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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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나무에서 내려온 이래 수백만 년,
그러니까 99퍼센트에 달하는 기간동안 압도적으로 오랫동안 우리가 택했던 생활양식은 바로
'수렵채집' 이다.
오늘은 바로 이 수렵채집사회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1. 수렵채집사회란?
그렇다면 이 '수렵채집'은 정확히 어떤 삶을 뜻했을까?
우선, 모든 식량은 '수렵', 혹은 '채집'을 통해 얻는다.
'수렵'은 곧 '사냥'의 다른 말이며,
'채집'이란, 지역 내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야생자원'를 수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친구인 강아지 말고는 그 어떤 동물도 키우지 않으며,
그 어떤 식물도 의도적으로 기르지 않고,
오로지 사냥하고, 채집하고, 낚시하는 삶.
다시말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에 어떠한 유전적 개입도 하지않는 전략.
필요한 모든 것을 자연에서 취하고 어떤 변형도 안시키는 삶.
우리가 상상하는 순수한 ‘자연인’의 생활양식.
지구 상의 다른 모든 동물들이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
이것이 바로 수렵채집의 삶인 것이다. 그리고 인류는 200만년간 이렇게 살았다.
이런 삶을 내팽개친지는, 겨우 최근 1만 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2. 서울시에 200명도 안살았던 시절
수렵채집사회는 옮겨다니는 소규모의 집단들로 이루어져있었다.
이들은 매우 너른 지역에 성글게 분포했는데, 인구밀도는 대체로 여의도 한 개 면적(3㎢) 당 1명을 넘지 않았다.
오늘날 32,905명이 사는 여의도에서 나혼자산다를 찍을 수 있었단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건 수렵채집사회의 인구수를 꽤나 후하게 가정했을 때의 경우다.
실상은 여의도 열 개 면적(30㎢) 당 1명 정도밖에 인구밀도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기에,
여의도 면적 열배 정도(33.87㎢)인 오늘날 송파구 인구수가 2024년 주민등록통계상 653,447명이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우리는 수렵채집사회를 살던 조상들에 비해, 65만배 좁은 땅에서 얼굴 맞대고 살고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이 때의 수렵채집인들이 여의도나 송파구 같이 거대한 지역에 한두명씩 동굴에 틀어박혀 외따로 살아간 것은 아니다.
무리지어 사는 것이 홀로 살아가는 것에 비해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영장목의 짐승들은 아주 옛날부터 알고있었다.
이 수렵채집인들 또한 작게는 한쌍의 커플, 많게는 8명가량의 혈연으로 이어져있는 아주 끈끈한 ‘가족’을 이뤘으며, 그 가족들이 모여 작게는 스물에서 많게는 백오십 마리 남짓의 ‘국지 집단(Local group)’을 이뤘다.
자그마한 이 무리가 수렵채집사회의 표준적 집단, 움직임을 함께하는 최소단위였다.
굳이 따지자면, 사실 송파구 전체에 아무도 살지 않았을 확률이 더 높다. 대신 서울시 전역(605.2km²)에 걸쳐 최소 20명에서 최대 200여명 가량의 수렵채집인들이 살았을 것이다.
어쩌면 서울시 전역에 단 하나의 집단(Local group)도 없었을지 모른다. 많아봐야 한둘 정도의 국지집단이 무리지어 어떤 날엔 관악에서 물고기 잡고, 어떤 날엔 송파에서 멧돼지잡으며, 서울 이곳 저곳을 그때그때 옮겨다녔을 것이다.
오늘날의 현대인이 2만년 전의 한반도에 간다면, (사실 2만년 전에는 한반도가 없었다.) 이때의 인류는 그야말로 천연기념물이었다.
하루 종일 서울시 전역을 헤집어도 사람 한 명 찾아보기가 힘들었을테니까말이다.
이 국지집단은 대체로 부계적 공통성을 가진 집단이었을 것이다.
이 말은 곧, 집단의 남성들끼리는 서로 가까운 혈족관계이며, 집단의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외부에서 합류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는 침팬지 집단에서도 마찬가지의 경향을 갖는다. 한 집단의 수컷 침팬지들은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수컷 침팬지는 살해하지만,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암컷 침팬지들은 마다하지 않는다.
