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07/10 09:23:14
Name likepa
Subject [일반] 아이를 LG트윈스의 팬으로 만든 죄책감에 대하여
초등학교 4학년생 남자아이의 학부모 입니다.

아이가 야구에 관심을 가진 건 대략 1년정도 되었습니다. 학교에 특정 팀 모자나 유니폼을 입고 오는 친구들을 보고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더라구요. 아이한테는 말을 안하고 있었지만 저는 MBC청룡 시절부터(김재박 아저씨가 유격수 보던 시절) 어린이 회원이었고, 동네도 잠실야구장 언저리라 친구들 모두 LG/두산 양자택일의 분위기에서 자라온 모태 LG빠 입니다. 잠실야구장은 국민학교 고학년부터 친구들과 자전거로 출퇴근하였고, 돈이 없는 날은 6회~7회 넘어갈 때 외야쪽 입구에 불쌍하게 서 있으면 경비아저씨들이 들여 보내주시던 낭만의 시대에 프로야구와 함께 자랐습니다.

사는 게 바빠 매일같이 중계를 못 봐도 야구장 갈 기회가 생기면 무조건 LG경기에 맞춰서 가고 경기 결과는 늘 챙겨보다가, 길게 설명하기도 참 진저리나는 LG의 비밀번호 암흑기 시절에 저는 그만 마음이 꺾인 LG팬이 되고 말았습니다.(유독 그 시절 야구 선수들 사건사고도 많아서 사회인 입장에서 바라보니 좀 진저리가 나더라구요)

점점 야구에 흥미를 느끼는 아이와의 학교 운동장 캐치볼도 점점 능숙해지던 작년 늦가을 저녁, 아이는 그만 KT와 LG의 한국시리즈 2차전 박동원 선수의 역전 홈런을 보고 동공에 LG가 새겨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2024년을 맞이하여 개막시즌, 야구장에 가고 싶다는 아이의 조름에 “그래 그래 다음에 가자”(대를 이어 너 마저 LG로 고통 받게 해주고 싶지 않은 애비 마음을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로 넘기던 어느 날, 최강야구를 보던 아이가 “아! 박용택 그걸 못 치냐!” 소리에 저도 모르게 그만 “야! 박용택은 욕하지 마라!”. 망자의 혼이 깨어나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내/외야를 가리지 않고 표만 구하면 아이와 LG응원을 다니게 되었고, 신규 팬 유입에 진심이었는지 LG의 전반기는 꽤 괜찮은 신바람 야구였습니다. 아이는 유니폼을 구매 승인을 위하여 학교/학원 시험에 마음을 불태우고, 인고의 세월을 거쳐 모친의 재가를 득 하여 ‘51번 홍창기’가 새겨진 유니폼을 자기 옷장에 걸게 됩니다.

LG의 전반기가 끝나갈 때 즈음. 모든 LG선수의 응원가를 줄줄이 외우는 아이에게 너무 큰 상처가 되지 않도록 밥상머리에서 조심스레 DTD 교육을 진행하였습니다. 아이는 작년도 우승팀인데 무슨 소리하냐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더군요. 아니야 아들 LG팬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굳게 먹어야 된다. 절대 일희일비 하면 안 된 단다.

그렇게 어제 저녁 7월9일 하반기 첫 경기가 열립니다.

