15:48
수정 아이콘
학습그림과학 최고의 책이었죠
전쟁과 무기(?), 내일의 과학 1/2, 과학의 불가사의는 진짜 수백번 본거 같아요
니드호그
24/08/01 16:10
수정 아이콘
디즈니 그림명작은 저도 즐겨봤던 작품이지요. 어린 시절, 친척집에서 얻어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카케티르
24/08/01 21:25
수정 아이콘
신진 출판사 학습 만화는 일본거 들여온게 맞을 겁니다 고대는 괜찮은데 근현세로 오면 좀 일본틱합니다 특히 이차 세계대전 기술보면 약간 친 일본적으로 기술이 되어 있죠
nicorette
24/08/02 19:19
수정 아이콘
학습 그림 과학 아시는구나!!!
크크크 너무 반갑네요.
저도 학습 그림 과학을 몇독한지 모르겠어요.
새벽에 일어나서도 스탠드 켜고 책을 보니까 대견하셨는지 학습 그림 사회도 사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2208 [일반] [웹소설] 깊이가 있는 대역 소설 2개 추천 [21] 대장군6386 24/09/03 6386 3
102207 [정치] 김문수 노동장관, 코로나 현장예배 강행 ‘유죄’ 선고 [55] 동굴곰12701 24/09/03 12701 0
102206 댓글잠금 [일반] [LOL] PGR21 2024 LCK 서머 결승전 뷰잉 파티 안내 및 참가신청 [14] 진성4452 24/09/03 4452 7
102205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29. 나나니벌 라(蠃)에서 파생된 한자들 [8] 계층방정3428 24/09/03 3428 7
102203 [일반] 맥린이의 크래프트 맥주 입문기. [54] Yureka7487 24/09/02 7487 7
102202 [일반] 일본 천황을 천황이라고 부르는게 문제없는 이유.jpg [290] 北海道18610 24/09/02 18610 19
102200 [일반] 안녕하세요 자유게시판에는 처음 글을 올리네요 [59] nekorean13200 24/09/01 13200 34
102199 [일반]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나. [44] 푸른잔향14996 24/08/31 14996 13
102198 [일반] 파스타 실패담 후속의 후속 [17] 데갠9934 24/08/31 9934 0
102197 [일반] 명랑만화 '꾸러기 시리즈' 윤준환 작가 별세…향년 83세 [19] Myoi Mina 8287 24/08/31 8287 8
102196 [일반] 더본 코리아 코스피 상장예비심사 통과 [38] 깐부12977 24/08/31 12977 0
102195 [일반] 우리가 알던 인터넷은 이제 없다? 죽은 인터넷 이론 [22] 고무닦이7775 24/08/31 7775 1
102194 [일반] [서평]《한글과 타자기》 - 한글 기계화의 역사는 기술과 역사의 상호작용이다 [28] 계층방정3529 24/08/31 3529 10
102193 [정치] 표현의 자유를 확장 적용해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 [33] 슈테판7650 24/08/30 7650 0
102192 [일반] 다이어트 진행 중에 느끼는 일상의 재밌는 변화 [17] 피해망상7352 24/08/30 7352 3
102190 [일반] [스압] 에도 막부 마지막 다이묘들의 사진 [13] 삭제됨6744 24/08/30 6744 13
102189 [정치]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 23%…취임 후 역대 두 번째로 낮아 [101] Davi4ever14173 24/08/30 14173 0
102188 [일반] 아프리카 코인게이트 관련 주범 법원에서 15년 선고 [34] 매번같은8736 24/08/30 8736 3
102187 [정치] 정치인들에게 외모는 어느정도로 중요할까요? [112] 北海道9348 24/08/30 9348 0
102185 [일반] 두산 그룹, 두산 밥캣 합병 철회 [32] 사람되고싶다8593 24/08/30 8593 4
102183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28. 이을 련(連)에서 파생된 한자들 [4] 계층방정2512 24/08/30 2512 2
102181 [정치] 여러분의 선조의 국적은 어디입니까? [424] 항정살13618 24/08/29 13618 0
102180 [정치] 오늘 윤석열 대통령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 [157] 전기쥐14855 24/08/29 14855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