수렵채집사회의 인간들도 마찬가지였다. 국지 집단은 다시 더 거대한 지역 집단(regional group)을 이루는데, 이는 침팬지와는 구별되는 호모속Homo 인간들만의 독특한 면모였다.
만약 지리적 환경이 허락한다면, 다시 그 무리들이 한 곳에 모여 500명 가량의 거대한 ‘집단’을 이루었다. 이 500명 가량의 집단이 호모 사피엔스 종 번식 가능 ‘개체군’의 최소단위였지만,
사실 500명 집단이 오랫동안 모여있을만큼 풍부한 식량자원이 있는 곳은 지구 상에 몇 군데 되지 않았기에
(남부 캘리포니아의 추마시 족, 알래스카 남동부의 틀링깃 족 등 어획자원이 풍부한 연안지역)
실제로는 수십명 가량의 국지집단들이 야생 식물의 생장주기와 짐승들의 이동에 따라 꾸준히 옮겨다니며 혼인을 위한 주기적인 회합을 가졌을 것이다.
3. 웰빙 라이프를 누렸던 수렵채집인?
수렵채집사회의 생활수준은 이후에 등장한 농경사회의 그것에 비해 나았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정설이다.
열대지방의 수렵채집인은 하루에 최소 4,000칼로리가 필요하다. 이건 섭취하는 음식뿐만아니라 각종 도구, 그리고 간단한 옷가지나 주거지를 다 포함한 에너지의 총량이다.
열대의 고온다습한 환경은 풍부한 식물자원을 허용하기에, 열대 수렵채집인들은 대부분의 에너지를 식물에서 얻곤했다.
반면 극지방의 수렵채집인은 이것보다 최소 두배의 칼로리가 필요했다.
강력한 추위는 훨씬 더 두껍고 제대로된 집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곳에선 식물자원이 빈곤하기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동물, 특히 물고기에서 얻어야만 했다.
남자는 주로 사냥과 간단한 석기 만드는 일을 했을것이고, 여자는 식물 자원을 채집하고 음식을 만드는 일을 했을 것이다.
성에 따른 남녀의 역할 구분은 존재했지만 그리 엄격하진 않아서 상황에 따라서는 여자 사냥꾼이나 남자 요리사가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이들은 최적의 환경에서는 하루에 4시간 가량만 활동해도 하루에 필요한 칼로리를 확보할 수 있었고, 나머지 시간에는 여가활동을 했다.
농경사회를 살며 땅에 메인 존재였던 대다수 농민들이 하루종일 뼈빠지게 일해야 겨우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 먹고살았던 것과 비교하면 삶의 질 자체가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그래서 과거 학자들은 수렵채집사회를 '원시의 풍요로운 사회'라고 간주하기도 했다. 실제로 출토된 유골들을 발굴한 결과, 수렵채집인들은 육체적으로 이후 농경사회 구성원들에 비해 훨씬 건강했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수렵채집사회가 늘상 풍요로웠던 것은 아니다.
이들의 풍요로운 삶이라는 것은 ‘자연이 허락하는 한’ 일시적으로 가능했던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자연은 변덕쟁이였다.
또한 집단 내적으로도 인구증가로 인한 주기적인 압력이 이들로 하여금 최초의 전쟁과 기근을 강제했을 것이다. 최적의 조건이라는 것은, 곧 번식해서 그 수를 불리기에도 최적이라는 뜻이다.
태어난 아이의 절반 이상이 열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죽었고, 성인기를 거친 사람들은 대개 40살 전후로 세상을 떴다.
수렵채집사회에서는 또한, 어린아이들을 제거하는 풍습이 만연해 있었다.
특히 어린 여자아이들이 고의적인 비속살해의 주된 대상이었다. 인구 증가를 억제하고 전쟁을 막기 위해서였다.
인류는 이때부터, 가장 약한 사람들을 예방적으로 제거하는 무서운 길을 걸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피묻은 길은 최소 200만 년 동안 이어진다.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계승해온 생활양식'이 곧 '가장 인간적인 일’이라면,
우리의 역사에 있어 가장 인간적인 일은 바로, ‘자기 자식의 존재를 지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2부에서 계속...)
2부에서는 수렵채집사회의 어린이, 공유 강요, 그리고 폭력에 대해 다뤄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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