저녁을 먹고 방에서 조금 남겨온 업무를 하던 중 거실에서 KIA와의 경기를 응원하던 아들 입에서 십 수년전 제가 하던 대사가 나오더군요.”야! 그게 야구냐!”. LG팬이 된 걸 미안하지만 환영한다 아들아.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4/07/10 09:26
수정 아이콘
낄낄낄 웃으면서 읽었습니다.
하필 우승하는 해에 입덕하다니 크크크크크
추천 한 번만 누를 수 있는 게 아쉽네요.
생겼어요
24/07/10 09:26
수정 아이콘
그래도 작년에 우승했잖아요. 인생 10개월찬데 롯데팬이 되어버릴 운명에 놓인 제 아들놈은 ㅠㅠ 아빠가 서울까지 가서 동향사람을 만나는 바람에 어디 엄마 응원팀 팬 하라는 소리도 못하겠고 환장하겠네요 크크
사람되고싶다
24/07/10 09:28
수정 아이콘
엘지는 역사와 전통과 가끔 우승 하는 저력도 있는 팀 아닙니까 크크크크크.
진짜는 롯데팬을 물려주는 것...
24/07/10 09:29
수정 아이콘
(Fever Pitch) 한글 제목: 날 미치게 하는 남자에서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보스턴 팬이 된 남자 주인공에게
'곧 이 팀 때문에 가슴이 찢어질거야'
노둣돌
24/07/10 09:29
수정 아이콘
해태시절 기아팬, 그리고 오승환의 철벽마무리를 지켜보던 삼성팬들 말고는 다 비슷한 심정일 겁니다.
전 대전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만년유망주
24/07/10 09:35
수정 아이콘
글쓰신 분은 MBC 청룡 시절부터 팬이셨지만 80년대생 LG팬 상당수는 94 우승을 계기로 팬이 되었을 겁니다. 30년을 지나 자식 세대가 똑같은 행보를 밟는게 참 웃프네요..
24/07/10 09:36
수정 아이콘
우승뽕으로 입덕하면 평생이 고통일텐데 크크크
유아린
24/07/10 09:37
수정 아이콘
94우승으로 입덕한팬이 요깃네..
퀘이샤
24/07/10 09:39
수정 아이콘
84 최동원 때문에,,, 
24/07/10 13:17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전 94 이상훈 때문에...
24/07/11 11:27
수정 아이콘
저도 여기 한 표…
24/07/10 09:41
수정 아이콘
이게 야구냐 야구팬이 됐다는 선언이죠
그리움 그 뒤
24/07/10 09:42
수정 아이콘
2주 전쯤 결혼식 피로연에서 어떤 22살 젊은 친구를 알게 됐는데, 이 친구 부모는 한국인이지만 이 친구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인입니다.
1년에 방학기간 정도 한국에 온다고는 하는데...
이 친구랑 얘기하는데 이 친구가 갑자기 야구 얘기를 해요.
그래서 MLB 보는 줄 알았는데 자기 KBO 본다고 하고 응원팀이........ 한화라고 하더군요.
진심으로 위로(?)를 전했더니 그제 연락왔습니다.
다음주 대전에서 하는 한화-기아 경기 보러 가자고.
이번 금요일에 티켓팅해서 가보려고 합니다.
이 친구 야구보면서 한국말로 욕할지, 영어로 욕할지 기대되네요 크크크
김건희
24/07/10 10:23
수정 아이콘
"What the XXXX" 나오겠죠. 크크
aDayInTheLife
24/07/10 09:43
수정 아이콘
로이스터 개객기…ㅠㅠ
이선화
24/07/10 09:44
수정 아이콘
저도 어린이였던 2002년에 아버지에게 코가 꿰이고 LG팬으로 입덕하는 크나큰 불상사를 당했는데 크크크크
순둥이
24/07/10 09:54
수정 아이콘
작년부터면 뭐
The HUSE
24/07/10 09:57
수정 아이콘
지금 엘지팬된거면 행복한거예요.
polariss
24/07/10 10:02
수정 아이콘
환영합니다. 등에 51번 홍창기를 새긴 이름모를 청춘이여.
앞으로 그대와 우리의 앞길에 환희가 가득하길~~

그리고 "아! 박용택 그걸 못 치냐!” 라는 대사는 박용택이 골프채를 잡았을때만 해 주시길 크크
24/07/10 10:08
수정 아이콘
"니 여자가 너에게 충성심을 묻는다면, 니방에 걸린 오래된 리버풀 져지들을 보여줘라"

