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집중력》으로 유명한 스코틀랜드 출신의 저널리스트 요한 하리의 책입니다. 요한 하리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사회과학과 정치과학을 전공했고 인디펜던트지에 기고하며 국제 앰네스티에서 2007년과 2010년 올해의 저널리스트 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지만, 2011년 표절과 조작, 위키백과 악성 편집을 인정하고 인디펜던트지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2015년 마약 중독을 다룬 《비명의 추격(Chasing the Scream)》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이후에도 중독, 우울, 불안, 집중력 저하 등 현대 사회의 중대한 문제들이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서 비롯했다는 주장으로 영향력 있는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이 책이 2018년에 나왔으므로 2022년에 나온 《도둑맞은 집중력》보다 앞서고 우리나라에서도 2019년에 《물어봐줘서 고마워요》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지만, 이 책은 2024년에 전면 개정판으로 새로 출간되었습니다. 두 다른 번역본의 목차를 비교해 봤는데 이 책이 더 원서의 목차 구조에 더 충실하게 번역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제가 '잃어버린 연결'임에도 불구하고 번역 제목은 먼저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도둑맞은 집중력》을 따온 듯한 《벌거벗은 정신력》으로 정해진 데다 책의 표지 디자인도 비슷해 논란이 되었습니다. 두 책의 출판사가 다르기 때문에 《벌거벗은 정신력》을 출판한 쌤앤파커스가 《도둑맞은 집중력》을 출판한 어크로스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은 것이지요.
글쓴이도 그렇고 번역 출판사도 그렇고 표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영 꺼림칙하기 합니다만, 이 책은 가디언지에서도 소개를 받았고 여러 저명인사들의 호평을 받았으니만큼 베스트셀러로서 이 책이 끼치는 영향력은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책의 목차를 살펴보겠습니다.
인사말 한국의 독자들에게
프롤로그 당신의 신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서론 왜 우리는 이토록 우울하고 불안한가
PART 1 당신은 고장 나지 않았다: 아무도 물어봐주지 않은 슬픔과 불안에 대하여
1장 무엇이 사람들을 낫게 하는 걸까
2장 모든 문제는 당신에게 있다는 거짓말
3장 우리는 단지 고통에 반응할 뿐이다
4장 작은 의심에서 시작된 커다란 균열
PART 2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우리를 아프게 한다: 불행과 고통을 부르는 7가지 상실에 대하여
5장 연결을 잃어버리자 행복이 사라졌다
6장 무의미한 노동: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7장 무관심한 개인: 내 곁에 누가 있는가?
8장 무가치한 경쟁: 나는 무엇을 열망하는가?
9장 무의식적인 회피: 나의 고통은 언제부터인가?
10장 무력화시키는 사회: 나의 위치는 어디인가?
11장 무감각한 환경: 나의 세계는 무슨 색인가?
12장 무방비한 미래: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13장 단절의 결과를 악화시키는 요인들
PART3 끊어진 것은 다시 연결할 수 있다: 삶의 가치를 회복하는 7가지 연결에 대하여
14장 우리에게는 새로운 처방전이 필요하다
15장 상실을 경험한 자들의 연대
16장 타인과의 연결: 개인보다 집단이 행복하다
17장 자연과의 연결: 이 장소에 존재한다
18장 의미 있는 일과의 연결: 주도권이 핵심이다
19장 자기 가치와의 연결: 스스로의 기준을 세우다
20장 열린 의식과의 연결: 자아 중독에서 벗어나다
21장 공감과 관심으로의 연결: 오랜 상처에서 해방되다
22장 미래로의 연결: 현실적인 가능성이 필요하다
결론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야 한다
감사의 글
참고문헌
프롤로그와 서론이 따로 있지만 이어져서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해 줍니다. 프롤로그에서는 잘못된 음식을 먹으면 토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을 일깨우고, 서론에서는 이처럼 잘못된 사회를 잘못된 생활 방식으로 살아가면 우울과 불안을 자연스럽게 느끼는 것일 뿐 뇌가 고장 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뇌가 고장 난 것이 아니라는 걸 1부에서, 사회와 생활 방식의 잘못을 2부에서 다루고, 잘못된 사회와 생활 방식을 고치는 대안을 3부에서 제시합니다. 그리고 사회와 생활 방식의 잘못이 바로 단절이기 때문에, 원제가 《잃어버린 연결》인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사회와 생활 방식 때문에 우리의 정신력이 무방비로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점에서는 《벌거벗은 정신력》이라는 제목도 일리는 있는 것 같습니다.
1부는 지금까지 흔히 쓰이는 항우울제의 효과가 없거나 매우 미미하며, 그러므로 뇌 안의 화학 물질의 불균형 때문에 우울이나 불안이 일어난다는 설명은 틀린 것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울 증상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렸을 때 나타나는 '애도'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들어, 우울증이 뇌가 잘못돼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외부 환경에 반응하는 자연스러운 애도의 일종일 수도 있다는 가설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그 외부 환경을 요약하면 '단절'이 되며, 단절을 해결하는 방법은 '연결'이 됩니다.
사실 단절 대신 '상실'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데, 굳이 '단절'이라고 표현한 것은 글쓴이가 개인주의 사회를 근본적인 문제로 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동물인데, 개인주의 사회가 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 끊어져 버렸고 사람이 무리에 속하지 않게 되면서 사람은 우울과 불안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단절입니다. 공동체와 끊어지면서 모든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지요. 따라서 아래의 모든 문제점은 공동체와 개인의 결속력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입니다.
2부에서 다루는 우울을 일으키는 외부 원인과 3부의 해결책을 제 나름대로 서로 대응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무의미한 노동: 재량권이 없고 노력한 만큼 보상이 돌아오지 않으면 우울증이 온다. ↔ 의미 있는 일과의 연결: 민주적 직장에서 자기 임무의 재량권을 회복하고 평등하게 일한다. 민주적 직장은 다른 사업장보다 4배 이상 성장했다.
무관심한 개인: 타인과 함께 의미 있는 것을 공유하지 않으면 외로움을 느끼고 우울증이 온다. ↔ 타인과의 연결: 자아를 허물고 집단을 소중하게 만들되, 혐오에 기반을 두지 않는 공동체를 만든다. + 열린 의식과의 연결: 명상이나 환각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중독을 깨고, 자연과 더 심오한 것과 연대를 회복한다. + '자연과의 연결' 참조
무가치한 경쟁: 물질주의에 갇힌 사람들은 우울과 불안에 빠진다. ↔ 자기 가치와의 연결: 광고를 떠나고, 연대 속에서 물질주의가 강요하는 외재적 가치가 아닌 내재적 가치를 서로 공유한다.
무의식적인 회피: 유년기 상처를 회피하고자 우울로 도주한다. ↔ 공감과 관심으로의 연결: 수치스러울 수 있는 유년기 상처의 이야기를 서로 공유한다.
무력화시키는 사회: 사회가 불평등할수록, 지위가 불안정할수록 고통스럽고 정신장애에 빠진다. ↔ '의미 있는 일과의 연결', '미래로의 연결' 참고
무감각한 환경: 자연과 분리되어 몸을 움직이지 않고 경외감을 상실하면 우울에 빠진다. ↔ 자연과의 연결: 사람들과 연대해 자연과 함께하면 우울을 잊는다 + '열린 의식과의 연결' 참고
무방비한 미래: 미래를 꿈꿀 수 없고, 미래가 불안정하면 우울과 불안에 빠진다. ↔ 미래로의 연결: 되찾을 수 없는 안정성의 시대에는 기본소득이 안정적인 미래를 복원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