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직장 생활은 사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비참한 삶은 아닐까요? 의미 없는, 보람을 느낄 수 없는 노동은 노예 생활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노동을 하겠다고 고용주와 자발적으로 계약한 적이 사실상 없습니다. 이런 노동을 하겠다고 1시간 넘게 통근하는 것은 더한 코미디입니다.
이런 노동을 하게 하는 것은 소비입니다. 소비경제는 우리가 무한히 소비하도록 강요하고, 소비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라고 유혹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아이폰이나 젖꼭지 모양 주전자를 가지고자 우리가 살아가야 할 지구를 파괴하고, 인류가 진보할 수 있는 능력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이런 무의미한 노동과 소비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정부의 관료제와 우리의 원시 뇌입니다. 원시 뇌는 풍족한 서구 사회 속에서 살면서도 항상 풍족함을 누릴 수 없는 원시 사회 속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소비경제의 주관자들이 말해주는 속임수에 넘어가 무의미한 소비와 노동을 하게 합니다. 또 다른 족쇄는 위험을 과장하는 불안, 지위를 손에 넣어야 한다는 불안,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는 실존적 불안입니다. 소비경제는 이 모든 불안을 회피해 사람에게 안정감을 줍니다. 그 대가는 비싸고요. 심지어 글쓴이조차 이 실존적 불안을 야기하는 허영심을 억누르기 위해 본명이 아닌 필명으로 작가 활동을 합니다.
이 모든 것을 벗어난 탈출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글쓴이가 제시하는 좋은 삶을 이끄는 아홉 가지 원칙입니다. 건강, 자유 시간, 친구, 평범한 일상, 감각적 즐거움, 지적 자극, 창작 활동, 단정하면서도 품위 있는 주거 공간, 자랑스러운 습관. 여기에 근면한 노동과 소비의 극대화는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그것 없이 사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글쓴이는 노동, 소비, 관료제, 원시 뇌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먼저, 큰돈을 벌기 위해, 고용안전성을 얻기 위해 압도적인 노동시간에 파묻히지 말고, 시간제로 일하거나 투자를 하거나 자동화 사업체를 운영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이 중 자동화 사업체는 다른 사람을 소비경제의 굴레 속에 빠뜨리는 것이라 맘에 들지는 않는다고 하지만요.
소비와 관료제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단순한 삶, 미니멀리즘을 추구합니다. 먹지 못할 것은 사지도 얻지도 말고, 이용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은 물건은 버리는 것, 이 두 가지가 미니멀리즘의 원칙입니다. 빚은 미래를 위한 것이라도 절대로 져서는 안 됩니다. 학자금 대출 같은 건 의미 있는 거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글쓴이가 보기엔 이렇게 더 높은 지위를 얻고자 하는 것 자체가 소비경제의 덫에 빠지는 지름길입니다.
이렇게 소비를 줄이는 것이 무의미한 물건을 양산해 지구를 파괴하는 현대사회의 병폐를 깰 수 있는 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유가 적으면 기동성을 갖추게 되며, 이 두 가지는 관료제의 횡포를 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집도 없고 절도 없는 사람에게 공권력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한국에선 그 정도로 정부의 감시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군요.
원시 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좀 더 대단한 과업이 필요합니다. 자유 의지를 갈고닦아 자유로운 이동을 해야 합니다. 뉴스와 SNS를 끊어야 합니다. 계층 상승 욕구를 버리고 보헤미안이 되어야 합니다. 어차피 인간은 이 우주에 비하면 무의미하니 즐겁게 살다 가면 충분하다는 인생관을 가져야 합니다. 의무가 될 수 있는 일, 예를 들면 가정을 이루기 등을 그만두면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원시 뇌를 가지고 벌벌 떨며 사는 주변 사람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이 풍요로운 세상에서 있지도 않은 위협에 벌벌 떠는 원시 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글쓴이가 말하는 탈출자로 살아가는 법은 여러 나라를 떠돌 각오를 필연적으로 해야 하며, 한 나라의 국민으로 실천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보입니다. 한국은 오래전부터 제1세계의 일원이었지만 결국은 서구 사회와는 어쩔 수 없는 먼 거리를 느끼게 하네요. 예를 들어, 런던에 사는 영국인은 싼 물가와 일자리를 찾아 몬트리올이나 베를린, 지중해 등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고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한국인에게는 어림도 없는 이야깁니다.
글쓴이는 주로 시간제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탈출자의 자유를 누립니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물가 비싼 대도시를 떠나 살면서 시간제 사서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생활비를 최소한으로 줄인다 하더라도 저는 잘 모르겠네요. 가능하다면 한국이 생각만큼 팍팍한 사회는 아니네 하면서 안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도 이제 많이 비정규직이 생겨나고는 있지만, 여전히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살아도 괜찮을 만큼 원하는 때에 원하는 직장을 얻을 수 있을지 의심이 듭니다.
글쓴이 부부는 몬트리올에서 1년간 19200 캐나다달러, 2024년 8월 1일 기준으로는 한국 돈으로 약 1905만원으로 살아갑니다. 이 중 1년간 내는 월세가 10800 캐나다달러, 생활비가 8400 캐나다달러입니다. 정말 낮은 비용으로 살아가고 있지요. 채식주의로 식료품비가 1주에 80 캐나다달러, 그러니까 8만원밖에 나가지 않는다고 하고요. 한국에서 이렇게 사는 게 가능할까요?
그리고 글쓴이가 말하는 자유의 대가는 꽤나 비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