NO 8 . G E R R A R D

갑자기 가슴이 아련하네요
24/07/10 10:17
수정 아이콘
아 선생님 때문에 또 제라드가 넘어지는 악몽 꾸게 생겼자나요 ㅠㅠㅠㅠㅠㅠ

위 고 노리치 보면서 눈물 글썽글썽 했는데 ㅠㅠ
캐러거
24/07/10 20:11
수정 아이콘
충성심 그 자체
24/07/10 10:11
수정 아이콘
우승 입덕이 원래 제일 무서운법인데요...
DavidVilla
24/07/10 10:27
수정 아이콘
작년에 저 포함 94엘린이들 많이 울었었죠 크크
그래서 빠른 시일 내에 우승을 다시 하는 게 중요한데, 요즘 하는 꼴 보면 순위만 높지 '이게 야구냐' 수준이라..
윤석열
24/07/10 10:14
수정 아이콘
제 26개월 아기는 이미 LG를 너무 좋아합니다. 허허
24/07/10 10:18
수정 아이콘
빙그레로 입덕한 저도 있는걸요. 길고 긴 고통의 세월들...
비선광
24/07/10 10:19
수정 아이콘
초2 우리아들 실책할때마다 소파를 내려치죠 
괜히 lg팬시켰나 ㅜ 정신건강에 좋지 않은듯해요
작년은 ssg 올해는 기아팬한다고 강팀팬하겠다면서...
뭐 저도 아버지한테 당한 피해자?인지라 운명이니 하고 있습니다 
한걸음
24/07/10 10:42
수정 아이콘
태어나보니 왜 부산이어서...
네이버후드
24/07/10 11:19
수정 아이콘
제딸에게 선택지는 엘지냐 야구를 안보냐 말고는 없습니다
24/07/10 12:10
수정 아이콘
우리 아빠 평생 소원이 롯데우승 한번 더 보고 죽는건데 영생각 날카롭...
24/07/10 12:38
수정 아이콘
아빠가 초등학교 때 염종석 아저씨가..
설탕가루인형
24/07/10 12:59
수정 아이콘
30년 전에 우승으로 입덕해서 29년 간 고통 받았던 1인입니다
24/07/10 13:22
수정 아이콘
"LG의 전반기가 끝나갈 때 즈음. 모든 LG선수의 응원가를 줄줄이 외우는 아이에게 너무 큰 상처가 되지 않도록 밥상머리에서 조심스레 DTD 교육을 진행하였습니다. 아이는 작년도 우승팀인데 무슨 소리하냐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더군요. 아니야 아들 LG팬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굳게 먹어야 된다. 절대 일희일비 하면 안 된 단다."
이글의 핵심입니다!!

하아... 저도 94년의 그 신바람야구가 그렇게 발암야구로 바뀔줄은...
신량역천
24/07/10 17:59
수정 아이콘
95년 어린이회원으로 시작했습니다 부럽죠?
24/07/10 21:20
수정 아이콘
집에 MBC청룡 김용수 사인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90년에 LG쌍둥이빌딩가서 LG트윈스 저금통 받고 LG팬 되었습니다...
야구때문에 팬 되었으면 약팀일때 억울하진 않았을텐데...
24/07/10 21:36
수정 아이콘
94 김재현 때문에..
로즈마리
24/07/10 22:10
수정 아이콘
3대째 롯데팬입니다...아들아 미안해...
가성비충
24/07/11 02:11
수정 아이콘
저희 아버지가 94년도 우승을 보여주셨습니다.
젠장 그 뒤로 29년이 걸릴줄은 이상훈이 이승엽 마해영에게 연달아 홈런맞고 코시 6차전 내줄때도 몰랐습니다.
김선신
24/07/11 09:58
수정 아이콘
너무재밌습니다 글 잘읽었습니다 훈훈한 부자지간 스토리 또 들려주세요
미카엘
24/07/11 10:19
수정 아이콘
미리 미안해 우리 아가... 한화야 잘 좀 하자 ㅠㅠ
24/07/11 13:15
수정 아이콘
그래도 우승 한번 못보고 응원하는거 보단 낫잖아요? 크크크
91년에 삼성에 입덕해서 11년동안 고통받은 기억이 생생합니다.
먹구름
24/07/11 13:16
수정 아이콘
필력 좋으시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야구를 누가 즐겁게 봐요!?
elegantcat
24/07/19 18:45
수정 아이콘
10년대 초반에는 야구 모자 쓰고 다니는 동네 어린이 야구팬들은 거의 두산 팬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가끔 엘지 저지나 모자를 쓰고 있는 어린이를 보면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사 주고 싶은 강한 충동과 함께, '아버님(혹은 어머님)이 욕심을 부리셨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곤 했던...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1911 [일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90년대 일본 드라마 오프닝 곡들 [19] 투투피치4991 24/07/18 4991 3
101910 [일반] 티비,영화에서 많이 들었던 추억의 여자 보컬 팝송 [3] Pika484795 24/07/18 4795 2
101909 [일반] 꾸이린, 너는 계수의 숲을 보았니? [4] 가위바위보4697 24/07/18 4697 4
101907 [일반] [서평] 자본 없는 자본주의, 우리는 무형의 경제로 나아갈 수 있을까 [13] 사람되고싶다5282 24/07/18 5282 7
101906 [일반] 세월호 수색 헬기 사망자 10주기였네요 [7] 승승장구7309 24/07/18 7309 25
101902 [일반] 인류 역사의 99%를 알아보자: 혈흔이 낭자했던 수렵채집사회 [11] 식별9715 24/07/17 9715 28
101900 [일반] 트럼프의 러닝 메이트와 "힐빌리의 노래(Hillbilly Elegy) - 트럼프의 젊은 마스코트? [70] 스폰지뚱10591 24/07/16 10591 10
101899 [일반] 협회와 홍명보, 모든 것이 철저히 무너지길 바라며 [61] 민머리요정13829 24/07/16 13829 81
101898 [일반] 아침 조(朝)에서 파생된 한자들 - 비웃음, 사당, 밀물 등 [15] 계층방정5912 24/07/16 5912 7
101897 [일반] 인류 역사의 99%를 알아보자: 서울에 200명도 안살던 시절 [8] 식별9063 24/07/16 9063 19
101893 [일반] SI개발의 해묵은 문제 [45] 퀀텀리프9161 24/07/15 9161 7
101892 [일반] "감독의무 있다" 法, 학폭 가해학생 부모 손해배상 책임 인정 [20] 로즈마리8660 24/07/15 8660 4
101890 [일반] [서평]《벌거벗은 정신력》 - 현대 사회에서 폭증하는 우울과 불안은 질병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애도다 [4] 계층방정5716 24/07/14 5716 9
101889 [일반] [서평]《매혹의 땅, 코카서스》 - 직접 가보는 듯한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조지아 여행기 [8] 계층방정5068 24/07/14 5068 6
101888 [일반] ASUS, RTX 4060 Dual V3 그래픽카드 출시(절대 비추천) [10] SAS Tony Parker 5631 24/07/14 5631 2
101887 [일반] 내맘대로 엄선한 일본 여자 그룹 보컬 노래 (장르/시기 불문) [13] Pika485328 24/07/14 5328 1
101886 [일반] 인생이 한 번 뿐이라 오히려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다. [40] 사람되고싶다10502 24/07/14 10502 10
101884 [일반] PC방 숫자가 엄청나게 줄어들었습니다. [56] 버들소리13392 24/07/14 13392 2
101883 [일반] [팝송] 알렉 벤자민 새 앨범 "12 Notes" 김치찌개4719 24/07/14 4719 0
101882 [일반] ‘삼체’를 소설로 읽어야 하는 이유 [34] Schol10000 24/07/14 10000 26
101881 [일반] 퇴직과 이직 즈음에서 [8] 흰둥6462 24/07/13 6462 11
101880 [일반] [눈마새] 나가 사회가 위기를 억제해 온 방법 [10] meson5906 24/07/13 5906 20
101879 [일반] 끝없는 달리기 고통의 원인 이제 마지막 선택지만 남았네요 [18] 내우편함안에7073 24/07/13 7073 1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